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난 급히 최태철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썩어 흘러내리는 살을 막는데 집중하고 있어서인지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사람 몸이 저 모양인 거지?!
하지만 물어볼 상대는 이미 죽고 없었다.
최태철은 간신이 목숨을 부여잡고는 있었지만 이대론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난 급히 그의 뒤로 다가가 그의 등에 양손을 얹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내 손길에 당황한 듯 몸을 흠칫 떨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런지 다른 반응은 없었다.
난 얼른 그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어 원인을 찾았다.
내공이 들어가자 고통에 그는 몸을 떨었지만 내가 돕는다는 걸 알았는지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어? 이거 마녀의 숲에서 봤던 검은 액체 아니야?!
내공으로 최태철의 몸을 살피던 난 그의 몸 안에서 검은 액체를 다량 발견했다.
하지만 검은 액체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졌는지 검은 액체 때문에 그의 몸이 녹고 있었다.
일단 검은 액체 때문에 몸이 녹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저것들부터 한 곳으로 모으자!
난 즉시 소량의 초열의 불꽃을 최태철의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검은 액체가 있는 곳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검은 액체는 초열의 불꽃을 피해 급히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그걸 보고 곧바로 다른 쪽으로도 초열의 불꽃을 살며시 집어넣어서 검은 액체들을 한 곳으로 몰았다.
하지만 이 작업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조금이라도 급하게 움직였다가는 최태철의 몸이 견디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난 드디어 검은 액체를 모두 한곳에 모으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소량의 검은 액체라면 초열의 불꽃으로 간단히 태워버리면 된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많은 양의 검은 액체를 한 번에 태웠다가는 최태철의 장기까지 모두 타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아주 소량씩 태워야 했다.
후. 지루한 싸움이 되겠네.
그 사이 바깥 정리가 대충 끝났는지 몇몇 무인들이 나와 최태철이 있는 방까지 들어온 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직 눈앞에 있는 검은 액체를 불태우는 일에만 집중했다.
난 조금씩 조금씩 검은 액체들을 가장자리부터 불태워 없앴다.
최태철이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꿈틀거렸지만 여전히 잘 참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하면 돼.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젠 거의 다 태우고 검은 액체도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 가슴 중앙에 모였던 검은 액체가 갑자기 위로 솟구치며 코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난 급히 내공을 거두고는 코를 통해 나오는 검은 액체를 재빨리 낚아챘다.
치이이익.
내 손에 들린 검은 액체는 내 몸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손바닥 위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근데 자세히 보니 예전에 봤던 검은 액체와는 다른 특성을 띠고 있었다.
이 검은 액체는 강력한 독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최태철처럼 내공이 강한 사람들의 몸도 녹여버릴 정도였다.
검은 액체의 성질을 파악하고 난 후 손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액체를 초열의 불꽃으로 태워버렸다.
그제야 최태철이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곤 날 보며 간신히 고개를 숙이고는 감사를 표했다.
아직도 피부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서서히 흘러내림도 멈추고 있었다.
“일단 몸부터 추스르세요. 인사는 나중에 받아도 되니까!”
그는 내 말에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난 그때서야 한시름 놓고는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는 무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구경들은 잘 하셨나요?”
내 질문에 구경하고 있던 이들은 다들 머쓱해했다.
그들 중에는 내가 처음 보는 이들도 있었는데 아마도 중립을 지키고 있던 이들인 것 같았다.
그때 도인처럼 긴 수염을 기르고 있는 노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날 보고 물었다.
“그대가 천의문 4대 계승자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맞아요. 내가 천의문 4대 계승자에요.”
“그럼 그걸 증명할 수 있겠소?”
“증명이라… 이미 내가 천의권을 사용하는 걸 많은 사람이 봤는데 또 보여야 한다는 건가요?”
난 즉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어차피 이들을 이끌기로 마음먹은 이상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 반응에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그대가 비록 몽유도에 일어난 반란을 막았다곤 하지만 그땐 다들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의 무공을 제대로 보고 판단했다곤 생각하지 않소. 그래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대가 천의문의 계승자임을 보이길 요청하는 것이오.”
하지만 난 일부러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한테 도움이 되는 게 뭐죠?”
노인은 내 말을 듣자마자 내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인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가 진정 천의문의 계승자로 인정받는다면 몽유도 전체는 그대를 주군으로 받들 것이오.”
그렇지. 저 말이 듣고 싶었다구!
내가 지금까지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한 것은 저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주안에게 천의문의 계승자가 몽유도를 이끌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제대로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좋아요. 그럼 당장 밖으로 나가죠.”
난 최태철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망설임 없이 밖으로 나갔다.
밖은 이미 밤이어서 밝은 보름달이 떠 있었다.
최태철을 치료하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간 모양이다.
마당에는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나오자 자리를 비키고는 공터를 만들었다.
