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군수뇌부를 협박하는 건 매우 쉬웠다.
난 그들을 통해 가루의 정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그건 태산에 서식하는 특수한 몬스터를 갈아서 만든 가루였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그 가루를 연구한 보고서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거 잘만 개발하면 엄청난 게 나올 수도 있겠는걸! 돌아가면 대마녀한테 연구를 좀 해달라고 부탁해야겠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그 가루가 가진 효능은 엄청났다.
잘만 연구한다면 뭔가 엄청난 게 나올 것 같았다.
난 그들이 오줌을 지릴 정도로 무섭게 협박을 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벌인 일들에 대한 증언을 확보했다.
이 정도 했으니 당분간은 못 쳐들어오겠지? 게다가 어르신께서 약속까지 하셨으니 괜찮을 거야! 그럼 이제 돌아가 볼까!
난 수뇌부들로부터 가루들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를 들은 다음 가루들을 모조리 큰 통에 담아 백팩에 넣었다.
그리곤 즉시 군부대를 나왔다.
나오면서 아이즈를 확인하니 려가채 전주인이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좌표가 온 걸 보니 무사히 잘 숨었나보네.
난 그 길로 주소가 있는 곳으로 가 려가채 전주인을 데리고 한국으로 가는 이동 포탈을 찾았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전라도 여수로 가는 포탈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길 통해 여수로 온 나는 즉시 조한희에게 연락을 했다.
[태준 씨. 지금 어디야? 키라는 만난 거야?]
그녀는 걱정이 됐는지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난 그녀의 마음이 고마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키라는 만났고 정보도 많이 얻었으니까.”
[그래? 휴! 다행이다. 혹시라도 무슨 일 있을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구.]
“하하하. 내가 걱정 말라고 했잖아. 그보다 내가 지금 사람 한 명 서울로 올려 보낼 거거든. 그 사람 좀 픽업해서 회사에서 케어 좀 해줘.”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근데 누군데?]
“아! 중국에서 만난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내가 좀 뒤를 봐줘야 할 일이 생겼어.”
그리곤 그동안 중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줬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녀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베이징에 있는 중국군한테 쳐들어갔다고? 태준 씨 미친 거 아니지?]
“하하하. 인간 중에 날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했잖아. 총이든 폭탄이든 내겐 아무 피해도 못 준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늘 조심해야 돼. 알겠지?]
“알겠어. 그럼 내가 보내는 사람 좀 잘 부탁해.”
[그럼 태준 씨는 그 사람을 통해서 요식업 쪽으로도 진출하려고 하는 거야?]
“흠! 일단은 마녀들한테 그 가루가 뭔지 정확히 알아내고 나서 결정하려구.”
[그럼 바로 마녀의 숲으로 갈 거야?]
“그래야지. 마녀들이 회사를 떠난 이유도 궁금하고 말이야.”
[그럼 잘 다녀와! 태준 씨가 부탁한 사람은 내가 잘 처리할 테니까.]
전화를 끊은 다음 난 려가채 전주인을 버스에 태워 서울로 올려 보냈다.
옆에서 내가 통화하는 걸 듣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하진 않았다.
난 그가 떠나고 나서 곧바로 마녀의 숲으로 가지 않고 경주로 먼저 갔다.
마인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어. 최박사라면 뭔가 알고 있을 거야!
경주 모화에 있는 최박사의 집에 도착한 후 벨을 누르려다 멈칫했다.
안에서 최박사 말고 다른 이의 기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구지?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데……?
기를 확장해 좀 더 자세히 살폈는데 아무래도 평범하게 얘기하고 있는 건 아닌 모양새다.
난 즉시 안으로 뛰어 들어가 창문을 부수고 거실로 들어갔다.
역시 내 예상대로 최박사는 복면을 한 괴인의 손에 목이 잡힌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괴인은 갑자기 거실 창을 깨고 난입한 날 보고는 놀라서 최박사의 목을 급히 비틀려고 했다.
“어딜!”
난 급히 오른손으로 단월을 사용해 괴인이 최박사의 목을 비틀기 전에 그의 손을 잘라버렸다.
툭.
“끄아아악!”
하지만 손이 잘린 괴인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반대손으로 최박사를 죽이려 했다.
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곤 다시 한 번 단월을 사용해 이번엔 그의 목을 잘랐다.
툭.
그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며 몸도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 졌다.
그리고 최박사는 충격적인 광경에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난 얼른 쓰러지려는 최박사를 안아 소파에 눕히고는 괴인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복면을 벗겨봤다.
드러난 얼굴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상의 20대 후반 남성처럼 보였는데 그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떠져 있었다.
난 일단 시체를 초열의 불꽃을 사용해 태워버리고는 최박사가 일어나기 전에 간단히 깨진 유리창을 정리했다.
다행히 날씨가 따뜻해서 창이 없어도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최박사가 정신을 차렸다.
“이제 정신이 드세요?”
내 목소리에 최박사는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난 분명 괴인한테…… 아!”
그제야 그녀는 정신을 잃기 직전 상황이 떠올랐는지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날 죽이려던 괴인은 어떻게 된 거죠? 분명 박태준 씨 손에 목이 잘린 걸로 아는데……?”
“시체는 제가 처리했으니 걱정 마세요. 그보다 그 놈은 누군데 최박사님을 죽이려 한 거죠?”
그녀는 내 질문에 머뭇거렸다.
