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절대 공간 마법이 사라진 후 우린 미리 얘기한 대로 전투를 시작했다.
제우스 측에는 그를 포함해 여섯 명의 신들이 있긴 하지만, 제우스만이 절대자급의 힘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그에는 미치지 못했다.
거기다 그들은 힘의 제약까지 받고 있기 때문에 전투는 어렵지 않았다.
호루스와 키라가 각각 두 명의 신들을 상대하고 내가 제우스와 싸웠다.
나머지 한 명은 동료들이 합격진으로 상대했다.
치열한 싸움이 계속 됐지만 결국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났다.
던전 안에 있는 존재들은 그 안에서는 몇 번을 죽더라도 살아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공격하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기본적인 전력에서도 우리가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그들과 계약을 했다는 존재도 우리가 합을 맞췄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신화급 던전답게, 클리어하고 나자 상당히 뛰어난 품질의 아이템이 떨어졌다.
난 쓸 만한 아이템들은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필요 없는 아이템은 먹어치웠다.
먹은 아이템들 중에는 전설급 템도 하나 있었는데, 그로 인해 능력치가 꽤 많이 올라갔다.
동료들이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을 살펴보며 기뻐하고 있을 동안 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제우스 말대로라면 던전들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야. 다른 차원에 있는 몬스터들과 계약을 맺어서 현실로 데리고 온 거지. 근데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그리고 왜 하필 여기지?’
던전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던전을 만들고 다른 차원에 있는 몬스터들과 계약을 한 존재.
말살자의 힘과 의지를 계승한 존재.
그리고 류호에게 신급 스킬을 줬다는 존재.
마지막으로 내 시간을 되돌리고 내게 방어력 무한 스킬을 준 작가.
이 모든 존재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묶여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좀 더 파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일단 좀 더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던전을 더 돌아봐야겠어.
던전 밖으로 나온 나는 호루스와 키라에게 방금 생각한 내용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들도 조금 전 제우스에게 들은 내용에 호기심이 생기는지 기꺼이 돕겠다고 했다.
동료들에게는 자세한 설명 대신 한동안은 던전을 돌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들은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 돌 던전에서 나올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주기 위해서 데리고 가는 것이다.
거기다 수준 높은 전투를 보게 된다면 그들이 성장하는데도 도움이 될 테고 말이다.
난 즉시 서치에 접속해서 유럽과 한국에 있는 최상급 던전에 대해 알아봤다.
하지만 그간 내가 최상급 던전에 대한 정보는 막아놨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정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서치 안을 돌아다니다보니 몇가지 의심 가는 내용들이 보였다.
[우리 길드가 우연히 찾아 들어간 던전이 있었는데 난이도가 극악이라 몬스터 한 무리만 잡고 도망 나옴.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우리 길드는 상급 던전을 7번이나 클리어한 배테랑임. 그런데도 한 무리만 깨고 도망나옴. 안 믿을까봐 인증샷 올림.]
그리고 올라온 사진에는 부상당한 동료들과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상처가 심한 동료 모습도 보여서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알려줬다.
그 글 밑에는 응원한다는 댓글과 함께 그곳에 가봤다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일단 저기 한 번 가보는 걸로 할까?”
내가 그 글을 공유하자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이나 내용으로 봐서는 최상급 던전인 거 같은데…… 던전 난이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게 맘에 좀 걸리네…….”
해진우가 뭔가 의심스러운지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일단은 작은 실마리라도 있다면 무조건 가는 게 옳았다.
우린 즉시 그들이 던전을 발견했다는 부산 다대포로 향했다.
이번엔 절대자들을 배려해서 차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호루스와 키라는 사방이 막힌 차를 타고는 답답해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즐기기 시작했다.
한참 차를 타고 창밖 풍경을 구경하던 키라가 말했다.
“인간들은 어떻게 이런 걸 타고 다닐 생각을 한 거지?”
“어때? 재밌지?”
“뭐, 재미는 있는데 효율이 너무 떨어져. 굳이 이렇게 느린 이동수단을 탈 이유가 있는 거야?”
그제야 그녀가 뭘 답답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이나 답답한 거지. 기본적으로 인간들 중에는 이 자동차보다 빠른 인간은 없다구. 물론 지금은 각성자들이 생겨서 차보다 빠른 인간이 많지만 말이야.”
“아, 맞다! 그러고보니 인간들은 마법을 사용할 줄 몰랐었지?”
“그래. 이제 알았냐?”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가다보니 탁 트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부산에 도착한 것이다.
울산에서 부산은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운전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 만에 부산 광안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난 광안리에 있는 호텔에 방을 마련하고는 동료들에게 내가 던전 난이도를 확인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
던전 난이도만 확인하러 가는데 우르르 몰려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동료들은 알겠다고 했고 난 키라와 호루스에게도 기다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키라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도 같이 가면 안돼? 너 없으면 심심하단 말이야.”
“심심하긴 뭐가 심심해, 애들이랑 잘만 놀더만. 그리고 나 혼자만 잠깐 가서 보고 오는 게 더 빨라. 던전은 같이 돌게 될 테니까 너랑 호루스는 동생들이랑 같이 다른 최상급 던전에 관한 정보는 없는지 찾고 있어. 갔다 오는데 하루도 안 걸릴 테니까.”
그러나 여전히 키라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난 결국 처음에 했던 약속까지 들먹여서야 그녀를 설득할 수 있었다.
