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사람 형상을 한 파란색 불꽃은 그런 날 쳐다보고는 말했다.
[인간. 난 모든 불꽃을 다스리는 불의 정수다.]
“뭐? 불의 정수? 그게 뭐야?”
생전 처음 들어보는 불의 정수란 말에 난 당황해서 소리쳤다.
[모든 불의 정점에서 그걸 다스리는 존재가 바로 나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본론을 말하도록 하지. 나를 도와다오, 인간.]
“도와달라고? 갑자기?”
[난 플뤼톤이란 자에 의해 속박되어 있다. 날 자유롭게 해다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난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널 어떻게 자유롭게 해? 플뤼톤을 죽이란 거야?”
[그건 나도 잘 모른다. 날 자유롭게 해다오.]
그의 말에 난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건 뭐하자는 거지? 방법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자유롭게 해달라니……!
“그럼 그로인해 내가 얻는 게 뭔데? 나도 얻는 게 있어야 도와줄 거 아니야!”
[인간. 네가 날 도와주기로 약속한다면 온전히 네 힘이 되어 주겠다.]
“지금도 초열의 불꽃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데 무슨 힘이 되어 준다는 말이지?”
[웅웅웅웅웅……]
갑자기 불의 정수의 몸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떨렸다.
지금 웃는 거야?
왠지 모르게 그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몸을 떨던 불의 정수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 말했다.
[그간 네가 사용했던 것은 진짜 초열의 불꽃이 아니다. 흉내내기에 불과할 뿐이지.]
“뭐? 흉내내기라고? 하지만 분명 카린은 완전히 융합됐다고 말했는데…….”
[카린이라면 나와 니가 가진 힘의 균형을 맞춘 이를 말하는 거겠군. 하지만 누구도 강제적으로 내 힘을 완전히 융화되게 할 수는 없다. 내 허락 없이 말이지.]
“흠. 좋아. 만약 내가 널 자유롭게 해줬다치자고. 그러면 내 안에 있던 니 힘은 다 사라지는 거 아니야? 그럼 나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허나 그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니가 가지고 있는 힘은 영원히 네 안에 머무를 것이다. 이제 시간이 진짜 얼마 남지 않았다.]
“그 형상을 유지할 시간 말이야? 그거라면 내가 다시 아까처럼 해서 불러내면 되는 거 아냐?”
[그건 안 된다. 내가 또 나타나게 되면 플뤼톤이 눈치 채고 다른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러니 이게 마지막 대화라고 생각해야 한다.]
“흠…… 그러니까 널 자유롭게 해주는 걸 도와준다면 온전히 내 힘이 되어 주겠단 거지? 그리고 니가 자유롭게 되더라도 그 힘은 내게 머물러 있고 말이야.”
[맞다.]
“대신 널 자유롭게 하는 방법은 내가 알아내야 되는 거고. 맞지?”
[그렇다.]
어떻게 하지? 어차피 플뤼톤을 만나보긴 해야 될 것 같은데…… 받아들여 말어?
그러나 길게 고민하진 않았다.
“좋아. 도와줄게.”
그러자 그의 몸이 또다시 웅웅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 그의 몸이 터져나가며 파란 불꽃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인간. 널 믿겠다……]
그 말과 함께 허공에 퍼져있던 파란 불꽃들이 내 몸으로 날아들더니 하나 둘 흡수되기 시작했다.
“끄으윽……!”
파란 불꽃이 하나씩 몸안에 들어올 때마다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난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파란 불꽃은 끊임없이 내 몸안으로 흡수됐다.
결국 모든 불꽃이 몸에 들어온 다음에야 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후우…….”
난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몸 안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난 가볍게 정면을 향해 일권을 펼쳐봤다.
쿠콰콰콰.
어마어마한 강기가 선명한 파란빛을 띄며 뻗어나가는 게 보였다.
“헐! 진짜였네.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위력이 강해졌어. 이게 진짜 초열의 불꽃이구나……!”