“여기서 하면 되는 건가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혼자 펼치려니 심심한데 누군가 상대해줄 사람 없나요? 살살할 테니 걱정말구요.”
일부러 모여 있는 무인들에게 자극하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소문이 이미 퍼졌는지 그들을 무시하는 듯한 말에도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럼 재미가 없는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혼자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하죠.”
앞으로 나선 사람은 김주안이었다.
안 그래도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했는데 이 기회에 확인해 두는 것도 좋겠어.
“좋죠.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내가 천의문의 계승자임을 증명하는 자리인 만큼 난 천의권과 환영보만 사용했다.
환영보와 섞어 일권과 풍천각을 사용했고, 그녀는 뛰어난 보법을 사용해 내 공격을 피하긴 했지만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얼추보니 SS급 이상은 되는 것 같네.
하지만 김주안이 다칠까 봐 최대한 힘을 빼고 천의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날 처음 보는 이들 중 몇몇 사이에서 불만 섞인 속삭임이 들려왔다.
“천의권이 분명한듯하지만 저 정도 실력으로 우릴 이끌기는 어렵지 않나?”
“사칭이라곤 하지만 김민수가 더 강한 거 같은데… 혹시 요행으로 이긴 거 아닐까?”
난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화룡도를 소환했다.
그리곤 모두를 향해 말했다.
“아직도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까 제대로 된 천의권이 뭔지 보여드리죠.”
난 일부러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곳곳에서 헛바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 기운에 놀라서 저항하는 소리들이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한 번 바라봤다.
그리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서 작은 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단월.”
순간 내 화룡도에 의해 보름달이 반으로 잘렸다.
단순히 착각이겠지만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은 실제로 보름달이 반으로 잘리는 것처럼 느꼈다.
단월을 펼치고 나서 내뿜던 기운을 거뒀지만 사방은 정적만이 흘렀다.
그만큼 내가 펼친 단월은 압도적이란 말을 넘어 경이로울 정도였다.
실제로 펼친 나조차 달이 반으로 잘렸다고 믿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때 정적을 깨고 예의 도인처럼 길게 수염을 기른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난 저분이 천의문 4대 계승자임은 의심할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견이 있는 분 있으시오?!”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몽유도는 저분을 정식으로 천의문 4대 계승자로 인정바이오. 그리고 두 번째 절대 규칙에 따라 계승자께서 앞으로 몽유도를 이끌게 될 것이오!”
하지만 장내는 여전히 정적만이 흘렀다.
난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내가 그대들의 수장이니 말을 놓겠다. 만약 불만 있는 이가 있다면 지금 바로 내게 도전해라. 만약 이긴다면 난 주저 없이 내가 가진 권한을 넘길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따라라! 그대들은 강함을 동경해서 이곳에 모인 자들. 내가 그대들에게 무의 극한을 보여주겠다. 그러니 믿고 따라라!”
내 말이 끝나자 그제야 무인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웅성거림은 곧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을 보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김주안을 돌아봤다.
“이곳 몽유도에도 대표자들이 있어?”
“네. 바로 소집할까요?”
그녀는 내가 반말을 했지만 불편한 기색없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바로 소집해. 장소는 그대가 좋은 곳으로 안내하고.”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몇몇 사람들에게 가서 내 말을 전했다.
그리곤 저택을 나와 바다가 보이는 정자로 날 안내했다.
정자에 도착하자마자 몇몇 사람들이 정자로 찾아왔다.
모두 세 사람이었는데 그 중엔 아까 날 계승자로 공표한 노인과 조제암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나 정도로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이게 다야?”
내 물음에 김주안이 대답했다.
“원래 두 명이 더 있지만 배신한 자들이라 배제했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내 이름은 박태준이다. 일단 각자 소개부터 들어볼까.”
내 말에 모인 이들은 각자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전 몽유도의 재정을 관리하는 김주안이라고 해요.”
“몽유도의 지당을 이끄는 조제암이라고 하오.”
“전 몽유도의 인당을 맡은 권세훈이라고 합니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노인의 소개가 이어졌다.
“몽유도의 원로를 대표하는 심곡이라 하오.”
소개가 끝난 후 김주안을 통해 몽유도의 전체적인 구조에 대해 들었다.
몽유도의 무인은 실력에 따라 인당, 지당, 천궁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들 외에 은퇴한 무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있는데 그들을 원로회라고 불렀다.
원로회의 경우 몽유도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비무대회에서 우승한 이의 명령에도 불복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유일하게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천의문 계승자뿐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몽유도의 구조를 대충 이해한 난 모인 이들을 향해 폭탄 발언을 했다.
“좋아. 앞으로 우린 몽유도를 떠난다!”
“네? 뭐라구요?”
“그게 무슨 말이오?”
갑작스러운 내 말에 거기 있던 모두 깜짝 놀라며 날 쳐다봤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