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박경민은 돌아온 날 보고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진짜로 중국군이랑 싸우고 온 거야?”
“내가 처리하고 온다고 했잖아. 이제 이 도시로 쳐들어오는 일은 없을 거야.”
내 말에 박경민이 영희를 쳐다봤다.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이 진짜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그럼 문제도 해결됐으니 삼자대면하러 가볼까?”
“그러지 뭐. 나도 그들과 제대로 매듭지어야 하니까!”
나와 박경민, 영희는 즉시 도시를 벗어나 백두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처음엔 박경민이 다리 때문에 못 쫓아올 줄 알았는데 상당한 수준의 각성자여서 그런지 발목이 비틀렸음에도 용케 잘 따라왔다.
한참을 달려 백두산 밑에 있는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집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나와 함께 온 박경민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때 예의 노인이 그들 사이에서 걸어오며 말했다.
“사자님께서 저희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기 위해 저들을 잡아 오신 거군요.”
하지만 난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거 아닌데!”
“아니라면…?”
“삼자대면을 좀 해보려구. 이놈들 말로는 너희가 나쁜 놈이라는데?”
“그게 무슨…?”
보아하니 박경민 말이 맞나보네.
그때 나와 노인 사이의 땅이 불룩하고 솟아오르더니 카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은 잘 처리 했느냐?”
그녀는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었다.
“아직입니다. 잠시 할 얘기가 있으니 저쪽으로….”
난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그녀를 따로 불렀다.
“무슨 일인데?”
그녀의 질문에 그동안 내가 듣고 본 일에 대해 상세히 말해줬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다 듣고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왜? 무슨 문제라도 돼? 약한 놈이 강한 놈 편에 붙는 건 당연한 거지. 그건 살아남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구.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키우는 것도 문제가 될 게 없고.”
“그건 맞지. 그리고 강해진 군대가 무능한 지휘관을 없애고 그 자릴 차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지. 안 그래?”
“…그건 그렇지,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난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냥 저들 일은 저들이 처리하게 두자고. 그러기 위해서 데리고 온 거니까.”
“하지만 저들이 죽는 건 안 돼. 그건 내가 용납할 수 없어.”
“저놈들이 널 이용했다는 건 알지? 그러기 위해서 널 신처럼 떠받들었던 거고.”
“알지. 허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 저놈들 중엔 진짜 날 신이라 생각하고 기도하는 멍청이들도 있거든. 그리고 난 그런 멍청이들이 싫지 않아.”
“좋아. 일단 저들이 어떻게 결론을 냈는지 들어볼까.”
우린 하던 대화를 끝내고 그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보고 난 박경민에게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얘기가 잘 끝났나 봐?”
“저들이 우릴 죽이려고 했지만 어쨌든 부모 없는 우릴 거둬서 먹여주고 키워준 은혜도 무시할 순 없지. 그래서 앞으로 더는 도시에 관여하지도 발을 들이지도 않는 조건으로 살려주기로 했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어딘지 후련해 보였다.
그건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박경민과 나눈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도 표정이 밝아졌다.
생각보다 잘 끝나서 다행이네. 괜히 죽이겠다고 나섰으면 카린이랑 관계만 이상해질 뻔했어.
노인이 마을 사람들과 대충 얘기를 끝낸 듯하자 난 그를 따로 불렀다.
“사자님. 절 무슨 일로?”
“연기 그만하고 이제 어디로 가서 살 거지?”
그는 살짝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카린님이 저희 때문에 시끄러워하신다는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저들 때문에 이주를 못 했지만 이제 그 문제도 해결됐으니 다른 곳을 알아봐야지요.”
“이왕이면 너무 멀지 않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 카린이 너희를 마음에 들어 하니까.”
“그건 걱정 마십시오. 마을 주민 중에는 카린님을 진짜 신처럼 모시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저희 근심거리를 해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가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아무런 욕심도 욕망도 없어 보였다.
“그럼 살 곳은 알아서들 알아보고.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중국 놈들은 이제 더 여기로 안 올 거니까 괜한 생각은 하지 말고.”
내 말에 그는 놀라지 않고 오히려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죽을 때까지 농사나 지으며 살 겁니다. 더는 그런 쪽에 마음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네가 아니라 다른 마을 사람들 때문에 그러지. 너야 이제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젊은 애들 생각은 다를 수도 있잖아.”
그는 그제야 내가 뭘 걱정하는지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마을 청년들한테도 잘 얘기해 놓겠습니다.”
잘하라는 뜻으로 노인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박경민한테 갔다.
“표정을 보니 후련해 보이네.”
“계속 찝찝했는데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서 다행이야. 이제 도시 발전에만 집중할 수 있겠어.”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하는데.”
“제안?”
그는 갑작스런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너희 도시에 투자를 좀 했으면 해서 말이야.”
“투자라고? 우리 도시에 뭐 볼 게 있다고 투자를 한다는 거야?”
“뭐 볼 게 있냐고? 낙후된 북한에서 그 정도로 발전된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거야. 그리고 난 너희 같은 도시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
“그래서 투자를 하겠다는 거야?”
“그래. 아까 오면서 들어보니까 지금 북한의 도시들을 관리하는 각성자들 능력은 다 비슷비슷하다면서. 그렇다면 앞으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 각성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경제력이 곧 힘이 될 거야. 그리고 난 네가 북한 전체 경제를 관리했으면 하고!”
그는 내 말에 깜짝 놀랐다.
