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방금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럼 저놈도 탄이 죽이려고 한다 이 말인 거야?
하지만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 같은 경우는 탄과 부딪힌 적이 있기 때문에 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게 악연이긴 하지만.
그는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정확히는 서로 죽이려는 사이였지. 지금은 아니지만! 근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당연히 놀랄 일이지. 대체 그 새끼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별일 아니야. 우연히 만났다며 얼마 전에 군사가 데리고 왔어. 근데 그날 밤 그 사람이 날 찾아왔어. 그리곤 갑자기 내 배를 찔렀어.”
“찔렀다고? 아무 예고도 없이?”
“그래. 그러더니 내 상처가 재생하는 걸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곤 한동안 내 몸을 가지고 온갖 실험을 했어. 그렇게 한참을 이것저것 해보던 그 사람은 갑자기 검은색 단검을 소환하더니 내 손바닥을 벴어.”
“잠깐잠깐! 하나씩 정리해보자구. 일단 넌 그 새끼가 그 일을 할 동안 가만히 있었던 거야?”
“당연히 나도 반항했지.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어. 하지만 그 사람은 나완 비교도 안 되는 강자라 상대가 안되더라구.”
그는 내가 아무 질문도 안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자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근데 이상한 건 그때 베어진 손바닥이 곧바로 재생이 안됐다는 거야. 물론 10분 정도가 지나자 다시 재생되긴 했지만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난 당황했지.”
그건 나도 당해본 적이 있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됐는데?”
“그 사람은 내 손바닥에 흐르는 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혼자 뭐라 중얼거리더니 실험을 멈췄어.”
“그리곤?”
“그리곤 내게 제안을 하나했지.”
“제안이라고? 무슨 제안인데?”
허나 그는 약간 망설이는 듯 했다.
“이왕 얘기한 거 속 시원하게 얘기해봐!”
그는 내 말을 듣고는 날 한 번 지긋이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가 한 제안은 자신의 실험체가 되어달라는 거였어.”
“뭐?! 실험체가 돼 달라고 했다고?”
“그래.”
“대가는 있고?”
“내가 원하는 걸 이뤄준다고 했어.”
원하는 걸 이뤄준다고? 아무 조건도 없이?
물론 실험체가 되는 조건이 있긴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 탄이 원하는 일을 이뤄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내가 아는 탄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설마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니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뭘 믿고 그걸 받아들이겠어.”
“그럼……?”
“헌데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
“무슨 말?”
“‘신급 스킬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거라 생각하지 말아라’고 말이야.”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잠깐! 탄이 니가 가진 스킬이 신급 스킬인 걸 알았다고?”
그놈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안 거지? 찍은 건가?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호랑이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니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내가 가진 능력을 보고 그 사람이 찍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
내 물음에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신급 스킬을 준 존재를 잘 안다고 했어. 그리고 그 존재는 변덕이 굉장히 심하다고도 했고.”
“뭐?! 신급 스킬을 준 존재를 안다고? 그럼 신을 안다는 말이야?”
“그건 모르지. 하지만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나자 불안한 마음이 생겼어. 그래서 그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그 대가로 넌 그에게 뭘 원했는데?”
“그야 당연히 마인을 제거해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어.”
하지만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렇게 쉽게 대답할 정도로 간단한 일이야? 지금까지 들어본 정보로 봤을 때 마인은 거의 절대자급의 힘을 가진 존재일 텐데, 그런 마인을 탄이 죽여주겠다고 했다고? 넌 또 그걸 믿었고?”
“직접 겪어본 그 사람의 힘이 마인에 약간 못 미친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가 가진 단검. 넌 그걸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난 얼마 전에 탄이 소환했던 검은색 단검을 떠올렸다.
하지만 모른 체하며 그에게 물었다.
“단검이라고?”
“그래. 기분 나쁜 기운을 뿜어내는 그 단검은 신급 스킬마저 뚫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어. 근데 그게 끝이 아니야.”
