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반란이라구요? 천의문 계승자를 사칭하는 놈이 반란을 일으킨 건가요?”
하지만 그는 내 질문엔 대답도 하지 않고 김주안을 다그쳤다.
“빨리 가야 돼. 그렇지 않으면 그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조제암의 말에 김주안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설마 벌써 천궁이 뚫린 건가요?”
“아직 거기까진 못 갔지만 그놈들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뚫리게 될 거야!!”
거기까지 말을 들은 나는 그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어서 가야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빨리 그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요! 상황 설명은 가면서 하고!”
그 말에 조제암과 김주안 모두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뭐해요?! 빨리 안내하라니까!”
“어…? 그, 그래…. 이쪽이다.”
내가 다시 한번 다그치자 조제암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한 후 앞장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난 그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고, 김주안은 그런 내 모습을 인자한 미소로 잠시 바라보다 뒤따라왔다.
가는 길에 조제암은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날 배려해서인지 계승자를 사칭하는 자가 들어온 시점부터의 일을 간략히 설명해줬다.
지금 천의문 계승자를 사칭하는 사람의 이름은 김민수라고 했다.
김민수는 얼마 전 홀로 몽유도에 나타났다.
그리곤 자신을 천의문 4대 계승자라고 주장하며 증거로 천의권을 펼쳐 보였다.
그가 펼친 천의권은 전설 속에서처럼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였고 이에 많은 이들이 그가 진정한 계승자라고 믿게 됐다.
하지만 반대로 의심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아까 김주안의 말대로 그가 펼친 천의권은 껍데기만 흉내 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천의권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를 한 이들의 생각일 뿐 그걸 증명할 길은 없었다.
그래서 분위기는 김민수가 천의문 4대 계승자라는 걸로 거의 의견이 모이고 있었다.
그때 지난 비무 대회에서 우승하고 몽유도를 이끄는 최태철이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왔다.
그리곤 김민수의 천의권을 본 다음 계승자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김민수는 그 이유를 물었고 최태철은 그 물음에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아닌 걸 아니라고 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그 말에 김민수는 최태철을 잠시 노려보다 돌아갔고 곧 각성한 무인들을 규합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뭔가 중간에 많이 생략된 것 같지만 일단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았다.
그때 멀리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우린 더욱 속도를 올려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도착한 곳은 커다란 저택이었다.
대문 앞에는 십여 구의 시체가 보였고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결국 천궁도 뚫렸구나!”
여기가 아까 조제암이 말한 천궁인 모양이었다.
조제암은 잠시 멈춰서서 시체들과 열린 대문을 바라보다 안으로 몸을 날렸다.
저택의 안쪽에는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넓은 마당이 보였고 그 끝에는 저택 내부로 진입하는 문이 보였다.
그곳엔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한쪽은 안으로 들어가려했고, 다른 쪽에선 그걸 제지하고 있었다.
일단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리는 게 좋겠어.
난 마녀의 숲에서 했던 방법을 떠올리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공을 실어 고함을 질렀다.
“다들 멈춰라!!”
내공이 잔뜩 담긴 내 목소리는 마당을 퍼져나가며 싸우던 무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한창 싸우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라 싸움을 멈추고는 나를 돌아봤다.
옆에 있던 조제암은 내 행동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김주안은 의외란 표정을 하긴 했지만 입은 계속 흐뭇한 미소로 가득했다.
난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받으며 천천히 마당을 가로질러 내부로 통하는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넌 누구냐?”
난 말을 한 이를 환하게 웃으며 쳐다봤다.
그는 대머리의 노인이었는데 입고 있는 흰옷은 곳곳이 피에 젖어 있었다.
앞으로 이들을 이끄려면 처음부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겠지! 애초에 이들의 선조들이 천의문을 따랐던 이유도 해무율의 압도적인 무력을 봤기 때문일 테니까!
마음을 먹자 난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내가 누구냐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내 주위론 내공이 악마와 같은 형상을 띄며 퍼져나갔다.
“어, 어떻게… 인간이 이런… 기운을?!”
그는 더듬거리며 내 기운에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건 거기 있던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내가 뿜어내는 기운에 저항하기 위해 있는 대로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웃으면서 그들 사이에서 걸어왔다.
“장난은 그쯤 하지.”
그 사람은 나보다 몇 살 많은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못생긴 남자였다.
그는 어울리지 않게 노란색 개량한복 같은 걸 입고 있어 더 못생겨 보였다.
저놈이 김민수구나.
보자마자 그놈이 김민수란 걸 알 수 있었다.
주위에서 그가 나서자 모두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길을 비켜줬기 때문이다.
난 그를 보고 마주 웃으며 기운을 거두고 말했다.
“네가 김민수구나?”
그는 내가 자기 이름을 알자 웃으며 물었다.
“날 아나 봐.”
“잘 알지. 천의문을 사칭하는 놈이잖아. 맞지?”
“사칭?!”
사칭이라는 말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난 그걸 보고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왜? 아니야?”
