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조한희는 놀라서 노인에게 물었다.
“정말 네가 여기 온 지 5년이나 됐단 말이야?!”
“네. 근데 한국은 지금 어떻게 됐죠? 진짜 월야 길드 계획대로 절대자에 의해 박살이 났나요?”
저 말대로라면 두 가지 경우밖에 생각할 수 없어. 이곳의 시간이 현실과 다르게 흐르거나 아님 저놈이 미쳐서 헛소리를 하는 거거나.
하지만 난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에 좀 더 무게를 뒀다.
이미 지옥의 콜로세움에 갔을 때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걸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충 노인에게 들어보니 그가 여기로 온 건 현실 시간으로 2개월쯤 전인 것 같았다.
조한희는 그에게 실제로는 5년이 아니라 2개월 정도가 흘렀고, 그 사이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알려줬다.
그는 이야기를 듣던 중 내가 절대자를 없앴다는 대목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정말 그 절대자를 없앴다고? 그놈의 힘은 지구에 있는 모든 각성자가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했는데 그걸 어떻게…?!”
“혼자 없앤 건 아니고 친구 도움을 좀 받았죠. 그보다 여기서 나갈 방법은 아예 없는 거예요?”
그는 내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온 후 5년이란 시간 동안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 실력을 갈고 닦았지. 아이스홀도 그 과정에서 개발한 기술이고…. 그러나 그것만으론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빌어먹을 토끼 얼굴만 자주 보게 됐지.”
토끼라는 말에 난 급히 그에게 물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토끼는 대체 정체가 뭐죠?”
“그놈은 이 대지의 대리인이지.”
“대리인이요?”
그는 내가 한국에서 절대자를 물리쳤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도 대답을 잘해줬다.
“그래. 대리인. 내가 여기 있으면서 알아낸 사실인데 이곳은 대지 자체가 살아있다.”
“대지가 살아있다구요?”
“대지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지. 그리고 이곳에 처음 온 이들을 참가자라 부르며 이곳저곳 여행을 하게 하다가 결국 죽으면 대지가 그걸 흡수하지. 그리고 부활한 것처럼 다시 되살려내는 거야. 하지만 그건 껍데기만 살아날 뿐 생명은 대지에 귀속이 되기 때문에 절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대지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그래서 그렇게 다양한 지형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거구나!
“그럼 아들. 너도 아직 참가자인 거니?”
조한희의 말에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네. 전 아직 죽지 않았어요. 하지만….”
말을 하던 노인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적들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언젠간 죽게 될 거예요.”
결국 저 사람도 나가는 방법은 모른단 거구나. 어쩔 수 없지. 일단 버티면서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근데 알아낼만한 정보는 다 알아낸 것 같은데 저 노친네를 어떻게 떨어뜨리지?
아무리 봐도 조한희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을 하던 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차라리 저 노친네를 한희 보디가드로 써야겠다. 실력도 괜찮은 것 같으니 보디가드론 딱이겠어!
난 생각을 정리한 후 노인에게 말했다.
“저희랑 같이 갈래요? 보아하니 떨어질 생각도 없는 것 같은데.”
내 말에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엄마랑 내가 같이 가는 건 당연한 거지.”
그리곤 조한희를 향해 물었다.
“엄마. 나 엄마랑 같이 다녀도 괜찮지?”
조한희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하긴 하겠지만 이게 그녀의 안전을 위해 더 좋은 선택이었다.
그녀도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노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대신 엄마가 다치지 않게 잘 보호해 줘야 돼. 알겠지?”
그 말에 노인은 자기 가슴을 탁하고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엄마를 건드는 새끼는 내가 다 찢어 죽여 버릴 거야! 헙!”
그리곤 급히 자신의 입을 막고 조한희 눈치를 살폈다.
조한희는 그 모습에 웃으며 그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그래 고마워. 근데 내가 아들 이름도 아직 모르네. 엄마 이름은 조한희야. 아들 이름은 뭐지?”
“제 이름은 블라디미르에요.”
나도 간단히 이름을 말하고는 같이 고기를 먹었다.
생각보다 블라디미르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굉장히 맛있게 고기를 먹었다.
그 후 다시 길을 떠났다.
몇 달이나 지났을까….
이제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잊었다.
처음 몇 주간은 계속 구역을 옮겨 다니며 나갈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결국 포기했다.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그걸 깨달은 후부터는 적당한 지역에 집을 짓고 수련에만 몰두했다.
우릴 죽이기 위해 찾아오는 적들만 없앴고, 그 외에 시간은 오로지 수련만 했다.
처음엔 쳐다보기만 했던 조한희와 블라디미르도 무료한지 같이 수련에 동참했다.
그들이 내게 같이 수련을 하자고 한 날.
난 분명히 경고를 했다.
“나와 함께 시작하는 건 말리지 않을게. 대신 한 번 시작하면 그땐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어.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다 나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괜찮다. 어차피 엄마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니!”
“좋아. 그럼 각오해야 될 거야.”
그때부터 그들의 수련이 시작됐다.
