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키라가 있는 산둥성은 금지로 지정되어 있어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키라가 데려온 몬스터들만이 득실거릴 뿐이다.
키라가 데려온 몬스터들은 교배를 통해 세력을 계속 늘리고 있어서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물론 그 몬스터들 중 내가 은밀히 이동하는 걸 눈치챌 만한 존재는 거의 없었다.
간혹 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몬스터들이 있긴 했지만, 그런 놈들은 빠르게 처리하면 그만이다.
“일 년 가까이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서 그런지 아름답네.”
난 산둥성 일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감탄하며 키라가 자리 잡은 태산을 향해 은밀히 다가갔다.
“저기가 태산인가 보네! 멋지구나!”
다시 한번 아름다운 전경에 감탄하다 기감을 확장했다.
태산 곳곳에 엄청난 기운을 가진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가장 안쪽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저기 있구나! 근데 저길 지키는 놈들이랑은 어쩔 수 없이 한 번 붙어야겠는걸. 몰래 지나가기엔 너무 강해!
그때부터 난 숨기고 있던 기를 개방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내게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하지만 ‘대격변의 영웅’ 칭호 덕분에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멀리서 날 쳐다만 볼 뿐 감히 덤벼들지는 못했다.
그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히 인간 주제에 절대자 키라님이 계신 곳에 숨어들다니! 배짱 한번 좋구나!”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거대한 오우거가 보였다.
하지만 일반 오우거완 달랐다.
몸집은 일반 오우거보단 작았지만 머리가 두 개였다.
트윈헤드 오우거? 근데 왜 저리 작아?
몸집이 나와 비슷한 트윈헤드 오우거는 흉흉한 안광을 뿜어내며 날 향해 소리쳤다.
“보아하니 보통 인간은 아닌가보구나. 정체를 밝혀라!”
예상외로 바로 달려들지는 않네. 머리가 좀 있는 놈인 모양이야.
“난 박태준. 키라를 좀 만나러 왔는데.”
“뭐? 키라?!”
내가 키라라고 하자 그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럼에도 섣불리 달려들진 않았다.
“감히 위대하신 절대자 키라 님께 반말을 하다니! 키라님께서 내리신 명령만 없었다면 당장에 쳐 죽였을 것이다.”
그제야 그놈이 왜 달려들지 않는지 이해가 됐다.
키라가 싸우지 말라고 했나 보네. 그럼 얘기가 쉽겠어.
“너 따위랑 말장난하고 싶지 않으니까 키라가 있는 곳으로나 안내해.”
거기까지 하자 오우거는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날 향해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키라님께 벌을 받더라도 네놈의 사지부터 찢고 봐야겠다.”
그리곤 양손에 도끼를 소환해 들고는 민첩하게 달려들었다.
호오. 생각보다 제법인걸. 제대로 배웠어!
후웅. 훙.
오우거는 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두르지 않았다.
도끼에는 상당한 변화가 담겨 있었고 도끼날은 푸른색 기로 감싸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피하지 못할 정돈 아니다.
하지만 난 피하지 않고 그대로 공격에 맞았다.
퍼걱. 퍽.
내 몸에 닿아있는 두 개의 도끼를 힐끔 보곤 오우거를 향해 미소 지었다.
“다 한 거야? 몬스터치곤 제법이야. 보아하니 괜찮은 스승이 있는 모양이네.”
하지만 오우거는 내가 뭐라고 하는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너희는 당황하면 항상 그 대사를 내뱉더라. 뭐, 오늘은 키라랑 얘길 하러 온 거니까 죽이지는 않을게.”
난 그대로 일권을 날렸다.
오우거는 위기를 느끼고 급히 두 개의 도끼를 교차해 막았지만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하지만 내 주먹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오우거의 가슴에 닿았다.
퍼억.
딱 오우거가 죽지 않을 정도의 힘을 실어 공격을 했기 때문에 죽지는 않았다.
대신 죽을 만큼 아플 것이다.
“끄으으악!”
오우거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주저앉거나 하진 않았다.
비명을 질러대면서도 눈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훈련받았는걸. 누가 가르쳤는지 보고 싶네.”
“내가 가르쳤지.”
내 말에 대답한 이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나이마저 무색할 정도로 뛰어났다.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 보고 반해버릴 정도의 외모였다.
거기다 특이하게 귀가 뾰족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어? 엘프?”
그 중년 남자는 엘프였다.
“고수가 하수를 상대로 뭐 하는 짓이지? 너라면 쉽게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그의 말에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대신 안 죽였잖아. 그것만으로도 많이 봐준 거라구. 그나저나 너 대단한데? 너 정도 되는 실력자가 왜 키라 밑에 있는 거지?”
그를 처음 본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에 놀랐었다.
저 정도면 절대자까지는 아니지만 지난번에 싸운 군단장 정도는 돼 보였다.
난 칭찬으로 한 말이지만 그는 기분이 나쁜지 얼굴을 찌푸렸다.
“키라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네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키라님은 네 놈에게 그런 취급당하실 분이 아니시다.”
“다들 충성심이 아주 대단하셔. 뭐 나야 키라만 만나면 되니까. 네가 안내해 줄 거야?”
허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키라님은 깊은 잠에 빠져 계신 상태다. 그러니 지금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잠이야 깨우면 되지.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는 내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조용히 오른손에 장검을 소환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수수한 검이지만 흘러나오는 예기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우와! 보는 것만으로 베일 것 같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오싹한걸!
