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리함이 결정하고 난 후, 잠시 집에 들러 꼭 필요한 것만 챙긴 다음 곧바로 한국으로 가는 이동 포탈을 찾았다.
이동 포탈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조한희에게 전화하여 리함의 가족이 머물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동생들의 입학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맡겼다.
역시 돈의 힘은 대단했다.
2시간도 안 돼서 그녀의 가족이 살 집을 바로 마련했고, 입학에 관련된 서류까지 완벽히 구비가 됐다.
마련한 집도 풀옵션인 곳이라 따로 준비해 갈 것도 거의 없었다.
리함은 그제야 날 향한 의심을 거두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날 지옥 같은 곳에서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난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벌써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이제부터 진짜 지옥이 시작될 테니까!”
“네? 그게 무슨…?”
그러나 난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말을 돌렸다.
“일단 오늘은 동생들과 회포를 풀어. 내일부터 넌 훈련을 받으러 가야 되니까.”
“훈련이요?”
그녀는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 내가 자세히 얘길 안 했구나! 팀원들이 지금 양평에 있는 산에서 훈련을 받고 있거든. 너도 이제 팀원이 됐으니 같이 훈련을 받으면서 팀워크도 다지게 될 거야.”
“그럼 동생들은 누가 돌보죠?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그녀는 동생들 걱정에 서둘러 이것저것 질문했다.
그동안 동생들이 계속 협박을 당해서 그런지 자신이 없는 동안 동생들의 안전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동생들이라면 걱정 마! 회사에서 모든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안전도 책임질 거니까. 그리고 훈련 기간은 나도 정확히 몰라. 그건 훈련 책임자가 됐다고 판단되면 끝나는 훈련이거든.”
“그런…!”
그녀는 뭐라고 반박을 하려 했지만 난 그녀의 말은 듣지도 않고 딱 잘랐다.
“일단 우리 팀의 일원이 되기로 했다면 다신 토 달지 마! 앞으로 너와 네 동생들이 누리게 될 모든 혜택은 너의 행동으로 결정되는 거니까!”
내 말에 그녀는 약간 억울한 눈빛을 하긴 했지만 더는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그럼 동의한 거로 알고 내일 9시까지 준비하고 있어. 그럼 내가 데리러 올 테니까!”
난 할 말만 하고 집을 나왔다.
사실 그녀에게 이렇듯 강압적인 모습을 보인 건 그녀가 지내온 환경 때문이다.
온갖 속임수가 난무하는 범죄자들 속에서 살아온 그녀라 조금의 틈만 보이면 어떤 식으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지금이야 내가 그녀의 동생들을 구해줬기 때문에 감사하고 있겠지만 사람 마음이란 매우 쉽게 변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틈을 보여줘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힐러만 찾으면 제대로 된 팀이 되겠어!
지금은 정찬호가 탱커, 홍준기가 길잡이, 해진우와, 이철진이 딜러 역할을 맡고 있다.
거기다 최우혁이 보조 탱커와 버프까지 걸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암살자인 리함만 보강된다면 균형 잡힌 팀이 된다.
여기에 그들을 보조할 수 있는 힐러만 찾으면 된다.
일단 급한 대로 리치킹의 세력도 막았고, 스페인 북부로도 유럽 연합 각성자들이 잘 막고 있는 것 같으니 당분간은 괜찮겠어. 일단 내일 리함을 양평에 데려다 놓고 나서 힐러부터 찾자. 그다음 마인 세력이 왜 리치킹과 접촉했는지를 알아봐야겠어.
난 리치몬드를 잡았을 때 본 그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분명 용의 탈을 쓴 자와 리치킹이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에는 전신을 후드로 가린 누군가가 서서 간간이 한 마디씩 거들고 있었다.
소리까지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우리한테 절대 좋은 얘긴 아닐 거라는 거다.
난 회사로 돌아가서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조한희는 회사에 없었다.
앞으로 바빠질 것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조한희와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녀는 아침에 찾아온 날 보고는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오늘은 재수가 좋으려나. 귀하신 분 얼굴을 다 보고 말이야!”
“하하하하. 잘 지냈지? 어제는 내가 급하게 부탁했는데 처리해줘서 고마워!”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근데 어떻게 된 거야?”
난 그녀에게 그간 일어난 일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유럽에서 있었던 일과 리치몬드를 만난 일. 그리고 이집트로 가서 리치킹의 군단과 싸운 일들도 얘기했다.
하지만 탄과 말살자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말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좀 더 정리가 된 후에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 말을 다 들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그게 며칠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고? 태준 씨 인생은 참 다이나믹하네! 그나저나 유럽에서 던전 소유권을 얻은 건 굉장한 성과야. 지금까지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나도 될지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같이 일한 사람이 입김이 셌던 모양이야. 시간 나는 대로 유럽에 있는 상급 던전들도 공략해 보려구! 그나저나 회사는 별일 없지?”
회사 일은 조한희에게 완전히 일임했기 때문에 대충 돌아가는 상황만 알뿐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별일은 없어. 초월 슈트와 아이즈도 잘 팔리고 있고, 서치도 잘 돌아가고 있어. 위급 상황이라 그런지 길드들 간의 마찰도 거의 없는 편이야.”
“그래? 대한 그룹 일은 어떻게 돼가?”
“안 그래도 그 일에 대해서는 태준 씨한테 부탁을 좀 해야 될 거 같아.”
“응? 무슨 부탁?”
“대한 그룹을 조사하다가 이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어.”
“이상한 자금 흐름?”
처음 듣는 얘기라 집중해서 그녀의 말을 들었다.
