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1층 로비에 도착하자 보안직원들이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기범을 보자 공손히 고개를 숙였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여긴 허가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보안 요원들은 처음 보는 날 바로 막아 세웠다.
그걸 보고 정기범이 연기를 시작했다.
“걔 이번에 내가 새로 뽑은 매니저야. 들여보내.”
하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규정상 사전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정기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규정? 너 내가 박대표랑 어떤 사인지 몰라서 그딴 소리 하는 거야? 어?!”
보안 요원은 정기범이 버럭 화를 내자 놀라서 움찔했다.
하지만 날 들여보내지는 않았다.
그걸 보고 정기범은 더욱 화를 냈다.
“내가 이 회사에 벌어다 준 돈이 얼만데! 매니저 하나 내 맘대로 회사에 못 데리고 온다는 게 말이 돼?! 어!!”
그 말에 보안요원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급히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곤 뭐라고 말을 하더니 날 막은 손을 내렸다.
“특별히 이번 한 번만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1층 내에서만 계셔야하며 다른 층으론 이동하실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정기범은 날 슬쩍 쳐다봤다.
그걸로 되겠냐는 눈빛이다.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정기범이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흥! 진작 그럴 것이지. 야! 가자!”
난 급히 그 옆에 따라붙어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이동했다.
보안 요원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난 정기범을 칭찬했다.
“이야! 너 연기 잘하던데! 괜히 배우가 아니던데!”
그는 내 칭찬에 머쓱해 하며 머릴 긁적였다.
“그, 그런가요? 근데 11층 밖에 못 움직인다는데 괜찮으세요?”
그의 말투는 이제 완전히 존대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힘이나 권력 모든 면에서 그가 넘볼 수 없는 존재란 걸 인정한 것이다.
“그건 네가 신경 쓸 거 없는데 중요한 건 내가 돌아다니다 걸려서 너한테 피해가 가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몰랐다고 대충 둘러대면 되고, 정 안 되면 다른 소속사로 옮기죠 뭐. 아무래도 저희 아버지가 미르 길드 간부다 보니 회사에서도 저한테 함부로 못 하거든요.”
“그러면 부담 없이 움직일게. 대신 오늘 도와준 건 고마우니까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으면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선에선 도와줄 테니까!”
그는 내게서 그런 말을 들은 게 기쁜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11층에 내린 우린 일단 정기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대략적인 11층 구조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11층에는 5개의 특급 연예인 방이 있고, 휴게실과 휘트니스 룸도 갖춰져 있다고 했다.
“그럼 한아름도 11층에 있어?”
“한아름이요?”
그는 갑자기 내 입에서 한아름 이름이 나오자 약간 놀란 듯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한아름 방은 7층에 있어요.”
“7층? 거긴 또 누가 있는데?”
“누가 있는 게 아니고 한아름밖에 없어요. 왜 걔 방이 거기 있는지 모르지만 유독 회사에서 한아름만 특별히 관리를 하더라구요.”
“그래? 7층이란 말이지…!”
“근데 7층은 들어가기가 좀 어려울 거예요.”
“어렵다고? 왜?”
내 질문에 그는 빠르게 대답했다.
“아까 말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층이 6층과 7층이거든요.”
“그래?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면 문이 막혀 있는 거야?”
“아니요. 6층과 7층은 오직 엘리베이터로만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긴 계단도 없거든요. 근데 엘리베이터에서 6층과 7층을 가려면 승인받은 카드가 있어야지만 가능해요.”
허! 무조건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는 말이네!
“그럼 승인 카드는 누가 가지고 있는데?”
“제가 알기론 박대표와 한아름, 그리고 그녀 매니저, 보안 팀장 이렇게 네 명이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좋아.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볼일 봐.”
그리곤 바로 그의 방을 나왔다.
정기범은 나가는 날 향해 더 필요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자길 부르라고 했다.
아무래도 스파이 역할에 재미를 느낀 듯했다.
난 일단 천천히 11층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가면서 위치를 파악했다.
흠. 저기 엘리베이터가 있고, 계단은 저쪽이구나.
그러면서 감시카메라의 위치도 전부 파악했다.
다행히 감시카메라가 고정형이 아니라서 동선만 파악하면 피해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좋아. 이제 여기서 어떻게 7층으로 가냐가 문젠데…. 어떻게 한다!
고민했지만 결국 방법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가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려면 승인받은 키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몰래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지. 영화에서처럼 엘리베이터 줄을 잡고 내려가 볼까?!
예전에 봤던 영화들에서 엘리베이터 줄을 잡고 이동하는 걸 본 기억이 있었다.
일단 7층으로 가서 강제로 침투해보자. 혹시 거기서 걸린다고 하더라도 다른 층에 있는 경비들이 올 수는 없을 거야. 보아하니 뭔가 감추고 싶은 게 잔뜩 있어서 그토록 보안이 철저한 걸 테니까!
어떻게 갈지 방법을 정하자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일단 엘리베이터 앞 감시카메라만 고정형이기 때문에 카메라 사각지대로 이동해 카메라 위치를 살짝 돌려놨다.
