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조한희는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공간을 가르는 건 원래부터 할 수 있었던 거 아니야?”
“음, 이게 말로 설명하긴 애매한데…. 공간을 자른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뭐 완전히 이해할 필요는 없어. 그걸로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공간을 자르는 것만으로 여길 나갈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한 거야?”
난 조한희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공간을 자르는 것만으론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걸로 차원의 틈을 만들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차원의 틈을 만든다고? 절대자들이 했던 것처럼?!”
난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실신하기 전에 공기의 틈을 가르는 건 완벽히 익힌 상태였다.
근데 공기의 틈을 완벽히 가를 수 있게 되자 그 너머에 있는 벽이 느껴졌다.
그 벽은 조금만 힘을 줘도 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더욱 날카롭게 기를 불어 넣어 단월을 사용하자 그 벽이 잘렸다.
그리고 그 벽을 자르고 나서야 그것이 공간의 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웃긴 건 그걸 가르자 그 너머에 또 다른 벽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벽이 차원의 벽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조금 이해하기 쉽게 단계적으로 보여줄게. 이게 내가 예전에 썼던 단월이야.”
난 가볍게 들고 있던 화룡도를 휘둘렀다.
내 도를 따라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깨끗하게 절단됐다.
그걸 본 조한희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그게 진짜 단월 맞아? 훨씬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위력도 전혀 다르고 말이야.”
“그런가? 위력이야 좀 달라졌더라도 어쨌든 이게 예전에 내가 쓰던 단월이야. 그리고 이건 이번에 내가 깨달은 단월이야!”
말을 마치자마자 난 조한희와 블라디미르가 있는 곳을 향해 화룡도를 그었다.
“꺄악!”
“어, 어?!”
둘 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당황해 비명을 질렀다.
내가 그들을 향해 단월을 사용했으니 놀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화룡도가 그들을 향해 베어졌음에도 그들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이상한 걸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조한희였다.
“어?! 이게 어떻게?!”
그녀가 놀란 이유는 그들 뒤에 있는 나무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 이상 없었지만 그들 뒤에 있던 나무들은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었다.
뒤늦게 그걸 발견한 블라디미르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당황한 그들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어때? 놀랍지?”
그제야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지금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분명 엄마랑 날 벴는데 어떻게 우리 뒤에 있는 나무들만 잘릴 수 있지?”
“이게 바로 공간을 벤다는 개념이야. 난 단월로 공간을 잘라서 너희 뒤편에 있는 나무들만 벤 거야. 더 자세히는 설명을 못 하겠는데 아무튼 대충 어떤 건진 알겠지?”
그들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정으로 나와 자신들 뒤에 쓰러진 나무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난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공간의 벽을 자르니까 그 너머에 또 다른 벽이 느껴졌는데 그게 바로 차원의 벽인 것 같아. 그걸 가르면 여길 나갈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있던 차원으로 갈 수 있을진 장담할 순 없지만 최소한 여길 벗어날 수는 있을 거야!”
그제야 그들은 이해를 했는지 얼굴이 한껏 밝아졌다.
“여길 벗어나기만 하면 돼. 여기서 더 있다간 미쳐버리고 말 거야.”
“근데 내가 차원을 진짜로 가를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 일단 한 번 해볼게.”
그들은 차원을 가를 준비를 하는 날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난 정신을 집중하며 온몸의 힘을 끌어모았다.
공간의 벽을 가르는데도 어마무시한 기가 소모되는데 차원의 벽은 그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참을 집중하고 있던 난 드디어 화룡도를 들고 단월을 시전했다.
“단월!”
화룡도의 도신이 공기를 가르고 공간을 갈랐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차원의 벽에 닿았다.
쩌적.
차원의 벽이 내게만 들리는 소릴 내며 조금씩 갈라졌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다.
탄도 그렇고 다른 절대자들은 어떻게 이런 걸 그렇게 쉽게 찢고 올 수 있었던 거지?!
새삼 절대자들과 자신의 힘의 차이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젠장! 도저히 안 되겠는데….
모든 기를 쏟아부었는데도 차원의 벽을 조금 찢은 게 다였다.
그때 뜬금없는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 차원의 균열이 말살자 조각과 반응합니다. 차원의 균열에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원하는 차원을 지정해주세요.
이건 무슨 상황이지? 균열이 말살자 조각과 반응했다고?
그때 머릿속에 이시스 여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말살자는 차원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더니 이런 식으로 게이트를 생성해서 차원을 넘나들었나보구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가설이다.
생각은 나중에 하자. 일단은 여길 벗어나는 게 중요하니까!
난 화룡도를 거두고 눈앞에 생겨난 게이트를 바라봤다.
다른 이들도 급히 내 옆으로 와서 게이트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저거 게이트 아니야? 차원을 가르면 게이트가 생기는 거였어?”
하지만 난 그 질문에는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았다.
나도 정확히 모르는 데다 말살자의 조각이 연관된 일이기 때문에 일단은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차원을 가르다 보니 저렇게 게이트가 나오더라구. 일단 어디로 연결됐는지 내가 먼저 가볼게.”
난 게이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또다시 메시지가 나타났다.
- 원하는 차원을 지정해주세요.
