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탄이 어딘가로 사라진 후 광장을 벗어난 나는 다시 호랑이탈이 있는 컨벤션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이 기는, 설마 프랑수아?
그냥 지나치려했지만 아는 사람이라 지나치기에는 맘이 걸렸다.
난 격렬히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예상대로 그곳엔 프랑수아와 로빈이 다수의 각성자들에 둘러싸여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일곱 명의 각성자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지만 오히려 상대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역시 강하네. 보통이 아니야. 저게 SSS급 각성자구나.
사실 SSS급 각성자가 싸우는 모습은 처음 봤다.
프랑수아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란 말대로 때론 탱커로, 때론 힐러로, 때론 버퍼로 활약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신체능력 또한 엄청나서 거기 있는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거기다 로빈은 미친놈처럼 방어를 무시하고 뛰어다녔다.
방어를 무시한 채 적들을 압도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광전사처럼 보였다.
그러나 앞뒤 안 가리고 공격을 하다 보니 상처도 많이 입었다.
하지만 그 상처들은 곧바로 프랑수아에 의해 치유됐다.
그야말로 최고의 팀워크를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과 싸우고 있는 일곱 사람도 보통 각성자는 아니었다.
일곱 사람이 마치 유기적으로 움직이는데 오랜 시간 같이 훈련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렇기에 버티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은 이들이었으면 진작에 대형이 무너지고 각개격파 당했을 것이다.
잠시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난 정신을 차리고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잠깐잠깐! 같은 편끼리 이러면 안 되지!”
허나 아무도 내 말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난 무시한 채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역시 그냥 말로는 안 되는구나!
난 내공을 한껏 끌어올려 소리쳤다.
“그만!!!”
내 소리에 프랑수아를 제외한 모두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오직 프랑수아만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타겟을 나로 바꿔 달려들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걸 보자 직감적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길게 끌면 안되겠어. 단번에 제압한 다음 치료해보자.
하지만 말이 쉽지 SSS급 각성자를 단번에 제압하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쉽지 않았다.
프랑수아의 힘은 언뜻 봐도 리치킹의 제2군단장인 라킴 정도 실력은 되어보였다.
죽이는 건 어렵지 않지만 제압하려니 쉽지가 않네.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
그때 탄이 전기나 불로 위협하면 나오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르며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 번 해볼까? 근데 가능할까?’
하지만 길게 생각할 여유는 없다.
내 소리에 주춤거리고 물러나 있던 로빈도 날 타겟으로 바꿔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즉시 환영보를 사용해 프랑수아 주변을 빠르게 돌았다.
그러면서 초열의 불꽃을 일으켰다.
순간 거대한 불기둥이 프랑수아 주변으로 생겨나며 그를 압박해 들어갔다.
프랑수아는 당황하며 벗어나려 했지만 파란색 초열의 불꽃은 그의 머리 위까지 막고 있어 도망갈 곳은 보이지 않았다.
달려들려던 로빈도 초열의 불꽃을 보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난 서서히 프랑수아를 압박해 들어갔고 그는 안간힘을 쓰며 불꽃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건 일반 불꽃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꽃들 중 가장 강한 힘을 지녔다는 초열의 불꽃이다.
그 말은 세상에 이 불꽃을 막아낼 수 있는 이가 흔치 않다는 말이다.
불기둥이 서서히 프랑수아를 압박하자 그의 살이 조금씩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멈추진 않았다.
이 정도는 압박을 해줘야 뇌에 들어 있는 액체가 위협을 느끼고 기어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예상대로 살이 어느정도 타들어가자 잠시 후 프랑수아가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귀에서 검고 찐득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바닥으로 나온 검은 액체는 서둘러 어딘가로 도망가려 했다.
“어딜!”
하지만 난 검은 액체가 도망가기 전에 재빨리 낚아챘다.
그리곤 순식간에 초열의 불꽃으로 태워버렸다.
그 다음은 쉬웠다.
이번엔 로빈을 같은 방식으로 압박해서 나온 검은 액체를 없애버렸다.
그리곤 일을 마친 후 정신을 잃고 쓰러진 프랑수아와 로빈을 한 켠에 눕혔다.
그제야 저만치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던 일곱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이 사람들은 죽은 겁니까?”
말을 건 사람은 일곱 사람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금발의 곱슬머리 남자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차분한 인상에 매력적인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다.
난 그를 힐끔 쳐다보고는 로빈과 프랑수아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하며 대답했다.
“아직 안 죽었어요.”
“그럼 깨어나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정신을 잃었을 때 죽여버리죠.”
금발의 남자 옆에 있던 갈색 머리 남자가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난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괜찮다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괜찮아요. 이제는 정신이 들어도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이 사람들 몸에 들어 있던 건 조금 전에 제거했으니까요.”
“네? 몸에 뭐가 들어 있었다구요? 설마 그래서 회의에 참여한 각성자들이 미쳐 날뛰었던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아아! 그럼 선생님께선 사람들을 치료할 방법을 알고 계신 건가요?”