“북한 전체라고? 네 말대로 다른 도시를 관리하는 자들도 자신의 도시를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고 있긴 해. 그런 면에서 우리 도시는 출발이 좋았지. 저들이 중국의 도움을 받아 대부분 발전시켜 놓은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관광객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거고. 하지만 다른 도시는 달라.”
“뭐가 다르단 거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며 미소를 띤 채 물었다.
“일단 지금 북한 도시들에서 경제를 발전시킬 방법은 관광과 유흥업밖에 없어. 근데 그걸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선 일단 괜찮은 시설들이 만들어져야 돼. 그래야 사람들이 몰리고 돈이 되겠지.”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말했듯이 경제를 돌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만한 시설부터 지어야 한다니까! 단순히 말해서 돈을 벌기 위해선 밑천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투자 한다잖아.”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개인이 투자한다고 될 만한 규모가 아니야.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고.”
“하하하. 내가 말을 잘못해서 오해했나 보네. 내가 아니라 우리 회사가 투자한다고 해야 되는 건데.”
“회사?”
회사라는 말이 나오자 그제야 그는 눈을 반짝였다.
사실 그가 있는 도시는 이제 살만했다.
운 좋게 이동 포탈이 도시 근처에 생기면서 많은 관광객이 도시로 모여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도시들도 그렇게 되길 원했다.
실제로 가끔 다른 도시 관리자들과 만나면 다들 도시를 발전시키고 싶어했다.
그러나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중국에 손을 벌리자니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었다.
근데 내가 투자를 한다고 하자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우리 회사에서 투자할 거야.”
“흠흠. 회사 규모가 좀 큰가? 적은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닐 텐데….”
“뭐 적당히. 혹시 피앤씨 컴퍼니라고 들어봤어?”
“뭐…?! 피앤씨 컴퍼니?!”
그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전 세계 누가 피앤씨 컴퍼니를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즈를 만든 회사.
그 역시도 아이즈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알았다.
“그럼 호, 혹시?”
“난 피앤씨 컴퍼니의 대표야. 정확히는 공동 대표지.”
내 말을 들은 그는 이전까지 보인 적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날 쳐다봤다.
그러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곤 말했다.
“정말로 투자…. 해줄 거야?”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잠깐만 기다려봐.”
난 조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박경민과의 통화 공유 기능을 활성화 시켰다.
통화 공유 기능은 내가 지정한 상대에 한해 통화 내용을 같이 듣는 기능이다.
[태준 씨. 무슨 일이야?]
“지금 바빠?”
[괜찮아. 무슨 일 있어?]
“별건 아니고 투자할 곳이 있어서 말이야.”
[투자? 어디에?]
난 그녀에게 간단히 북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말을 다 들은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말을 꺼냈다.
[투자하기 좋을 것 같아. 당장 수익은 안 나오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곳이니까 말이야. 일단 강원도처럼 자연을 이용하는 컨셉으로 가면 좋겠어.]
그녀는 벌써 발전 컨셉까지 머릿속에 그려놓은 듯했다.
“하하하. 역시 한희야. 내가 나중에 아까 말한 도시 대표 연락처 알려줄 테니까 따로 통화 한 번 해봐. 알겠지?”
[그럴게. 별일 없지?]
“하하. 별일은 이제부터 있겠지. 일 마무리 되면 다시 전화할게.”
그리곤 전화를 끊고 박경민을 쳐다봤다.
“됐지? 이제 한희랑 협력해서 잘 발전 시켜봐. 일단은 이동 포탈이 근처에 있는 도시부터 발전시키는 게 좋을 거야. 접근성이 좋아야 사람들이 몰릴 테니까. 그리고 도시별로 차별화된 테마도 생각해야 될 거고.”
내 말을 듣는 그의 표정은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거라면 걱정 마. 예전부터 머릿속에 그리던 계획이 있으니까. 근데 왜 갑자기 투자를 해주는 거지?”
“투자를 왜 하다니? 그거야 돈벌이가 될 것 같으니까 하는 거지. 거기다 너라면 믿을만해 보이고 말이야. 굳이 이유를 하나 더 붙이자면….”
“붙이자면?”
“이대로 놔두면 언젠가는 먹고사는 게 힘들어진 도시들이 하나둘 중국에 자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게 될 거야.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중국과 더 친하니까. 그럼 결국 북한은 중국 땅이 될 테지. 난 그 꼴은 못 봐!”
그 말에는 그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걱정하는 부분도 바로 그거였어. 근데 이제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면 더는 중국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겠지.”
그리곤 날 향해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했다.
“정말 고마워. 지금은 이 말 밖에 해줄 게 없네. 두고 봐. 북한을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만들어 볼 테니까!”
난 그를 향해 한 번 웃어주곤 카린에게 갔다.
“생각보다 큰 말썽 없이 잘 끝났네. 마을 사람들도 근처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로 했고. 이거면 다 해결된 거지?”
“그래. 넌 이제 다른 곳으로 갈 거야?”
“중국으로 가려구. 가서 만나야 될 사람이 좀 있거든.”
“그럼 잘 가고. 가다 심심하면 한 번씩 들려.”
“그러지 뭐. 너도 내 부탁 들어준다는 약속 잊지 말고. 알겠지?”
“쳇! 내가 잊는다고 네가 가만둘 놈이냐! 알겠으니까 얼른 꺼져!”
난 웃으며 그녀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곤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을 향해 달렸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