불의 정수 말대로 이전까지 그가 썼던 초열의 불꽃은 그냥 흉내만 낸 수준이었다.
이제 다른 절대자들이랑 붙어도 어느 정도 비벼볼만하겠어. 하지만 플뤼톤 급 절대자랑 붙어서는 답이 없겠는걸. 내가 이 정도면 플뤼톤은 나보다 몇 배는 더 강하다는 말이니까!
생각지도 못한 기연을 얻은 난 기쁜 마음으로 사무실 안에 있는 자료들을 훑어봤다.
군부와의 거래내역과 손님들에 대한 기록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거라면 제대로 한 방 터트릴 수 있겠어.
난 안에 있는 자료들 중 쓸만한 것들을 이차원 백팩 안에 넣고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다.
감옥에선 노인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거리다 날 보고는 반색을 했다.
“어……어떻게 됐소?”
“다 해결 됐어요. 주인은 죽었으니, 이제 자유의 몸이 되신 거에요.”
주인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그는 눈물을 흘렸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하하하! 고마우면 이제 약속을 지키셔야죠.”
노인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뭘 하면 되오?”
“여기서 일어난 일들을 인터넷에 까발려주세요.”
“인터넷에?”
그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요구를 하자 살짝 당황한 듯 했다.
“자료는 제가 다 챙겨 왔으니까 증언만 해주시면 되요.”
“그럼 엄청난 혼란이 생길 텐데…….”
하지만 난 웃으며 말했다.
“그러라고 하는 거에요. 군부와 관련된 자료까지 다 있으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까발리셔야 돼요.”
“하지만…….”
그가 망설이자 난 슬쩍 기운을 끌어올렸다.
“지금 못하겠다는 건가요?”
내가 살짝 위협을 가하자 그는 움찔하더니 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그건 아니오.”
그제야 난 기운을 거두고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요. 말 나온 김에 바로 하죠.”
“바로 말이오? 여기서?”
“여기서 해야 더 실감나지 않겠어요?”
그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하는 법을 알려주시오.”
난 일단 그에게 내가 가져온 서류들을 먼저 보여줬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
아이즈가 있기 때문에 카메라는 필요가 없었고, 노인이 겪은 생생한 증언은 실시간으로 전세계로 방송이 됐다.
‘좋아. 이걸로 중국 내에서도 현 정부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게 될 거야. 이딴 썩어빠진 정권은 빨리 무너져야 돼.’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역사에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중국이 동북공정을 할 때부터 유심히 지켜봤었다.
그때도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을 보고 분노하긴 했지만 상황을 뒤집을 만한 힘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그 모든 걸 바로 잡을 힘이 생겼다.
이제부터 하나씩 하나씩 바로 잡아가자!
그때 지하실에 있는 감옥으로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아마도 방송을 보고 제지하기 위해 달려온 모양이다.
노인은 당황해서 말을 멈췄지만 난 계속하라고 소리쳤다.
“멈추지 말고 계속 하세요. 내가 막을 테니까!”
그리곤 고개를 돌려 달려오는 군인들을 바라봤다.
잘 됐어. 이걸로 지금 까발리는 내용이 조작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난 달려오는 이들을 향해 일권을 날렸다.
쿠콰콰콰.
파란빛의 강기의 소용돌이가 달려오는 군인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뒤따라오던 군인들은 무시무시한 공격에 감히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진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노인은 계속 방송을 하고 있었다.
난 고개를 계속 돌려 노인과 멀리서 다가오려는 군인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상황의 긴박감을 살렸다.
그리고 드디어 노인의 인터뷰가 끝났다.
“수고하셨어요. 들고 계신 자료는 제 가방 안에 넣으세요.”
난 메고 있던 백팩을 노인에게 던져줬다.
노인은 백팩을 받아들고는 황급히 그 안에 자신이 보고 있던 자료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절뚝거리며 다가와 내게 백팩을 건넸다.
