161화
설마 이중 던전인 건가?
이중 던전이란 던전 안에 또다른 던전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은 특별한 조건이 갖춰지면 발동하는데, 지금이 그런 경우인 듯 싶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전에 탄과 만났을 때도 이중 던전이었지만 그때는 특별한 조건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랜덤으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열렸던 케이스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택을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은 랜덤이 아니라 분명히 나를 보고 선택을 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중 던전은 열리면 던전은 완벽히 차단된다.
내부에서 외부로 나갈 수도 없고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올 수도 없다.
물론 던전을 힘으로 찢어버릴 수도 있지만 최상급 던전의 경우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선택한 곳이 선녀궁이라고 했지? 일단 선녀궁에 가보면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있겠지.
난 급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유랑하듯 던전 안을 거닐었다.
던전에 들어왔을 때는 숲이었는데 조금 걷자 금방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곤 자그마한 마을이 보였다.
“흠. 저기가 선녀궁인가?”
마을엔 고풍스런 옛 저택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감을 확장해서 주변까지 살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여기가 선녀궁이 아닌 건가?”
선녀궁이 아니라고 해도 마을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던전 안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마을을 빠져 나왔다.
나오기 전에 몇몇 집을 들어가 살폈지만 특별한 건 발견할 수 없었다.
“여기가 선녀궁이 아니라면 어디로 가야 되는 거지? 그리고 왜 몬스터가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거지?”
그때 마을을 떠나 걷던 내게 낯선 기운이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응? 이건 또 뭐지?
근데 달려오는 폼이 인간 같지 않았다.
네 발로 빠르게 달려오는 모습이 꼭 짐승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내 앞에 나타난 건 짐승이었다.
그것도 일반 짐승이 아니고 맹수 중의 맹수인 호랑이였다.
“호랑이? 이야, 호랑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줄이야.”
호랑이는 동물원에서만 봤지 실제로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다.
물론 이곳은 현실이 아니고 던전 안이다보니 저 호랑이도 평범한 호랑이는 아니었다.
뿜어내는 기운만 보더라도 A급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호랑이 따위는 내게 어떤 위협도 되지 못하기 때문에 긴장감은 전혀 없었다.
그때 화등잔한 눈으로 가만히 날 관찰하던 호랑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그대가 선녀궁에 의해 선택받은 인간인가?]
“응? 전음?”
지금 호랑이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 기술은 전음이었다.
츤츤이야 워낙 특별한 존재니 그렇지만 설마 또 동물 중에 전음을 사용하는 존재를 만날 줄은 몰랐다.
[선녀궁에서 인간을 선택한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을 테지. 일단 날 따라와라.]
그리곤 호랑이는 곧장 몸을 돌려 어딘가로 떠나려했다.
난 그걸 보곤 급히 호랑이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정도는 설명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러자 호랑이는 날 힐끔 바라보더니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그건 따라와보면 알게 될 터. 일단 따라와라.]
그리곤 곧장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황당했지만 지금은 따라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둘러 호랑이 뒤를 따라갔다.
호랑이는 가는 중간 중간 내가 잘 따라오나 힐끔 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내가 잘 따라오는 걸 확인하고는 그때마다 속도를 높였다.
마치 날 시험해보듯이 말이다.
하지만 호랑이가 얼마나 빨리 달리던 언제나 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달렸다.
그렇게 숲속을 한참 달리던 호랑이는 숲 깊숙이 자리잡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간 동굴 안은 겉에서 보는 것과 완전히 달랐다.
동굴 내부는 뭣 때문인지 모르지만 대낮처럼 환했고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걸 본 난 신기해서 호랑이를 따라가는 것도 잊고 멈춰서서 동굴 안을 구경했다.
그러자 앞서 가던 호랑이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거기서 뭐하는 거냐?! 어서 따라 와라!]
그제야 난 정신을 차리고 다시 호랑이 뒤를 따라갔다.
동굴은 상당히 길어서 그 안에서도 상당히 먼 거리를 달려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랑이가 멈춰선 곳은 동굴 끝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사실 집들이 여섯 채밖에 없어서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여섯 채의 집들은 원형을 이루며 지어져 있었는데 그 중앙에는 환한 한줄기 빛이 비춰지고 있었다.
빛이 어디서 나오는지 위를 올려다봤더니 동굴 꼭대기가 뚫려있고 거길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신기하네. 동굴 안에 이런 마을이라니. 그럼 여기가 선녀궁인건가?
그때 누군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였는데 그를 본 호랑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날 지긋이 바라봤다.
그 눈빛은 한없이 고요하고 맑았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녀궁에서 사람 하나는 제대로 뽑았군. 이런 이를 데려오다니 말이야.”
“저기…… 누구시죠?”
내 질문에 노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난 호곡이라고 하네.”
“호곡이요?”
처음 듣는 이름이다.
던전이라면 보통 신화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신화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호곡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노인의 이름을 듣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다시 노인이 입을 열었다.
“날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거야.”
“왜 그렇지?”
“난 사라진 아이니까!”
“사라진 아이?!”
이건 또 뭔소리지?
당최 알 수 없는 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날 집 안으로 안내했다.
“일단 여기서 얘기하긴 그러니 안으로 들어가지.”
난 고개를 끄덕인 다음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호랑이는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않고 집 입구쪽에 자리를 잡고는 앉았다.
그런 호랑이를 한 번 힐끔 쳐다본 다음 노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한옥마을 같은 곳에서 볼 법한 옛날 집이었다.
