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뜬금없이 등장한 두 사람은 겁 없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그걸 본 라우라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여긴 어쩐 일이지? 아직 때가 아닐 텐데…?”
보아하니 서로 아는 사이 같았다.
라우라의 말에 중년 남자가 멋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때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정하는 거야.”
“뭐? 이 버러지들이 감히 누구한테!”
그리고 내게 사용한 것처럼 그들의 몸을 엄청난 힘으로 옥죄었다.
허나 그 힘은 무언가에 의해서 튕겨 나왔다.
“하하하. 내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해? 괜한 사고 치지 말고 순순히 돌아가자! 지금 여긴 이목이 너무 집중됐으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했다.
“저기 미안한데 니들은 누구야?”
내 질문에 중년 남성이 날 돌아봤다.
“네가 박태준인가 보군. 근데 용케도 살아있구나.”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너희 누구냐고?!”
그때 라우라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 몸. 이건 어떻게 된 거지?”
말을 하는 라우라의 표정이 뭔가 불편해 보였다.
그걸 본 중년 남성은 유쾌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잘 움직일 수 없을 거야. 고통도 조금 있을 거고. 그 몸에 특별한 주술을 걸어놨거든. 우리가 절대자인 널 불러오는데 아무런 대비도 없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만약 그랬다면 너무 순진한데. 하하하하.”
그 소리에 라우라의 표정이 더욱 험악하게 굳었다.
하지만 언뜻언뜻 스치는 표정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저놈들이 라우라 몸에 미리 뭔 짓을 해놓은 모양이네. 하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자인 그를 감당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근데 고작 저런 주술로 라우라를 잡을 수 있을까? 내가 아는 절대자는 그런 걸로 어찌해볼 상대가 아닌데…!
허나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같은 편끼리 싸우면 나로선 개이득이니까!
“그럼 너흰 월야 길드 소속이야?”
갑작스런 질문에 중년 남자가 약간 흠칫했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그래. 난 월야 길드 소속이지.”
“너만? 그럼 그 옆에 아줌마는 아니고?”
아줌마라는 말에 중년 여성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그 외에 다른 반응은 하지 않았다.
“이분은 소속이 좀 다르지.”
“그래? 어딘데?”
“하하하. 내가 그따위 화술에 넘어갈 사람으로 보이나?”
“응. 그래 보여. 그래서 저 아줌마 소속은 어딘데?”
“그건 네놈이 알 필요 없다. 곧 여기서 죽을 테니까. 라우라여. 저자를 죽여라.”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다.
그걸 본 중년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버텨봤자 고통만 가중될 뿐이야. 그러다 결국 고통 속에 육체는 소멸되겠지. 그걸 원하진 않겠지?”
그 말에 라우라는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최대한 차분하게 물었다.
“…그럼 내가 네놈 말대로 저놈을 죽인 후엔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주술을 풀어줄 건가?”
“물론 그건 아니지. 네게 걸린 주술은 우리의 숙원을 풀고 난 후 풀어줄 거야.”
“하하하…. 역시 인간은 믿을 게 못 돼. 인간 따위에 의지해선 안 되는 거였어.”
그는 후회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눈빛이 변했다.
“허나 난 절대자 라우라. 내가 고작 고통 때문에 너 따위 놈들에게 끌려다닐 순 없지!”
그리곤 그의 몸 안에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걸 본 중년 남성은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잠시 후 라우라는 평온한 표정으로 중년 남성과 나를 바라봤다.
그의 몸에선 항거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줄기줄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난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이 가진 힘을 완전히 개방했단 걸.
근데 저렇게 완전하게 힘을 쓰면 육체가 견딜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 중년 남성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그 육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시끄럽군.”
그걸로 끝이었다.
중년 남성의 몸이 이상한 형태로 오그라들더니 터져버렸다.
그걸 보니 라우라가 완전한 힘을 개방해서 자신의 육체에 걸려 있던 주술을 없애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옆에 서 있는 중년 여성의 반응이다.
그녀는 상황이 이렇게 되는 동안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내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본 건 아까 그녀를 아줌마라고 불렀을 때뿐이었다.
라우라 역시 그런 그녀가 신기한지 이런 상황임에도 바로 죽이지 않고 궁금한 걸 물었다.
“넌 뭐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러나 그녀는 그에겐 흥미가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잠깐 바라보다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결국 또 너 때문인가? 그래 봐야 정해진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맘껏 발버둥 치거라!”
그러더니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말 그대로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 모습에 라우라 역시 약간 당황한 듯했다.
그건 대체 무슨 뜻인 거지?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우선적으로 처리할 일이 남아있다.
그 여자의 정체는 월야 길드를 파다보면 나올 테니 일단 라우라부터 처리하자.
난 라우라를 쳐다봤다.
라우라 역시 날 쳐다봤다.
근데 예상과 달리 그는 웃고 있었다.
뭔가 굉장히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보아하니 그 육체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나랑 싸워도 괜찮겠어?”
“하하하. 어차피 이딴 육체에 미련은 없다. 결국 너만 죽이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제대로 된 내 육신을 가지고 넘어와서 너희 인간들을 모조리 죽이겠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말이야. 크하하하하!”
그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한참을 웃었다.
그를 가만히 쳐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사실 전력 상태인 절대자와 싸우는 건 처음이다.
거기다 지금 라우라가 뿜어내는 기운은 키라보다 훨씬 강했다.