말해주기 곤란한 것 같아 난 얼른 다른 질문을 했다.
“말해주기 곤란하시면 안 하셔도 돼요. 그나저나 괜찮으시면 뭘 좀 물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녀는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고마운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배려해줘서 고마워요. 궁금한 게 뭐죠?”
“혹시 마인에 대해 아시나요?”
“네? 마인이라구요? 박태준 씨가 그 이름을 어떻게……?!”
최박사는 내가 마인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역시! 마인에 대해 아시는구나. 그럼, 돌려 말하지 않을 게요. 전 지금 마인 세력이랑 싸우고 있어요.”
그리곤 그동안 마인과 얽힌 일들에 대해 말해줬다.
마녀의 숲에서 김나령이 했던 마도천하라는 말을 시작으로 대마녀로부터 들은 말까지 전부해줬다.
십이간지의 동물탈을 쓴 이들이 벌인 일들도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해줬다.
그 말을 모두 들은 그녀는 약간 놀라긴 했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역시 마인이 활동을 시작한 거군요. 근데 이번엔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하고 철저하게 준비한 모양이네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뭐죠?”
“마인은 수천 년 동안 여러 번 이종족을 지배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때마다 당당히 마도천하를 외치며 정면으로 다른 이종족들과 싸웠어요. 하지만 이번엔 은밀히 뒤에서 여러 세력들을 규합하는 걸 보면… 뛰어난 군사를 옆에 둔 모양이네요.”
군사라…… 그럴 수도 있겠네.
“혹시 마인에 대해 또 아는 게 있나요?”
“마인은 이종족 안에서도 언급하는 게 금기시 되어 있기 때문에 알려진 정보가 많이 없어요. 그래도 저희 선조들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파편적인 정보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요? 그걸 제가 좀 볼 수 있나요?”
그녀는 내 말에 약간 망설이다가 말했다.
“사실 아까 온 복면인도 저한테 그 책을 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제가 거절하자 절 죽이려 한 거구요.”
“네? 아까 그 괴인이 원한 게 마인에 대해 적인 책이라구요?”
“맞아요. 아까는 박태준 씨가 마인에 대해 모를 거라 생각해서 말하길 꺼렸지만, 이제 더는 숨길 필요가 없게 됐네요.”
“그놈은 마인에 대한 책을 왜 찾은 거죠?”
허나 최박사는 거기까지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진 모르겠어요. 그러나 하는 행동을 봤을 때 좋은 의도는 아니겠죠.”
“근데 어째 약간 들떠보이는데요.”
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왜 안 그러겠어요. 내가 사는 이 시대에 마인의 전투를 볼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 어딨겠어요!”
말을 하는 그녀의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난 한편으론 그녀의 그런 감정이 이해가 갔다.
나도 예전에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만나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며칠 씩 머리를 싸매며 한 문제를 풀기위해 고생했지만, 결국 풀어냈을 때의 쾌감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 최박사가 느끼는 것도 그와 비슷한 종류의 것이리라.
그때 최박사가 날 보고 다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날 좀 보호해줘요. 그러면 마인에 관해 적혀 있는 책을 줄게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에요. 이번 일처럼 언제 또 목숨의 위협을 받을지 몰라요. 사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이대로 죽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마인이 활동하고 있다는 걸 안 이상 이대로 죽을 순 없죠. 끝까지 살아남아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적고 싶어요. 그게 우리 가문이 대대로 해온 일이기도 하구요!”
난 잠시 그녀의 제안에 대해 고민했다.
‘나쁘지 않은걸. 어쩌면 럭키와 잘 맞을 수도 있겠어. 럭키가 정보를 모아오면 그녀가 그걸 바탕으로 정리하고 분석한다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좋아요. 마침 최박사님께 어울리는 곳이 있으니 거기로 모실게요. 언제 가실래요?”
그녀는 내가 승낙하자 함박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길게 기다릴 거 있나요? 당장 가죠. 잠깐만요.”
그리곤 주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책을 한 권 들고 나왔다.
“그게 설마 마인에 관한 내용이 적힌 책인 가요?”
“맞아요. 받으세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책을 내게 건냈다.
난 책을 받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다른 책은 안 챙겨가셔도 돼요?”
“호호호호. 요즘 세상에 누가 종이책을 가지고 다니나요. 이 책을 제외한 모든 책은 이미 웹상에 따로 저장해 뒀어요. 그럼 가죠.”
쿨하게 떠나는 그녀를 보며 난 혀를 내둘렀다.
역시 정상은 아니야.
난 예전에 최박사 집 앞에 세워둔 람보르기니를 타고 최박사와 함께 마녀의 숲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녀에게 마녀의 숲으로 간다고 하자 그녀는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녀의 숲은 그동안 금지로 지정되어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거길 직접 가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마녀의 숲에 도착하자 예전처럼 나무들이 길을 막았다.
하지만 날 알아보고는 바로 길을 열어줬다.
안으로 들어가 차를 주차하고 내리자 몇몇 마녀들이 날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나도 그녀들에게 마주 인사를 하곤 곧장 대마녀의 집으로 향했다.
똑. 똑.
대마녀의 오두막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그 소리에 난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대마녀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날 반겼다.
“오랜만이에요, 태준 씨. 역시 무사하셨군요.”
하지만 난 대마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 대마녀님 눈이……?!”
그녀의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