난 잔뜩 기대에 부풀어 날 바라보는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방법은 있지만 그건 저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러분은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는 기대한 만큼 실망이 컸는지 얼굴 가득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시간 정도 후에 지금 미쳐 있는 각성자들이 대부분 죽을 거라는 걸 말하려고 하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는 그만뒀다.
게다가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 나중에 상황이 정리된 후 괜시리 불똥이 나한테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 이만 바쁜 일이 있어서 가볼게요.”
그들은 내게 뭔가 더 물어볼게 있는지 더 붙잡으려 했지만 난 모른 체하며 서둘러 호랑이 탈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컨벤션 센터 건물에 도착하자 안에서 강한 기들의 부딪힘이 느껴졌다.
다행히 아직도 싸우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호랑이탈과 싸우고 있는 게 다른 존재라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강한 투기가 부딪히는 곳엔 세 개가 아니라 네 개의 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강한 기가 세 개가 아니라 네 개라고? 그럼 다른 한 개는 누구 거지?
그 의문은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하자 바로 해소됐다.
호랑이탈과 싸우고 있는 도깨비는 예상대로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였다.
그 중 새롭게 등장한 도깨비는 다리가 하나고 머리에 삿갓을 쓰고 있었는데 키는 산도깨비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설마 독각귀?
옛날 이야기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외다리로 역병을 뿌리고 다닌다는 도깨비의 존재를 말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도깨비의 이름이 독각귀였다.
역시나 소문대로 독각귀의 공격 하나하나에서 맹독의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랑이탈은 밀리지 않고 잘 버티고 있었다.
물론 이렇다 할 반격은 제대로 못하지만, 쉽사리 쓰러질 것 같지는 않았다.
난 그 형세를 보고 잠시 고민했다.
호랑이를 구해야 되나? 근데 그럼 도깨비들을 적으로 돌려야 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아니야. 그래도 호랑이를 구해야 정보를 얻지. 으아악! 진짜 어떻게 하지?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다른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난 호랑이탈을 도와주기로 했다.
마음을 먹은 난 곧바로 호랑이탈과 산도깨비 사이를 가로막았다.
마침 독각귀의 검게 물든 손이 가로막은 내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난 피할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고 태연히 그의 공격을 맞았다.
퍽.
몸이 약간 뒤로 밀리긴 했지만 굳건히 버텼다.
그리곤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대화 좀 하자니까!”
[저 놈이다.]
[저 놈이 바로 자격을 갖춘 인간이다.]
산도깨비 두 마리가 동시에 말을 했다.
그 말에 독각귀는 공격을 멈추고 물러났다.
그리곤 건조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라. 그리하면 왕께 데려갈 것이다.]
저 새끼들은 지들 멋대로 누굴 데려간다는 거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고 그들 말은 무시했다.
그리고 호랑이탈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도깨비 세 마리에게 밀리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엔 여유가 있었다.
그건 뭔가 숨기고 있는 한 수가 있단 거다.
“생각보다 얼굴이 좋네.”
그는 날 보곤 의외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흠. 돼지탈을 못 만났나?”
“만났지. 근데 왜?”
“왜라고? 돼지탈을 만났다면 그 옆에 있던 사람도 만났을 텐데?”
“아! 그거였어? 만났지. 그게 왜?”
호랑이탈은 오히려 태연하게 묻는 날 이상하게 바라봤다.
“근데 그 사람이 널 그냥 보내줬다고?”
“날 못 이기니 그럴 수밖에.”
보아하니 호랑이탈과 탄 사이에도 내가 모르는 관계가 형성돼 있는 듯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사람은 너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너 따위와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계속 혼자 중얼 거렸다.
그가 날 이길 수 없어서 놔줬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게 저렇게까지 충격 받을 일인가? 아님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는 건가?
하지만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다.
일단 저놈이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두자. 근데 어떻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가 도망갈 수도 없는 그런 공간이면 더 좋다.
그때 머릿속에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흐흐흐. 거기면 안성맞춤인 장소겠어.
난 즉시 화룡도를 소환했다.
그걸 본 호랑이탈은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취하며 공격에 대비했다.
난 그런 호랑이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재밌는 걸 보게 될 거야.”
“재밌는 거라니?”
“실망 안 할 테니 지켜보라구.”
그리곤 화룡도를 높이 들어올렸다 힘껏 내리그었다.
호랑이탈은 급히 몸을 피했지만 내가 노린 것은 그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공간이다.
난 화룡도로 그의 등 뒤에 있는 차원을 갈랐다.
- 차원의 균열이 말살자 조각과 반응합니다. 차원의 균열에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원하는 차원을 지정해주세요.
메시지가 나타나자 난 곧바로 루크레이지를 떠올렸다.
- 차원 지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즉시 호랑이탈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그를 안고서 게이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호랑이탈은 당황해서 버티려했지만 그보다 내가 미는 힘이 더 강했다.
뒤엉킨 우리 둘은 순식간에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도깨비들은 듣도보도 못한 상황에 한 개뿐인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서 게이트를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게이트마저 사라졌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