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김지현의 몸 안에선 차갑고 거대한 힘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그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난 두 개의 차가운 기운이 뒤엉켜 있는 기묘한 상황에 상당히 놀랐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문제는 호기심에 일단 나서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하냐였다.
초열의 불꽃으로 김지현이 억누르고 있는 차가운 기운을 없애버리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러면 기껏 얻은 저 거대한 힘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아마 그녀의 성격이 소설 안에서 본 그대로라면 힘을 잃어버리느니 차라리 이대로 살다 죽는 걸 택할 것이다.
저 기운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불이면 쉽게 다룰 수 있을 텐데 얼음이라……
그때 그녀가 억누르고 있던 기운이 날 감지하고는 몰아내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 이거 재밌네. 진짜 살아있는 것 같잖아! 그래도 버릇은 고쳐줘야지.
난 차가운 기운이 내게 달려들자 초열의 불꽃을 살짝 일으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 이건 뭐지?
내게 달려들던 차가운 기운은 초열의 불꽃에 닿자마자 일부분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그렇다고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듯 기체처럼 변해 김지현의 몸 곳곳으로 흡수됐다.
설마 이런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하지만 달려들었던 차갑고 거대한 기운은 초열의 불꽃에 놀랐는지 멀찍이 물러나 잔뜩 경계만 하고 있었다.
이거 어쩌지? 초열의 불꽃을 억지로 밀어넣었다간 김지현이 본래 가진 기운마저 타격을 받을 수 있는데……
그때 물러서 있던 차갑고 거대한 기운이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응? 왜 갑자기……?
갑작스런 상황에 의아해하다 잠시 후 그 원인을 알 수가 있었다.
김지현이 가진 본래의 기운이 차갑고 거대한 기운을 내 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하려는 일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렇게 나와주면 고맙지.
그때부터 김지현이 차갑고 거대한 기운을 내 쪽으로 몰면 내가 초열의 불꽃으로 증발시키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결국 모든 기운을 다 없앴다.
그제야 난 그녀의 등에서 손을 떼고 물러났다.
하지만 김지현은 그 자리에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마 흡수한 기운을 제어하는 중인 듯 했다.
그때 최태산이 김지현의 상태를 보려고 다가갔다.
그걸 본 난 급히 그를 제지했다.
“지금은 안 돼요. 중요한 순간이니까 가만히 두세요!”
내 말에 최태산은 멈칫하고는 나와 김지현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럼 잘 해결된 건가?”
“네. 완벽히 해결됐어요. 그러니 걱정 말고 누가 그녀를 건들지만 못하게 보호해주세요.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니까!”
최태산은 알겠다고 크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서 동료를 소중히 아끼는 최태산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멋지네!
그제야 난 김신우를 돌아봤다.
그 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도 있었는데 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는데 19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에 균형 잡힌 몸을 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붉은 색으로 염색한 짧은 스포츠 머리를 했다는 것 정도다.
검정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그는 내가 자신을 바라보자 대뜸 제안을 하나 했다.
“나와 대결하자.”
“뭐? 대결?”
“그래. 나와 대결하자.”
난 그를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다.
보아하니 저 사람이 짱짱 길드 길드장인 것 같은데 보자마자 대결이라니…… 뭐 그것도 나름 재미는 있겠어.
난 눈을 감고 서 있는 김지현과 최태산을 힐끔 바라 보고는 말했다.
“좋아. 여기는 조금 그러니 장소를 옮길까?”
그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내가 그를 따라 걷자 김신우가 바짝 따라 붙어서는 속삭였다.
“저 사람이 아까 내가 말한 짱짱 길드 길드장이네. 아마 자네가 김지현을 치료하는 걸 보고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야.”
“호기심이 생겼다고 대뜸 대결을 하자고 하는 걸 보니, 저 사람도 제정신은 아닌가보네요.”
그는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곤 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를 못 믿는 건 아니네만 조심하게. 실력이 보통이 아니니까.”
“혹시 길드장님은 저 사람이랑 붙어보셨어요?”
“그가 요청을 했지만 내가 거절했지.”
설마 지는 게 무서워서는 아니겠지?
그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얼른 변명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무서워서 그랬다는 오해는 말게. 만약 저 사람과 대결을 해서 지게 되면, 무조건 그의 수하가 돼야 하기 때문에 거절한 거니까. 그런 조항이 붙지 않았다면 바로 대결을 했을 거네.”
“그럼 저 자랑 대결해서 제가 이기면 저 자가 제 수하가 되는 건가요?”
“그렇지. 그게 항상 저 자가 내거는 유일한 조건이야.”
호오! 그렇단 말이지. 흐흐흐. 잘됐네.
난 속으로 기뻐하며 그를 따라갔다.
잠시 후 그는 광장 한켠에 있는 작은 공터에 멈춰 섰다.
그리곤 날 바라보며 말했다.
“조건은 김신우에게 들었듯이, 단 하나!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수하가 되는 거다.”
“그거 간단해서 좋네. 그럼 선수는 양보할 테니 먼저 들어와.”
하지만 내 도발에도 그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 없이 무표정했다.
“판단력도 자신의 실력. 거절하지 않겠다.”
그리곤 그의 몸 주변에 수없이 많은 작은 물방울들이 생겨났다.
그 물방울들은 천천히 그의 몸 주변을 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그의 몸을 돌았다.
그 모습은 흡사 살아있는 채찍이 그의 몸을 맴도는 것처럼 보였다.
저런 건 또 처음보네.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들을 응결시켜 물방울로 만든 다음 그걸 빠르게 회전시켜 마치 채찍처럼 쓰는 건가?
