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그녀의 말에 의하면 대격변 후 몽유도의 무인 중에서도 각성자들이 나왔다고 한다.
처음엔 일반 무인들은 각성한 무인의 능력을 기연을 얻은 정도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자 서서히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각성한 무인들을 추방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일반 무인들의 주장은 무인이라면 노력과 깨달음을 통해 힘을 얻어야하기 때문에 각성을 통해 얻은 힘을 쓰는 무인은 진짜 무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각성한 무인들은 고향을 떠날 수 없다며 반대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무인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현재는 소강상태이긴 하지만 이틀 후에 있을 비무 대회에서 분명 대규모 충돌이 있을 거예요. 각성한 무인이 비무를 이기게 되면 일반 무인들이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죠. 근데 얼마 전 이상한 사람이 몽유도에 찾아왔어요.”
“이상한 사람이요?”
“그는 자신을 천의문 4대 계승자라고 했어요.”
“네? 천의문이요?!”
여기서 갑자기 천의문이 왜 나오지?
“놀랐나요? 다른 사람이 천의문 계승자라고 사칭해서?”
난 그녀의 말에 더욱 놀랐다.
“그게 무슨…?”
“그렇게 놀랄 거 없어요. 혹시 몽유도를 세운 사람이 누군지 아나요?”
“누군데요?”
“몽유도를 처음 세운 사람은 해무율이에요.”
“네? 해무율이요?”
해무율이면 천의문 2대 계승자잖아. 그 사람이 몽유도를 세웠다고? 근데 내가 천의문 계승자라는 건 어떻게 아는 거지?
그녀는 반응을 보고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웃으며 말했다.
“해무율이 누군지 아는 걸 보니 내 예상이 맞았네요.”
“진짜 천의문 2대 계승자인 해무율이 몽유도를 세운 건가요?”
“맞아요. 근데 그보다 내가 어떻게 태준 씨가 천의문 계승자인지 아는 게 궁금한 거죠?”
“네, 어떻게 안 거죠?”
난 더 숨기지 않았다.
“태준 씨가 공격력을 측정할 때 철덩어리를 자른 기술. 그건 천의권의 단월이란 기술을 변형한 거 아닌가요?”
“어? 단월도 알아요?”
그녀 말대로 단월을 변형한게 아니라 오리지널 기술을 사용한 거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 가문을 세우신 조상님께서 천의문 3대 계승자세요.”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은 놀라웠다.
해무율이 말년에 정착한 몽유도에는 그를 선망해 따르던 무인들도 대거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자연스레 마을이 됐고, 점차 그 규모가 커졌다.
해무율은 자신이 있을 때는 괜찮지만 자신이 죽고 나면 분명 이들끼리 문제가 발생하리라 생각하고 두 가지 절대 규율을 만들었다.
그 첫 번째가 10년에 한 번 있는 비무대회다.
그리고 거기서 우승한 사람이 몽유도를 이끄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절대 규율은 뭐죠?”
내가 적극적으로 물어보자 그녀는 잠시 날 인자한 얼굴로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두 번째 절대 규율은 바로 천의문 계승자가 나타난다면 몽유도의 모든 이들이 그를 따라야 한다는 거예요.”
“네? 왜 그런 규칙을 만든 거죠?”
“결국 몽유도가 만들어진 건 천의문 때문이에요. 그래서 천의문의 계승자가 몽유도를 이끄는 건 당연한 거죠. 첫 번째 규칙은 혹시라도 천의문 계승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를 대비한 장치라고 보면 돼요.”
난 그제야 이해를 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천의문 3대 계승자는 어떻게 된 거죠?”
내 질문에 그녀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해무율 님에게 천의문의 무공을 전수 받고 계승자가 된 선조께서는 한동안 몽유도를 이끌다가 잠시 나갔다 온다며 대륙으로 떠나셨어요. 그리곤 소식이 끊기셨죠. 저흰 계속 기다렸지만 돌아오시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비무 대회를 열어 몽유도를 이끌 무인을 새로 뽑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온 거예요.”
