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계단 끝에는 문이 있었는데 내게 충격을 준 건 그 문에 매달려 있는 괴생명체였다.
머리는 사람이지만 팔과 다리, 몸통은 온통 다른 몬스터들의 것으로 융합된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그 생명체는 마치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팔목과 발목에 대못이 박힌 채 매달려 있었다.
저게 대체 뭐 하는 짓거리지? 왜 이런 걸 여기 걸어놓은 거야?!
매달려 있는 생명체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지 여전히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미친 새끼들. 너흰 오늘 다 죽었어!
난 잠입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문을 향해 일권을 날렸다.
퍼펑.
굉음과 함께 문이 산산조각으로 박살 났다.
그건 매달려 있던 괴생명체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난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 이건 또 뭐야?! 설마 교회?
내부의 모습은 마치 교회 같았다.
크기는 아담해서 50명 정도가 들어가면 꽉 찰 정도였다.
하지만 그곳은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은 아니었다.
곳곳에 인간과 몬스터들이 뒤엉켜 고통스러워하는 형상의 조각상들이 보였다.
그리고 벽에는 온통 서로를 죽이고 있는 인간과 몬스터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특이한 건 교회의 천장이 돔형태를 띄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거대한 눈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그걸 보자 반지의 제왕에서 봤던 사우론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때 앞쪽에 있는 제단 뒤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어서 오세요. 박태준 씨!”
그는 보라색 로브를 두른 대머리 남자였는데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젠장. 역시 함정이구나. 내 이름을 아는 걸 보니 내가 오는 걸 알고 있던 거야!
그제야 정기범과 올 때 그렇게 쉽게 통과시켜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오는지 알고 있었나 보네. 그나저나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이곳이 맘에 드세요?”
웃으면서 하는 그의 말에 난 헛웃음을 지었다.
“하! 맘에 드느냐고? 너희 같은 미친 새끼들은 일단 좀 맞아야 돼.”
난 더 그의 말은 듣지 않고 바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말이야 일단 족치고 나서 들으면 되니까!
퉁!
하지만 내 주먹은 보이지 않는 막에 의해 튕겨 나왔다.
“보호막…?”
내 말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하. 주님의 가호가 있는 한 누구도 제게 손을 댈 수가 없답니다. 일단 진정하고 얘기를 좀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오해가 있다면 풀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주님?”
난 그가 한 말 중에 주님이란 말이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짓고 있었다.
주님이면 뭔가를 섬긴다는 건가? 그래서 이렇게 교회처럼 꾸며놓은 거고…? 아님 그냥 날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트릭인 건가?
그전까진 단순히 생체연구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사이비 종교 집단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난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웃는 대머리 남자를 쳐다봤다.
저놈을 보호하고 있는 게 뭔진 모르지만 세게 치면 못 부실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일단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볼까!
“얘길 하자면서 왜 대답이 없어?! 주님이 뭐지?”
“일단 그 얘길 하기 전에 박태준 씨는 왜 살고 있죠?”
“왜 사냐고?”
뭔 소릴 하려고 저딴 질문을 하는 거지?
난 뜬금없는 질문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하하하. 질문에 당황하셨나 보군요. 그냥 단순한 질문이에요. 박태준 씨는 왜 살고 있죠?”
“그딴 개소리 말고 네가 말한 주님은 뭐야?!”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 이해합니다. 대부분의 현대인이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살고 있죠. 저도 그랬구요.”
“하! 그럼 넌 왜 사는데?”
내 질문에 그는 인자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야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살고 있죠.”
“그래서 그 주님이 누군데?!”
“그 전에 제 과거 얘길 잠깐 하겠습니다. 전 대격변 때 각성자가 되지 못했어요. 그건 선택의 밤 때도 마찬가지였죠. 이후 세상은 각성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강력한 힘을 지닌 그들이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했고, 일반인들은 그저 끌려다니기만 했죠.”
그는 예전 생각을 하자 감정이 격해졌는지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하지만 곧 감정을 추스르고는 말을 이었다.
“전 고민했습니다. 각성자들은 왜 선택을 받고 난 왜 선택을 받지 못한 걸까? 전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주님의 음성?”
“네. 그분의 음성을 듣고는 제가 하던 모든 고민이 해결됐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도가 되어 세상에 주님을 알리기로 결심하게 된 거죠!”
“그래서 그 주님이 뭐라고 했는데?”
그는 잠시 날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주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각성자와 비각성자 모두 내 자녀들이다. 난 차별 없이 너희 모두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모두는 내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며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라뇨? 감동적이지 않으세요? 주님께선 저희 같은 일반인도 자녀로 받아들이시고 각성자와 똑같은 자녀로 대해주셨어요.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제게 새로운 능력까지 내려주셨어요. 절 각성자로 만들어 주신 거죠!”
저거 완전 또라이네…. 근데 얘길 들어보니 저놈은 일반인이었는데 융합을 통해 능력을 얻었다는 거 같은데… 그러면 융합이 일반인한테도 쓸 수 있다는 말이잖아! 이게 알려지면 생각보다 문제가 커질 수도 있겠는데?!
저 남자의 말처럼 현실에선 각성자들을 동경하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엽기적인 방법으로 각성자가 되길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는 중이었다.