“끝이 아니라면…….”
“그 단검의 위력이 점점 커진다는 거야!”
“탄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 단검이 강해진다는 말이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놀란척 그에게 되물었다.
“그래. 처음 그 단검에 손바닥이 베였을 때는 재생이 안되는 수준으로 그쳤지만 얼마 전에는 재생이 안되는 수준을 넘어서 주변 피부가 소멸했어. 물론 시간이 한참 지나자 재생되긴 했지만……!”
“그럼 탄이 너한테 실험체가 되어달라고 했던 게 단검이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알아보려고 했던 거네. 맞지?”
그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 사람은 매일 나와 한참을 싸운 다음 마지막 순간에 단검을 꺼내 내 손바닥을 벴어. 추측이지만 아마 그 사람이 전투를 하면 할수록 단검이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해.”
싸울수록 강해지는 단검이라……대체 정체가 뭘까?
궁금했지만 그건 탄도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부를 정도로 탐구욕이 넘치는 놈인데 처음엔 몰랐다 치더라도 지금까지 모를 리가 없다.
다음에 만나면 좀 더 캐봐야겠어.
“근데 탄한테 왜 자꾸 그 사람이란 호칭을 쓰는 거야?”
“그만한 강자라면 존중받을 만 하니까.”
난 그를 새삼스런 눈으로 쳐다보다 물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아까 다른 도깨비들이랑은 왜 싸운 거야?”
“그래야 의심을 안할 테니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마인세력이 무서운 건 우리끼리도 누가 스파이인지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날 제외한 누구도 믿을 수 없지.”
그제야 그에게 궁금했던 대부분의 궁금증이 풀렸다.
하지만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자 약간 고민이 됐다.
이놈을 데려 가야 되나 아님 두고 가야 되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결국 마인 세력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스파이로 잠입해 있는 거라, 향후 내게 도움이 될 여지가 크다.
일단 마인 세력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은 되겠지. 그럼 마지막으로 마인 세력이 얼마나 퍼져있는지만 알아볼까!
“그럼 마인 세력은 얼마나 퍼져있는 거야?”
“우리 십이지신들은 각자 고유의 역할이 있지. 그래서 다른 놈들이 맡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자세히 몰라.”
“넌 거기서 무슨 일을 했는데?”
“내 주된 임무는 마인이 보내는 놈들을 훈련시키는 일이지. 뭐 가끔 다른 일을 맡기도 했지만, 보통은 그게 주된 임무였다.”
그 후에 이런 저런 질문을 했지만 의외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게 다 군사의 전략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알아낸 게 별로 없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돌려보내는 게 좋겠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을 것 같으니까.
그때 호랑이탈이 이런저런 생각하고 있는 내게 말했다.
“자. 이제 니 차례야.”
“응? 그게 뭔 소리야? 내 차례라니?”
내 반응에 호랑이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내 정보만 쏙 빼갈 생각을 한 거야? 당연히 니 정보도 알려줘야지.”
“그게 뭔 소리야? 그냥 니가 혼자 얘기한 거잖아. 근데 이제 와서 내 정보도 달라고?”
“그건 우리가 여길 못나간다고 생각했으니까 넋두릴 한 거지. 하지만 나갈 방법이 있는 지금은 달라. 앞으로가 중요한데 너도 나가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널 어떻게 믿지?”
“너도 날 완전히 믿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 적당히 서로 걸러서 듣자고.”
처음 만났을 땐 딸의 복수 때문에 눈이 멀어 대화 없이 계속 맞기만 해서 몰랐는데, 이렇게 길게 대화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갔다.
나도 어느 정도 정보를 제공해줘야 나중에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난 간단히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해줬다.
이야기의 핵심은 누군가가 내게 스킬을 주면서 마인 세력 뒤에 있는 히든 보스를 막으라고 했다는 거다.