조한희는 기초적인 정권지르기와 발차기부터 연습했다.
온종일 지루하게 정권지르기와 발차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 정도가 지나서 어느 정도 기본이 다져지자 그때부터 본격적인 박투술을 가르쳤다.
블라디미르의 경우는 나와 다른 분야의 능력이기 때문에 내가 가르칠 게 특별히 없었다.
그래서 그와는 시간이 나는 대로 대련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블라디미르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빠르게 늘었다.
처음엔 아이스홀의 크기가 축구공만 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은 축구공을 서너 개 합쳐 놓은 것보다 더 커져 있었다.
그건 나와 대련을 한 영향도 있지만 사실은 대련 후 상처 입은 그를 내가 내공으로 치료하면서 덩달아 그에게도 적지만 내공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블라디미르는 날 스승처럼 모시며 따랐다.
하지만 그렇게 늙은 제자가 있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했고 그도 동의했다.
조한희 역시 피로를 느낄 때마다 내공으로 치료를 했는데 그 덕분에 그녀 역시 내공이 생겨버렸다.
그로 인해 그녀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이제 웬만한 적들은 혼자 상대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됐다.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근처에 있는 주민들에게로 보내 실전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혼자서 수련에 몰두했다.
백팩을 뒤지다 보니 예전 이집트에서 챙겼던 아이템들 중에 창이나 검과 같은 것들도 몇 개 들어있어서 천의권을 연습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아는 게 천의권 밖에 없어서인지 온종일 천의권만 생각하고 연습했다.
마치 예전에 정권지르기와 발차기를 연습했듯이 이제는 천의권의 각 식들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천의권의 일부분만 알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천의권의 일권과 풍천각은 다른 식들을 위한 준비 동작 같은 거였다.
그래서인지 3식부터 7식까지는 모두 일권이나 풍천각과 연계해서 사용이 가능했다.
파창!
“하아! 7식을 버티는 검이 없구나. 이래가지곤 제대로 된 무기가 없다면 실전에서 쓰긴 어렵겠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천의권을 연습하고 있었다.
근데 천의권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후로는 내가 사용하는 천의권을 무기들이 버텨내질 못했다.
창을 구해서 파천을 시전하면 창이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터져버렸고, 7식 검무도 시전 중간에 검이 깨져버렸다.
그래서 아직 제대로 된 파천이나 검무를 시전해보지 못했다.
“별수 없지. 맨손으로 하는 수밖에. 일단 단월이나 연습하자.”
난 즉시 화룡도를 소환해 하늘을 향해 단월을 시전했다.
“단월!”
날카로운 강기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때 도 끝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어?! 방금 그건 뭐였지?”
난 그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곧바로 다시 단월을 시전했다.
도 끝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전해졌다.
처음엔 그게 정확히 어떤 건지 몰랐지만 계속 단월을 사용하다 보니 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전까지 단월은 날카롭고 어마 무시한 강기로 모든 걸 잘라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공기의 틈 사이로 도가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마찰이 없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도 끝에 어떠한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게 됐는지 모르지만 그냥 갑자기 할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그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도를 휘둘렀다.
잠을 자지도 않았고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그냥 미친 사람처럼 며칠을 도만 휘둘렀다.
그러다 결국 모든 기를 소모하고 탈진해 자리에 쓰러졌다.
옆에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지켜보던 조한희가 재빨리 쓰러진 날 부축했다.
하지만 난 그런 조한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나갈 수 있어.”
그리곤 정신을 잃었다.
* * * * *
“으으음….”
눈을 떴을 때 처음 보인 건 걱정스런 얼굴을 한 블라디미르의 얼굴이었다.
그걸 본 난 화들짝 놀라 소릴 질렀다.
“으아악!”
그 소리에 밖에 있던 조한희가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브, 블라디미르 얼굴이… 너무 무서워!”
“….”
“…….”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난 머쓱해서 머릴 긁적이고는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어?”
“이틀 정도.”
“이틀이나? 무리하긴 했나보네.”
“근데 쓰러지기 전에 했던 말은 대체 뭐야?”
“쓰러지기 전에 했던 말? 내가?”
내가 쓰러지기 전에 뭐라고 했었나?
정확히 마지막 상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난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기억 안 나? 태준 씨가 쓰러지기 전에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말했잖아!”
“내가 그랬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건 그 말은 사실이야.”
“진짜 여길 나갈 수 있는 거야?”
“진짜냐?”
조한희와 블라디미르가 동시에 물어왔다.
난 그들을 보고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진짜야. 일단 밖으로 나가자. 간단히 설명해 줄 테니까.”
우린 밖으로 나와 집 앞 공터에 섰다.
난 화룡도를 소환하곤 두 사람에게 말했다.
“다들 내가 쓰는 기술 중에 단월이라고 알지?”
“알지. 매일 써대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
조한희의 말에 블라디미르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흐. 근데 얼마 전 단월을 사용하면서 깨달음을 얻었어.”
“깨달음?”
“그래. 그리고 그 덕분에 이제 단월을 통해 공간을 가를 수 있게 됐어!”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