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이시스의 설명에 의하면 절대신이란,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을 말한다.
절대신은 세상 모든 만물과 전 차원을 창조한 후 모든 세상이 순리대로만 돌아가게 만들고는 일절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는 차원마다 엄청난 혼란에 빠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력한 힘을 지닌 절대자들이 나오게 되고 그들은 그곳에서 신처럼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절대자들의 가치관에 따라 그들이 속한 세상의 가치관이 정해졌다.
현실 세계와 비슷한 곳도 있지만 어떤 곳은 선과 악의 관념이 뒤바뀐 곳도 있을 정도로 각 차원의 가치관은 다양했다.
그리고 절대신은 그 모든 걸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절대신은 가만히 있었는데 왜 말살자가 반기를 들은 거지?”
[말살자는 절대신이 만든 최초의 생명체였지. 차원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모든 차원을 넘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지.]
“무슨 문제?”
[말살자가 보기엔 세상이 너무 혼란스러웠던 거다. 그래서 그는 전 차원의 모든 규칙을 하나로 통일시키길 원했다.]
“수없이 많은 차원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가능한 거야?”
내 질문에 이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했지. 처음에 말살자는 차원들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절대자들을 힘으로 굴복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가치관을 강요했지. 하지만 목숨을 잃더라도 그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절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말엔 나도 공감이 갔다.
“당연하겠지. 한 차원을 다스릴 정도의 힘을 가진 절대자들이니 대부분 확고한 자신의 신념들이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말살자는 생각을 바꿨다.]
“어떻게?”
난 옛날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시스에게 물었다.
[모든 차원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한 거지.]
“모든 차원을? 말살자란 존재가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충분히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수의 차원들이 그 시기에 합쳐지기도 했고! 나 역시도 예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다. 다른 절대자들도 마찬가지지.]
난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여기 온 적이 있다고? 아! 그럼 혹시…?!”
그녀의 말을 듣자 머릿속을 하나의 가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러면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신화…. 그러니까 그리스로마 신화나 이집트 신화, 북유럽 신화 등이 실제로 차원이 합쳐지면서 넘어온 절대자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는 걸…!
[그대의 생각이 맞다. 그 당시 많은 절대자가 이곳으로 넘어와 각자의 지역 안에서 신처럼 군림했었지.]
그 말을 듣고 나자 왜 절대자들 중에 자신이 아는 신화 속 존재들이 많은지가 이해됐다.
하지만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근데 왜 그 당시 절대자들끼리 싸웠다는 내용은 전해진 게 없는 거지? 지금 리치킹처럼 다른 절대자를 굴복시키려는 놈들도 분명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땐 말살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우린 최대한 충돌하지 않으려 애썼다. 말살자의 눈 밖에 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말살자란 존재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였다니…. 근데 왜 사라진 거지?
이시스는 이번에도 내 생각을 읽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내 의문에 대해 대답을 했다.
[그것에 대해선 나도 정확히 모른다. 차원들이 하나씩 합쳐지던 중 갑작스레 말살자가 사라졌으니까!]
“갑자기 사라졌다고? 이유도 없이?”
[이유야 있겠지. 다만 내가 모를 뿐.]
“그 후엔 어떻게 된 거야?”
[말살자가 사라지고 나서 어찌 된 일인지, 합쳐진 차원들이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지. 그래서 한곳에 모인 절대자들도 각자의 차원으로 돌아가게 됐고. 그 때문에 다들 말살자가 절대자의 손에 의해 죽은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말살자의 기운을 가진 조각이 발견됐다.]
“그걸 말살자의 조각이라 부른다는 거지?”
이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도 궁금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근데 운명을 거스르는 존재라는 건 뭐지? 다들 날 그렇게 부르던데….”
[그건 말살자의 조각을 지닌 자가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 힘을 지녔기 때문이지.]
“운명은 뭔데? 아까 절대신이 순리대로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 뒀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말살자가 그걸 반대한 거고. 근데 운명이 있다고?”
[순리대로 흐르는 삶이 곧 운명이지. 하지만 넌 그 운명을 거스를 힘을 지니고 있어.]
하지만 난 그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순리대로의 삶이 운명이라고? 운명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얘기하는 거 아니야? 근데 네 말대로 순리대로의 삶과 운명을 동일시한다면 순리대로 사는 삶이 피할 수 없는 일이란 거야?”
그녀는 내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이 즐겨 타는 놀이기구 중에 롤러코스터라는 게 있더군.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번 움직이면 정해진 레일을 따라 흘러가게 되지. 멈출 수도 없고 말이야. 순리라는 건 그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순리와 이시스가 말하는 순리가 다른 의미라는 건 알겠다.
“그 비유대로라면 난 롤러코스터의 움직임을 바꿀 수 있다는 거야?”
[움직임을 바꿀 수도 있고, 역행할 수도 있으며, 아예 길 자체를 없애버릴 수도 있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단지 말살자의 조각을 흡수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 지문에 대해선 그녀도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하는지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단지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지….]