그 히든 보스를 막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다고!
내 말을 들은 그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를 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놈이야. 어쨌거나 군사 뒤에 있는 놈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막아야겠군. 난 조심히 군사 뒤를 파볼 테니까 너도 뭔가 알아내면 내게 연락해. 알겠지?”
그러면서 내게 자신의 아이즈 아이디를 알려줬다.
아이즈 아이디를 생성해 보내는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디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건 안전했다.
“근데 아직까지 니 이름도 모르네. 이름이 뭐야?”
“난 류호다.”
“좋아. 그럼 나가는 게이트를 열게. 아마 지금 나가도 현실 시간은 하루가 채 흘러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놀라지 말고. 게이트는 파리가 아닌 한국에 열게.”
말을 마친 난 화룡도를 소환해 즉시 게이트를 열었다.
류호는 내가 연 게이트로 들어가려다 내 등 뒤 저 멀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여기도 절대자급 존재들이 있는 건가?”
안 그래도 아까 전부터 멀리서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들이 격돌하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츤츤이였다.
결착을 지을 존재가 있다고 하더니 지금 싸우고 있나보구나. 그나저나 츤츤이도 대단하네. 저 몸으로 저 정도 경지까지 오르다니…… 하긴 이미 길을 알고 있으니 일정 수준 이상 힘만 모으면 그 다음은 수월했겠지……근데 그 말은 천의문 계승자들이 준절대자급 실력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잖아! 대단하긴하네!
난 새삼 천의문 계승자들에 대한 감탄을 하며 류호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가보네. 불똥 튀기 전에 얼른 돌아가자.”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난 그가 게이트 안으로 사라지자 게이트를 닫고 파리로 가는 다른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잠시 츤츤이가 싸우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내가 온 걸 알았을 텐데 아무 소리 없는 건 내 도움은 필요없단 뜻이겠지? 근데 저대로 발전한다면 내가 질 수도 있겠는걸……나도 분발해야겠어!
새삼 츤츤이의 실력에 감탄하며 게이트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게이트 밖은 컨벤션 센터 안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게이트가 열릴 걸 미리 안 각성자들이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날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안에서 동양인 남자가 나오자 살짝 당황한 듯 했지만 경계를 풀거나 하진 않았다.
그때 누군가 그들 사이에서 나오며 날 아는 체 했다.
“당신은 박태준 씨 아닌가요?”
내 이름을 부른 사람을 보니 아까 프랑수아, 로빈과 싸우던 일곱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와 헤어지고 나서 나에 대해 찾아본 모양이다.
“맞아요. 또 보네요.”
“근데 어떻게 게이트에서……?”
“아! 이거 제 스킬 중 하나에요. 공간이동 포탈 같은 건데 게이트랑 비슷한 에너지를 뿜어내는지 다들 오해를 하더라구요.”
대충 둘러댔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시간을 보니 내가 류호와 루크레이지로 들어간 다음부터 18시간 정도가 지나있었다.
난 그에게서 그 동안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탄의 말대로 내가 떠난 지 한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미쳐 있던 각성자들이 갑자기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검시관 말에 의하면 사인은 다발성 뇌출혈이다.
한마디로 뇌의 혈관들이 죄다 터져 버린 것이다.
그 후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파리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럼 로빈과 프랑수아는 어떻게 됐죠?”
“그 사람들은 현재 조사를 위해 각성자용 특수 감옥에 수감 중입니다.”
“혹시 제가 좀 만나볼 수 있나요? 저라면 뭔가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는 내 말에 살짝 당황한 듯 했지만 곧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그리곤 한참 상대를 설득한 후 웃으며 말했다.
“방금 승인을 받았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저도 같이 가는 조건입니다.”
“좋아요. 그럼 바로 가죠.”
우린 즉시 프랑수아와 로빈이 감금되어 있다는 각성자용 특수 감옥으로 향했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