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왜 저런 게 저기 있는 거야?!”
조한희가 가리킨 곳은 산 너머였다.
그곳은 거대한 벌판이 있었는데 특이한 건 날씨다.
하늘엔 온통 먹구름이 끼고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번개도 한두 번이 아니라 일 분에 십여 번의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저길 지나라고? 그래서 저런 옷을 보상으로 준 건가?
아무리 봐도 저 옷을 입고 지나가라는 것 같다.
“이걸 입고 저길 지나가라는 것 같은데…. 근데 왜 한 벌밖에 안 주는 거냐고?!”
잠깐의 방심으로 이런 곳으로 온 것도 짜증나는데 보상도 하나밖에 없자 더욱 짜증이 났다.
조한희는 고맙게도 그런 내가 진정이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줬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나는 조한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 옷은 네가 입는 게 좋겠어.”
“그럼 태준 씨는?”
“난 그냥 몸으로 때우지 뭐. 번개에 맞아본 적은 없지만 번개 내성도 높으니까 아마 죽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하지만 그녀도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다른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난 그런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거 없어. 일단 산부터 내려가자.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내려가면서 다른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보지 뭐.”
내 말에 조한희는 동의했고, 우린 보상으로 얻은 옷을 챙겨 산을 내려갔다.
산 밑에 내려와 번개가 치는 벌판 앞에 서자 입이 바짝 말랐다.
위에서 볼 때와 밑에서 보는 건 느껴지는 위압감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견딜 수 있을까?
내리치는 번개를 바라보자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조한희가 불안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럼 일단 한희, 넌 이 옷부터 입고 있어. 난 일단 가볍게 한 대만 맞고 와볼 테니까!”
난 웃으며 말했지만 조한희 역시 내리치는 번개를 보자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정말 괜찮겠어? 다른 방법을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때?”
“내려오면서 계속 생각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단 걸 잘 알잖아. 일단 한 대 맞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
사실 이런 방법은 다른 이라면 말도 안 되는 방법이다.
보통은 번개를 한 대만 맞아도 즉사할 테니까.
나도 내성이 있긴 하지만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근데도 내가 이런 방법을 쓰는 이유는 천의심법을 믿기 때문이다.
예전에 키라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브레스를 맞고도 화염 내성이 적은 내가 살 수 있었던 건 천의심법이 내공을 소모해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최소한 죽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난 망설임 없이 번개가 내리치는 벌판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콰콰쾅.
발을 들이미는 순간 내 정수리로 번개가 내리쳤다.
“끄으으윽!”
조한희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제우스가 던진 번개에 감전됐을 때처럼 난 그대로 자리에 쓰러져 신음했다.
그때 이상한 일이 몸 안에서 일어났다.
온몸을 돌전 전류를 단전에 있던 내공이 일부분 흡수한 것이다.
그러더니 곧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 번개를 일부 흡수했습니다. 번개 내성이 0.3퍼센트 오릅니다.
어? 내성이 올라?
난 일단 엉금엉금 기어서 벌판을 벗어나 조한희 앞으로 왔다.
조한희는 그런 날 보고 걱정스런 얼굴로 달려와서는 물었다.
“태준 씨! 괜찮은 거야?”
하지만 난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일단 난 죽지는 않는 걸 확인했으니까 그 옷의 효과도 한 번 시험해 보자.”
“어떻게?”
“내가 입고 한 번 나갔다 와볼게.”
내 말에 그녀는 순순히 보상으로 얻을 옷을 벗어 내게 건넸다.
신기하게도 그 옷을 입고 벌판으로 나가자 번개에 맞지 않았다.
이 옷의 기능은 번개를 빗나가게 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벌판에 서 있던 나는 다시 조한희에게로 돌아와 옷을 벗어줬다.
“이 옷의 효과는 확실한 것 같네. 넌 그 옷을 입고 지나가면 될 것 같아.”
“그럼 태준 씨는? 그 고통을 견디면서 여길 지나겠다고? 이 벌판에도 적들이 꽤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상태로 싸울 수 있겠어?”
나도 어렴풋이 느끼곤 있었던 건데 번개가 내리치는 벌판에선 생각보다 많은 적들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 일단 여기서 번개 내성을 좀 올려야 되겠어.”
“번개 내성을 올린다고? 여기서? 그게 가능해?”
놀라서 묻는 그녀를 향해 난 미소를 지었다.
“그게 가능하더라구. 그래서 말인데 몇 가지 실험을 해볼 생각이니까 저쪽에서 조금 쉬고 있어.”
그리고는 바로 맨몸으로 벌판을 향해 나갔다.
역시 옷을 안 입고 나가자 바로 내 머리 위로 번개가 떨어졌다.
“끄으으윽!”
하지만 이번에는 신음을 하면서도 내공을 이용해 몸 안에 흐르는 전류를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내공이 몸을 한 바퀴 돌며 몸 전체에 흐르던 전류를 아까보다 더 많이 흡수했다.
- 번개를 일부분 흡수했습니다. 내성이 0.5퍼센트만큼 오릅니다.
역시 아까보다 더 많이 오르는구나!
그때부터 난 쉼 없이 번개를 맞으면서 내성을 올렸다.
하지만 내성은 90퍼센트까지만 오르고 더는 오르지 않았다.
그 정도만 되도 번개를 맞았을 때 약간 짜릿한 정도만 느껴졌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데 문제는 없었다.
이 이상으로 내성을 올리기 위해선 더 강한 번개가 필요하겠어. 지난번 제우스가 쓰려고 했던 번개 같은 걸 맞으면 좋겠는데….
