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헤라 년? 키라가 어떻게 헤라를 알고 있지?
“헤라를 알고 있는 거야? 어떻게?”
그제야 자신의 감정이 드러난 걸 깨달았는지, 키라는 급히 분위기를 바꾸며 얼버무렸다.
“흥! 넌 알 필요 없다. 그나저나 네가 어떻게 그 황금 사과를 가지고 있는 거지?”
말을 하는 그녀의 눈은 욕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걸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하더니 키라도 여자였구나.
사실 키라는 드래곤이기 때문에 성별이 확실치 않았다.
물론 지금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저 모습도 결국 마법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성별 따위야 그녀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황금 사과를 꺼낸 건 드래곤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심 때문이었다.
반짝거리는 거라면 일단 수집하고 보려는 끝없는 욕심에 걸어본 건데, 그게 제대로 먹혔다.
“그거야말로 니가 알 필요 없지. 그래서 가질 거야 말거야?”
“당연히 가져야지!”
“그럼 말살자와 절대자들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말해 줄 거야?”
그러나 그녀는 대답 대신 아름다운 미소를 보이며 웃었다.
그 미소를 보자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난 즉시 손에 들고 있던 황금 사과를 소환 해제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뭐지?”
“뭘 거 같아?”
그녀가 보이는 분위기만 보더라도 그녀가 뭘 하려는지 짐작이 갔다.
젠장! 힘으로 뺏으려는 거구나!
하긴 나라도 그럴 것이다.
자신보다 힘이 약한 자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키라가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난 그런 키라를 보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며 말했다.
“내가 황금 사과를 꺼내놓지 않는 한 니가 그걸 가질 방법이 없다는 건 알 텐데!”
“호호호호. 그거야 뭐 어렵겠어. 꺼내게 만들면 되지.”
그리곤 무차별적인 그녀의 공격이 시작됐다.
화염 마법, 빙결 마법, 전격 마법, 정신 마법 등 내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마법들이 그녀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마법에 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마법도 내게 큰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그녀는 마법이 내게 데미지를 주지 못하자 이번엔 물리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리 공격 역시 내게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키라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키라를 놀라게 할 수는 있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들을 연속으로 계속 사용했다.
그건 그녀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그러나 기습이라면 모를까 잔뜩 주의하고 있는 그녀에게 이렇다 할 피해를 입힐 순 없었다.
결국 그녀의 공격도 내 공격도 서로에게 큰 데미지를 주지 못한 채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키라가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는 정말 놀랐다는 듯 날 쳐다봤다.
“지난번도 그랬지만 네 육체는 정상이 아니구나. 절대자들 중에도 너만큼 멀쩡히 내 공격을 받아내는 이는 없었거늘…….”
“아직도 계속할거야?”
그녀는 날 잠시 노려보다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와 나의 대결로 인해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내게 황금 사과를 한 번 더 보여다오. 그 후에 결정할 테니!”
하지만 난 어림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릴! 내가 황금 사과를 소환하면 바로 낚아챌 거잖아! 내가 병신으로 보여?”
그 말에 잠시 날 바라보던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휴. 내가 버러지 같은 인간 따위의 말을 들어야 하다니…… 좋다. 궁금한 걸 말해봐라.”
휴! 드디어 한고비 넘겼네.
난 그녀가 맘 바뀌기 전에 서둘러 궁금한 걸 물어봤다.
“내가 얘기 듣기론 말살자가 차원을 통합하려 할 때 그를 따르던 절대자들이 있었다는데 혹시 아는 거 없어?”
그녀는 내 질문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말했다.
“그런 이들이 있었지. 네 명의 절대자가 말살자를 따라 다녔다.”
“네 명? 혹시 그 중 한 명이 플뤼톤이야?”
“그래. 그는 초열의 불꽃을 다루는 이. 불꽃으로는 이길 자가 없는 이였다.”
“근데 왜 그들이 모두 지옥에 떨어진 거지? 내가 듣기론 말살자가 사라진 후 그들이 우리가 지옥이라 부르는 차원에 갇혔다고 하던데?”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틀렸다는 걸 표현했다.
“그들은 갇힌 게 아니라 자진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자진해서 들어갔다고? 왜?”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곳에서 뭔가를 찾아야 한다는 말을 얼핏 듣긴 했지.”
“찾는다고? 뭘?”
“그건 나도 모르지. 이제 궁금한 건 다 물어본 건가?”
이게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이제 시작이거든! 그럼 혹시 말살자가 왜 갑자기 사라진 건지는 알아?”
“그건 그를 따라다니던 절대자들만이 알겠지. 한시도 쉬지 않고 붙어다녔으니까.”
“정말 거기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절대자들 중 제일 오래 살았다며? 니가 지금까지 말한 건 얼마 전에 만난 다른 절대자도 알고 있는 내용이잖아!”
난 살짝 그녀의 자존심을 긁으며 물어봤다.
그러자 바로 반응이 왔다.
“흥! 말살자가 차원을 통합할 당시 그를 죽이려고 하는 세력이 있었다.”
“그거라면 당연한 거 아니야? 당시 대부분은 말살자의 생각에 반대했다는 걸로 아는데?”
“그렇지. 하지만 내가 말한 이들은 매우 은밀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럼 넌 어떻게 알고 있는데?”
“그들이 내게 제안을 했으니까.”
“제안을 했다고? 너한테 말살자를 같이 죽이자고 말했단 말이야?”
난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이건 처음 듣는 얘기지?”