엘프가 소환한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제야 제대로 실력 발휘할 만한 상대를 만났네. 어디 한 번 어울려볼까!
“검을 뽑았다는 건 싸우자는 거지? 그럼 사양 안 하고 들어갈게!”
난 즉시 환영보를 사용해 순식간에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곤 일권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향해 몰아치는 강기의 소용돌이를 향해 가볍게 검을 내리그었다.
놀랍게도 단 한 번의 휘두름에 몰아치던 강기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를 향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마어마한 압력이 짓눌러왔다.
“좋구나!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날 향해 날아오는 검을 향해 연속으로 일권을 사용했다.
총 세 번이나 일권을 날린 후에야 그의 검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검이 막히자 살짝 놀란 듯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난 그대로 그를 따라 붙으며 손날에 기를 잔뜩 불어 넣고는 단월을 사용했다.
서걱.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화룡도를 소환하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도 충분했다.
그의 가슴팍이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걸 본 오우거가 급히 엘프를 향해 달려오며 소리쳤다.
“스승님!”
하지만 엘프는 손을 들어 그가 달려오는 걸 제지했다.
그리곤 검을 들지 않은 반대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자, 그의 손에서 밝고 따스한 빛이 나오며 상처를 말끔히 치료했다.
“호오. 힐도 사용할 줄 아는 거야? 그럼 좀 더 격하게 가도 되지?”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그는 아까보다 더 진중한 얼굴로 날 보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나보다 뛰어난 실력자임은 인정하마. 그렇다고 우리가 네게 길을 열어줄 거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오늘 내 목숨은 여기서 끝나지만 결국 넌 키라님께 가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비장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뭔가 오는구나!
내 예상대로 자세를 잡고 있던 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검을 내리그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힘은 전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걸 본 오우거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스승님! 그건 안 됩니다!”
하지만 그의 검은 이미 날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검이 다가올수록 그 검에 담긴 힘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그 검안에는 엘프의 영혼의 힘이 담겨 있었다.
이건 위험해!
위험을 감지한 난 즉시 화룡도를 소환했다.
그리곤 날 향해 떨어지는 검을 향해 단월을 사용했다.
화룡도는 엄청난 힘을 담은 엘프의 검을 자르진 못했지만 튕겨내는 대는 성공했다.
“휘유! 너 대단한데?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어!”
난 순수한 마음으로 그의 실력에 감탄했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서서히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난 이대로 사라지지만 넌 절대로 키라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하이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에드윈. 누구 허락도 없이 죽는 거지?”
그 소리에 에드윈이라 불린 엘프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곤 죽어가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몸을 돌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키라… 님?”
나타난 것은 키라였다.
“잔다고 하지 않았어? 소설에서 보면 드래곤은 한 번 잠들면 수십에서 수백 년 씩 잠든다고 하던데.”
“네놈이 이렇게 시끄럽게 하는데 내가 편히 잘 수가 있어야지.”
그리곤 에드윈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 허락을 받고 그 힘을 사용한 거지? 그 힘은 내 허락이 있을 때만 사용하기로 맹세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저 자가 키라님의 잠을 방해하려 했기에 어쩔 수 없이….”
“흥! 됐다. 가서 근신하고 있어라!”
키라가 그를 향해 손을 한 번 휘젓자 에드윈의 전신에서 은은한 빛이 생겨나며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에드윈은 놀란 눈으로 키라를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오우거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근데 못 본 사이에 실력이 제법 늘었구나. 에드윈을 저 정도까지 몰아붙인 걸 보면 말이야.”
“나도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아까 그 엘프가 사용한 기술이 진짜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기술인 거야?”
난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키라를 대했다.
키라도 그런 내 태도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대답했다.
“영혼을 불태워 그 힘으로 적을 멸하는 금지된 기술이지.”
“영혼을 불태운다고? 그럼 영혼이 다 타버리면 소멸하는 건가?”
“빈 육체만 남은 채 이 세상을 떠돌게 되겠지. 그나저나 그런 얘기나 하려고 날 찾아온 건 아닐 텐데!”
“급하기는. 널 만나러 온 건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야.”
“물어볼 거? 나한테?”
키라에게선 예전에 봤던 오만한 모습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예전 같으면 나와 말도 섞지 않고 바로 죽이려 했을 텐데 그러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난 그런 키라를 잠시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 말살자와 절대자들에 대한 걸 물어 보려고. 넌 뭔가 아는 게 있을 것 같은데…. 아니야?”
하지만 그녀는 싸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물론 아는 게 많지. 난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왜 그걸 말해줘야 하지?”
그녀의 말에 난 말문이 막혔다.
사실 계속 생각한 건데 그녀가 거절한다면 내가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젠장. 그냥 순순히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뭔가 방법이 없을까?
그때 불현듯 머릿속에 헤라의 황금 사과가 떠올랐다.
그래. 황금 사과가 있었지. 이걸 차지하기 위해 여신들이 싸웠다고 할 정도니 키라한테도 통하지 않을까? 드래곤은 아름다운 걸 추구한다고 하니 말이야.
“말해주면 이걸 줄게.”
그리곤 난 오른손에 황금 사과를 소환했다.
오른손에 나타난 아름다운 황금 사과를 본 키라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건…. 설마 헤라 년의 황금 사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