하지만 관리를 잘해서인지 곳곳에서 멋스러움이 묻어나왔다.
그는 날 작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곤 앉으라고 한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네가 왜 여기로 왔는지 궁금하겠지. 안 그런가?”
“궁금하죠. 날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지만 날 선택한 곳이 선녀궁이라고 하던데 여기가 선녀궁인가요?”
허나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선녀궁은 이곳이 아니라 저 위에 있다네.”
“위라구요? 위라면 어딜 말하는 거죠?”
“말 그대로 저 하늘 위를 말하네.”
“하늘 위라구요? 설마 하늘 나라 같은 건가요?”
“선녀궁은 선녀들이 사는 곳이니 당연히 하늘 위에 있겠지.”
헐. 진짜 하늘 위라구? 기회되면 한 번 올라가 보고 싶네.
“그럼 선녀궁에는 갈 수 없는 건가요?”
“거긴 특별한 조건을 만족해야지만 갈 수 있네. 지금으로선 갈 방법이 없지. 그보다 선녀궁에서 자넬 왜 선택했는지부터 얘기해 주겠네.”
난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내 이름은 호곡이네. 그리고 내 선조는 바로 인간이 되기 위해 동굴 안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버텼던 호랑이라네.”
“네?! 뭐라구요?!”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난 깜짝 놀라 소리쳤다.
“놀라는 걸 보니 우리 선조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군.”
“진짜로 그 호랑이가 선조라구요? 환웅에게 부탁해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했던 곰과 호랑이 중 그 호랑이 말이에요?”
“그렇다네.”
저 이야기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먼 옛날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데리고 백두산에 내려왔을 때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했다.
환웅은 동굴 안에서 백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는다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곰과 호랑이는 마늘과 쑥만 먹으며 버텼지만 결국 호랑이는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포기했고 곰만이 버텨서 인간 여성이 되었는데 그녀를 웅녀라고 했다.
웅녀는 환웅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게 바로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다.
근데 저 노인이 중간에 뛰쳐나간 그 호랑이의 후손이라고?
뜬금없는 전개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노인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놀란 것도 이해하네. 하지만 자네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잘못되었네.”
“잘못됐다구요? 어디가 잘못됐다는 거죠?”
“자네가 보기에 내가 호랑이 같나 사람 같나?”
“당연히 사람 같죠. 근데 그건 왜……?”
내 대답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자네 말대로 난 사람이네. 그리고 그건 내 조상님들도 마찬가지네.”
“네? 그게 무슨……?”
대체 무슨 얘길 하려고 저러는 거지?
“자네가 알고 있는 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말하는 거네. 그날 동굴에 있던 호랑이는 동굴을 뛰쳐나가지 않았네. 곰과 함께 끝까지 버텨서 사람이 됐지.”
“네?!!”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난 크게 놀라며 소릴 질렀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노인에게 물었다.
“근데 왜 세상엔 그렇게 알려진 거죠?”
“그건 다 복희씨 때문이네.”
“복희씨요? 설마 중국 신화에 나오는 그 복희씨를 말하는 거에요?”
“자네가 정확히 무슨 얘길 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맞을 거네.”
갑자기 여기서 복희씨는 왜 튀어나오는 거야?!
복희씨는 중국 신화에서 삼황오제중 한 명이다.
삼황은 복희씨, 신농씨, 여와씨를 말하고, 오제는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을 말한다.
복희씨는 이 중 수위로 치는 인물이다.
호곡은 내가 복희씨에 대해 아는 듯하자 이야기를 이어갔다.
“곰은 웅녀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환웅과 결혼해서 단군이라는 아이를 낳았지. 그리고 우리 선조인 호랑이는 인간이 되고 나서 호천이란 이름을 받았네. 그리고는 우연히 선녀궁의 선녀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지.”
“선녀와 결혼을 했다구요?”
“그렇다네. 근데 문제는 아이가 태어나고서 일어났네.”
“무슨 일이죠?”
이야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흥미롭게 흘러가자 난 옛날 이야기를 듣는 심정으로 그의 얘기에 빠져들었다.
“그 아이가 말살자의 조각을 찾게 된 거지.”
“네? 말살자의 조각이라구요?”
여기서 말살자 조각이 왜 튀어나오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난 서둘러 다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죠?”
“그 아이는 그게 뭔지 몰랐지. 그저 붉게 빛나는 작은 돌조각이라 생각하고 가지고 놀다 실수로 말살자의 조각에 의해 손바닥이 긁히게 됐지.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네.”
“놀라운 일이요?”
“피가 나는 손바닥 안으로 들고 있던 말살자 조각이 흡수돼 버린 거지. 그리고 상처도 말끔히 나았다네. 근데 그 이후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네.”
“이상한 일이라면 어떤?”
“그 아이가 말살자 조각을 흡수한 후부터 흡수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일이 일어나게 됐네. 그리고 그 횟수는 점점 잦아졌지.”
꿀꺽.
난 마른 침을 삼키고 그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호천과 선녀궁에 있던 선녀들은 폭주하는 아이를 치료하는 방법을 찾던 중 우연히 그 아이에게 일어난 일이 복희씨 귀에 들어갔다네. 복희씨는 직접 선녀궁으로 찾아와서 아이의 상태를 본 후 갑자기 옆에 있던 호천을 죽였다네.”
“네? 갑자기 호천을 죽였다구요? 왜요?!”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