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하수구 밑에? 아니 왜 멀쩡한 땅 냅두고 하수구 밑에 있는 거야?”
그 질문에 이태훈 역시 의문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게 의문이에요. 저도 짱짱 길드 사무실이 하수구 밑에 있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거든요. 예전엔 분명 다른 곳에 있었는데…….”
“그래? 이유야 가서 직접 들어보지 뭐.”
난 망설임 없이 맨홀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하수구의 썩은 냄새가 훅하고 밀려왔다.
“후우! 가자.”
크게 심호흡을 하고 바로 하수구 아래로 뛰어내렸다.
철퍽.
하수구 밑은 생각보다 넓어서 걸어다니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냄새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후각이 마비되서인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되지?”
그러나 이태훈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냥 여기라고만 얘길 전해 들어서…… 안으로 들어오면 누군가 마중 나올 거라고만 했거든요.”
그때 하수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이는 하수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긴 생머리의 미녀였는데, 길에서 마주쳤다면 한 번 정도 뒤를 돌아볼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녀를 본 이태훈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이런 하수구에서 저런 미녀를 본 것이 의외였으리라.
나도 역시 그녀를 보고 상당히 놀랐는데 내 놀람은 이태훈과는 좀 달랐다.
김지현?!
그녀는 김지현이었다.
‘쟤가 왜 여기있지? 태산 길드 소속 아니었나?’
그녀는 소설 속에서 태산 길드의 주력 멤버이자 던전 마스터로 유명했다.
던전 마스터란 칭호는 지금은 없고 대격변 후 10년 정도가 지나고 생긴 칭호다.
혼자서 던전의 S급 보스를 잡을 수 있는 자에게 내려지는 칭호로,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후인 소설 속에서는 국내에 던전 마스터가 20명 정도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국내 각성자 랭킹 20위 안에 드는 강자라는 말이다.
난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등장에 놀람과 반가움, 당황이 섞인 복잡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때 옆에 있던 이태훈이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짱짱 길드에서 나오신 건가요?”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몸을 돌린 후 우리를 힐끔 쳐다봤다.
“따라오라는 건가요?”
이번에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를 따라가며 작은 소리로 이태훈이 말했다.
“이런 곳에서 저런 미녀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안 그래요?”
그러나 난 그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 내 머릿속은 그녀가 왜 여기 있을까라는 것 뿐이었다.
그럼 김지현이 원래 짱짱 길드였다가 태산 길드로 옮긴 건가? 그게 아니면 과거가 바뀐 걸까?
이태훈은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뻘쭘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그때 앞서 가던 김지현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우릴 돌아봤다.
“여기부……터는…… 박……태준……씨만…… 들어갈 수 있……어요.”
그녀는 말하기가 무척 어려운지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아무리봐도 정상은 아닌 모습이었다.
“전 그럼 어떻게……?”
하지만 그녀는 이태훈의 질문엔 대답을 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아름답게 반짝이는 두 눈은 내게 뭔가를 원하는 듯 했다.
“좋아, 안내해. 넌 나가서 밖에서 기다리고.”
내 말에 이태훈이 한마디 하려다 굳어진 얼굴로 자길 노려보는 날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곤 약간 화가 난 듯 한 표정으로 뒤로 홱 돌아서며 투덜거렸다.
“이럴 거면 애초에 입구에서 가라고 하던가 할 것이지…….”
난 그런 이태훈을 무시하고 김지현을 보고 말했다.
“그럼 안내해.”
그녀는 내 말에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한 5분쯤 더 걸었을까?
그녀가 옆에 난 작은 터널 안으로 몸을 숙여 들어갔다.
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까지 꽁꽁 숨어 있는 거지?
의문을 가지며 그녀를 뒤따르던 나는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이게 다 뭐야?!”
작은 터널이 끝난 곳에는 거대한 광장이 있었다.
그리고 이십여 명 정도 되는 이들이 곳곳에서 저마다의 훈련을 하고 있었다.
“왜 하수구 안에 이런 곳이 있는 거지?”
“그건 내가 대답해주지.”
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보자 누군가 우릴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익히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다.
“최태산?! 당신이 왜 여기에……? 설마 짱짱 길드가 태산 길드랑 같은 거였어?”
하지만 최태산은 고개를 저었다.
“엄연히 다른 길드지. 그렇지 않나?”
그의 물음에 또다른 이가 대답했다.
“그렇지. 다른 길드지.”
난 최태산의 질문에 대답한 이를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김신우?! 당신은 또 어떻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왜 태산 길드 최태산이랑 미르 길드 김신우가 같이 있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야?
“하하하. 그렇게 노려보지 말고 저쪽으로 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얘기하는 게 어떤가?”
김신우는 능글맞게 웃으며 광장 한켠으로 걸어갔다.
최태산은 김지현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는 김신우를 따라갔다.
난 왠지 저들한테 놀아난 것 같아 기분이 좀 상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일.
김신우와 최태산을 따라갔다.
그들은 준비된 테이블에 앉고는 나보고도 앉으라고 권했다.
내가 테이블에 앉자 김신우가 미리 준비돼 있던 차를 한 잔 따라 내게 건네며 말했다.
“많이 놀랐나?”
난 그가 건넨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감정을 추스린 다음,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히 놀랐죠. 안 놀랐겠습니까?”
“미안하네. 보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이니 이해해주게.”
“근데 이게 다 무슨 일이죠? 왜 하수구 밑에 계신 거에요? 거기다 두 사람은 왜 같이 있는 거구요?”