“응. 대한 그룹에서 막대한 자금이 지하로 흘러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조사를 해봤더니 불법 격투장이랑 연결이 되어 있더라구.”
“불법 격투장? 그건 또 뭐야?”
“알아보니 지하에서 불법적으로 벌어지는 격투 경기였어. 경기의 승패에 따라 막대한 자금이 오가는 곳이지.”
“그럼 그걸 운영하는 곳이 대한 그룹이라고?”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뿐이 아니야. 대한 그룹에선 격투장을 운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실험을 하는 정황이 포착됐어.”
“불법적인 실험?”
“응.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각성자들을 대상으로 여러 실험들이 행해지고 있나 봐. 첩보에 의하면 실험의 목적이 절대자급 각성자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해!”
“뭐? 절대자급 각성자라고? 그게 가능한 건가?”
절대자급 강함은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강함이다.
흔히 SSS급이라고 하는 최고 등급 각성자 수십이 덤벼들어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게 절대자다.
근데 그걸 실험을 통해 만들어 낸다고?
“보안이 굉장히 삼엄해서 자세히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절대자급 각성자를 목표로 한다는 거로 봐서는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던 걸로 짐작 돼.”
“그래? 그럼 나한테 부탁하고 싶다는 게 거길 정찰해 달라는 거지?”
그녀는 내가 자신의 의중을 정확히 맞추자 활짝 웃었다.
“호호호호. 이제 마음까지 통하나 봐. 내 생각을 정확히 아는 걸 보니 말이야!”
“에휴! 까라면 까야지 뭐. 근데 굳이 거길 알아봐야 하는 이유가 있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실험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가고 있나 봐. 마치 사활을 거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 거기만 무너진다면 생각보다 쉽게 대한 그룹을 흡수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가 이해됐다.
“알겠어. 어제 이집트에서 데려온 리함만 츤츤이한테 보내고 일단 그 문제부터 알아볼게. 편하게 들어가려면 선수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무슨 방법 없을까?”
내 질문에 그녀는 이미 생각한 방법이 있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그럴 줄 알고 브로커를 미리 알아 놨어. 근데 거기 선수로 등록하려면 각성자 등급을 제출해야 돼. 다른 건 위조가 가능한데 이건 위조가 어렵더라구. 그래서 번거롭더라도 태준 씨가 각성자 등급 측정소에 한 번 다녀와야겠는데?!”
“알겠어. 귀찮긴 하지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그럼 난 바로 양평에 다녀올 테니까 그 전에 다른 것들만 준비해줘. 아마 특별한 일 없으면 오늘 안에 등급 측정소도 다녀올 수 있을 거야.”
“좋아! 바로 준비해 놓을게. 경기가 매일 열릴 테니까 오늘 밤에라도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오케이. 그럼 양평에 갔다 와서 연락할게.”
난 그 길로 리함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곧장 양평으로 향했다.
그녀는 처음 보는 한국의 풍경을 감탄하며 바라봤다.
이집트와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그녀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차를 타고 달린 지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자, 우리는 양평 용문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 밑에 내려 기감을 확장하자 수련하고 있는 츤츤이와 동료들의 기가 느껴졌다.
“여기 위에서 팀원들이 수련하고 있어.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훈련 교관 모습에 너무 놀라진 말고. 알겠지?”
그녀는 내 말에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기가 느껴지는 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츤츤이가 이미 내가 오는 걸 알고는 기다리고 있었다.
[왔냐? 근데 뒤에 저건 또 뭐냐?]
“새로운 팀원. 그건 그렇고 다들 며칠 새에 상당히 좋아졌는데!”
[흥! 당연하지. 누가 가르치는데. 근데 쟤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이집트.”
[그래? 특기는 뭔데?]
“은신. 그래서 암살자로 좀 키워볼까 하는데 자세한 건 네가 보고 판단해줘.”
[그러지 뭐.]
츤츤이는 리함을 보고 말했다.
[너. 이리로 와!]
하지만 그녀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일부러 츤츤이가 개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놀람은 엄청났다.
“개… 개가 말을 해?”
그녀의 그런 반응을 본 츤츤이는 날 흘겨보며 말했다.
[이 새끼. 너 일부러 아무 말도 안 했지?!]
“하하하. 그게 재밌잖아. 잘 가르쳐봐!”
[에휴. 이 변태 같은 새끼.]
그사이 난 다른 동료들을 불렀다.
그리곤 리함을 데리고 와서 소개했다.
“이쪽은 리함이야. 이집트에서 왔고 앞으로 같은 팀원으로 활동하게 될 거야. 특기는 은신이고.”
내 소개에 리함은 쑥스러운지 쭈뼛거리며 인사를 했다.
“리함이에요. 잘 부탁해요.”
인사를 하면서도 그녀는 츤츤이가 계속 신경 쓰이는지 힐끔거렸다.
그 모습에 다른 동료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한동안 더 힘들어질 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다들 한 단계씩 발전한 것 같아서 보기 좋네. 조금만 더 노력해줘. 앞으로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절대자급 강자들이니까!”
다들 내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인 건 예전처럼 보내 달라고 매달리지 않았단 거다.
아마 그들도 며칠 만에 확연히 달라진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다들 수고하고, 리함도 훈련 잘 받아!”
내려오면서 츤츤이를 향해 은밀히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좀 빡세게 굴려줘! 알지?”
[걱정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난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산에서 내려왔다.
차에 올라탄 나는 아이즈로 각성자 등급 측정소를 검색했다.
가장 가까운 곳이 서울 종로였다.
“그럼 등급 측정소로 가 볼까!”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