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거대한 성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수많은 시선이 날 압박했다.
성문 안에는 여덟 명의 절대자들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키라도 있었는데, 그녀는 이 상황이 재밌는지 빙그레 미소를 지은 채 나와 다른 절대자들 얼굴을 번갈아가며 구경했다.
그때 그들 중앙에 있던 절대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생긴 것 만큼이나 묵직한 저음이 그의 말에 무게감을 실어줬다.
“넌 누구지?”
말을 하는 그의 전신에선 좌중을 압도하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를 보자마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저놈이 리치킹이구나!
그때 리치킹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너 ……말살자 조각 소유자구나……!”
그 말에 다른 절대자들도 내 안에 있는 말살자 조각의 힘을 느낀 모양인지 다양한 반응으로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호루스가 뒤에서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른 절대자들에게 말했다.
“이 친구는 박태준이다. 다들 느꼈겠지만 말살자 조각의 소유자지. 아무래도 오늘 주제가 말살자의 부활에 관한 일이다 보니, 같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내가 불렀는데 그대들 생각은 어떤가?”
절대자들 앞에선 호루스의 말투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의 말에선 위엄이 넘쳐흘렀고 전신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기운이 흘러넘쳤다.
아무래도 다른 절대자들 앞이라 이미지 관리를 하는 모양이다.
호루스의 말에 대부분의 절대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참석해도 된다고 동의를 했다.
하지만 리치킹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췄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각 차원을 대표하는 절대자들의 모임! 어중이떠중이가 낄 자리는 아니지.”
그 말에 난 발끈하며 소리쳤다.
“어중이떠중이? 그럼 우리 차원의 대표는 누구지? 그걸 누가 정하는 건데?”
내 물음에 리치킹이 자신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이를 쳐다봤다.
리치킹의 시선을 받은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외모의 남자로 나이는 5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피부가 유독 하얗다는 것 정도.
그것만 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얼굴의 동양인 남자였다.
하지만 그건 외모만 그럴뿐 그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리치킹의 존재감이 워낙 강해서 가려져 있을뿐이지 자세히 보면 그의 존재감도 상당했다.
어디보자. 리치킹이 데려왔으면서 우리 차원을 대표하는 절대자급 강자라…… 그럼 저자가 마인이겠군.
“혹시 니가 마인이야?”
그는 내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에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날 알고 있나?”
“아주 잘 알지.”
“하긴 내가 요즘 드러내놓고 활동을 하긴 했지. 그나저나 박태준이라면 보고 받은 적이 있어. 내 십이지신들 중 몇을 죽인 놈이 너로구나!”
하지만 그에게선 어떠한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니 부하들을 죽였는데 화나지 않아?”
“전쟁에 희생은 불가피하지.”
“그건 나도 인정. 그나저나 니가 우리 차원 대표로 선발된 건 누가 결정한 거야? 최소한 난 동의한 적 없는데.”
“그럼 나 말고 우리 차원의 절대자가 될 만한 존재가 또 있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널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의 말에 난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안될 것도 없지.”
“인간들은 언제나 오만했지.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말이야.”
그리곤 무형의 기운이 발밑에서 솟아오르더니 내 몸 전체를 옭죄어왔다.
하지만 난 그 기운에 저항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지금 나랑 한 번 놀아보자는 거지? 그럼 여기서 이기면 내가 우리 차원의 대표가 되는 건가?”
“할 수 있다면……!”
그의 말이 끝나자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무형의 기운이 서서히 조여왔다.
하지만 난 태연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걸 보고 내가 자신의 공격에 영향을 받지 않는 다는 걸 알았는지 손가락을 탁하고 튕겼다.
그러자 내 몸을 조여오던 무형의 기운은 사라지고 마인 주변으로 수십 개의 빛덩어리들이 만들어졌다.
꼬마전구만한 빛덩어리들은 마인의 몸 주변을 유영하다가 갑자기 날 향해 쏘아졌다.
나도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
빛덩어리들이 순식간에 내가 있던 자리를 관통했지만 난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때부터 치열한 공방이 시작됐다.
직접 붙어본 마인은 확실히 나보다 실력이 뛰어났지만 난 그걸 무한의 방어력으로 커버했다.
마인 역시 내 공격을 무시할 정도로 실력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한발 물러났다 다시 한발 전진하는 지루한 싸움이 계속됐다.
다른 절대자들은 나와 마인의 싸움을 흥미로운 눈으로 구경했다.
마치 본 회의에 앞서 열리는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결판이 나지 않자 슬슬 짜증을 내며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겠어. 이걸로 승부를 본다.
난 화룡도를 소환한 후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강의 기술인 단월을 준비했다.
마인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뭔가를 준비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둘 다 섣불리 먼저 공격하진 않았다.
그러나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
결국 마인이 먼저 공격에 나섰다.
그는 날 지긋이 바라보다 쥐고 있던 오른 주먹을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그냥 천천히 앞으로 내밀었을 뿐이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저건 한 번의 주먹질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최소 오십 번 이상의 주먹이 중첩되어서 날아오는구나!
