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설마 여기에도 마인 세력이 끼어 있는 거야?
원숭이탈이 나타난 거로 봐서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대체 이놈들은 안 끼는 곳이 없네!
그때 원숭이탈을 쓴 남자가 날 보고 말했다.
“아직 조양호가 죽어선 곤란해. 해야 될 일이 몇 가지 남았거든.”
그 말에 조양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난 그런 조양호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그걸 보곤 조양호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두려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근데 이걸 어쩌지? 난 저 새끼를 죽여버려야겠는데!”
하지만 원숭이탈은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
“왜 안 돼? 당연히 가능하지.”
“네가 뱀탈을 죽였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그는 교활하기론 우리 중 최고지만 실력은 가장 약한 축에 속하지. 날 뱀탈과 동급으로 보고 그런 소릴 하는 건 아니겠지?”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내가 소탈을 죽인 건 모르는 모양이다.
폐쇄적인 몽유도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 구체적인 정보는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난 그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말을 들어보니 네가 날 제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 같은데 맞아?”
“그럼 아니라고 보나?”
“하하하하하. 재밌네. 재밌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몸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났을 때 내 오른손엔 원숭이탈의 목이 쥐어져 있었다.
“…끅.”
그가 사용한 염력의 힘이 내 오른손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가뿐히 무시하고 그의 목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어때? 이래도 날 제지할 수 있겠어?”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염력을 폭발시키며 날 밀어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콰콰쾅.
터져 나오는 염력의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사무실 벽과 창문이 터져나갈 정도였다.
“내 손에서 빠져나가다니 제법이야. 인정해 줄게.”
그는 내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대답하지 않고 급히 허공으로 사라지려 했다.
“어딜!”
난 재빨리 손을 들어 원숭이탈을 향해 단월을 사용했다.
물론 화룡도를 가지고 사용한 게 아니라 위력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원숭이탈 정도 제압하는 건 문제없다.
“……!”
툭.
내 손을 깔끔하게 원숭이탈의 머리를 잘랐다.
머리는 떨어졌지만 그의 몸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머리가 잘렸으니 죽었겠지.
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를 들고 씌워진 원숭이탈을 벗겨 얼굴을 확인했다.
뱀탈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얼굴이다.
얼굴 확인이 끝나자 난 바로 초열의 불꽃으로 태워버렸다.
살인의 증거가 남아있으면 안 되지. 그나저나 내 실력이 많이 늘긴 늘었네. 이젠 동물탈 쓴 놈들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겠어. 용탈은 어떨지 모르지만 호랑이탈도 제압이 가능하겠어.
단월을 통해 공기의 틈을 느낄 수 있게 된 후부터 내 실력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해 있었다.
난 그제야 조양호를 바라봤다.
그는 내가 원숭이탈의 목을 자르고 태워버리는 걸 보고는 완전히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이전에 보였던 자신감 넘치고 권위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어이. 이제 그만 가자.”
내 말에 바닥에 엎드려 있던 그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반항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난 그의 몸을 붙잡은 채 터져나간 창을 통해 건물 밖으로 몸을 날렸다.
“으허어어억!”
조양호는 비명을 질렀지만 난 그를 안은 채 옆 건물의 옥상에 착지했다.
그리곤 계속 옥상을 통해 피앤씨 컴퍼니 본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본사 옥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양호를 보니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조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한희야. 조양호 잡아 왔어. 지금 어디야?”
[그래? 우린 지금 사무실에 있어.]
“그럼 바로 그리로 갈게.”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게 있었다.
옥상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데 마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마녀들 역시 조희팔이 쫓아낸 모양이다.
한희가 대충 상황 파악을 끝냈을 테니 바로 물어봐야겠다.
난 더 속도를 내어 조한희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조한희가 이것저것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고, 블라디미르는 그 옆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조희팔은 그 옆에 무릎을 꿇고 다른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들어오자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난 손에 들고 있던 조양호를 사무실 바닥에 던졌다.
쿵.
떨어진 충격에 조양호가 정신을 차렸는지 신음을 하며 눈을 떴다.
“으으음….”
그러다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를 깨닫고는 다시 아까처럼 벌벌 떨며 우릴 쳐다보지도 못했다.
난 일단 궁금했던 것부터 물었다.
“한희야. 근데 마녀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거야? 마녀들도 저 새끼가 쫓아낸 거야?”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알아보니까 마녀들은 새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자신들이 자진해서 마녀의 숲으로 돌아갔대.”
“그래? 왜 갑자기 돌아간 건지는 알아?”
허나 조한희는 그것까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따로 알아볼게. 근데 회사는 대충 정리가 된 거야?”
“일단 조희팔이 고용한 사람들은 모두 해고했어. 그리고 잘린 사람들은 모두 복직시켰고. 1시간 후에 긴급 주주총회가 열릴 거야. 거기서 다른 문제들은 모두 해결되겠지. 대표 이사 자리도 다시 찾아와야 될 거고.”
“오케이. 그럼 주주 총회 전에 이놈들부터 처리하자.”