차원을 지정하라고? 어떻게 하면 지정되는 거지? 그냥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면 되는 건가?
별다른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난 피앤씨 컴퍼니가 있는 거리를 머릿속에 그렸다.
- 차원 지정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곤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인 건 십여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게이트가 열리는 걸 보고 이 지역을 관리하는 길드에서 게이트를 닫기 위해 나온 모양이다.
그때 그들 중 한 사람이 날 알아봤는지 아는체를 해왔다.
“어? 혹시 박태준 님?”
“절 아세요?”
“그럼요. 한 달 전 있었던 전투에서 뵀습니다. 근데 어떻게 게이트에서…?”
“잠깐! 한 달이라구요?”
난 급히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블라디미르의 기억에 의존해 계산을 해본 결과 현실의 시간이 루크레이지보다 30배 정도 빨랐다.
간단히 말해서 현실에서 한 달은 루크레이지에서는 삼십 달을 의미했다.
내가 거기서 2년을 넘게 있었던 거야?!
계산이 잘못된 건지 내 감각이 잘못된 건지 모르지만 중요한 건 현실에서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단 거다.
그때 조한희와 블라디미르도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태, 태준 씨. 우리 정말 돌아온 거야?!”
“그래. 돌아왔어.”
블라디미르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은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근데 우리가 사라진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대.”
“뭐? 한 달? 그럼 우리가 거기서 30달이나 있었단 거야?”
“그건 모르지. 거기서 시간을 잊고 살았으니까. 중요한 건 현실의 시간이 한 달이나 지났단 거야. 일단 회사로 가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상황파악부터 하는 게 좋겠어.”
그녀도 내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급히 회사로 가려고 하는데 아까 날 아는 체 했던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기….”
“네? 왜 그러시죠?”
“저 게이트는 어떻게….”
“아!”
그제야 나는 게이트가 아직 닫히지 않은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제가 해결할게요.”
일단 말을 하긴 했지만 닫는 방법을 몰랐다.
보통 게이트는 안에 있는 몬스터들이 다 사라지면 자동으로 닫혔는데 내가 만든 게이트는 그런 종류는 아닌 듯 했다.
어떻게 해야 닫히는 거지? 아까처럼 게이트로 들어가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게이트 앞에 섰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푸른빛을 뿜어내는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 게이트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오호! 삭제도 되나보네. 삭제해!
- 게이트를 삭제하겠습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는데도 게이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걸 보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잘만 이용하면 쓸모가 많겠는데! 일단 시간 나는 대로 연구를 해 봐야겠어.
게이트 처리가 끝나자 우린 곧바로 회사로 들어갔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제대로 관리를 못해서 수염과 머리가 길게 자라 있었고 옷도 꾀죄죄했기 때문에 입구에서 경비가 우릴 막아섰다.
“여긴 외부인은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여기가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됐지?”
피앤씨 컴퍼니의 1층 로비는 모든 이에게 개방된 공간이었다.
최소한 한 달 전까지는 말이다.
내 반말에 경비는 인상을 팍 쓰며 험악하게 날 노려봤다.
“새 사장님이 취임하고 부터다. 거지새끼들이 어딜 들어오려는 거야? 저리 안 꺼져?!”
“뭐? 새 사장님?!”
놀라긴 조한희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곳이 어떤 회산가.
나와 조한희가 피땀 흘려 일군 회사다.
주식도 나와 조한희 지분을 합치면 50퍼센트가 넘는다.
근데 누가 우리 대신 사장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옆에 있던 블라디미르가 조한희에게 물었다.
“엄마.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아!”
경비는 아무리 봐도 70은 돼 보이는 노인이 조한희를 향해 엄마라고 하자 우리가 미쳤다는 걸 확신한 듯 했다.
“회사 분위기 어지럽히지 말고 저리 꺼져! 아침부터 재수 없게 미친놈들이 알짱거리고 지랄이야!”
그 말에 블라디미르가 경비를 노려봤다.
“어쭈. 노려봐? 노려보면 어쩔 건데?”
“노려보면 어쩔 거냐고? 죽여야지!”
그리고 그는 차갑게 웃으며 경비를 향해 다가갔다.
경비는 그가 내뿜는 위압감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일단은 살려둬. 우리 회사 사람이니까.”
내 말에 블라디미르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는 조한희 옆으로 돌아왔다.
일단은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난 즉시 럭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살아계셨어요?!]
럭키는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한다는 소리가 살아있냐는 말이었다.
“그럼 내가 죽었을까봐? 대체 내가 없던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게 한 달 전, 태준 씨가 사라지고 나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펼쳐졌어요. 근데 아무 흔적도 발견을 못한 거예요. 그래서 실종 상태로 처리되긴 했는데 모두들 태준 씨랑 한희 씨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우리 회사는 어떻게 된 거야? 새 사장은 누구고?”
[그게 좀 웃긴 게 두 분이 사라지고 나서 3주 정도 지난 시점에 긴급 이사회의가 소집됐어요. 안건은 신임 대표이사 선출 건이구요. 그리고 거기서 선출된 사람이 조양호의 아들인 조희팔이에요.]
“뭐? 조희팔?”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