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여기 와서 느낀 거지만 카린의 실력도 많이 늘어있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분명히 나중에 도움이 될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부탁을 들어주고 나중에 결전의 순간이 왔을 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별건 아니고 너도 나중에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돼.”
하지만 그녀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별거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에이. 친구를 못 믿는 거야? 네 문제는 깔끔하게 처리해 줄게. 넌 그냥 나중에 내가 부탁하는 것만 들어주면 돼.”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마지못해 승낙했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도와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근데 널 신처럼 떠받들어주면 근처에 두는 게 더 좋은 거 아니야?”
“물론 좋지. 근데 이놈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대니까 문제인 거야. 시끄러워 죽겠다고!”
뭐가 그리 시끄럽다는 건지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난 부탁만 들어주면 된다.
“그럼 바로 마을로 가서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볼게. 근데 내가 아까 마을을 지나올 때 아무도 안 나오던데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줄까?”
“그건 걱정 마. 나도 거기로 갈 테니까.”
“근데 정말 용암을 이 주변을 벗어날 수 없는 거야? 그래도 예전보다 행동반경이 늘어난 거 같은데?”
“늘어난 건 맞아. 하지만 여전히 이 산 주변을 벗어날 순 없어. 뭐, 요즘 같아선 뭔가 방법이 있을 것도 같지만 아직 확실친 않아….”
“알겠어. 그럼 일단 마을로 갈 테니까 너도 곧바로 따라와!”
그리곤 바로 뛰어내린 구멍을 향해 점프를 했다.
예전에는 한 번에 거기까지 도약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너무나 수월하게 구멍까지 뛸 수 있었다.
구멍을 나온 난 곧바로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내 옆에 있는 바닥이 불룩하고 솟아오르더니 카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마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집 안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와서는 카린을 향해 절을 했다.
카린은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노인이 카린 앞으로 와서 절을 했다.
그제야 카린은 걸음을 멈추고 노인을 향해 말했다.
“일어나라. 그리고 내가 오늘 너희가 그토록 원하던 소원을 이루어줄 것이다.”
으으! 오글거리는 저 말투는 대체 뭐지!
난 손발이 오그라드는 걸 참으며 카린이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그녀는 정말 신이라도 된 것 마냥 노인과 마을 주민들을 향해 외쳤다.
“여기 이 사람은 너희의 기도를 들어줄 내 사자다. 내 사자가 오늘 너희를 괴롭히는 이들을 처단할 것이다. 그들은 너희가 겪은 고통의 수백 수천 배에 달하는 고통을 받는 곳으로 떨어질 것이다. 바로 오늘!”
그리곤 내게 살짝 윙크를 하곤 불꽃에 휩싸여서는 사라졌다.
그걸 본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그녀가 사라진 곳을 향해 절을 해댔다.
난 그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
완전히 신 놀이에 빠졌네. 저 퍼포먼스는 또 뭐고…!
그때 절을 하던 노인이 내 앞으로 다가와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사자님. 정말 저희의 소원이 오늘 이루어지는 겁네까?”
난 노인을 지긋이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하기로 한 이상 제대로 해야겠지?
“그렇다. 오늘 카린님께서 너희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기로 마음먹고 날 보내신 것이다. 너희의 소망이 무엇이냐?”
“저희 소망은 하나 밖에 없습네다. 저희 가족들을 죽이고 저흴 죽이려는 이들이 사라지는 것입네다. 그래서 평화를 얻는 것이 저희의 유일한 소망입네다.”
“그자들이 있는 곳을 말하라!”
노인은 그자들이 있는 곳을 상세히 알려줬다.
노인의 설명을 다 들은 난 근엄한 목소리로 모두를 향해 말했다.
“오늘! 너희를 괴롭힌 이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곳에서 영원히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살아갈 것이다.”
그 말이 끝나자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럴 땐 극적으로 사라져야겠지!
난 환영보를 극성으로 사용해 귀신처럼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곤 노인이 알려준 곳을 향해 달려갔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데!
카린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난 노인이 알려준 곳을 향해 한참을 달려갔다.
목적지는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드디어 도착한 목적지는 작지 않은 규모의 도시였다.
“이야. 이거 생각보다 큰일이 될 수도 있겠는걸!”
내려다본 도시는 규모도 작지 않지만 화려하게 빛나는 불빛들과 네온사인, 그리고 그곳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난 일단 도시로 들어갔다.
가까이서 본 도시는 더욱 화려했다.
이야. 여긴 서울에 있는 유흥가보다 더 화려한데! 북한은 체제가 붕괴된 후 여전히 낙후됐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다 그런 건 아닌가 보네.
하지만 내 목적은 관광이 아니기에 난 즉시 탐문에 들어갔다.
근처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이에게 노인에게 들은 이에 대해 물었다.
“혹시 박경민이라고 아나요?”
친절한 미소를 짓던 그는 박경민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런 사람 모릅네다.”
그리곤 난 쳐다도 보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물어본 이들마다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박경민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 건가? 아니야. 무서움보다는 의도적으로 감싸는 것 같은데…?
그 후에도 좀 더 탐문을 한 후 내 짐작이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역시! 저 사람들은 박경민을 보호하고 있는 거야! 왜 그 사람을 보호하는 거지?
