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갑자기 마스터 랭크와 대결한다고? 너무 급전개 아니야? 나야 좋지만 그래도 항의하는 척이라도 해야겠지?!
“야이, 씹새야! 갑자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여러분. 선수가 흥분한 거 보이시나요? 이번에야말로 재밌는 승부가 펼쳐질 거 같네요. 어서들 배팅하세요!]
스피커에서는 오히려 내 반응을 이용해 흥분된 목소리로 더 많은 배팅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 개새끼야! 네 멋대로 이렇게 하는 게 어딨냐고!”
[하하하. 걱정 마세요.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랭크가 마스터로 조정될 테니까요! 물론 이겼을 때지만.]
마스터 랭크라고? 그럼 땡큐지.
내심 기뻤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계속 화난 표정으로 씩씩거리고 있는데 반대편 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왔다.
“어? 마재형?”
걸어온 사람은 마재형이다.
분위기가 범상치 않더니 마스터 랭크였어?!
완전히 예상 못 한 건 아니지만 직접 확인하니 느낌이 달랐다.
그때 기계음과 함께 바닥에 솟은 송곳들이 점점 들어가며 바닥 안으로 사라졌다.
[배팅이 모두 끝났습니다. 이번엔 좀 더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기장에 적용된 장애물을 없앴습니다. 즐거운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스피커에서 나오던 소리가 끝나자 마재형은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태준 씨랑 이렇게 빨리 붙게 될 줄은 몰랐네요.”
“흥! 인사는 됐고, 어서 붙자고. 피곤하니까!”
“자신감 넘치는 모습 아주 좋아요. 근데 혹시 숨기고 있는 실력이 있다면 지금 다 보여주는 게 좋을 거예요. 아까까지 보여준 실력이 다라면 금방 저한테 잡아먹힐 테니까요.”
그리곤 씨익하고 미소를 짓는 그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방금 뭐였지? 뭔가 다른 게 언뜻 스쳐 지나간 것 같은데…!
조금 전 마재형이 웃을 때 그의 얼굴에 다른 뭔가가 슬쩍 나타났다 사라졌었다.
몬스터는 아니고 확실히 다른 거였다.
그게 뭔지는 싸워보면 알겠지!
“네가 말한 약육강식의 법칙대로 어디 한 번 누가 잡아먹히나 보자고.”
난 빠르게 마재형을 향해 달려가며 그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여유 있게 내 주먹을 피하며 반격을 했다.
콰쾅.
미처 피하지 못한 내 몸에 그의 주먹이 닿으며 난 소리다.
그 충격에 한참을 날아가 반대편 벽에 부딪힌 난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재형을 노려봤다.
방금 그 공격은 뭐였지? 뭔가 이상한데…?
뭔지 분명하진 않지만 공격에 맞았을 때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흥! 좀 하네. 이번엔 내 차례다!”
그게 뭔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오글거리는 대사를 내뱉으며 마재형을 향해 다시 달려갔다.
몇 번의 공방이 오간 후 이번에도 역시 그의 공격에 맞아 폭음과 함께 내 몸은 뒤로 날아갔다.
이제 알겠네. 저 개새끼의 정체가 뭔지!
그와 싸우기 전 느꼈던 섬뜩한 느낌.
거기다 그의 공격을 처음 맞았을 때의 위화감.
처음엔 그게 뭔지 정확히 몰랐지만 몇 차례 공방을 거치다 보니 알게 됐다.
이 개새끼들. 대체 저 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합쳐 놓은 거야?!
그가 내 공격을 피할 때와 공격 할 때 발산되는 기가 달랐다.
기는 한 사람의 고유한 성질이기 때문에 공격할 때와 회피할 때의 기가 다를 수 없다.
근데 마재형에게선 다른 기가 느껴졌다.
공격과 회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순간들에서도 언뜻언뜻 다른 종류의 기들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몬스터가 아닌 인간의 기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저 몸 하나에 여러 사람들이 융합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개새끼야. 대체 얼마나 많은 각성자들을 잡아먹은 거야?!”
내 말에 그는 살짝 놀란 듯 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보기보다 눈썰미도 좋네요! 태준 씨는 특별히 맛있게 먹어줄게요!”
이번엔 마재형이 먼저 날 향해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그를 보는 내 눈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그건 마재형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지만 이곳을 만든 이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이 곳에서 하는 실험은 몬스터와의 융합뿐만 아니라 각성자들과의 융합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안 이상 굳이 여기서 마재형을 상대할 필요가 없어졌다.
훅.
내 몸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환영보를 쓴 것이다.
마재형은 내가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지자 당황했는지 멈춰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다 이 개새끼야!”
난 마재형 뒤에 나타나 무차별적인 구타를 시작했다.
퍼퍽. 퍽. 퍽.
마재형은 내 공격을 맞으면서 반격을 하기도 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때렸다.
공격도 그가 딱 죽지 않을 정도의 위력으로 해서인지 고통스러워하긴 했지만 정신을 잃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한동안 계속 맞던 마재형의 얼굴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하, 한 번만 봐주세요…. 아파요….”
갑자기 봐달라고 사정을 하다가도 잠시 후 다른 얼굴로 변해 막 화를 내기도 했다.
“널 통째로 갈아 먹어 주겠어. 으아아아아! 죽여 버릴 거야!”