“근데 얼마 전 천의문 4대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단 거죠? 근데 저한테 이런 말 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을 가짜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이유가 뭐죠?”
“그건 그가 펼친 천의문의 무공 때문이에요. 언뜻 보기엔 전설 속의 천의권이 확실하지만 평생을 천의권만 연구한 제 눈엔 아니었어요.”
“평생 천의권만 연구했다구요?”
난 놀란 눈을 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3대 계승자이신 선조께서 남기고 가신 천의권에 대한 내용이 있거든요. 우리 가문은 대대로 그것들을 연구해왔어요. 그래서 천의권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근데 천의권 4대 계승자라는 사람이 펼친 천의권은 위력만 보면 전해지는 것처럼 엄청나지만 실제 알맹이는 완전히 다르단 느낌을 받았어요.”
“그럼 저한테선 제대로 된 천의권의 느낌을 받았다는 말인가요?”
“그래요. 태준 씨가 도를 소환해 철덩어리를 잘라내는 걸 보고 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왜냐하면 천의권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권법이니까요. 근데 태준 씨가 나가고 난 후 철덩어리의 단면을 자세히 살펴보곤 단월이 맞다고 확신했어요. 그래서 나중에야 태준 씨한테 전음을 보낸 거구요.”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걸 보니 저보고 몽유도에 같이 가달라는 말을 하려는 거죠?”
“맞아요. 같이 가줄 수 있어요?”
“흠, 가서 뭘 하면 되는 거죠?”
“당연히 태준 씨가 진실한 천의권의 계승자라는 걸 증명해야죠. 그리고 몽유도를 이끌어줘요.”
난 잠시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근데 그 계승자를 사칭하는 사람이 특별히 몽유도에 피해갈 행동을 했나요?”
내 질문에 그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가 각성한 무인들을 결집해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고 있어요. 아직 그가 정식으로 천의권의 4대 계승자로 인정받지 못 했기 때문에 그런 듯싶어요.”
“그럼 다른 사람들도 그가 천의권 계승자가 아니란 생각을 가지고 있단 거죠?”
“네. 그래서 지금 몽유도는 완전히 분열된 상태에요.”
“혹시 방어력을 측정했던 노인도 몽유도 사람인가요?”
“맞아요. 그분 성함은 조제암이에요. 저와 같이 천의문 계승자에 대해 의문을 품던 분인데 제가 태준 씨에 대해 얘기하자마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큰 소리로 웃으시며 고갤 끄덕이시더니 몽유도에 먼저 가 있겠다며 들어가셨어요.”
거기까지 들은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흥미는 생기는데 지금 가는 게 맞을까?!
아무래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같이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가서 잘만 해결하면 몽유도라는 큰 힘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히든 보스와 싸울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좋아요. 갈게요. 근데 이렇게까지 보안을 유지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냥 커피숍에서 얘기해도 될 것 같은데….”
“조심해서 나쁠 거 없죠. 출발은 언제 가능해요?”
“전 지금 당장도 갈 수 있어요. 근데 저한테 계속 꼬리가 붙을 거 같아서 약속 장소랑 시간을 알려주시면 꼬리 떼고 시간 맞춰 갈게요.”
“그럼 잠시 후 2시 30분에 인천항에서 이작도로 출발하는 배가 있어요. 그 배 안에서 만나도록 해요.”
난 알겠다고 말한 다음 그녀와 헤어졌다.
밖으로 나온 다음 잠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몽유도라….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천의문과 연결고리를 찾았네. 츤츤이랑 같이 가면 참 좋을 텐데….
하지만 시간도 촉박한 데다 일단은 혼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츤츤이는 나중에 여유 있을 때 데리고 와도 되니까 말이다.
어차피 한아름과 월야 길드에 대한 정보 조사하는데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테니 그사이 갔다 오면 되겠지. 근데 천의문 계승자를 사칭하는 놈은 어떤 새끼지?
지금 제일 궁금한 건 그거였다.
천의문을 사칭할 수는 있다.