그렇게 의문을 품고 한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나를 향해 접근하는 기운들이 느껴졌다.
난 그 기를 느끼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계속 쑤셔댔더니 제 발로 찾아오는구나!
골목에 가만히 서서 기다리자 곧 세 사람이 유령처럼 나타나서는 날 에워쌌다.
그들 모두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들 중 내 정면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넌 누군데 박경민을 찾는 거지?”
“아아. 부탁받은 일이 좀 있어서 박경민을 좀 만나야겠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안 해주네. 근데 너희는 박경민이 어딨는지 알 것 같은데…. 어때? 너희들은 말해줄 거야?”
“흥! 그건 죽어서 염라대왕에게 물어봐라!”
그리곤 그들은 곧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복면을 한 이들은 실력이 형편없었다.
잠시 후 바닥에 쓰러진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복면을 벗겼다.
“어? 너희는?!”
그들은 모두 아까 내가 박경민의 행방을 물었던 가게의 직원들이었다.
“니들이 왜?!”
“…넌 절대 박경민을 못 찾을 거야…. 윽.”
이것들 뭐지? 뭔데 이렇게 충성심이 강한 거야?!
난 그들을 그대로 둔 채 골목을 빠져나왔다.
일단 좀 더 쑤셔보자. 그러다 보면 뭐라도 걸리겠지.
그렇게 계속 탐문을 하다 보니 몇몇 사람들이 더 습격을 해왔다.
하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굉장히 은밀했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난 즉시 기감을 확장했다.
그새 내가 눈치챘다는 걸 알았는지 아무런 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놈이구나!
조금 전에 날 지켜본 이가 박경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날 습격한 어중이떠중이와는 격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는 이였기 때문이다.
일단 좀 더 돌아다녀보자.
난 또다시 탐문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감은 확장해 둔 상태로 누군가 지켜보는 걸 감시했다.
그때 또다시 내 기감에 날 지켜보는 이의 기가 감지됐다.
저기구나!
난 즉시 기가 느껴진 곳으로 이동했다.
스륵.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 사이에 사라졌다고?!
그럴 수는 없다.
내가 상대를 느끼고 여기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2초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사이에 내 눈을 피해 도망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뭔가 특별한 방법을 사용했구나!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 자신의 모습을 감춘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난 몸 안에 있던 내공을 폭발시키듯 몸 밖으로 분출했다.
그러자 내 뒤에서 누군가 신음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도 지금까지 날 습격했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얼굴에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확연히 달랐다.
“난 누가 날 몰래 지켜보는 걸 굉장히 싫어하거든. 왜 날 감시한 거지?”
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을 안 한다 이거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죽이는 수밖에.”
그때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다.
슈웅. 퍼퍽.
그리곤 내 오른쪽 관자놀이에 명중했다.
“큭! 이건 또 뭐야?”
난 즉시 뭔가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은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감을 확장했지만 이미 기운을 감췄는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하하하. 너희 재밌네. 재밌어!”
그리곤 내 머리를 맞추고 바닥에 떨어진 물체가 뭔지를 살폈다.
응? 총알?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은 총알이었다.
헐! 이제 총도 맞아보는구나.
그때 바닥에 주저앉은 채 내 기운에 저항하고 있던 이가 번개같이 내 발목을 공격했다.
그자의 손엔 어느새 날카로운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서걱.
단검은 정확하게 내 아킬레스건을 베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총알이 내 목에 명중했다.
퍼퍽.
이번엔 아까보다 충격이 더 컸다.
총에 맞은 충격에 머리가 젖혀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뿐이다.
난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고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너희 콤보가 좋네. 꽤 오랫동안 합을 맞췄나 봐. 근데 이걸 어쩌지? 나한텐 다 소용없는데!”
그제야 복면을 쓴 이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기습적으로 관자놀이나 목을 맞는다면 죽는다.
그건 신체강화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미리 공격을 알고 그 부위를 대비한다면 막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미리 대비하지 않고 완벽히 무방비 상태였다.
그런데도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못한 것이다.
그제야 복면을 쓴 이가 입을 열었다.
“넌 뭐지?”
“이제야 입을 여는 거야? 난 그냥 박경민을 만나고 싶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힘든 일이야?”
“그는 왜 만나려는 거지?”
“누가 뭘 좀 부탁해서 말이야. 그건 본인한테 직접 말하고 싶은데!”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를 만날 순 없다!”
복면을 쓴 이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널 죽이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 수밖에.”
그때 또다시 파공음이 들렸다.
하지만 손을 들어 날아오는 총알을 잡았다.
그리곤 웃으며 복면을 쓴 이에게 말했다.
“난 계속 같은 공격에 당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야. 이제 죽어볼까!”
복면을 쓴 이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대란 걸 알고 있었지만 포기한 눈빛을 보이진 않았다.
“흥! 내가 죽더라도 절대 박경민은 찾을 수 없을 거야! 절대!!”
악을 쓰듯이 외치는 복면인을 보며 난 웃으며 말했다.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뭐? 그게 무슨?!”
난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박경민이야?”
내 질문에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그래. 내가 박경민이다. 이제 그녀는 그만 괴롭히지 그래.”
“그녀?!”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