익시온의 무덤 던전에서 제우스가 마지막에 사용하려던 번개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그걸 맞으면 죽겠거니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걸로 신화급 던전이 된 ‘신들의 만찬’ 던전에 도전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도전해 봐야겠어. 동료들도 실력이 많이 늘었으니 이제 할 만할 거야.
그리곤 조한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내가 계속해서 번개를 맞고도 멀쩡한 걸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태준 씨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야. 이젠 번개를 맞아도 괜찮은 거야?”
“약간 짜릿하긴 한데 고통스러운 정돈 아니야. 이것도 계속 맞다 보니까 은근히 중독성 있더라구. 흐흐흐.”
내 말에 조한희가 웃으며 핀잔을 줬다.
“변태 같은 소리 그만하고 이제 갈까?”
“좋지. 가보자.”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토끼 말대로 번개가 치는 벌판에서 나온 적들은 모두 조한희와 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 모두 1지역을 통과했다가 여길 지나면서 죽은 사람들인 모양이다.
하지만 1지역과 수준이 많이 차이나지는 않았다.
우린 쉽사리 모든 적들을 죽이고 번개 벌판을 지나올 수 있었다.
벌판의 끝에 도착하자 작은 공터가 보였고 그 위에서 토끼가 기다리고 있었다.
토끼는 내가 옷을 입지 않고 벌판을 지나오는 걸 보고는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놀랍군. 보통은 주민을 죽이고 그들이 입은 옷을 빼앗아 입고 이 지역을 통과하는데 그냥 맨몸으로 통과하다니…. 재밌어.]
나 역시 번개 벌판을 지나오면서 주민들과 싸우다 보니 토끼가 말한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번개는 내게 아무런 데미지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그들의 옷을 뺏어 입지는 않았다.
“그럼 이걸로 이 지역은 통과된 거야?”
[그렇지. 이제 다음 지역으로 가면 된다.]
“근데 이렇게 계속 가면 끝에는 대체 뭐가 있는 거야? 설마 이렇게 계속 뺑뺑이만 도는 건 아니지?”
[그런 의문은 일단 다음 지역부터 통과한 후에 하도록 해!]
그리곤 토끼는 다시 자리에서 사라졌다.
토끼가 사라진 후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역을 통과했다고 매번 보상을 주는 건 아닌가 보네. 그럼 다음 지역으로 바로 가볼까?”
“근데 태준 씨. 배는 안 고파?”
“아아. 한희 너 배고프구나?”
그녀는 내 말에 약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고갤 끄덕였다.
난 즉시 매고 있던 백팩을 뒤적거려 몇 가지 음식을 꺼냈다.
미리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백팩 안에 물과 간단한 음식들을 넣어 다녔다.
이걸로 길게는 못 버티겠지만 아껴 먹는다면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다.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우린 바로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다음 지역은 숲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숲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살아 움직였고, 그와 더불어 그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공격이 입구에서부터 이어졌다.
난 그걸 보고는 짜증이 나서 간단히 입구에 있는 적들을 죽인 다음 초열의 불꽃으로 숲 전체를 태워버렸다.
숲은 잠시 후 재가 되어 사라졌고, 우린 재만 남은 숲을 여유롭게 지나올 수 있었다.
숲의 끝에는 언제나 공터가 있었고 그곳엔 토끼가 서 있었다.
토끼는 우리가 지나온 재만 남은 숲을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지역들을 통과하는군. 좋다. 다음 지역은 어떤 방법으로 지날지 지켜보마.]
그 후 대략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우리는 다양한 지역들을 지나왔다.
중력이 지구의 몇 배나 되는 지역도 있었고, 온통 용암이 끓어오르는 지역도 있었다.
그 외에도 특이한 지역들을 몇 곳이나 지나왔다.
지역을 지날수록 주민들은 점점 강해졌는데 방금 전 지나온 지역의 경우 주민 하나하나가 SS급 각성자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마을이었는데 수백 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나와 조한희를 죽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들은 죽지 않기 때문에 몸을 날리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조한희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실력을 숨기지 않고 거침없이 적들을 죽였다.
하지만 몰려드는 적들이 너무 많아서 완벽하게 조한희를 보호하지는 못했다.
그로 인해 큰 상처는 아니지만 그녀 몸 곳곳에 상처가 생겼다.
“한희야, 괜찮아?”
난 걱정스런 얼굴로 조한희의 상처를 살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녀는 쾌활하게 말했지만 표정이 마냥 밝지는 않았다.
이대로 지역이 계속되면 주민들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녀를 지켜주지는 못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걸 그녀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난 백팩에서 생수를 꺼내 조한희에게 건넸다.
그게 마지막 생수였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 돼!
일단 우린 그 지역을 벗어났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공터가 나오지 않았고, 토끼도 보이지 않았다.
“태준 씨. 토끼가 안 보이는데?”
“그러게. 보통은 이쯤이면 토끼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저 멀리서 연기가 보였다.
하지만 너무 멀어서 정확히 뭔지는 잘 안 보였다.
난 즉시 눈에 내공을 집중해서 안력을 향상시켰다.
그러자 연기가 올라오는 곳이 모닥불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위에는 맛있게 생긴 고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하, 한희야! 저기 고기가 있는데?”
“뭐? 고기?”
그녀 역시 놀란 표정으로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근데 여기서 저기가 보인단 말이야? 난 연기만 희미하게 보이는데….”
“고기가 확실해! 어서 가보자!”
우린 쏜살같이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가 본대로 모닥불 앞에는 무슨 동물인지는 모르지만 고기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일단 고기로 손을 가져가는데 어디선가 호통소리가 들렸다.
“이놈들!! 내 고기에 뭐 하는 짓이냐?!”
그 소리에 난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사람?”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