그리곤 경비들이 알아채기 전에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었다.
그그그긍.
문이 열리자 난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 줄에 매달린 다음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줄에 매달려 엘리베이터 위치를 확인하자 몇 층 위에 있는 게 보였다.
“그럼 내려가 볼까!”
난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멋지게 줄을 잡고 내려왔다.
십, 구, 팔, 칠. 여기다!
그때 이상한 기계음 같은 게 들려왔다.
우우우우웅.
이게 무슨 소리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든 내 눈에 빠른 속도로 날 향해 내려오는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젠장! 저 소리였구나!
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7층 엘리베이터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콰쾅!
폭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날아갔고 난 급히 그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등 뒤로 내려갔다.
휴! 아슬아슬했네.
엘리베이터에 깔리더라도 죽지는 않겠지만 괜히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폭음을 듣고 네 사람이 급히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날 발견하고 살기를 뿜어냈다.
그들은 날 보고 누군지 무슨 용건인지 묻지도 않고 바로 죽일 듯이 덤벼들었다.
허허. 이것들 봐라!
저 반응은 얼마 전에도 본 적 있다.
바로 폐공장에서다.
이걸로 스타클래스 역시 대한그룹, 월야 길드와 연관이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
난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그들을 압살했다.
그리곤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한아름의 방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7층엔 방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 볼까!
방문을 열자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7층 전체가 하나의 방인만큼 웬만한 운동장보다 큰 크기였다.
그리고 난 거기서 놀라운 걸 발견했다.
어? 저거 몬스터 아니야?
방 한쪽에 몬스터로 보이는 생명체들이 기둥에 한 마리씩 매달려 있었다.
근데 거기엔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저건 사람 아니야?!
몬스터 옆에는 사람들도 기둥에 매달려 있었다.
다만 그것만 봐서는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미친년이 대체 여기서 뭔 짓을 하는 거야?!
아마도 여기서도 실험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난 실험체들에게 가는 대신 한아름의 책상으로 보이는 곳으로 갔다.
일단 이곳의 정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책상에는 간단한 메모가 적힌 노트가 있었다.
그러나 날짜가 적혀 있지 않아 언제 쓴 메모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성공이다. 조금만 더 힘내자.>
<쓰레기 같은 실험체들이 자꾸 살려달라고 해서 시끄럽다. 그냥 다 죽이면 조용해질까?>
<꺄하하하하…. 드디어 다 죽였다. 조용해서 너무 좋다.>
메모의 내용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광기에 사로잡힌 채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광기는 노트의 뒤로 갈수록 심해졌다.
얘도 제정신이 아니네!
하지만 뒤죽박죽이긴 해도 보다 보니 그녀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대충 이해가 됐다.
노트의 내용에 의하면 몬스터나 각성자의 장기를 특정 사람의 몸 안에 이식하고 자신의 스킬인 융합을 통해 능력을 하나로 합친다는 것이다.
융합 스킬의 성공률은 일반적으로 몬스터보다 사람을 썼을 때 더 높다.
그걸 알고부터는 몬스터보다 사람을 더 많이 실험체로 썼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난 대충 노트를 다 훑어본 다음 품에 넣고 다른 정보는 더 없는지 책상을 뒤졌지만 그 외에는 깨끗했다.
아마도 따로 보관해 두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한아름의 책상 수색이 끝나자 그제야 난 기둥에 묶인 몬스터와 사람들에게로 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들은 살아 있기는 했지만 생명이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일단 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언론에 알리면 최소한 이슈거리는 만들 수 있겠지. 대한 그룹이야 당연히 발뺌하겠지만 이슈는 만들 수 있으니 그들의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즉시 아이즈에 있는 동영상 촬영 기능을 켰다.
그리고 한아름의 방과 기둥에 묶여 있는 몬스터와 사람들을 촬영했다.
촬영을 다 한 후 업로드를 하려고 했지만 전파 방해가 있는지 할 수가 없었다.
젠장. 역시 안 되네.
업로드에 실패하자 난 즉시 기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 바닥에 눕히고는 약간의 내공들을 불어 넣었다.
그리곤 곧바로 방을 나와 6층으로 내려갔다.
이상한 건 엘리베이터 문이 부서지고 7층에 있는 경비들이 죽었음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꼭 지난번 지하 격투장에서 연구실 정리할 때랑 비슷한 느낌인데….
아니나 다를까 6층으로 내려갔지만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미 알아채고 도망친 건가?
6층엔 방이 2개 있었는데 각 방문 앞에는 보안팀장, 대표라고 쓰여 있었다.
6층에는 보안팀장이랑 박대표란 사람이 머무나 보구나.
방들을 열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방들이 너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모델하우스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머문 흔적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고 꼼꼼하게 방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다 방 안 구석에서 뭔가 이상한 버튼을 발견했다.
“어? 이건 뭐지?”
자세하게 안 봤다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난 즉시 버튼을 눌러봤다.
그그그긍.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벽 한쪽이 아래로 내려가며 긴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흐흐흐…. 저기구나!”
망설임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한참을 내려간 계단 끝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이, 이런 미친 새끼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