그 후에도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그 얼굴들 속엔 여자아이의 모습도 있었고,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이 저 새끼 안에 들어 있는 거야?!!
그걸 보자 오히려 마재형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그도 실험체일 뿐일 테니까 말이다.
이 개새끼들. 오늘 여길 완전히 갈아엎어 주마!
애초에 세웠던 계획이고 뭐고 필요 없이 그냥 다 박살내기로 했다.
이런 곳은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야 한다.
마음을 먹자마자 마재형을 보고 말했다.
“다들 이제 그만 편히 쉬어라.”
그 말과 함께 온 힘을 다해 일권을 날렸다.
콰콰콰콰
엄청난 위력의 강기가 마재형의 몸을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순간 내 착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 마재형의 얼굴이 고맙다는 듯 날 보고 미소 짓는 것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마재형을 죽인 나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스피커에서 나올 다음 안내를 기다렸다.
바로 그때 스피커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오오오! 여러분 보셨습니까?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습니다. 저 정도면 챔피언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 듯합니다. 다들 챔피언과 새로운 강자와의 결전을 기다려 주십시오!]
그걸 끝으로 스피커에서 다른 목소리는 더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방송이 종료된 듯 했다.
난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직원이 날 안내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직원은 오지 않았다.
뭐지? 왜 아무도 안 오는 거야?!
불안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순간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웠다.
어?
그리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젠장! 당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며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 * * * *
위이이이잉.
시끄러운 소리에 난 번쩍하고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뭔가에 단단히 묶여 있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힘을 줘서 끊으려 했지만 상당히 단단한 물질인지 힘으론 끊어지지 않았다.
일단 침착하고 몸상태부터 점검해보자.
몸 구석구석 내공을 움직여 점검을 했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좋아. 몸에 이상은 없는데… 여긴 어디지?
난 즉시 기감을 확장해 주변을 살폈다.
현재 머리도 결박되어 있어 돌릴 수가 없기 때문에 기감으로 주위를 파악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흠. 원형으로 생긴 방이고 두 명이 있네. 두 명 다 일반인이고… 방 밖에는 경비로 보이는 각성자가 세 명 지키고….
대충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흰 가운을 입은 누군가가 다가왔다 눈을 뜬 나를 보곤 놀라며 말했다.
“박사님. 이 실험체 벌써 깼는데요!”
“뭐? 벌써 깼다고?!”
그 말에 다른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급히 내 앞으로 왔다.
6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왜소한 체격의 남자였다.
그는 내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고는 내가 눈뜬 걸 확인하더니 다시 한번 놀랐다.
“그 정도로 가스를 흡입했는데도 벌써 깼다고? 이번 실험체는 정말 흥미롭군.”
혼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는 이번엔 나를 향해 말했다.
“이봐, 내 소리 들려?”
“잘 들려. 근데 여긴 어디지?”
하지만 그는 내 질문엔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혼자 중얼거렸다.
“눈만 뜬 게 아니라 정신마저 멀쩡하다고? 이게 가능한 건가?!”
“야! 내 말 안 들려? 여기 어디냐고?!”
내가 버럭 소릴 지르자 자신의 생각이 방해를 받아 기분이 상했는지 그 남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실험체면 실험체답게 얌전히 있어.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다시 약을 쓸까 아님 그대로 실험을 할까?”
보아하니 저 새끼도 실험에 미친놈인 것 같네. 일단 몸을 묶고 있는 이것들부터 풀어보자!
난 온몸에 초열의 불꽃을 일으켰다.
그러자 내 몸을 파란색 불꽃이 뒤덮었다.
내 앞에 있던 남자는 갑작스러운 열기에 화들짝 놀라 내게서 떨어졌다.
그리곤 조수로 보이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어서 가드 불러와. 실험체가 이상한 짓을 하는 거 같으니까!”
그의 말에 조수가 급히 밖으로 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사이 날 구속하고 있던 장치들은 초열의 불꽃에 녹아내렸다.
그제야 난 초열의 불꽃을 거두곤 박사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랑 얘기 좀 할까?”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코웃음 쳤다.
“흥! 실험체 따위와 말 섞을 생각 없다.”
그때 밖에서 조수와 함께 가드로 보이는 각성자 세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을 본 박사는 가드들에게 화를 냈다.
“이 병신같은 것들아! 실험체가 도망가기 전에 잡아!”
가드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저들 역시 여러 각성자와 융합된 상태인 것 같았다.
그걸 보자 다시 잊고 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곤 박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넌 잠깐 기다려. 저것들 처리하고 금방 올 테니까!”
콰쾅. 쾅. 퍼퍽.
난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가드들을 순식간에 죽였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박사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박사의 얼굴에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왜 당황하지 않는 거지?
그때 아까 경기장에서처럼 머리가 핑 돌았다.
그걸 느끼자마자 난 급히 숨을 멈추고 초열의 불꽃을 온몸에 둘렀다.
타탁. 탁.
어디선가 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더는 머리가 어지럽거나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 몸을 들어오려는 가스를 초열의 불꽃이 다 태워버린 모양이다.
난 온몸에 초열의 불꽃을 두른 상태로 박사를 쳐다보며 웃었다.
“이제 끝났어?”
그제야 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이 실험체 따위가…!”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