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날 안내하는 남자의 이름은 스테판이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각성자용 특수 감옥은 일반 감옥에 비해 강화된 감옥이라고 했다.
사방이 막혀 있고 외부와 완벽히 차단되어 있으며, 감옥의 벽은 현재 가장 강한 합금 중 하나로 알려진 티탄산바륨주석합금으로 되어 있다.
물론 티탄산바륨주석합금은 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특수 감옥 수가 많지는 않다.
그래서 현재는 SS급 이상의 능력을 지닌 범죄자들만 갇혀있다고 했다.
현재 프랑스와 독일에서 시범적으로 테스트 중이며, 곧 전세계 다른 국가들도 도입할 예정이다.
20여분을 달려 특수 감옥이 있는 곳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한 확인 절차만 거친 후 곧바로 프랑수아와 로빈이 있는 곳으로 갔다.
스테판이 날 배려해줘서 프랑수아, 로빈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감옥에서 만난 프랑수아와 로빈은 몇 시간 전에 봤을 때보다 상당히 말라 있었다.
후유증 때문인가? 왜 저렇게 안 좋아 보이지?
난 일단 그들의 몸 상태부터 점검했다.
다행히 그들의 몸은 아무 이상 없었다.
다만 폭발적인 힘을 장시간 사용한데 따른 부작용인지, 기력이 많이 쇠해져 있었다.
이상이 없단 걸 확인한 후 난 그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 물었다.
“대체 회의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 질문에 프랑수아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평상시의 쾌활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선 자네가 우릴 구해줬다는 말은 루카스로부터 전해 들었네. 정말 고마워.”
그는 먼저 내게 감사하다는 말부터 했다.
그리곤 회의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회의장 안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네. 문제는 아마 음식이었을 거야.”
“음식이요?”
“그래. 우린 편안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식사를 하며 최대한 편하게 회의를 하지. 근데 음식을 먹은 다음부터 기억이 흐릿한 걸로 봐서, 음식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네.”
“그럼 음식을 먹고 난 후 기억은 전혀 안나세요?”
“아까도 말했듯이 흐릿하게 나네. 처음엔 그냥 이유 없이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 화가 나더군.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가 됐네.”
그의 말을 들은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음식에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먹었을 정도면 생각보다 일이 심각해질 수 있겠어. 혹시라도 이게 대량으로 퍼지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거야.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돼!’
난 로빈과 프랑수아에게 쉬라고 말한 다음 스테판에게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말해줬다.
검은 액체와 그 액체가 하는 역할, 그리고 그 검은 액체가 약간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
내 말을 모두 들은 스테판의 얼굴은 매우 심각해졌다.
“그 말대로라면 이게 대량으로 퍼지면 대참사가 일어날 겁니다. 혹시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일단 다발성 뇌출혈로 죽은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그들 뇌에서 검은 액체를 발견할 수도 있을 거에요. 그걸 잘 연구해보면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전 저대로 다른 방법이 없는지 알아볼게요.”
그리곤 그와 헤어져서 밖으로 나와 주변에 있는 조용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상황이 진정되어서인지 열려 있는 커피숍이 제법 있었다.
난 거기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봤다.
‘지금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야. 절대자들이 모두 모인다는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과 탄이 알고 있다는 신급 스킬을 준 존재에 대해 알아내는 것. 근데 그 문제는 일단 탄을 만나야 해결되는데…… 이 새끼가 대체 어딨는지 알 수가 없으니 원. 일단 류호한테 탄을 만나면 장소를 알려달라고 메시지라도 보내보자.’
난 즉시 류호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탄을 만나면 어딨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메시지는 보내놨으니 다음은 절대자들이 문젠데……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으로 봤을 때 절대자들이 모인다는 소문이 사실일수도 있겠어. 그 문제는 호루스를 만나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겠지.’
해야 할 일을 정리한 난 곧바로 아이즈를 통해 근처에 있는 이집트로 가는 이동포탈을 찾았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포탈을 찾을 수 있었다.
“좋아. 그럼 가볼까!”
난 남은 라떼를 단숨에 마시고는 커피숍을 나와 포탈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한시가 급한 일이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포탈을 통해 이집트로 넘어갔다.
포탈은 카이로 외곽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곳 역시 파리에서 피신해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곧바로 호루스가 있는 사막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큰 소리로 드넓은 사막을 향해 지난번 사막에서 만난 앙크족 족장인 라루힘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라루힘!!”
그러자 잠시 후 저 멀리 땅이 들썩이더니, 예전에 봤던 앙크족의 이동식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라루힘과 다른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나를 반겨줬다.
“그래. 사막엔 다시 어쩐 일인가?”
“호루스가 있는 곳으로 가려구요. 급한 일이라 제가 달려가는 것보다, 마을로 이동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부탁 좀 하려고 들렸습니다.”
라루힘은 내가 호루스를 만나러 간다고 했지만 크게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이미 이시스를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하지만 너무 가까이 갈 수는 없네. 이시스가 사라지고 호루스가 나타난 후로 그 주변 경계가 더 강화됐거든.”
