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바닷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몽유도에 설치된 진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다.
사방이 뿌옇게 변했는데 그곳을 지나며 츤츤이가 투덜거렸다.
[설치한다고 나름 애는 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이 많이 됐네. 나중에 손 한 번 봐야겠어.]
그 소릴 들은 김주안이 달리면서 날 향해 물었다.
“주군. 저분이 진법에도 조예가 깊으신가요?”
“지난번 김민수와 싸울 때 너희들에게 사용한 진법도 쟤한테 배운 거야.”
“정말요?!”
그녀는 앞에서 달리고 있어 자세한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보지 않아도 그녀가 상당히 놀라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흐흐흐. 앞으로 더욱 많이 놀랄 테니까 기대하라구!
몽유도에 도착하자마자 난 김주안을 시켜서 섬 내의 모든 무인들을 부르도록 했다.
잠시 후, 최태철이 있는 천궁의 마당에 8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다 모인 건가?”
“네. 몽유도에 있는 이들은 모두 모였습니다.”
모인 이들을 한 번 쓱 훑어봤다.
대부분 한 번은 봤던 이들이지만 간간이 처음 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향해 간단히 인사말을 한 후 츤츤이를 소개했다.
“우리가 앞으로 싸워야 할 적은 이제까지 너희가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강자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너흰 너무 약하다. 그래서 내가 너흴 위해 최고의 스승을 데리고 왔다.”
그러면서 난 옆에 있는 츤츤이를 가리켰다.
“오늘부터 너희를 가르칠 스승이다. 사정이 있어 모습은 이래도 실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니까 앞으로 잘 따르도록 해라!”
하지만 곧바로 곳곳에서 불만 섞인 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무리 주군이라도 개한테 배우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릴 놀리는 것도 아니고 뭐 하자는 겁니까!”
말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중립을 지키느라 내 실력을 제대로 보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들 때문인지 곳곳에서 더욱 많은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긴 나라도 갑자기 개한테 배우라면 저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런 불만을 하나씩 다 들어주고 있을 만큼의 시간이 없다.
난 좌중을 둘러보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압도적인 기운이 주변으로 퍼져나가 모인 무인들을 압박했다.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올 즈음 츤츤이가 끼어들었다.
[그쯤하고 넌 빠져. 여긴 내가 정리할 테니까. 근데 너 실력 많이 늘었다. 못 본 사이에 뭔 일이 있었던 거야?!]
“그건 차차 얘기하자. 일단 여기부터 정리해봐!”
내가 기운을 거두고 뒤로 빠지자 그제야 모여 있던 무인들은 제대로 숨을 쉬며 두렵고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하지만 그 눈빛도 츤츤이가 나타나자 차갑게 식었다.
[오늘부터 네놈들을 가르칠 츤츤이다. 수련이 시작되면 난 불만은 용납하지 않으니까 불만 있으면 지금 다 얘기해.]
츤츤이의 전음에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저, 저거 지금 전음인 거야?”
“어? 너도 들었어?”
“어떻게 개새끼가 전음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그것도 우리 모두한테…?!”
“그래봤자 개새끼지. 개새끼한테 우리가 뭘 배우겠어! 안 그래?”
[호오. 너 나한테 배우는 게 불만인가 봐. 그치?]
츤츤이는 어느새 그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있는 이들 중 날 제외하곤 아무도 츤츤이가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를 보지 못했다.
나조차도 잔상만 봤을 뿐 완벽히 보지는 못했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츤츤이를 보고 당황했지만 이내 무인답게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래. 개새끼한테 뭘 배우겠어? 잔재주 좀 부리나 본데 그래 봐야 개새끼지!”
[좋아. 네놈이 내 공격을 한 번만 막으면 내가 바로 포기하고 물러날게.]
“한 번? 그 말 진짜지?”
그는 다시 한번 대답을 듣기 위해 물었다.
[다들 들어라. 이놈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누구라도 내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막는다면 내가 너희 가르치는 걸 포기하겠다. 그러니 불만 있는 놈들은 지금 말해!]
그걸 본 나는 미소를 지었다.
츤츤이가 뭘 하려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자기 실력을 보여서 기강도 잡고 거기다 무인들 실력이 어떤지도 보려는 거구나.
그때 츤츤이 앞에 서 있던 무인이 말했다.
“공격해봐. 어디 얼마나 잘 물어뜯나 보자! 하하하하!”
[그래. 난 네 배를 칠 거야. 그러니까 잘 막으라구.]
퍼펑.
그리곤 곧 뭔가가 폭발하는 듯한 엄청난 소리와 함께 그 무인은 한참을 뒤로 나뒹굴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아마도 충격으로 기절한 모양이다.
[다음!]
난 츤츤이가 무인들 교육하는 잠깐 보다가 조용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츤츤이가 하는 교육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가 사라진 건 아무도 몰랐다.
저택 안으로 들어간 나는 기감을 확장해 최태철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는 여전히 어제 있었던 그 방에 앉아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피부도 더는 흘러내리지 않았고 혈색도 정상적으로 돌아온 걸 보니 상태가 많이 좋아진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흘러내린 피부는 원상복귀 할 수 없기 때문에 외모는 흉측하게 변해있었다.
그는 내가 오자 눈을 뜨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셨군요. 안 그래도 밖에서 주군의 기운이 느껴지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날 주군으로 인정한 건가요? 아직 내가 펼치는 무공을 보지도 못했는데…?!”
“어제 주군이 제 생명을 구해주실 때 주군 몸 안에 있는 엄청난 힘을 느꼈습니다. 감히 저는 견줄 수 없는 힘이었죠. 그러니 앞으로는 편하게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그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편하게 대하도록 하지.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알았으면 좋겠는데.”