뿜어내는 기운만으로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일단 여기서 최대한 벗어나야 돼. 여기서 제대로 싸웠다간 이 일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생각과 동시에 내 몸은 이미 건물 벽을 뚫고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내 몸은 거대한 힘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쾅.
콘크리트 바닥에 몸이 처박혔지만 날 짓누르는 압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난 몸 안에 있던 모든 내공을 폭발시켜 누르던 압력을 잠깐 없애고 다시 환영보를 전개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얼마 가지 못하고 엄청난 압력이 내 온몸을 찍어 눌렀다.
더는 안 되겠어. 여기서 싸우는 수밖에…!
다행인 건 피앤씨 건물로부터는 어느 정도 떨어져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난 거대한 압력을 버티며 몸을 일으키고 공격 자세를 잡았다.
그걸 본 라우라는 날 짓누르던 힘을 거뒀다.
그리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제대로 할 마음이 생겼나?”
“그래.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이 기회에 내 힘이 절대자를 상대로 얼마나 통하는지 한 번 봐야겠어!
난 긴장을 풀기 위해 품 안에서 코인 하나를 꺼내 씹었다.
까득. 까드득.
그는 여유 있게 내가 모든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줬다.
좋아! 해보자!!
난 즉시 환영보를 사용해 라우라를 공격했다.
일권을 쉼 없이 사용했고,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다 했다.
하지만 어떤 공격도 그에겐 소용이 없었다.
그건 그가 한 공격 역시 마찬가지다.
한참을 공격을 하던 라우라는 잠시 멈추더니 날보고 재밌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지만 네가 가진 방어력은 거의 무한대구나. 어떤 공격도 소용없겠어.”
“그럼 이만 포기할 거야? 그래주면 안 될까?”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포기하면 안 되지. 일반 물리 공격으로 안 된다면 이번엔 좀 색다른 공격으로 가볼까!”
그리곤 곧바로 그의 몸이 검게 물들며 악취를 내뿜기 시작했다.
난 참을 수 없는 악취에 급히 코를 틀어막았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그는 코를 막고 있는 날 보고 웃었다.
“이건 내 몸에서 생성되는 특수한 물질인데 인간에겐 치명적인 독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군. 어디 이것도 견디나 한번 보자!”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게 물든 그의 팔이 내 목을 부여잡았다.
치이이익.
내공을 일으켜 저항했지만 라우라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액체는 강한 힘으로 내공을 뚫고 몸 안으로 들어왔다.
- 라우라의 맹독에 감염되었습니다. 서둘러 해독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끄아아악!”
맹독 때문인지 엄청난 고통이 내 몸을 파고들었다.
독에 대한 내성이 높긴 하지만 완벽히 막아줄 수는 없기 때문에 데미지는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라우라는 내 몸에 자신의 맹독을 주입하곤 뒤로 물러나 고통스러워하는 날 변태처럼 웃으며 지켜봤다.
끄으으윽. 어쩌지. 이대로면 진짜 죽을 수도 있겠는데….
독이 더 퍼지기 전에 승부를 내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을 사용하기로 했다.
난 서둘러 화룡도를 소환했다.
그도 내가 뭔가를 하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호기심과 약간의 긴장이 섞인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단월!”
화룡도가 대각선으로 그어지며 모든 걸 잘랐다.
하지만 내 도는 허무하게 라우라의 팔에 막혔다.
그의 팔에서 약간의 피가 흐르긴 했지만 자르기엔 힘이 모자랐다.
허나 라우라는 자신의 팔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놀랍다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대단해. 내 몸에 상처를 내다니 말이야. 근데 보아하니 이제 더 쓸 수 있는 수는 없을 것 같군. 그만 죽어라!”
그는 순식간에 내 뒤로 돌아와서는 내 몸을 껴안았다.
그러자 전신을 통해 맹독이 침투해왔다.
“끄으으악!!”
난 고통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질러댔다.
“듣기 좋은 소리군.”
그가 내 비명을 즐기고 있는 사이 이 지역을 관리하는 길드에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각성자를 몇 명 보내왔다.
하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라우라에 의해 온몸이 찢겨 나가 죽었다.
그사이 난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어떻게 할지를 생각했다.
끄으윽.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밖에 없어. 죽어서 하루 전으로 회귀하거나, 테세우스를 부르는 거. 뭘 사용하지?!
잠깐 고민은 했지만 결정이 어렵진 않았다.
회귀반지는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
앞으로 이런 절대자들과 계속 싸워야 되는데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른다.
그러니 회귀반지는 최대한 아껴둬야 했다.
테세우스를 불러서 라우라를 상대하게 해야겠어. 그 사이 난 초열의 불꽃으로 최대한 이 맹독을 녹여봐야지!
결심을 하자마자 난 라우라를 쳐다보고는 고통을 참으며 웃었다.
각성자들 몇을 처리하고 여유롭게 날 지켜보고 있던 라우라는 내 웃음을 보고 말했다.
“보아하니 마지막 수가 남은 것 같네. 어디 어떤 수작을 부리나 볼까!”
“기대해. 이번 건 아주 재밌을 테니까! 테세우스. 날 도와줘!”
허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걸 본 라우라는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크하하하하! 지금 날 웃겨서 죽이려는 건가?”
하지만 곧 미친 듯이 웃던 라우라가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그리곤 허공 한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잠시 후 그가 보던 공간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왔다.
황금빛 갑옷을 걸친 미남자. 바로 테세우스다.
왔구나!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