근데 융합을 통해 일반인도 각성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이 생길 수도 있다.
일단 몇 가지만 더 물어보고 처리하자.
“그럼 아까 저 문에 매달려 있던 괴물이나 위층에서 실험하던 인간과 몬스터들은 어떻게 된 거야? 네 말대로면 같은 가족인데 저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아?”
“하하하하. 저들은 선택받은 이들입니다. 현생에서 고통을 받는 대신 저희보다 먼저 주님과 하나가 되는 영광을 얻는 거죠. 그들은 고통이 없는 세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을 겁니다.”
“그래그래. 뭐 거기까진 알겠고, 그럼 주님이란 놈 얼굴은 봤어?”
그는 내 질문에 표정이 어두워지며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주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곧 주님께서 오실 겁니다.”
“온다고? 어디로?”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주님이 오신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데?”
“그분이 들어오실 육신이 완성되어 간다고 들었습니다. 그 육신이 완성되는 그날 주님의 영이 그 안에 들오시고 세상은 그분 안에 완전히 하나가 될 것입니다.”
“뭐?!”
난 거기까지 듣자마자 퍼즐 조각들이 다 맞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대한 그룹과 월야 길드에서 이 지랄을 떨며 실험을 한 이유가 뭔가가 들어오기 위한 육체를 만들기 위해서였던 거야? 그리고 지금 그게 거의 완성 단계인 거고…?
그제야 인체 실험을 통해 절대자급 능력을 지닌 자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했던 조한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일단 저 광신도 말이 사실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는 사실일 가능성이 커. 근데 진짜로 절대자급 인물이 새로 나타나게 된다면 큰일인데….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나온다면 더더욱…. 그건 무조건 막아야 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대머리 남자를 보며 물었다.
“근데 이걸 나한테 얘기해 주는 이유가 뭐지?”
“하하하하.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단지 오랜만에 만난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이런저런 얘길 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곧 말이 안 통하게 될 테니까 말이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계단을 통해 수많은 각성자들이 내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곤 곧바로 십여 명의 각성자로 보이는 이들이 문으로 들어와 날 에워쌌다.
난 그들을 한 번 바라보곤 대머리 남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렇게 돼야지. 이게 나도 맘이 편해!”
그는 내 여유로운 표정을 보고는 말했다.
“저들은 아쉽게도 주님의 육체가 되지 못한 이들. 허나 일반 각성자와는 격이 다른 이들이죠.”
“시끄러. 그냥 다 죽어!”
난 그의 말을 끊고는 바로 날 둘러싼 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대머리 남자 말대로 각성자들은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들 하나하나가 지하 격투장에서 만났던 마재형과 비슷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 실력자들은 몇 명이 모여 있어도 내겐 위협이 안 됐다.
이놈들도 불쌍한 놈들이니 깔끔하게 없애주는 게 좋겠지.
난 순식간에 그들 모두를 초열의 불꽃으로 불태워버렸다.
초열의 불꽃이 내공을 엄청나게 많이 소모하긴 하지만 가장 빠르고 깔끔하게 이들을 처리하는 방법이다.
그리곤 대머리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내가 그렇게 쉽게 제압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는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제 네 차례네.”
난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퉁.
하지만 방어막에 의해 내 주먹은 튕겨 나왔다.
그걸 본 그는 약간 안심이 됐는지 얼굴에 미소를 되찾았다.
“하하하하. 아까도 말했듯이 전 주님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절 해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난 아무 말 없이 그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계속 주먹을 휘둘렀다.
퉁. 퉁. 툭. 툭.
처음엔 내 주먹을 튕겨내던 보호막도 서서히 튕겨내는 힘이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곤 결국 깨져버렸다.
깨졌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대머리 남자를 보호해주던 보호막이 사라진 게 분명히 느껴졌다.
난 즉시 그의 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는 방어막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걸 깨닫곤 놀라긴 했지만 겁을 먹거나 하진 않았다.
“이제 절 죽이실 건가요? 좋습니다. 어서 죽여주세요. 저도 얼른 주님과 한 몸이 되고 싶으니까요!”
난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쳐도 완전히 미쳤구나!
“너도 불쌍한 놈이니까 고통 없이 죽여줄게.”
그리곤 바로 불태워 죽였다.
난 모두 죽고 사라진 교회를 벗어나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즉시 김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준 씨.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이죠?]
“오랜만이에요. 급해서 그러는데 찬성 씨 혹시 해킹도 가능해요?”
[해킹이요? 뭐냐에 따라 다르죠. 뭐가 알고 싶은데요?]
난 지금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간단히 말해주고 그들의 아지트가 있는 위치를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죠. 태준 씨한테 따라붙는 사람이 있다고 했죠? 그 사람들을 바로 죽이지 말고 잠깐만 잡고 있어 줘요. 만약 그 사람이 아이즈를 사용하고 있다면 어디랑 연결하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난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런 것도 가능한 거예요?”
[뭐, 불법이지만 가능은 하죠. 그럼 태준 씨를 감시하는 사람을 만나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서 화면 공유를 해요. 그럼 내가 위치를 알아낼 테니.]
난 알겠다고 말하곤 바로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밖은 여전히 수많은 팬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때 은밀하게 날 따라붙는 기가 느껴졌다.
왔구나!
그리곤 내 모습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