잠시 후 내 예상대로 그의 몸 주변을 돌던 물방울 채찍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날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난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날아오는 물방울 채찍을 손으로 덥썩 잡았다.
그러나 물방울 채찍은 손에 잡히지 않고 물이 되어 내 몸을 통과하더니 그대로 내 얼굴을 때렸다.
철썩!
위력도 상당해서 난 뒤로 두어 걸음이나 물러났다.
하지만 난 오히려 씨익하고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거 진짜 재밌는 기술인데! 혹시 혼자 개발한 거야?”
그는 내가 자신의 공격에 맞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실에도 크게 놀라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그렇다면 정말 칭찬해줄만해. 보통은 주어진 기술을 강하게만 할 뿐, 새로운 기술을 만들 생각은 못하는데 말이야.”
그러나 대답 대신 물방울 채찍이 더욱 매섭게 날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가만히 맞지는 않았다.
날아드는 채찍의 타이밍에 맞춰 몸에 초열의 불꽃을 두르자 순식간에 물방울 채찍이 증발해서 사라져 버렸다.
이번엔 그도 살짝 놀랐는지 그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금세 사라졌다.
난 그런 그를 보고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몇 대 더 맞아주고 싶었는데, 넌 다른 재밌는 것들도 더 보여줄 것 같아서 없애버렸어. 혹시 마음 상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바로 다른 기술을 준비했다.
이번엔 그의 앞에 있던 땅이 들썩이더니 2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골렘이 나타났다.
“골렘? 이건 좀 놀랐는걸! 골렘이라니…….”
골렘은 내가 말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달려와 묵직한 주먹을 날렸다.
일단 한 대 맞아볼까.
퍼억.
강력한 일격이 복부를 강타했고 난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났다.
“생각보다 강하…… 억!”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엔 압축된 공기가 마치 창처럼 내 얼굴을 찔렀다.
그 후에도 그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여러 공격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김신우의 얼굴은 점점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설마 저 짱짱 길드 길드장이 이 정도까지 강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휘유! 생각보다 더 제법이야. 보아하니 물, 흙, 공기를 다룰 줄 아나봐. 대단해!”
하지만, 그렇게 무자비하게 공격에 맞았음에도 내 몸엔 작은 생채기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그걸 보곤 짱짱 길드 길드장보다 김신우가 더 놀랐다.
“자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나?”
난 놀란 김신우를 돌아보며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무리 대단한 공격이라도 성인이 갓난아기 공격에 상처를 받지는 않잖아요.”
김신우를 보고 한 말이지만 이 말에는 길드장도 반응을 했다.
이때까지 보인 표정들 중 가장 크게 얼굴 표정이 변했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건 수치심과 분노였다.
믿었던 자신의 공격이 내게 아무런 피해도 못 입히는데다, 나로부터 갓난아기 같은 공격이란 말까지 듣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날 노려보며 뭔가를 준비했다.
이번엔 그의 가슴 앞에 물방울과 돌, 공기, 불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그리곤 그것들이 가운데로 서서히 모아지더니 환하게 빛났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축구공만한 투명한 에너지가 생겨나 있었다.
지금 사원소들을 몽땅 하나로 합친 거야? 그럼 설마 저 사람이……?
그걸 보자 내 머릿속에 스치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소설 속에서 국내 랭킹 2위의 강자이면서 훗날 SSS등급 각성자가 된 현승민.
내가 알기로 사원소를 몽땅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 하나였고, 그걸 하나로 합치는 오리지널 기술을 개발한 것도 그뿐이었다.
물론 그건 훗날의 일.
지금 그가 보여주고 있는 기술은 사원소를 완전히 하나로 합치진 못했다.
그래도 그 위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저게 터지면 이 공간이 위험해질 수도 있겠어. 그 전에 잘라버리자.
난 즉시 화룡도로 단월을 사용해 날아오는 구체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완전히 융합되지 않은 사원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게 보였다.
그제야 그는 입을 열었다.
“실력이 놀랍군. …이제 내가할 수 있는 공격은 다 보여줬다.”
“그럼 패배를 인정하는 거야?”
하지만 그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공격을 다 보여준 것뿐. 아직 방어는 보여주지도 않았다. 이번엔 네가 공격할 차례다.”
말을 하는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의 눈은 승부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근데 괜찮겠어? 내 공격은 조금 아플 텐데.”
허나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내게 집중하며 공격에 대비했다.
“좋아. 나도 이대로 끝내는 건 찝찝하니까 제대로 한 수 보여줄게.”
그리곤 환영보를 극성으로 시전해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이동한 다음 일권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 일권은 평상시 사용하던 일권과는 달랐다.
평상시는 그냥 내공을 방출했다면 이번엔 한곳에 모아서 내질렀다.
이건 3식인 파천을 응용해 일권과 접목한 기술이다.
쿠쿠쿠쿠.
내 주먹이 대기를 가르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때 그의 앞에 수많은 물방울이 맹렬히 회전하며 내 주먹을 가로 막았다.
하지만 그런 걸론 내 주먹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아는지 곧바로 돌과 압축된 바람이 내 주먹을 막아섰다.
그러나 내 주먹은 잠시 멈칫했을 뿐, 그가 펼친 방어를 모두 뚫고 그의 복부에 적중했다.
쿠당탕탕.
그는 한참을 뒤로 나뒹굴더니 축하고 늘어졌다.
아마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한 모양이다.
쩝. 너무 과했나?
그때 옆에 있던 김신우가 경악한 표정으로 날보고 말했다.
“자…… 자네 대체 뭔가?”
난 그런 김신우를 향해 씨익하고 웃어주며 답했다.
“뭐긴요. 박태준이죠.”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