“흥.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나타나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는 것이냐!”
아무래도 굉장히 민감한 사안인 데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인지 그는 일부러 약간 격하게 반응했다.
“내가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지?”
“보나 마나 저놈들이 말했겠지.”
그는 턱을 들고 내 뒤에 있는 조제암과 김주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도 맞지만 네가 가짜라는 걸 내가 확신하는 이유는… 내가 진짜 천의문 4대 계승자이기 때문이지!”
“뭐?!”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그는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건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몽유도의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천의문 계승자라고 얘기하며 나타난 사람은 이전까진 한 사람도 없었다.
근데 갑자기 천의문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두 명이나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모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흥! 네가 천의문 4대 계승자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그는 태연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당황하고 놀란 모습을 감출 순 없었다.
난 그를 한 번 보다 김주안을 보며 물었다.
“내가 천의문 4대 계승자라는 건 어떻게 증명하면 되죠?”
김주안은 갑작스런 내 행동들에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천의권을 보여주시면 돼요. 진짜 천.의.권을 말이죠!”
그녀는 천의권이란 말을 한자한자 힘줘서 내뱉었다.
“아! 간단하네요. 이런 거 말이죠? 일권!”
말이 끝나자마자 김민수를 향해 일권을 펼쳤다.
푸콰콰콱.
어마어마한 강기의 소용돌이가 김민수를 덮쳤다.
하지만 김민수도 미리 대비하고 있었는지 마주 주먹을 내지르며 외쳤다.
“일권!”
그의 주먹에서도 강기가 터져 나왔는데 내가 펼친 일권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직접 주먹을 섞어보니 아까 김주안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흉내만 내고 알맹인 완전히 다르다고 하더니 진짜 그렇네.
그가 펼친 일권은 외형만 보면 내가 펼친 일권과 굉장히 흡사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힘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내 내공의 대부분은 아이템이나 코인을 먹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천의심법을 통해 만들어진 내공과 성질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수련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템이나 코인을 먹고 생겨난 내공들도 천의심법으로 만들어진 내공과 같은 성질을 띠고 있었다.
그건 천의권을 펼치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천의심법의 내공이 아닌 다른 성질의 내공으로 천의권을 펼치면 그 위력을 제대로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의심법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로 천의권을 계속 펼친다면 나중엔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다고 츤츤이가 말해줬다.
마치 경유차를 타는데 휘발유를 주유한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안 건지는 모르지만 김민수가 펼친 일권은 진짜 천의권이었다.
하지만 그건 모양만 갖췄을 뿐 천의심법을 기반으로 한 일권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 수 없었다.
근데도 내 일권과 비슷한 힘을 내는 걸로 봐서 다른 기술과 함께 사용해서 위력을 보완한 듯했다.
“재밌네. 일권을 제대로 흉내 낼 줄 알잖아!”
하지만 김민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진짜 일권을 사용해서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어디 얼마나 따라할 수 있는지 볼까!”
그리곤 곧바로 2식 풍천각을 시전했다.
그러자 김민수 역시 풍천각을 사용해 내 공격을 막았다.
난 연이어 파천과 풍참까지 사용했다.
대신 무기는 사용하지 않고 일부러 예전처럼 손으로만 천의권을 펼쳤다.
그때까지도 그는 계속 같은 기술을 사용하며 제법 잘 막아내고 있었다.
“좋네. 어디서 배운 건지 몰라도 정말 제법이야. 그럼 어디 이것도 막나 볼까! 단월!”
내 손을 따라 단월이 펼쳐졌다.
하지만 위력은 도를 가지고 시전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났다.
그건 앞서 시전한 파천이나 풍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무기를 가지고 천의권을 사용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다.
천의권은 맨손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다.
단월이 펼쳐지자 김민수는 살짝 고민하는 얼굴을 하다 이내 결심을 했는지 손을 들어 단월을 막았다.
같은 단월을 펼쳐서 막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손으로 막았다.
단월을 말이다.
콰콰쾅.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마당에 있던 모래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단월을 이런 식으로 막을 수도 있어?!
흩날리는 모래 먼지에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가 단월을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미 단월은 몇 번 막힌 적이 있는데다 도를 사용해 펼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막았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내가 놀란 그가 막은 방법이다.
단월이 그의 팔에 닿기 직전 그의 팔이 엄청난 속도로 진정을 하기 시작하더니 공기를 밀어냈다.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공기가 내 손을 막아섰고, 그걸 자르자마자 강한 폭발이 일어나며 단월을 펼친 손을 밀어냈다.
이런 식으로 막으면 자기도 상처를 입을 텐데… 뭐지?
하지만 모래 먼지가 걷힌 다음에 나타난 그의 팔은 멀쩡했다.
그러나 그보다 나를 놀라게 한 건 그의 얼굴이었다.
모래 먼지가 걷힌 후 모습을 드러낸 김민수는 얼굴에 소의 형상을 한 탈을 쓰고 있었다.
“어, 어?! 소탈?!”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