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프랑스로 향하는 이동 포탈 앞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외국인이 많은 걸로 봐서 대부분 프랑스에서 넘어온 사람들인 걸로 보였다.
무슨 일이지?
난 포탈 앞에서 몰려나오는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 있나요? 다들 여기서 뭐하는 거죠?”
갈색 곱슬머리의 남자는 날 힐끔보더니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말했다.
“지금 파리 난리난 거 몰라요?”
“난리요? 무슨 난리요?”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갑자기 파리에서 회의를 하던 각성자들이 미쳐서는 닥치는 대로 시민을 죽이고 있다구요. 그래서 나도 가장 가까운 이동 포탈을 통해 여기로 도망온 거구요!”
“네?!”
그 사이에도 이동 포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각성자들이 닥치는 대로 시민들을 죽인다고?
난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얼른 이동 포탈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포탈 앞을 지키던 공무원이 날 제지했다.
“지금 어딜 가는 겁니까? 거기 난리난 거 몰라요?”
“그래서 가려구요. 뭔가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마음은 알겠는데 안 돼요. 지금 아무도 못 들어가게 출입이 통제된 상황이에요. 조금 있으면 길드 연합에서 올 테니까, 그 사람들이 해결할 겁니다.”
그때 누군가 날 아는 척했다.
“어? 박태준 씨?”
고개를 돌려보니 미르 길드 간부인 정기범 아버지인 정태수였다.
그 뒤로 이십여 명의 각성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박태준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웅성웅성거렸다.
아마도 이름을 듣고 내가 누군지 안 모양이다.
그건 날 막고 있던 공무원도 마찬가지였다.
“서…… 설마 진짜 박태준 씨세요?”
난 그의 말은 무시하고 정태수에게 물었다.
“지금 파리로 가시는 건가요?”
“네. 길드장님이 한 달 간 자리를 비우셔서…… 설마 태준 씨도 파리로 가는 건가요?”
“볼 일이 있어서 가려는데, 들어가게 해주질 않네요.”
“네?”
정태수는 상황 파악을 위해 나와 공무원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의 눈길을 받은 공무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바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박태준 씨라고 말씀해주셨으면 바로 들여보내 드렸을 텐데…… 전 또 그냥 나대는 일반인인줄 알고…….”
“아니에요. 할 일을 한 거니까.”
그때 정태수가 내게 물었다.
“그럼 태준 씨도 저희랑 함께 움직이실 건가요?”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전 따로 할 일이 있어서 힘들 것 같네요. 근데 대체 파리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각성자들이 시민들을 공격하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혹시 자세한 내용 아는 거 있으세요?”
내 질문에 정태수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회의를 하던 유럽 연합 각성자들이 갑자기 돌변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첩보에 의하면 파리에 호랑이와 돼지탈을 쓴 사람이 있다는 걸로 봐서, 마인 세력이 벌인 일인 것 같아요.”
“호랑이탈이요?”
난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호랑이탈이 있다는 말에 가슴이 설렘을 느꼈다.
드디어 설욕전을 할 수 있겠구나. 근데 각성자들이 갑자기 돌변했다면, 설마 마녀의 숲처럼 검은 액체를 사용한 건가?
머릿속에 마녀의 숲에서 검은 액체에 의해 지배당했던 마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세한 건 들어가 보면 알겠지.
그 사이에도 이동 포탈에선 사람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럼 들어갈까요.”
난 먼저 이동 포탈 앞으로 걸어가 이동 포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동 포탈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나오는 사람과 들어가는 사람이 부딪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동 포탈에서 막 나온 사람의 몸은 2초 정도 투명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극히 적었다.
포탈을 통해 파리로 나온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반쯤 꺾인 에펠탑이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비명 소리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쟁터가 따로 없네…….”
포탈 앞에는 그곳을 통해 도망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게 그들 주변으로 몇몇 각성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그들만으로는 이 많은 사람을 보호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난 뒤따라 나온 정태수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서 저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경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안 그래도 길드장님께서 무슨 일이 있으면 무조건 태준 씨 말에 따르라고 하셨어요.”
“잘 됐네요. 일단 제가 상황 파악을 할 테니까 그때까지 부탁 좀 드릴게요.”
그리곤 곧바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거기엔 다섯 명의 각성자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는데, 한 사람을 네 사람이 에워싸고 공격하고 있었다.
네 사람의 공격을 막아내는 각성자는 제법 잘 버티곤 있지만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내가 나타난 걸 눈치 챈 각성자들 중 한 명이 날 향해 달려들었다.
난 그를 보고 잠시 고민했다.
죽일까? 아니야. 아직 상황을 모르니 일단 전투불능 상태로만 만들자.
퍽.
결정과 동시에 내 주먹은 그의 복부에 꽂혔다.
그의 허리가 90도로 꺾이며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서는 축 늘어졌다.
그걸 본 세 명의 각성자들이 다른 한 사람을 공격하던 걸 멈추고 날 보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러다 갑자기 어딘가를 향해 도망가버렸다.
설마 도망갈 줄은 예상을 못해서 벙찐 표정으로 그들이 도망가는 걸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어?!”
공격을 받던 각성자는 감사 인사를 하다 날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난 여전히 벙찐 표정으로 도망간 각성자들을 바라보다 그가 놀라는 소리에 그를 바라봤다.
“어! 루카스?”
공격 받던 각성자는 루카스였다.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어서 그가 루카스인지 몰랐었다.