“괜찮습니다. 근처까지만 데려다주셔도 충분합니다.”
라루힘은 내가 급하다고 했기 때문에 그 즉시 마을을 호루스 신전이 있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마을은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배처럼 이동했는데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예전 카라잔을 타고 갈 때와 비슷한 빠르기였다.
원래 모래 안으로 들어가서 이동하면 더 빠르지만, 내가 앙크족이 아니라 모래 속으로 이동하는 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모래 위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게 이동한 지 한나절 정도가 지나자 마을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자이언트 웜을 몇 마리 지나치기도 했는데 그들은 앙크족 마을을 공격하지 않았다.
이야길 들어보니 카라잔과 싸운 이후 자이언트 웜들을 마주쳐도 마을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했다.
‘카라잔이 약속은 잘 지킨 모양이네. 나중에 만나면 칭찬이라도 해줘야겠어.’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마을을 빠져나오며 라루힘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왔네요.”
“고맙긴. 이런 부탁이라면 언제든 하게! 자네가 우리 마을에 해준 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돌아갈 때도 필요하면 부르게.”
그리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을은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마을이 사라진 후 저 멀리 보이는 호루스 신전을 향해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앞쪽 모래가 솟아오르며 모래로 만들어진 인간의 형상을 한 병사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호루스 님의 영역. 허가받지 않은 인간은 들어갈 수 없다.]
“호루스한테 박태준이 찾아왔다고 하면 만나줄 거야. 이시스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때 내게 말하던 병사의 눈빛이 갑자기 황금색으로 변했다.
그리곤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며 말했다.
[난 호루스. 그대의 방문을 허락한다.]
그 말을 끝으로 병사들은 다시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호루스의 신전까지 가는 길에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
별다른 방해 없이 신전까지 온 나는 완전히 달라진 신전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난 번 신전을 방문했을 때는 신전에 이시스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신전 주변은 수많은 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 중엔 인간도 보였고, 처음 보는 종족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렇게 많은 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았다는 것.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신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드디어 이시스와 만났던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도 예전 이시스와 만났을 때와는 달랐다.
화려한 홀 안에 홀로 있던 이시스 때와는 달리, 지금은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는 정예병들이 홀 가장자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시스가 앉아있던 화려한 의자에는 거대한 매의 머리를 가진 호루스가 앉아 있었다.
지긋이 날 바라보는 그의 눈은 황금빛으로 반짝거렸다.
홀 중앙까지 걸어간 난 더 나아가지 않고 멈춘 다음 말했다.
“이시스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날 알고 있겠지?”
호루스는 대답 대신 정예병들을 스윽 쳐다봤다.
그러자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정예병들이 모두 홀을 빠져나갔다.
정예병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호루스 의자에서 일어나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의 키는 3미터가 넘어 보였고 전신에 흐르는 황금빛 기운은 상대를 압도하는 뭔가가 있었다.
내 앞까지 걸어온 호루스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쾌활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만나고 싶었는데 잘 왔어. 반갑다!”
그는 외모와 전혀 다르게 친구를 대하듯 인사했다.
난 의외라는 눈빛으로 그를 잠시 바라보다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인사했다.
“생각했던 거랑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네. 나도 만나서 반갑다. 보아하니 왠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사실 태어나자마자 쌓인 일들 처리하느라 바빴는데 널 보니 너무 반갑네. 네 말대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어.”
신기하게도 대화를 하는 동안 그의 키는 점점 작아져서 나중에는 나와 같은 키가 되어 있었다.
“키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거야?”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그나저나 날 찾아온 이유가 뭐야? 그냥 얼굴이나 보려고 온 건 아닐 텐데?”
“아! 뭐 하나 물어볼게 있어서…….”
“물어볼 거? 그게 뭔데?”
덩치는 나와 비슷해졌지만 호루스의 황금빛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은 그대로였다.
난 빛나는 그의 황금빛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이곳에 있는 절대자들끼리 따로 만나기로 했어?”
내 질문에 그는 역시 그거냐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일주일 후에 만나기로 했지.”
“왜 갑자기 모이는 거야? 너희는 서로 추구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잖아! 다 같이 모인다는 건 공통된 주제가 있다는 건데 그게 대체 뭐야?”
하지만 그는 말하길 꺼려했다.
“이걸 말해도 되려나…….”
“대체 뭔데 그래?”
“괜히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은데…….”
계속 말하길 꺼려하는 그를 난 끈질기게 설득했다.
내 설득이 통했는지 결국 호루스는 말해주기로 결심을 했다.
“니 말대로 절대자들은 성향이 너무 달라서 다 같이 모일 일이 거의 없지. 이번처럼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야!”
“위기 상황?!”
“그래. 바로 말살자가 부활한 것 같은 위기 상황 말이야!”
“뭐?! 말살자가 부활했다고?”
‘말살자는 조각조각 나서 사라졌던 거 아니었어? 근데 부활했다고?’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