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프로필에 쓰여 있는 요구사항이라면 딱 내가 원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능력이 사실이라면 저건 완전 사기캐나 다름없다.
난 즉시 카페에서 나와 좌표를 확인했다.
“흠. 가평 대곡리라…. 그리 먼 곳은 아니네.”
가는 길에 은행에 들러 코인을 잔뜩 바꿨다.
가지고 있던 코인은 루크레이지에서 지내며 다 먹었기 때문이다.
백팩에 코인을 넣고 곧바로 가평을 향해 달렸다.
대성리와 청평을 지나자 곧 가평 시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아직 발전이 많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좌표가 찍혀 있는 곳은 가평 시내는 아니고 샛길로 들어가면 나오는 산의 초입이었다.
근데 입구에서 검은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 한 무리가 길을 막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급히 제지하며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긴 지금 못 들어가니까 꺼져!”
“왜 못 들어가는데?”
그들은 내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하자 이놈 뭐지란 표정으로 다들 날 쳐다봤다.
“알 거 없고 꺼지라고! 맞아 죽기 싫으면!”
보아하니 조폭들 같은데…. 조폭들끼리 세력 다툼 같은 거라도 하는 건가? 이런 데는 진우도 같이 데려왔으면 좋아했을 텐데!
난 갑자기 해진우의 얼굴이 떠올라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날 위해 자신의 조직은 내팽개쳐둔 채 수련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걸 생각하자 새삼 진우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들었다.
“이 새끼 미친놈 아니야? 꺼지라는데 왜 히죽거리며 웃고 있어?!”
“미안. 고마운 동생이 생각나서 말이야. 근데 너희 어디 식구야?”
그 말에 그들은 갑자기 경계 자세를 취했다.
이쯤 되자 내가 그냥 등산 가기 위해 온 사람은 아니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너 뭐야?! 너 혹시 양지리파에서 보낸 새끼냐?!”
양지리파는 또 뭐야?
지금 난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즐거웠다.
이런 평범한 일상을 통해 내가 정말 루크레이지에서 돌아왔다는 걸 느꼈다.
자세한 건 들어가 보면 알겠지.
“지금 내가 기분이 굉장히 좋으니까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그럼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 말에 조폭들이 발끈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감췄던 기운을 개방하자, 달려들던 그들은 갑자기 겁먹은 개마냥 주춤거리며 길을 비켜줬다.
난 웃으며 그들을 한 번 쓱하고 바라본 뒤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다 보니 저 앞에서 꽤 거대한 기운을 가진 이들이 싸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역시나 도착한 현장은 완전 난장판이었다.
곳곳에 상처 입고 신음하는 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죽은 이들도 보였다.
현재 싸우고 있는 이들은 모두 10명이었는데 일곱 명이 세 명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세 명은 근근이 버티고 있긴 했지만 상황으로 봐서 오래 버티긴 힘들어 보였다.
그 세 사람 중 삼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가 전투 중간중간 자신과 동료들에게 힐을 쓰는 걸로 봐서 그가 김종현인 것 같았다.
난 프로필을 열어 거기 있는 사진과 대조를 해봤다.
맞네. 김종현.
하지만 그가 맞다는 걸 확인하고도 그를 도우러 가진 않았다.
일단 어떻게 싸우는지 실력이나 한번 볼까!
일곱 명에게 둘러싸여 싸우는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그 안에서 김종현의 활약은 엄청났다.
그 때문에 세 사람이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날아오는 공격은 대부분 그가 막았고, 틈틈이 힐까지 했다.
그러다 허점이 보이면 공격도 해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했다.
프로필대로네. 대단해. 이건 더 볼 것도 없겠어.
난 그의 실력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날 향해 얼굴을 돌리진 않았다.
지금 집중력을 잃으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난 그들을 향해 내공을 실어 큰소리로 외쳤다.
“그만!!”
내공이 실린 소리에 그들 모두는 귀를 틀어막고 비틀거리며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난 그들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들 사이좋게 지내야지. 왜들 싸우고 그래? 일단 당신이 김종현 씨 맞죠?”
내 질문에 김종현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맞는데 왜 싸움을 방해하고 그래요?! 한창 재밌었는데 김샜잖아요!”
그는 내가 도와준 게 못마땅한지 짜증을 냈다.
그러나 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그에게 말했다.
“에이. 이 정도 가지고 재밌어하면 안 되죠. 훨씬 재밌는 곳으로 데려가려고 왔으니까요.”
“훨씬 재밌는 곳이요?”
그제야 그는 흥미가 생겼는지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을 밀어붙이던 일곱 사람 중 한 사람이 날 보고 소리쳤다.
“넌 뭔데 끼어들고 지랄이야?! 너도 양지리파 새끼들이랑 한 패냐?!”
“아닌데. 난 저 사람한테 볼일이 있어서 왔지. 근데 내가 얘기하는 거 안 보여? 어디서 버릇없이 끼어들고 지랄이야!”
그들은 내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끼어든다는 거야?! 이 개새끼야! 네가 먼저 끼어들었잖아!”
하지만 난 그들 말은 싹 무시한 채 김종현을 향해 말했다.
“종현 씨. 좀 시끄러워서 그런데 저것들 내가 다 정리해도 되죠?”
그는 날 흥미로운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갤 끄덕였다.
“과연 그렇게 큰소리 친 만큼의 실력인지 한 번 보죠.”
“하하하하. 이런 놈들 상대하는 데 실력까지 필요한가요?!”
그리곤 곧바로 기를 폭발적으로 터트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조폭들은 내 기세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건 김종현 옆에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종현만이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난 그제야 뿜어내던 기세를 거뒀다.
