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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방어력 무한-95화 (95/196)

95화

서울 종로는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대격변 후 일 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지나면서 종로의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대격변 당시 유성의 충돌로 파괴된 건물들은 말끔히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들이 대거 들어섰다.

그러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게 되면서 젊음의 거리로 급부상했다.

거기다 최근에는 이동 포탈로 인해 외국인들까지 많이 몰리면서 완벽한 국제거리로 변모했다.

각성자 등급 측정소는 그런 종로의 중심지인 G타워에 있었다.

G타워는 50층짜리 고층 건물로 대격변 이후 지어진 후 종로의 랜드마크가 됐다.

“흠, 여기가 G타워구나…. 높네…!”

50층짜리 건물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어지러울 정도로 높았다.

G타워는 50층이라고 하지만 높이는 63빌딩보다 높았다.

그 이유는 건물 안에 각성자 측정소와 각성자들을 위한 대련실 등이 마련되어 일반 건물보다 층고가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에서 경비원이 가로막으며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각성자 등급 측정하러 왔는데요!”

“처음 오시는 건가요? 들어가시려면 신분 확인을 해주셔야 합니다.”

생각보다 출입 절차가 까다롭네.

난 아이즈를 통해 신분증을 보내고 출입승인을 기다렸다.

잠시 후 신분 확인이 끝났는지 경비원이 길을 열어줬다.

“각성자 등급 측정소는 5층에 있습니다. 올라가시는 엘리베이터는 정면으로 쭉 걸어가시면 왼편에 있습니다.”

출입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출입승인이 된 사람에게는 굉장히 예의 바르게 대했다.

로비를 지나며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꽤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각성자 등급 측정소에 가시나요?”

말을 건 사람은 훤칠하게 생긴 나와 비슷한 또래 남자였다.

말끔하게 정장을 빼입은 그를 보자 전형적인 영업사원의 냄새가 났다.

“그런데요.”

내 대답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명함을 건넸다.

“전 한빛 에이전시의 이태훈이라고 합니다.”

명함에는 한빛 에이전시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팀장 이태훈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근데 무슨 일이시죠?”

“등급 측정은 처음이신 것 같은데 맞으세요?”

난 인정한다는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직 소속된 길드는 없으시겠네요? 아님 혹시 소속된 길드가 있으신가요?”

그 말을 듣자 그가 하는 일이 짐작됐다.

등급 측정을 처음 하는 각성자를 대상으로 측정 후 결과가 나오면 그에 걸맞은 길드를 소개해주고 소개비를 받는 일을 하는 사람 같았다.

역시 영업사원 맞구나.

난 어쩌나 보자는 심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소속된 길드는 없네요.”

내 말에 그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정말 잘됐네요. 그럼 측정 등급이 나오면 그에 맞는 최고의 길드를 추천해드릴게요.”

“공짜는 아니겠죠?”

내 질문에 그는 약간 뜨끔 하는 듯했지만 곧 능청스럽게 말했다.

“약간의 수수료가 있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길드까지 다 들어가고 난 후의 일이니까 일단 지금은 등급 측정부터 하도록 하죠!”

난 더 묻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근데 등급 측정은 어떤 식으로 하는 거죠?”

난 미리 검색해 보지 않아서 등급 측정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소설 속에 있을 때도 이미 등급이 나와 있었기 때문에 등급측정은 해본 적이 없었다.

“등급 측정은 발현한 능력에 따라 심사 기준이 달라져요. 혹시 무슨 능력을 발현했는지 알 수 있나요?”

난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다 순간 망치로 머릴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내가 발현한 능력이 뭐지?

지금까진 아무 생각 없이 무한한 방어력을 각성 능력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각성 능력이 아닌 스킬이었다.

그 말은 난 지금까지 무슨 능력을 발현했는지도 모른 채 지내왔다는 거다.

어떤 능력을 발현했는지는 나중에 찾기로 하고 일단 적당히 둘러댔다.

“방어력 하나는 뭐, 최고죠.”

내 말에 그는 내가 각성한 능력이 육체 강화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육체강화 좋죠. 요즘처럼 활발하게 던전 공략이 이루어지는 시기엔 최고로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에요.”

“…그런 가요…?”

“그럼요. 그리고 육체 강화 능력이면 기본적으로 방어력에 대한 실험을 하게 될 거예요.”

“그럼 방어력에 대한 시험만 보는 건가요?”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공격력이나 민첩, 힘 등의 모든 능력치를 다 보지만 방어력에 가산점이 많이 붙는다는 말이었어요.”

“아! 그렇군요.”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그때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저거 정기범 아닌가?”

응? 정기범?

한참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내 귀에도 정기범이라는 말은 들렸다.

정기범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뛰어난 외모와 엄청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어 고등학교 때까지 육상 선수로 활동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선택의 밤 이후 각성자가 됐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찾아온 걸 보니 진짜였던 모양이다.

잘 생기긴 했네.

이쪽으로 걸어오는 정기범의 모습은 화보가 따로 없었다.

“정기범이 각성자일 수도 있다더니 진짜였던 모양이네요!”

이태훈도 신기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정기범을 바라봤다.

정기범은 우리가 서 있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자신을 쳐다보는 우릴 힐끔 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건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리고 난 그걸 참고 넘어갈 정도로 성인군자가 아니다.