“그럼 이제 나가볼까요. 제 뒤에 바짝 따라붙으세요.”
난 백팩을 메고는 군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은 내가 다가오자 자신들도 모르게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군인들 대부분은 초월 슈트를 입고 있긴 했지만 그들로 내 앞을 막을 순 없다.
난 가볍게 그들을 제압하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밖에는 더 많은 군병력이 있었지만 그들 중 날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혹시 가족들이 있으세요?”
“부인은 십여 년 전 죽었고, 아들이 하나 있긴 하지만 연을 끊은 지 오래요.”
“그래요? 잘됐네요. 바로 갈 수 있겠어요.”
“바로 가다니 어딜……?”
“그런 일을 벌였는데 중국에 살 수 있겠어요?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다른 나라에 가셔야죠. 제가 살 곳은 마련해 드릴 테니 잠시만 어디 숨어 계세요. 혹시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 아는 그런 장소가 있나요?”
“있긴 한데…….”
“잘 됐네요. 제가 여기 다 정리하면 거기로 갈 테니 잠깐만 숨어 계세요. 바로 찾아갈 테니까. 저한테 아이즈로 좌표 보내시구요.”
그리곤 바로 주변을 정리했다.
군인들의 수는 수백 명이 넘었지만 내가 기운을 개방하자 제대로 서 있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난 노인을 들쳐메고 바닥에 엎드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군인들로부터 빠져나왔다.
완전히 군인들로부터 벗어난 후 안전하다고 판단이 들자 노인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이제 어르신만 알고 있는 장소로 가서 잠깐만 숨어 계세요. 제가 금방 따라 가겠습니다. 최대한 감시 카메라를 피해 움직이시고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도착하면 계신 곳 좌표 보내주시구요.”
노인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길로 중국군 사령부를 향해 달려갔다.
경고는 확실히 하는 게 좋겠지. 어설프게 했다간 오히려 역효과만 날 테니까!
사령부가 눈앞에 보이자 난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걸어갔다.
사령부 앞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날 보고는 급히 제지했다.
“멈추고 신원을 밝혀라!”
“나?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알거야.”
“뭐? 북한?!”
“그래. 그렇게 말하면 알 거야.”
그리곤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내 행동에 당황해서 다시 한 번 멈추라고 위협했다.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쏜다!”
하지만 난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기만 하고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타앙!
날카로운 총성이 사방에 울려퍼졌다.
툭.
내 가슴에 닿은 총알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난 당황하는 그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위에다 북한에서 사람이 왔다고 얘기하라니까.”
그리곤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서둘러 초소 안으로 들어가더니 어딘가로 연락을 했고 잠시 후 싸이렌 소리와 함께 수백 명의 군인들이 달려나와 내 앞에 진을 치고 총으로 날 겨눴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각성자로 보이는 이가 걸어나오더니 말했다.
“네가 북한에서 온 자인가?”
“응. 네가 여기 책임자야?”
“흥! 이젠 존재하지도 않는 북한 따위에서 온 놈이 오만방자하구나. 제법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무리 대단한 능력자라도 이 많은 총알을 견뎌낼 수는 없을 거다. 발포!”
그의 발포 명령이 떨어지자 수많은 총알들이 날 향해 날아왔다.
투투투투투툭.
잠깐이지만 내 발밑에는 총알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개중에는 일반 총알이 아닌 원소계열 각성자에 의해 강화된 총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무한의 방어력을 지닌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끝난 거야? 그럼 나도 시작해볼까!”
아까 발포 명령을 내린 이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날 보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난 그를 향해 씨익 웃어보인 다음 갈무리하고 있던 내공을 그대로 방출했다.
어마어마한 기에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부들부들 떨다 바닥에 주저 앉았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호통소리가 들렸다.
“갈!!”
그 소리는 군부대를 억압하던 내 힘을 차단시켰다.
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다 깜짝 놀랐다.
새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허공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설마, 허공 답보?!”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