마인의 주먹질은 언뜻 보면 느릿하게 한 번 내지르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엄청난 빠르기의 주먹질 수십 번이 중첩되어 날아오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난 화룡도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검을 휘둘렀다.
“단월!”
내가 펼친 단월은 날아오는 수십개의 주먹질을 하나씩 잘라냈다.
그리고 마지막 주먹질까지 잘라낸 후 마인의 옷자락을 살짝 베고는 힘이 다해 소멸했다.
그때 마인이 놀란 얼굴로 자신의 베인 옷자락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참는 눈치였다.
왜 저러는 거지?
그때 조용히 관전하고 있던 리치킹이 앞으로 나서며 내게 말했다.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로군. 허나 그 정도 실력으로 너희 차원의 대표가 될 순 없지. 그건 너도 알고 있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우리 차원의 대표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이번 회의에 참석하고 싶을 뿐이다.
리치킹도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이어서 말했다.
“그러나 이번 회의의 주제가 말살자에 대한 것인 만큼 이번만 특별히 예외적으로 참석을 허락하도록 하지. 다들 동의하겠지?”
이미 조금 전에 그들은 동의를 한 상태였지만 형식적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본 것이다.
별다른 의견이 없는 듯하자 리치킹은 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말살자 조각 소유자와 호루스는 어서 자리에 앉도록 하고 바로 회의를 시작하지.”
나와 호루스가 빈자리에 앉자 리치킹이 말을 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오늘 자리는 말살자의 부활에 관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지. 일단 내가 알아낸 정보에 대해 먼저 얘기하도록 하지.”
그리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호루스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추가된 내용이라면 지옥의 대마신들이 차원의 벽을 거의 다 뚫었다는 것이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들이 차원의 벽을 거의 다 뚫었다고 해. 대략 이곳 시간으로 이 삼주 정도면 열릴 걸로 예상돼.”
“근데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는 거지? 정보의 출처가 궁금한데. 믿을 수 있는 정보인거야?”
내 물음에 리치킹은 아무 말 없이 날 지긋이 바라봤다.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고 있지만 그 시선을 받은 난 엄청난 압박을 느꼈다.
그렇게 한 동안 날 쳐다보던 리치킹이 다른 절대자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내 질문에 대답을 했다.
“구체적인 정보 출처에 대해선 얘기해주기가 곤란해. 대신, 확실한 정보니까 믿어도 돼.”
그리곤 다른 절대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내가 아는 모든 정보야. 혹시 다른 정보가 있으면 얘기해줘.”
그의 말에 키라가 말했다.
“이건 추측이긴 하지만 우리가 여기로 넘어오기 전에 우리에게 어떻게 차원 벽을 뚫을지 알려줬던 존재가 말살자가 아닌가 싶어.”
키라의 말에 그녀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자와 비슷한 형상을 한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나도 이번 일이 터지고 나니 그때 그 존재가 의심스럽더군. 우리 모두에게 왔다는 건 차원을 넘어다닐 수 있다는 건데…… 그가 말살자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 굳이 우리한테 차원의 벽을 뚫는 방법을 알려준 것도 그렇고 말이야.”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곳곳에서 동의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때 키라가 다시 말을 했다.
“근데 예전에 만났을 때는 그리 대단한 실력은 아니었어. 하지만 리치킹 말대로, 지금은 예전 힘을 거의 되찾은 거라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
내가 궁금해서 묻자 키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다른 말살자 조각 소유자의 힘을 흡수했겠지.”
“다른 말살자 조각 소유자라고?!”
“그래. 설마 너 혼자만 말살자 조각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지만…….”
내가 말끝을 흐리자 키라는 재밌다는 얼굴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내 생각은 이래. 아마도 그 자는 여러 차원을 돌아다니며 말살자 조각을 찾아다녔을 거야. 그리고 그 힘을 서서히 흡수했겠지.”
그 말에 호루스가 의문을 표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짧은 시간에 너무 급격히 힘이 성장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현재로선 가장 가능성 높아. 다들 어떻게 생각해?”
키라의 말에 잠시 이것저것 생각해본 절대자들은 동의한다고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지? 우린 앞으로의 대책을 세우기 위해 모인 거지 원인을 찾기 위해 모인 게 아니야!”
신경질적으로 생긴 인간형의 절대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허나 키라는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호! 하지만 원인을 알아야 그 대책을 세우겠지. 일단 우린 선택을 해야 돼. 말살자와 대적할 것인지 아님 말살자의 의견에 동조할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닌 방관하는 선택지도 있지만 최소한 여기 모인 이들 중에선 그럴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까 빼도록 할게.”
일단 절대자들은 그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잠시 의견이 오고간 다음 모두의 의견은 말살자에 대적하자는 쪽으로 모아졌다.
의견이 모이고 나자 다시 키라가 나서서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대적할 지만 남았네. 내 생각은 이래. 예전 말살자는 우리가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강자였지만 지금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닐 거야. 물론 우리 개개인보다는 강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덤빈다면 못 이길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 다들 어때?”
그 점에 대해서도 잠시 회의를 거친 후 해볼만하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그의 힘이 더 커지기 전에 미끼를 던질 생각이야!”
키라의 미끼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난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미끼? 지금 날 말하는 거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