“그냥 알고 있다고? 그럼 누가 알려줬다는 거야? 뭔가 앞뒤가 잘 안 맞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군, 그냥 그렇게 알고 느껴지는 거라서.]
거기까지 설명을 듣고 나서 잠깐 생각을 정리해봤다.
말살자란 존재가 절대신의 의지에 반대해 전 차원을 하나로 통합하고 자신이 생각대로 세상을 바꾸려 했단 거네! 그 과정에서 몇 개의 차원이 합쳐지며 절대자들이 넘어왔고 그들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신화의 주인공들이고…. 근데 갑자기 말살자가 사라지고 차원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어. 그리고 말살자의 기운을 가진 조각이 나타나며 말살자가 절대자에 의해 죽었다는 소문이 절대자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한 거란 거네.
이시스의 말을 듣고 정리까지 해보자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말살자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더 많은 의문이 생겼다.
말살자의 조각은 어떤 힘을 가졌기에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가?
말살자는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정말 절대자에 의해 죽은 것일까?
몇 가지 의문 중 난 그녀가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있을 만한 걸 물었다.
“근데 왜 갑자기 절대자들이 여기로 넘어오게 된 거지?”
[차원과 차원의 벽은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뚫을 수 없지. 혹시 뚫린다하더라도 그곳을 통해 나갈 수 있는 건 미약한 힘을 가진 존재들뿐이었지. 헌데 그 두텁던 차원의 벽이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얇아졌다고? 이유는 몰라?”
이시스는 내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차원의 벽이 얇아지면서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은 차원을 뚫을 수 있게 됐다. 그걸 너희 세상에선 게이트라고 부르더군!]
게이트가 그런 거였군. 그럼 던전은 뭐지?
이시스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바로 답을 했다.
[던전이 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나도 궁금해서 조금 알아봤지만 누군가에 의해 준비된 장소라는 것 외엔 알아내지 못했다.]
“누군가에 의해 준비된 장소라…. 그게 누군지는 당연히 모르겠지?”
이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도…. 그럼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시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차원의 벽이 얇아지며 벽을 뚫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절대자급의 힘을 가진 이들이 나갈 수 있을 정돈 아니었지. 물론 절대자들이 게이트를 통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럴 땐 항상 힘의 제약이 수반됐다.]
그건 나도 키라를 통해 경험한 사실이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나올 수 있게 된 거지? 차원의 벽이 더 얇아지기라도 한 거야?”
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듯 이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어느 날 신전에 있던 내게 누군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내게 차원의 벽에 대한 비밀을 알려줬지.]
“차원의 벽에 대한 비밀이라고?”
[차원의 벽을 보호하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잠깐! 차원의 벽을 보호하는 존재들이라고? 설마…. 지난번에 만난 그 사람을 말하는 건가?
난 키라가 나온 후에 찾아온 무적자를 떠올렸다.
“그래서?”
뒤에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 이시스를 재촉했다.
그런 모습이 재밌는지 이시스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봤다.
[차원의 벽을 보호하는 존재들은 차원의 균열이 생기려 하면 그걸 막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었지. 그래서 절대자 혼자서 균열을 일으키려하면 쉽게 제지를 당한다고…. 하지만 한 번에 동시다발적으로 차원의 균열이 생기면 결국 절대자들이 나올만한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절대자들이 동시에 균열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근데 그게 가능해? 동시에 균열을 만들려면 서로 시간을 맞춰야 할 텐데….”
내 질문에 이시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찾아온 이에게 같은 질문을 했었지. 그러자 그가 내게 정해진 시간을 알려주면서 다른 차원의 절대자들도 동참할 거란 말을 했지. 생각이 있으면 알려준 시간에 균열을 일으키라고 말이야.]
아! 그래서 동시다발적으로 절대자들이 나온 거구나! 근데 알려줬다는 사람은 누구지?
역시나 이번에도 내 생각을 읽었는지 이시스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대의 생각이 맞다. 균열을 일으키고 나왔더니 꽤 많은 절대자들이 넘어왔다는 걸 알았지. 허나 우리에게 그걸 알려준 이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나도 처음 보는 이였고 그건 아마 다른 절대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흠…. 그건 차차 알아 가면 되겠지. 그나저나 당신들처럼 또 다른 절대자가 동시에 균열을 일으키고 넘어올 수도 있는 거야?”
그 질문에 대해선 이시스도 잠시 고민을 하다가 대답했다.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러긴 힘들 것이다.]
“힘들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
[우리가 동시에 이곳으로 넘어온 이후 차원의 벽을 지키는 자들이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에 대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
잠깐! 그럼 탄은…? 그 새끼는 혼자서 차원을 찢고 나왔는데 그건 어떻게 가능한 거지? 원래대로라면 무적자 같은 이들이 막아서 못 넘어와야 되는 거 아닌가?
그때 이시스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날 향해 소리쳤다.
[탄이라고? 지금 탄이라고 한 거야?]
응? 탄을 아는 건가?
“어어…. 근데 탄을 알아?”
[그 미치광이가 여길 왔다고…?]
“미치광이…?”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