그녀는 어떠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단해! 처음 듣는 얘기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처음에는 승낙을 했지. 나도 말살자의 생각에는 반대였으니까.”
“승낙했다고? 그럼 그 조직 안에 들어간 거야?”
“그래. 하지만 한 번 모임을 가진 후에는 바로 조직을 나왔어.”
“왜?”
“난 말살자도 싫어하지만 그들이 행하려는 방식도 마음에 안 들었거든. 그래서 그냥 나와버렸지.”
하지만 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그들이 가만히 놔뒀어? 보통은 그런 비밀 결사대에 들어가면 나올 때는 굉장히 어렵지 않나? 아무래도 비밀이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그들도 그걸 염려했지만 내 이름을 걸고 비밀을 지키겠다고 서약을 한 후 나올 수 있었어. 물론 한동안 그들의 감시를 받아야 했지만……!”
“그렇게 간단히 보내줬다고?”
“호호호호. 지들이 안보내주면 어쩔 건데? 당시에 있던 절대자들 중에 날 어찌 해볼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었어. 말살자를 따르는 네 명의 절대자 정도가 아니고선 말이지.”
키라가 그 정도로 강하다고? 아무리 봐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내 표정을 통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었는지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흥! 설마 아까 너와 싸울 때 내가 본 실력을 모두 발휘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본 실력은 다 발휘한 것 같은데, 아니었어?”
내가 무시하는 투로 말하자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버러지 같은 인간 놈이 누구를 판단하는 것이냐!!”
그리곤 그녀의 몸 전체가 밝은 빛에 휩싸이더니 급격히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 키라는 드래곤이었지?
인간인 채로 계속 싸워서 그녀의 본 모습을 잠시 잊고 있었다.
잠시 후 내 눈앞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드래곤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구나! 드래곤이 되니 인간일 때랑은 비교도 안 되는 에너지가 느껴져!
내가 긴장한 얼굴로 키라를 바라보자 그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흥! 이제야 내 위대함을 알겠지?]
그리곤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근데 드래곤이었던 그녀의 모습을 보고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보니까 본체로 돌아갔을 때 몸 색깔이 이상하던데? 붉은색도 있고, 황금색도 있고 말이야. 거기다 파란 색이랑 검은 색도 있던데 원래 레드 드래곤이면 붉은 색만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무식한 놈! 그건 내가 바로 드래곤의 종주이기 때문이지.”
“그건 무슨 말이야?”
“세상 모든 드래곤은 나로부터 나왔고 내가 가진 특징 중 한 가지씩을 물려받았단 말이다.”
“그 말은 니가 세상 모든 드래곤들의 부모라는 말이야?!”
하지만 키라는 부모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열등한 놈들은 내 새끼가 아니다!”
난 그녀가 화를 내자 얼른 화제를 돌렸다.
기껏 기분을 풀어놨는데 다시 화나게 할 순 없으니까.
“미안미안. 하긴 너랑 다른 드래곤들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능력에서 차이가 나긴 하지.”
난 다른 드래곤은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대충 둘러댔다.
그제야 그녀도 얼굴을 풀고는 말했다.
“흥. 이제야 바른 소릴 하는군.”
“그럼, 아까 감시를 받았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들이 감시 중이야?”
그녀는 내 질문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게 무슨 멍청한 소리지? 말살자가 사라졌는데 그들이 왜 날 감시한다는 말이냐!”
“하하하, 미안. 그럼 다른 질문을 좀 할게. 그 말살자를 처리하려는 집단이 맘에 안 든다고 했는데…… 뭐 때문인지 말해줄 수 있어?”
내 질문에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놈들도 말살자랑 똑같은 짓을 하려고 했으니까.”
“말살자랑 똑같은 짓?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에 그놈들의 목적은 순수하게 말살자를 죽이는 거였지. 하지만 그들의 힘만으론 말살자를 죽이는 게 힘들다는 걸 알자 점차 변질돼 가기 시작했다.”
“변질됐다고? 어떤 식으로?”
“말살자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기 위해 생명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계획을 세웠지.”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한다 한들 그게 그들한테 무슨 도움이 되는데?”
“그 놈들 중에는 죽은 이들의 영혼과 힘을 흡수할 수 있는 이가 있었다. 그 힘을 이용해서 통합된 전 차원의 생명체를 죽이고 그 힘을 취해 말살자와 대적할 생각이었어. 결국 말살자가 사라지면서 계획은 무산됐지만 당시 그 계획을 들은 난 미친 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결사대에서 나오게 됐지.”
그때 불현 듯 머릿속에 히든 보스가 세상을 멸망시키던 모습이 떠올랐다.
왜 갑자기 그게 생각났는지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방금 전 키라가 했던 말이 히든 보스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혹시 그 놈들이 계속 그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말살자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결사대는 해체가 됐기 때문에 그건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또 모르지. 세상엔 미친놈들이 많으니까!”
그래. 너도 그 중 하나야!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오른손에 황금 사과를 소환했다.
대충 궁금한 걸 다 물었으니 이제 줘도 되겠지. 생각보다 고급 정보도 많이 얻었으니까.
난 소환한 황금 사과를 키라를 향해 던졌다.
그녀는 내가 던진 황금 사과를 받아들고는 아름답게 미소 지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다음에 기회 있으면 또 보자구.”
내가 돌아서 가려는데 키라가 날 향해 말했다.
“기분 좋으니 한 가지 더 알려주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말살자 외에 최초의 생명체가 더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뭐? 최초의 생명체가 말살자 하나가 아니라고?!”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