“제 몸이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사실 전 김민수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이어지는 그의 말은 놀라웠다.
반년 정도 전에 소의 탈을 쓴 남자가 최태철을 찾아와서는 자신을 천의문 4대 계승자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최태철이 믿지 않자 자신 앞에서 천의권을 직접 보여줬고, 그가 펼치는 무공의 허점에 대해서도 알려줬다는 것이다.
천의권까지 보여주고 자신의 무공에 대해 보완까지 해주자 당연히 그가 하는 말을 처음엔 믿었다.
그리고 즉시 비무대회 전까지 폐관 수련을 들어갔다.
하지만 그가 알려준 대로 수련을 하면 할수록 몸이 점점 망가지는 게 느껴졌다.
급기야 주화입마에 빠질 것 위기까지 와서 급히 수련을 멈췄다.
그제야 소의 탈을 쓴 이가 보인 천의권에 대해서도 의심이 들었다.
위력은 엄청났지만 속에 담겨 있는 힘이 전혀 다른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급히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왔는데 이미 그때는 김민수가 상당히 많은 수의 무인을 포섭한 상태였다.
그걸 알고 급히 김민수가 천의문 4대 계승자가 아니라고 선언한 다음 곧바로 그가 포섭한 무인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미 김민수가 먼저 손을 쓴 건지 누구도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근데 그날 밤 김민수가 그를 몰래 찾아와 다시 한번 그를 회유하려 했다.
그러나 최태철이 완고히 거절하고 그를 의심하자 그는 돌아가기 전 선물이라며 검은 물방울 같은 걸 건넸다.
최태철은 의심하긴 했지만 일단 그걸 손에 받았다.
그러자 그 검은 물방울이 갑자기 모공을 통해 그의 몸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는 급히 내공을 이용해 내부로의 침투를 막았지만 갑자기 강력한 독기가 검은 물방울에서 뿜어져 나오며 내공으로 보호되는 그의 몸을 뚫고 내부로 침입했다는 것이다.
그는 급히 자리에 주저앉아 침투하려는 검은 물방울에 대응했지만 서서히 침식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거의 죽기 직전에 내가 와서 그를 살린 것이다.
거기까지 얘길 들은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육 개월 전부터 여기 왔다는 건 이미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여긴 어떻게 안 거지?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건가? 게다가 소탈 그놈은 천의권을 어떻게 알고 있던 거지?
몽유도에서의 일은 일단락됐지만 소탈을 쓴 김민수가 어떻게 천의권에 대해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일단 지하 격투장 문제가 해결되면 천천히 알아봐야겠어.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마인 세력과 천의문이 깊이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겠어.
“그럼 몸조리 잘하고. 밖에 날 대신할 훌륭한 스승을 데려다 놨으니까 아마 너한테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나중에 데리고 와서 인사시켜 줄게.”
“감사합니다. 주군.”
저택 밖은 아직도 츤츤이의 교육이 이어지고 있었다.
난 그런 츤츤이를 보다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너흰 그동안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좀 볼까!”
내 말에 해진우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형. 예전의 우리가 아닌데 괜찮겠어?”
“하하하하. 지금 누굴 걱정하는 거야?! 저쪽으로 가서 한꺼번에 덤벼봐. 아까 얘길 들어보니 합격진도 배운 것 같으니까.”
그 말에 다른 동료들도 기대에 찬 눈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지옥 같은 수련을 통해 스스로가 강해진 건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교할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나 강해진 줄은 그들도 몰랐다.
그래서 나와 대련을 하면 자신들의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동료들은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마당 한 쪽에 마련된 공터에 선 나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덤벼! 괜히 시간 끌지 말고.”
이미 내 실력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날 원형으로 둘러쌌다.
그리곤 정찬호를 시작으로 동료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츤츤이에게 절대자를 상대할 수 있게 동료들을 키워달라고 해서인지 그들의 합격진은 한 사람을 상대하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상대가 반격을 할 수 없도록 끊임없이 공격이 들어왔고 간혹 반격을 하더라도 메인 탱커인 정찬호와 보조 탱커인 해진우, 최우혁이 합동해서 잘 막아냈다.
흠. 짧은 시간에 잘 키워놨네. 이 정도면 리치몬드급 몬스터는 상대할 수 있겠어.
리치몬드는 SS플러스 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다.
그 말은 이들이 모이면 SS급 몬스터 정도는 쉽게 제압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제 됐어. 대충 실력은 알았으니까.”
하지만 동료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형. 시작했으면 끝은 봐야지!”
정찬호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하며 달려들었다.
아마 내가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않아서 한껏 자만한 모양이다.
난 그런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웃으며 내공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그들은 내 기운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난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들을 한 명씩 간단히 제압했다.
그들은 너무 쉽게 제압당하자 바닥에 주저앉아 허탈한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그렇게 허탈해할 필요 없어. 그 정도 실력이면 SS플러스 급 몬스터 정도는 잡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강한 몬스터나 각성자와 붙게 되면 도리어 이렇게 허무하게 질 수도 있으니까 더욱 실력을 쌓아야 될 거야. 앞으로 상대할 놈들은 절대자급의 강함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들은 내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돌아보자 츤츤이도 대충 정리가 끝났는지 대부분이 바닥에 누워 기절해있거나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츤츤이는 쓰러져 있는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흥! 이제 불만은 없는 걸로 알고 내일부터 바로 수련에 들어간다. 빠지는 건 용납 못 하니까 내일 아침 6시까지 모두 여기로 모이도록!]
그리고 다음날부터 지옥 같은 훈련이 시작됐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