이미 주저앉아 있던 이들은 싸울 의지를 상실했는지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평생을 싸움판에서 굴러온 이들이기 때문에 내가 그들로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의 실력자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이제 좀 조용해졌네요. 그럼 일 얘길 좀 해볼까요.”
그때까지 김종현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죠? 예전에 상대한 상급 던전 보스보다 더 강한 거 같은데…. 인간이 그렇게 강할 수도 있나요?”
“에이. 최상급 던전 보스면 모를까 고작 상급 던전 보스 정도로 절 보셨다니 좀 실망인데요.”
“네? 최상급 던전이요? 상급 던전이 최고난이도 아닌가요?”
“아! 아직 최상급 던전에 관해선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제대로 안 돼서 그럴 거예요. 최상급 던전도 있어요. 거기 보스는 SSS급 몬스터라고 보면 되고요.”
그는 새로운 사실에 잔뜩 흥분된 듯 보였다.
“그럼 당장 가죠. 어디로 가면 되죠?”
“하하하. 잠깐만요. 일단 종현 씨가 어떤 분인지 모르니까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왜 그렇게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려고 하는 거죠?”
그 말에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재밌잖아요.”
“그게 다예요?”
“그럼 다른 게 더 필요한가요? 원래부터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했는데 각성자가 되고 난 후로는 그런 것들은 다 너무 시시해져 버렸어요. 그래서 좀 더 자극적인 일을 찾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근데 제가 뭐라고 불러야 되죠?”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아직 얘길 안 했었다.
“하하하. 아직 제 소개도 안 했네요. 전 박태준이라고 합니다.”
“그럼 태준 씨. 만약 제가 태준 씨랑 함께한다면 이런 절 만족시켜 주실 수 있다고 자신하세요?”
“그럼요. 아마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일 겁니다. 재밌는 일도 많을 거구요. 그럼 힐러로 저희와 같이하시겠어요?”
“네? 힐러요?”
아! 힐러로 참가해야 한다는 얘길 안 했구나!
아마 김종현의 성격이라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힐러보다는 딜러나 탱커를 원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는 충분히 그 둘을 다 소화할 능력이 됐다.
일반적인 팀이라면 말이다.
“네. 종현 씨가 딜러나 탱커를 맡기엔 아직 스펙이 좀 부족하네요. 좀 더 분발하면 다른 포지션도 가능할 겁니다. 다만 지금은 힐러만 자리가 있어서 힐러를 하셔야 됩니다.”
난 다른 여지를 주지 않고 힐러를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종현은 사실 이런 대접을 처음 받아봤다.
그는 힐러, 딜러, 탱커가 모두 가능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느 팀에 가던 언제나 귀빈 대접을 받았다.
그는 그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헌데 그런 그가 스펙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다니….
난 일부러 그를 자극하기 위해 스펙이 부족하다는 말을 강조했다.
실제로도 보조 딜러나 보조 탱커는 몰라도 메인으로 쓰기는 조금씩 부족했다.
말을 하고 나서 혹시 그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는 더욱 흥분돼 보였다.
내가 부족한 스펙이라고? 그럼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강하단 거야?! 그런 사람들과 함께 가는 곳은 얼마나 위험한 곳일까?!
그는 처음 익스트림 스포츠에 도전할 때와 같이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언제 가는 거죠? 바로 가나요?”
“하하하. 가긴 할 건데 일단 어떤 일인지부터 들어보셔야죠.”
난 그에게 간단히 그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설명을 했다.
설명을 다 들은 그는 생각보다 훨씬 스케일이 커서인지 미친 듯이 좋아했다.
“그거야말로 제가 원하던 거예요. 매 순간 죽음의 위협이 느껴지는 삶! 제가 딱 원하던 거예요.”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계약서는 제가 아이즈를 통해서 보낼 겁니다. 확인하고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바로 갈까요?”
“그러시죠.”
난 그에게 오후 2시까지 인천항으로 오라고 한 다음 빠르게 달려서 럭키가 있는 양재동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 안에 들어가자 럭키가 날 확인하곤 웃으며 반겼다.
“태준 씨. 어서 오세요.”
럭키의 말에 한쪽 구석에서 작업을 하던 김찬성도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아는 체를 했다.
“태준 씨. 오랜만이네요. 죽었다고 들었는데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그 말에 난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네요. 근데 제가 없는 동안 회사를 나가셨던데…. 다시 들어오셔야죠!”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태준 씨가 원하던 건 대부분 완성했으니까 굳이 제가 회사에 없어도 괜찮지 않나요? 대신 서치나 아이즈의 업데이트는 계속 제가 맡아서 할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이젠 제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 보려구요.”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죠. 근데 럭키 말을 들어보니 요즘 뭔가 만든다고 엄청 집중하고 있다던데…. 혹시 뭔지 알 수 있나요?”
내 말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별건 아니고 아이즈 확장판을 만들고 있어요.”
“아이즈 확장판이요? 그런 거라면 그냥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때 아이즈는 급히 만든 거라 업데이트만으로는 한참 부족해요. 그래서 이번엔 새로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보려구요. 이건 일단 간단히 만들어 본 건데 한 번 착용해 볼래요?”
그리곤 그는 렌즈 케이스를 하나 내밀었다.
난 그가 그리 자신하는 이유가 궁금해 끼고 있던 아이즈를 빼고 새로운 아이즈를 눈에 꼈다.
렌즈 착용이 끝나자 잠시 후 동기화가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이즈를 시작합니다.
“이게 아이즈라구요?! 완전 대박인데요!”
눈앞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