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산도깨비.
말 그대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산에 숨어 살기 때문에 산도깨비라고 부른다.
이종족 중 하나로, 사람들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간혹 산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살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로 들어서면서 그런 일들은 거의 사라졌다.
이종족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피지컬을 가지고 있으나, 개체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받는 종족은 아니다.
[우릴 알고 있는 것도 재밌고 말이야.]
“우리?!”
[그래. 우리.]
그때 우리 뒤편 기둥에서도 똑같이 생긴 산도깨비 한 마리가 더 나타났다.
“두 명이나?!”
근데 이상한데! 저놈들이 있는 걸 왜 몰랐지? 이렇게나 존재감이 강한데……
분명 아까 기감을 확장했을 때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갑자기 저놈들이 나타났거나 뭔가가 저놈들의 존재감을 차단했다는 말이다.
[왕께서 인간을 만나고 싶어 하신다. 하지만 나약한 놈들은 왕을 만날 자격이 없다. 인간. 넌 그만한 자격이 있는가?]
“왕? 자격? 지금 니들 왕이 강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거야?”
하지만 내 말에 그들의 눈빛이 변했다.
내가 뭔 말실수라도 했나? 눈빛이 왜 저래?
[인간 주제에 감히!!]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싸우자는 거네. 그럼 어서 덤벼!”
말과 동시에 난 모든 힘을 뿜어내며 도깨비들을 노려봤다.
하지만 내가 내뿜는 힘을 본 도깨비들은 갑자기 하나뿐인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더니 놀라서 말했다.
[인간. 어찌 너같이 나약한 종족이 왕과 같은 힘을……?]
“뭐? 왕과 같은 힘이라고?”
하나같이 모를 소리를 해대는 도깨비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놀라기만 했을 뿐 내 힘 앞에 주눅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더욱 투기를 높이고 있었다.
“일단 좀 맞자. 얘긴 그 후에 들어도 되니까.”
그리고 그들을 향해 달려들려다 급히 걸음을 멈추고 내가 지나온 복도 끝을 향해 급히 고개를 들렸다.
“설마……?!”
복도 끝에선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드러난 얼굴을 보고 난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 \마냥 크게 소리쳤다.
“호랑이!”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이는 호랑이탈이었다.
근데 이상한 건 산도깨비들이었다.
그를 본 산도깨비들은 갑자기 흥분하며 소리쳤다.
[잡종놈이구나!]
[왕께 도전했다 패한 그 패배자로구나!]
뭐? 저 호랑이 놈이 도깨비 왕한테 도전했었다고? 거기다 패했다고?
내가 아는 호랑이탈은 누군가에게 패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
최소한 준절대자 급의 강함을 가지고 있어야 그를 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은 도깨비왕이 그 정도의 강자라는 말이다.
“흥! 조무래기들이 말이 많다. 예전 같으면 눈도 못 마주칠 것들이 어디 감히 입을 나불거리는 거야!”
그리곤 그를 중심으로 생겨난 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우릴 덮쳤다.
이게 저놈 기라고? 소탈이랑 비슷한 수준이라고 안 했었나?
하지만 지금 그가 내뿜는 기는 소탈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는 도깨비들을 노려보다 날 보고 말했다.
“역시 그때 널 살려두길 잘했어. 어느 정도 일을 벌려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잘 해낼 줄은 몰랐는데.”
“그게 무슨 소리지?”
“자세한 건 몰라도 돼. 그냥 지금까지 잘 해줬다고 칭찬해주는 거야! 그래서 상을 하나 줄까 하는데.”
“상?”
“그래, 오늘은 그냥 보내줄게. 그 옆에 있는 놈 데리고 나가. 그럼 되는 거야.”
그러면서 그에게서 뿜어져나오는 기의 폭풍이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난 태연하게 그의 기세를 받아내며 말했다.