“어이. 지금 비웃은 거야?”

그는 내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살짝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이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며 내 말에 반박했다.

“비웃다니! 그리고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그 말에 난 피식하고 한 번 웃어줬다.

아까 그가 우리한테 보인 것과 같은 비웃음이었다.

“비웃어?!”

“비웃기는 누가 비웃었다는 거야? 난 웃지도 못해?”

능청스러운 내 대답에 분노로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밖에서 그를 찍어대는 기자들과 팬들 때문에 속으로 화를 삭이는 게 보였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을 한 그는 날 노려보며 말했다.

“어디 얼마나 잘나서 내 앞에서 그딴 태도를 보였는지 올라가서 보자!”

하지만 난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이태훈을 향해 말했다.

“여기 좀 시끄럽네요. 개 짖는 소리도 들리고 말이죠!”

이태훈은 이 상황이 너무 재밌는지 얼굴까지 벌게지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사이 우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도착했다.

5층에 내리자마자 이태훈은 내 얼굴을 한 번 노려보고는 다른 직원을 따라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태훈이 아까와는 달리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겠어요?”

“뭐가요?”

“소문 모르세요? 정기범 뒤를 봐주는 게 미르 길드잖아요!”

“미르 길드요?!”

정기범이 미르 길드랑 관련이 있다고?

“네. 정기범 아버지가 미르 길드의 간부라고 알려져 있거든요.”

“하하하.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리곤 웃으며 더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태훈은 궁금했지만 내가 말을 안 하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안내원이 다가와서는 말했다.

“등급 측정은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등록 절차는 접수처에 신분증을 전송하시면 바로 등록이 될 겁니다.”

우리는 직원을 따라 접수대로 갔다.

접수대 직원은 우릴 보고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

“두 분 모두 등급 측정하실 건가요?”

직원의 질문에 이태훈은 출입증 같은 카드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한빛 에이전시에서 나왔습니다.”

그 카드를 본 직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날 보고 말했다.

“등급 측정하러 오셨으면 신분증을 전송해 주세요.”

신분증을 전송하자 잠시 후 확인을 마쳤는지 왼쪽에 보이는 1번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1번 방은 뭐 하는 곳이죠?”

“1번 방은 면접 같은 곳을 하는 방이에요. 어떤 능력을 개방했는지와 여러 전투 상황들에 대한 대처 능력을 물어보는 곳이죠.”

“재밌겠네요.”

방 앞엔 다행히 대기 줄이 없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긴 책상 앞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 가슴에는 심사위원이라고 적힌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박태준 씨 맞나요?”

“네.”

“이리로 와서 앉으세요.”

그들은 내가 들어오자 책상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심사위원의 질문이 시작됐다.

“각성자가 되고 나서 개방한 능력이 어떻게 되죠?”

“육체 강화입니다.”

“육체 강화면 던전에서 팀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주로 하게 될 텐데 힐러와 딜러 둘이 동시에 위기에 처한 위험한 순간이라면 탱커로서 누굴 먼저 보호할 건가요?”

“그건 제 능력을 기준으로 말하면 되는 건가요?”

질문을 한 심사위원은 그런 말을 한 내가 재밌는지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말하면 되지만 박태준 씨는 특별히 본인 능력을 기준으로 말해보세요. 누굴 먼저 보호할 거죠?”

“제가 탱커라면 일단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게 하겠죠. 그런데도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두 명 다 구하면 됩니다.”

그들은 내 대답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질문은 둘 중 누구를 구할 거냐는 거였어요. 둘 다 구한다는 그런 황당한 대답이 아니라.”

“아까 분명 제 능력을 기준으로 말하라면서요.”

“그러니까 지금 박태준 씨 말은 당신 능력이면 힐러와 딜러를 모두 구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잘 아시네요. 바로 그거에요!”

내가 자신 있게 웃으며 대답하자 심사위원들은 처음엔 어이없는 표정을 하다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여요?”

“장난이라뇨! 난 진심으로 대답한 건데.”

“당신이 뭐 SSS급 능력자라도 된단 말이요?!”

“안 될 거 없죠!”

이쯤 되자 심사위원들은 발끈 화를 내며 당장 나가라고 말했다.

“당신이 과연 능력치 검증시험에서 어떤 점수를 받는지 두고 보겠소. 만약 당신이 방금 전 대답한 대로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면 당신에게 만점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린 당신에게 최하 등급을 줄 테니 그리 알고 나가시오!”

생각보다 일이 커졌지만 난 별 신경 쓰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이태훈이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난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대로 얘기했다.

얘길 다 들은 이태훈도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예요? 보통 1번 방에서 가산점을 받아서 등급을 올리는 건데 이제 그러긴 다 틀렸어요!”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뭘 그리 심각해요! 다음엔 어디로 가면 되죠?”

“…저기 능력치 측정소로….”

난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먼저 걸어갔다.

이태훈은 내가 앞서가자 살짝 고민을 하다 부랴부랴 뒤따라왔다.

한참을 걸어가자 십여 명이 대기하고 있는 거대한 홀이 나타났다.

“흠! 여기가 능력치 측정소인가? 재밌겠네!”

나 혼자 방어력 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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