그 후 조양호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한 그룹의 이사 중 한 명이 월야 길드의 임원이고 그로부터 실험에 대한 투자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라 약간 망설였지만 우리 회사를 잡을 수 있다는 말에 승낙을 했다.
그 후 인천 남동 공단 지하에 실험실을 만들고 지하 격투장을 운영하며 재료로 쓸 각성자들을 모았다.
그러다 나한테 박살이 난 것이다.
말을 하는 조양호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이었다.
난 사실 조양호를 죽일 생각이었지만 조한희가 반대했다.
그래서 대한 그룹의 경영권을 조한희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그들의 목숨은 살려주기로 했다.
어차피 대한 그룹이 없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 * * * *
그로부터 며칠 후 조한희 사무실에 나와 조한희, 블라디미르가 모였다.
그 며칠 사이 임시 주주총회에서 다시 대표 이사 자리를 찾아왔고, 원래 계획대로 대한 그룹은 피앤씨 컴퍼니와 합병됐다.
대한 그룹의 대표이사 자리는 조한희가 맡았다.
그로 인해 피앤씨 컴퍼니는 세계적인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제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으니 난 다시 내 할 일을 하러 가볼게.”
“어디부터 갈 생각이야?”
“일단 몽유도로 가서 루크레이지로 가는 게이트를 열 생각이야.”
“게이트를? 설마 거기서 훈련을 시키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거기만큼 좋은 곳이 없잖아. 적들은 죽여도 계속 부활하는데다가 시간마저 느리게 가니까 그곳만큼 수련하기 좋은 곳이 어디 있겠어!”
“…그건 그렇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그래서 힐러를 찾아서 데려가야지. 힐러가 없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지난번에 만났을 때 동료들의 수준은 개개인이 S급은 넘었지만 SS급에는 못 미치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열심히 수련하겠지만 그 벽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헌데 루크레이지에는 SSS급에 육박하는 놈들로만 이루어진 구역도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물론 츤츤이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위험하다.
그러니 힐러는 필수로 있어야 한다.
“알아본 힐러가 있어?”
“이제 알아봐야지. 웬만한 힐러는 루크레이지를 감당 못할 테니까 제대로 미친놈으로 찾아봐야지.”
“그다음엔 어쩔 생각이야?”
“일단 생각 중이긴 한데 키라를 한 번 만나볼 생각이야.”
내 말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뭐?! 키라를! 제정신이야?!”
난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이것저것 좀 알아볼 게 있어서 말이야. 절대자를 만나야 되는데 안면이 있는 절대자가 키라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키라는 태준 씨를 보자마자 죽일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내가 안 죽는다는 건 한희 너도 잘 알잖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대체 뭘 물어보려는 거야?! 그냥 럭키 통해서 알아보면 안 돼?”
그녀의 물음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불가능해. 내가 알아보려고 하는 건 절대자들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말이야. 자세한 건 나중에 정리가 좀 되면 말해줄게.”
그녀는 내가 뜻을 굽히지 않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대신 정말 조심해야 돼. 알겠지?”
“걱정 마.”
그리곤 블라디미르에게 조한희를 부탁한다는 말을 하곤 회사를 나왔다.
오랜만에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가 아이즈를 통해 서치에 접속했다.
그러자 눈앞에 서치의 메인 화면이 나타났다.
거기서 사람 찾기 탭으로 들어가 힐러를 검색했다.
전 세계의 수많은 힐러가 주르륵하고 눈앞에 나타났다.
이건 너무 많은데…. 다 보려면 며칠이 걸리겠어.
하지만 동료들의 생명을 맡길 힐러다.
대충 고를 수는 없다.
난 한참을 커피숍에 앉아 힐러들 프로필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서너 시간쯤 지났을까.
눈에 띄는 프로필을 하나 발견했다.
“이 사람 재밌네. 어디 한번 연락해볼까.”
즉시 프로필을 터치해 연동돼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혹시 김종현 씨 되시나요?”
[네. 그런데 누구시죠?]
“서치에 올려놓으신 프로필보고 전화드렸는데 아직도 프로필에 적힌 요구사항이 유효하신가요?”
[뭐 그렇긴 한데…. 제가 지금 좀 곤란한 상황에 처해서 바로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점잖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 너머로 온갖 욕설과 비명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는 모양이다.
“혹시 어디신지 말씀해주시면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 까지는….]
“종현 씨가 말한 조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지금 바로 갈 수 있는데 가능할까요?”
[…근데 여긴 좀 위험한데…. 괜찮겠어요?]
“그거라면 걱정 말고 어디로 가면 되죠?”
[제가 있는 곳 좌표 공유할 테니까 그리로 오면 돼요. 오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가세요.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곤 통화가 끊겼다.
난 다시 한번 그가 남겨 놓은 프로필을 읽어봤다.
이름: 김종현
나이: 38세
국적: 한국
각성 등급: 힐(S), 신체변형(SS), 신체강화(S), 원소감응(불/A)
보수: 먹고 자는 것만 해결해 주면 됨.
기타: 극한의 긴장감을 원함. 끊임없이 전투가 계속되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원함.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