“하하하. 그 말은 니가 내 위에 있단 말로 들리는데? 안 그래도 설욕전을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 오늘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그러나 호랑이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니 말대로 제법 강해졌다는 게 느껴지는군. 어쩌면 날 뛰어넘을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날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그게 뭔 개소리야!”
말과 동시에 난 호랑이탈 앞으로 이동해 연속으로 일권을 사용했다.
하지만 호랑이탈은 여유 있게 내 일권들을 막아냈다.
물론 일권의 충격에 뒤로 몇 걸음 물러나긴 했지만 큰 피해는 없어보였다.
하긴. 이정도로 끝날 거라곤 생각도 안했어.
난 곧바로 일권과 3식 파천을 섞어서 주먹을 내질렀다.
마치 송곳과도 같은 일격이 호랑이탈의 복부를 향해 날아갔다.
그는 이번엔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급히 몸을 틀어 피했다.
허나 그런 것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난 미리 준비하고 있던 공격을 반대주먹으로 날렸다.
푸우욱.
호랑이탈도 두 번째 공격은 피하지 못했고 내 주먹은 그대로 그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하지만 호랑이탈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얼굴로 주먹을 날렸다.
콰쾅.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을 뿐인데 마치 폭탄이 얼굴 앞에서 터지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난 뒤로 한참을 밀려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호랑이탈을 바라봤다.
그리고 놀라운 걸 목격했다.
내게 꿰뚫린 그의 옆구리가 빠른 속도로 아물고 있었다.
“어?! 어떻게……?!”
그는 자신의 옆구리를 슬쩍 내려다보곤 날 다시 쳐다봤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지? 설마 너만이 신의 축복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신의 축복?!”
순간 그의 말을 듣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설마 너도 작가를 만난 거야?”
“작가?”
반응을 보니 작가를 만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신의 축복은 뭐지?
오늘 일어나는 일은 전부 모르는 일 투성이다.
“어차피 니놈도 장기말의 하나일 뿐이니 너무 머리 쓸 필요 없어. 그냥 지금까지처럼 움직이면 돼. 모든 건 순리대로 흘러갈 테니.”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말을 하는 그를 보자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지금까지 모든 걸 잘 풀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에이씨. 일단 저 놈부터 처리하고 생각하자.
“흥. 고작 그거 믿고 이길 수 없을 거라고 한 거야? 그럼 도저히 재생할 수 없도록 만들면 되지.”
난 현란하게 환영보를 구사하며 사방에서 파천을 응용한 일권을 계속 퍼부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까완 달리 초열의 불꽃도 함께 사용하고 있어서 공격에 맞게 되면 바로 초열의 불꽃까지 옮겨 붙게 된다.
한참 공방을 주고받던 중 드디어 내 공격이 호랑이탈의 어깨에 적중했다.
내 주먹은 그대로 그의 어깨를 꿰뚫었고 그와 동시에 초열의 불꽃까지 옮겨 붙었다.
어깨에서 시작된 불꽃은 순식간에 그의 전신으로 번졌다.
하지만 그는 파란색 불꽃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고통스러운 기색 하나 없이 태연히 나를 바라봤다.
결국 전신으로 번진 불꽃은 그가 쓰고 있던 가면까지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난 얼굴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설마 너도 도깨비였어?”
드러난 얼굴은 뒤에 있는 산도깨비들과 흡사해보였다.
다만 그의 눈은 두 개였고, 피부가 붉은색이 아니고 노란색에 가깝다는 차이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저기 있는 산도깨비와 너무 비슷했다.
[도깨비라니! 저따위 잡종을 우리와 비교하지 마라!]
[잡종 주제에 감히 왕의 자리를 넘본 배신자!]
그들의 말도 놀랍지만 날 더 놀라게 한 건 초열의 불꽃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태연한 그였다.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거지? 그건 보통 불꽃이 아닌데……!”
“그렇지. 이게 보통 불꽃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 수 있겠군. 허나 도깨비 불이라고 들어봤나?”
“도깨비 불?”