내가 질문을 쏟아내자 김신우가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워워. 진정하게. 지금부터 다 얘기해 줄 테니까. 흠……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군.”
그리곤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자네, 라시나에 대해선 어디까지 알고 있나?”
“라시나요? 갑자기 라시나는 왜……?”
그는 내 반문에 진자한 얼굴로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시나가 다시 체제를 뒤엎으려 하고 있네.”
하지만 난 그 말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건 언제나 그랬던 거 아닌가요?”
“언제나 그러긴 했지. 하지만 이번엔 양상이 좀 달라.”
“다르다구요? 어떻게요?”
“예전 대격변 초기에 라시나와 싸울 때는 힘의 논리를 주장하며 그걸로 돈을 벌려는 그들의 주장에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했지. 하지만 다수의 절대자들이 등장하면서 그 흐름이 변했어.”
그거라면 나도 잘 알고 있다.
언제, 어디서 절대자에 의해 세상이 파멸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요즘은 힘이 돈이고 권력인 세상이 됐다.
예전 대한 그룹 회장인 조양호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막대한 돈을 인체 실험에 쏟아 부었었다.
“요즘 대중은 절대적으로 힘을 숭배하죠.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는 흐름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 우리도 순수하게 라시나와 힘 대결에서 진다면 그들에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들을 이양할 생각도 하고 있어. 물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 뭐가 문제인 거죠?”
“문제는 라시나 자체도 변질이 됐단 거야.”
“변질이요?”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이번엔 가만히 있던 최태산이 대답했다.
“라시나가 절대자들을 숭배하기 시작했네.”
“네?!”
절대자들을 숭배한다고?!
하지만 난 얼마 전 겪었던 절대자 라우라와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에요. 얼마 전 월야 길드랑 붙었던 적이 있는데, 표면적으론 절대자를 숭배한다고 하지만 진짜 목적은 절대자를 이용하려는 거였어요.”
그리곤 월야 길드와 얽혔던 일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 말을 다 들은 최태산과 김신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땐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성향이 완전히 달라졌네. 절대자들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숭배하고 그들 밑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네.”
“근데 그게 가능한가요? 절대자들이 과연 인간들을 자신의 수하로 받아들일까요?”
“우리도 처음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네. 하지만 절대자들과 라시나 사이에 그들을 중재하는 세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지. 그들로 인해 라시나는 빠르게 절대자들 세력에 흡수되고 있는 상황이네.”
김신우의 말에 난 리치몬드의 기억에서 본 용의 탈을 쓴 남자가 떠올랐다.
설마 이것도 마인의 세력과 연관이 있는 건가?
아직은 추측일 뿐이지만, 지금 라시나와 절대자들을 이어주고 있다는 세력이 그들일 가능성은 매우 높아보였다.
난 혹시 그들이 그 세력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었다.
“그럼 중간에 있다는 그들이 누군지는 아세요?”
그 말에 김신우와 최태산이 굳은 얼굴로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날 바라봤다.
“사실 얼마 전에야 그들의 정체를 알았네.”
“그래요? 그것들은 대체 정체가 뭐죠?”
“자네 혹시 마인이라고 들어봤나?”
역시 마인 세력인가!
난 그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기 위해 고개를 저으며 모른 척 했다.
그러자 김신우가 마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마인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한 후 그를 따르는 십이지신에 대한 얘기를 했다.
“우리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마인 밑에는 십이지신의 형상을 본뜬 탈을 쓴 이들이 있네. 그리고 그들이 라시나와 절대자들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네.”
“흠…… 대충 무슨 얘기하는지는 알겠어요. 그럼 짱짱 길드는 뭐죠? 비밀 결사 같은 건가요?”
“원래는 이들도 라시나 중 하나였네. 근데 얼마 전 바뀐 길드장 때문에 라시나를 나오게 됐지.”
“어? 그래요? 전 또 두 사람이 같이 있길래 짱짱 길드가 두 사람이 만든 길드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요.”
“하하하. 여기 길드장은 따로 있네. 지금 잠깐 자릴 비웠지만 조금 있으면 들어올 거네. 더 자세한 내용은 그가 오면 얘기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
난 대충 돌아가는 내용을 파악하자 그동안 계속 궁금했던 일에 대해 최태산에게 물었다.
“김지현은 왜 저런 모습인 거죠?”
뜬금없는 내 질문에 최태산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자네가 지현이를 어떻게 알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을 텐데?!”
순간 당황했지만 난 대충 둘러댔다.
“물론 오늘 처음 봤죠. 오다보니 조금 이상해 보여서요. 말하기도 힘들 정도던데, 무슨 일 있는 건가요?”
그제야 최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 멀리서 혼자 수련하고 있는 김지현을 바라봤다.
“얼마 전부터 지현이가 커져가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아마도 갑작스레 급격히 커지는 힘이 원인인 듯한데…….”
그리곤 말끝을 흐리는 최태산의 얼굴은 김지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럼 제가 좀 봐도 될까요?”
“자네가?”
그는 잠시 고민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김지현을 곧장 김지현을 데리고 왔다.
그녀는 오는 길에 최태산에게 상황 설명을 들었는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날 쳐다봤다.
“그럼 잠시 실례 좀.”
난 그녀 뒤로 돌아가 그녀의 등에 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녀의 몸안에 존재하는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기운에 깜짝 놀랐다.
‘어?! 이게 뭐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