“태준이 니가 여긴 어쩐 일이야? 아니지, 정말 잘 됐어. 우리 좀 도와줘!”
그는 다급히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줘. 설마 네가 왔다는 건, 로빈이랑 프랑수와도 여기 있는 거야?”
내 질문에 그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뭔가 있구나!
“왜 그래?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게…… 팀장과 프랑수와님 둘 다 이상하게 변해버렸어.”
“그 두 사람도?”
“응. 두 사람도 오늘 있는 회의에 참석을 했었거든.”
“왜 그렇게 변했는지는 아직 모르는 거야?”
그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알겠어. 그럼 나한테 뭘 부탁하려고 한 거야?”
“지금 회의가 있었던 건물 안쪽에 변하지 않은 각성자들이 소수 모여 있어. 그들 구하는 걸 좀 도와줘!”
“그럼 그 사람들은 정상이야?”
“도움을 요청하는 걸로 봐서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아마도 그들을 구출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알 수 있을 거야!”
“근데 넌 어떻게 그들이 거기 갇혀 있는 걸 안 거야?”
그는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사실 회의가 있을 건물에 미리 도청기를 여러 개 몰래 숨겨뒀었거든.”
“도청기?!”
“좀 부끄럽지만 요즘 유럽 연합 안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미리 대비를 좀 하려고 그랬지…….”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는 짐작이 갔다.
아마도 유럽 연합 각성자 협회도 권력 다툼이 있는 모양이다.
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럼 그걸로 그들이 도움을 요청한다고 안 거야?”
“그래. 너도 이걸 한 번 들어봐.”
그리곤 그는 내게 음성 파일 하나를 전송했다.
그걸 재생하자 격렬한 싸움 소리와 함께 욕설과 비명이 난무했다.
소리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숨 고르는 소리와 함께 어떻게 나갈지에 대해 논의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쾅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비명이 들린 후 음성 파일이 끝났다.
“흠…… 이건 언제 녹음된 거야?”
“대략 10분 쯤 전이야.”
“그럼 빨리 가봐야겠네. 보아하니 상황이 다급한 거 같으니까. 위치는 알지?”
“따라오기만 해!”
우린 곧장 회의 장소였던 건물로 향했다.
가는 길 곳곳에선 여전히 비명 소리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모두 무시하고 일단은 목소리가 녹음된 곳으로 달려갔다.
회의 장소였던 건물은 각종 회의가 자주 열리는 컨벤션 센터였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 안인 거지?”
“맞아. 근데 건물 크기가 상당해서 정확히 어딨는지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지?”
“그런 거라면 걱정 말고 잠깐만 기다려봐!”
난 즉시 기감을 확장해서 컨벤션 센터 내부를 살폈다.
곳곳에서 각성자와 일반인들의 기가 감지됐다.
사실 각성자와 일반인들의 기를 구분해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각성자 중에 내공을 익힌 사람이 있다면 구분하는 건 쉽지만 각성해서 생기는 능력으로 내공이 생겨나지는 않았다.
그럼 어떻게 이들을 구분하느냐!
그건 각성자들이 뿜어내는 특정한 기운을 통해 구분한다.
일반 각성자들은 느끼지 못하는 듯 하지만 난 기감이 예민해지면서 그런 것들이 느낄 수 있었다.
그 특정한 기운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그걸로 각성자와 일반인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다 서로 뒤엉켜 있는 각성자들을 발견했다.
기의 움직임으로 봤을 때 서로 싸우고 있는 듯 했다.
저기다!
“찾았어! 지금 상황이 좋지 못한 것 같으니까 빨리 가자!”
우린 즉시 각성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근데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모여 있는 각성자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마치 우리가 오기 전까지 각성자들을 다 제거하려는 듯이 말이다.
뭐지? 대체 누가……?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살아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참하게 찢긴 십여구의 시체만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누가……?”
아무리 봐도 공격한 쪽과 공격당한 쪽 모두 뭔가에 의해 살해당한 듯 보였다.
찢겨진 상처 자국을 봤을 때 마치 맹수한테 공격을 당한 것 같았다.
우린 혹시라도 모를 생존자가 있는지 사람들을 살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몸이 완전히 찢긴 채 죽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보였다.
그때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며 엄청난 살기가 우릴 옭죄어 왔다.
이……이게 무슨……?!
이 정도의 살기는 생전 처음 느껴봤다.
아마 키라나 다른 몬스터들이 내뿜는 살기도 이것 못지 않겠지만, 그것들은 ‘대격변의 영웅’ 칭호 때문에 무효화되어서 난 실제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근데 지금 이런 살기를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건 최소한 살기를 내뿜는 존재가 몬스터는 아니라는 말이다.
난 슬쩍 옆에 있던 루카스를 바라봤다.
그는 살기 때문에 잔뜩 겁을 먹은채 고개도 못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일단 이 살기부터 걷어내자!
난 즉시 감추고 있던 내공을 외부로 폭발시키며 살기에 저항했다.
그러자 모습을 감추고 살기를 내뿜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내 투기를 튕겨내다니 재밌는 인간이군.]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붉은색 피부를 가진 괴물이었다.
키는 2미터가 조금 넘어 보였고 하나의 거대한 눈과 쭉 찢어진 입사이로 삐져나온 송곳니는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난 그 괴물을 보자마자 생각나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설마 산도깨비?!”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