“우리 도깨비들에게 불은 친구와 다름없지. 그 말은 아무리 거센 불꽃이라도, 불로는 날 해칠 수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은 도깨비는 모두 불꽃에 완전히 면역이란 말이야?”
“모두는 아니지. 불꽃에 선택받는 도깨비만이 가능하지. 헌데 이 불꽃은 좀 다르군.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닌 모양이야? 뭐 그래도 내게 피해를 주진 못할 거야.”
그의 말대로 초열의 불꽃은 그의 몸에 한동안 머물다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젠장. 초열의 불꽃도 안통하면 저 새끼를 어떻게 죽이지?
호랑이탈은 고민하는 날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날 이기지 못할 거라고 했잖아.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 난 저놈들이랑 할 말이 좀 있으니까.”
그리곤 날 지나쳐 뒤에 있는 도깨비들에게로 걸어갔다.
난 혼란스럽긴 했지만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지금 각성자들이 미쳐 날뛰는 건 마인 세력이 벌인 일이 분명해. 호랑이탈이 여기 있는 게 그 증거니까. 그럼 일단 각성자들부터 원래대로 돌려놓자! 보아하니 도깨비들은 이 일과는 무관한 것 같으니까 나중에 처리하는 걸로 하고.’
대충 해야 할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난 나는 루카스를 돌아봤다.
그는 감당할 수 없이 강한 투기 사이에 끼어서 기절해 있었다.
난 도깨비들과 호랑이탈이 서로 노려보는 사이 루카스를 건물 안쪽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까지도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난 그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끼어들어서는 도깨비들에게 말했다.
“저기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얜 나랑 먼저 볼일이 있으니까 니들은 일단 떨어져 있어.”
그때 뒤에서 호랑이탈이 말했다.
“아직도 포기 안했어? 절대 못 이긴다니까. 정 나랑 싸우고 싶으면 이놈들 처리하고 상대해 줄 테니까 일단 꺼져있어.”
“에이. 그럴 순 없지. 그럼 밖에 각성자들이 왜 그런지를 알려줘. 그럼 일단 물러날 테니.”
그는 고집스런 내 눈을 한동안 바라보다 체념한 듯 말했다.
“너 마녀의 숲에서 키메라 봤지?”
“검은 액체 말하는 거야?!”
“이름이야 어쨌든 그걸로 그놈들을 조종하는 거지. 이제 대답이 됐나?”
역시 검은 액체였구나.
원인은 알았지만 난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답은 됐는데 그걸로 끝나면 안되지. 어떻게 하면 정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지 알려줘야지.”
“그건 돼지가 알고 있으니까 그놈을 찾아가봐.”
“돼지탈을 말하는 거야? 근데 내가 가서 그 놈을 죽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허나 호랑이탈은 피식하고 웃었다.
“니 마음대로 해. 어차피 그딴 놈 어떻게 되든 전혀 관심 없으니까.”
“같은 편 아니야? 근데 내가 죽여도 된다고?”
“말했잖아. 니 맘대로 하라고. 어차피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흘러갈 테니까.”
대체 저 새끼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도저히 저놈이 하는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지금 당장은 각성자들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게 더 급했기 때문에 그에게 대략적인 돼지탈의 위치를 듣고는 거기로 이동했다.
일단 빨리 돼지놈한테서 해결책을 찾고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야겠어. 도깨비 한 마리의 투기로는 호랑이한테 밀리지만 두 마리라면 쉽게 밀리진 않을 것 같으니까!
내가 거기서 물러난 이유는 도깨비들과 호랑이탈의 전투가 쉽게 끝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도 그걸 잘 알기에 아까도 서로 노려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난 서둘러 호랑이탈이 알려준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넓은 광장이었는데 그 한가운데 돼지탈을 쓴 이가 서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 옆에 그와 같이 서 있는 사람이었다.
“탄……?!”
놀랍게도 돼지탈 옆에 서 있는 이는 탄이었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