“니 말대로 오랜만의 유흰데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인간 생활을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않겠어?”
그녀는 그것도 좋다고 생각했는지 얼굴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광안리에 있는 호텔을 떠나기 전에 호루스에게 키라를 잘 좀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호텔을 나왔다.
“어디보자. 정확한 위치가 어디였더라…….”
서치에 접속해서 다시 한 번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확인을 하자마자 그곳을 향해 달렸다.
인적이 드문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 던전에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그 글을 읽은 사람이 많았던 건지 꽤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며 던전 앞에 모여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고작 던전 앞인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거야?
의아한 마음에 근처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여긴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죠?”
그러자 그는 이상한 눈으로 날 한참 동안 바라보다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야 선녀궁 때문이지.”
“선녀궁이요?”
처음 듣는 이름이다.
“설마 선녀궁도 모르고 여기 온 거에요?”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뭐죠?”
그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날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저 던전 안에 선녀궁이라고 있는데 그 선녀궁을 클리어하면 선녀궁 안의 선녀들이 모두 그 사람의 하녀가 된대요.”
“하녀요? 요즘 시대에도 하녀가 있어요?”
“그럼요. 만약 없다해도 만들면 그만이죠.”
“그거야 그렇죠. 그럼 당신도 선녀궁 선녀를 하녀로 만들기 위해서 여기서 기다리는 거에요?”
“그거야 당연하지!”
흠…… 선녀궁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지만 선녀궁 안에 선녀들이 살고, 그들을 클리어하면 선녀들을 하녀로 만들 수 있다라……뭔가 의심스러운 냄새가 나지만 일단 나도 한 번 들어가볼까!
던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던전 입구로 걸어가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을 막아섰다.
“왜 그래? 무슨 일이지?”
내 물음에 그들 중앙에 있던 남자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아무나 못 들어간다고? 그럼 누가 들어갈 수 있는 건데?”
“우리가 허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지.”
“니네가 허락한 사람이라고? 어떻게 해야 허락해 주는 건데?”
“그거야 어렵지 않지. 일단 천만 코인을 나한테 입금해. 그럼 들여보내줄게.”
“니들이 뭔데 그 돈을 받고 보내주니 마니하는 거지?”
내가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막아선 다른 남자가 말했다.
“우리가 누구냐고? 우린 이 던전 최초 발견자지. 그리고 선녀궁의 존재를 알아낸 것도 우리라구. 그러니까 잔말 말고 들어가려면 돈을 내고 가.”
난 그의 말을 듣고나서 피식하고 웃었다.
그걸 본 다른 남자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웃어? 이 새끼가 죽으려구 환장을 했나? 돈 안낼 거면 얼른 꺼져. 장사하는데 방해되니까.”
하. 이놈들 웃기는 놈들이네. 저런 식으로 해서 돈을 벌다니…… 그럼 그때 그 글도 거짓인건가?
사실 요즘 서치의 문제점 중 하나로 떠오르는 게 거짓 정보였다.
난 내 앞을 막아선 사람들과 주변에서 무리지어 있는 이들을 바라보다 물었다.
“그럼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지? 왜 들어가지 않고 저기서 서성거리고 있는 거지?”
“그건 돈을 내면 말해줄게.”
난 일단 그의 요구대로 천만 코인을 송금했다.
그리고 또다시 물었다.
“저 사람들은 여기서 뭐하는 거지?”
“저들은 아직 결정을 못한 사람들이야. 천만 코인이 적은 돈은 아니니까. 그나저나 혼자 들어가도 괜찮겠어?”
“그게 다야? 다른 정보는 없어? 던전 난이도라든지 아님, 던전 안의 적들이라든지 말이야.”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겨우 빠져 나왔을 정도로 난이도가 극악이야. 어찌저찌 선녀궁에 대한 정보도 얻었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정보는 전혀 몰라.”
“그럼 이제 들어가면 되나? 돈도 냈으니 얼른 들어가고 싶은데!”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은 날 제지했다.
“잠깐잠깐! 이미 안에 들어간 팀이 있어. 들어간 지 몇 분 안 됐기 때문에 리셋 되려면 조금 기다려야 될 거야.”
난 고개를 끄덕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던전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포탈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내게 돈을 받은 남자가 포탈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드디어 들어가보는구나.
사실 깽판을 치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던전을 클리어한 것도 아닌데 처음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던전에 들어가는데 돈을 받는 건 명백한 불법이다.
하지만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군소리 없이 돈을 내는 이유는 자신들도 나중에 그렇게 하기 위해서다.
거기다 난 몰랐지만 내 앞을 막아선 이들은 꽤 유명한 길드라서, 그들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단체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저들에 대한 처리는 일단 던전 난이도가 어떻게 되는지부터 확인한 다음에 동료들이랑 와서 하면 돼. 일단은 던전 난이도부터 확인하자.
난 즉시 포탈을 통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몸을 밀어넣자 환한 빛과 함께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그리고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 최상급 던전 ‘잊혀진 호랑이’에 입장했습니다.
역시 최상급 던전이 맞구나.
던전 난이도를 확인하고 돌아서 나가려는데 나가는 포탈이 사라졌다.
그리곤 새로운 메시지가 또 나타났다.
- ‘선녀궁’에서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선택받은 자’가 되면 던전을 완벽히 클리어하기 전까지 나갈 수 없습니다. 또한 클리어 전까지 누구도 던전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선택받은 자? 이건 또 뭔 소리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