하지만 천의권까지 흉내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실전된 지 이천년이나 되는 무공이기 때문이다.
가보면 알겠지. 어떤 새끼가 장난치는 건지.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 시간을 보니 1시가 조금 넘었다.
배 시간이 2시 반이라고 했으니 슬슬 나가볼까!
커피숍 밖으로 나오자 날 따라붙는 미세한 기가 또 감지됐다.
그새 꼬리가 붙은 거야? 빠르기도 하셔라!
난 숨어있는 이의 위치를 파악한 후 아까처럼 순식간에 불태웠다.
그리곤 건물 옥상들을 이용해 감시카메라를 피하며 인천항으로 이동했다.
감시카메라를 피하며 달려서인지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려서 도착하니 2시 20분이었다.
표를 살까하다 그럼 또 카메라에 노출이 되기 때문에 몰래 배에 올라탔다.
그러자 곧 김주안의 전음이 들려왔다.
[시간 맞춰 와줘서 고마워요. 태준 씨가 외부로 노출되길 꺼리는 것 같으니 이작도에 도착하면 만나기로 해요.]
그 소릴 듣고는 배의 지붕 위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맑은 하늘과 갈매기 울음을 듣고 있자니 왠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모두 꿈같이 느껴졌다.
웹소설 ‘회귀자’를 읽고서 소설 속 주인공이 된 일.
현실로 돌아와서 츤츤이와 한 일년 간의 지옥 같은 수련.
대격변과 그 후 만난 사람들과 벌어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평범했던 그때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고 화를 내던 일상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그때는 그렇게나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배가 이작도에 도착을 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섬에 내려서자 김주안이 다가왔다.
“여기서부터 몽유도까지는 배가 없어요.”
“배가 없다구요? 그럼 이작도에서 몽유도까지 이어진 건가요?”
하지만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부터는 경공을 사용해서 바닷길 위를 달려야 돼요.”
“예? 바다 위를 달린다구요?”
놀란 내 모습을 바라보며 김주안은 미소를 지었다.
“정확히는 바닷길이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직접 보면 알 거예요.”
그녀를 따라 인적이 없는 이작도 반대편으로 가자, 그녀 말이 뭘 뜻하는지 알았다.
수면 바로 아래에 돌들이 올라와 있는 게 보였는데, 아마도 저걸 밟고서 가면 몽유도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 모양이었다.
“저기 돌들로 만들어진 길이 보이죠. 저걸 우린 바닷길이라고 불러요. 저걸 밟고 들어가야지만 진법을 통과할 수 있어요.”
바닷길은 돌과 돌 사이 간격이 상당히 넓어서 일반인들은 절대로 넘지 못 할 거리였다.
각성자라 하더라도 A급 이상 각성자가 아니라면 쉽게 이동하지 못 할 것 같았다.
“그럼 가볼까요! 내가 먼저 갈 테니 뒤따라오면 돼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바닷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나도 그녀 뒤를 바짝 따라붙으며 바닷길을 달렸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닿자 기분 전환이 됐다.
그렇게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달리다 보니 갑자기 사방이 뿌연 안개로 뒤덮였다.
여기부터가 진법의 영향권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앞에서 김주안의 외침이 들렸다.
“여기서부턴 조심하세요. 진법이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조금 더 안으로 들어오자 안개가 걷히고는 아름다운 섬이 눈앞에 나타났다.
섬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규모도 상당히 컸다.
우와! 이런 크기의 섬을 이천 년 동안이나 감춰왔다고? 대단하네!
감탄하며 섬에 내려서자마자 누군가 우릴 향해 급히 달려오는 게 보였다.
가만히 보니 내 방어력을 측정했던 노인이다.
조제암이라고 했었나? 근데 뭐가 저리 바쁜 거야?!
그는 순식간에 우리 앞으로 달려오더니 날 한 번 힐끗 보고는 의아해하는 김주안을 향해 다급히 말했다.
“그 미친 새끼가 결국 일을 쳤다.”
“네? 설마 반란인가요?”
뭐? 반란?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