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스페인 최고의 관광명소 중 하나이면서 아름다운 해변을 간직한 해양도시.
그러나 지금 그곳은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경직된 표정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피난 행렬도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도심을 지나 해변으로 오자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다.
“와! 여기 정말 좋은데! 팀원들이 여기 있다고?”
“그래. 저기 보이는 집에 모여 있어.”
질문에 대답한 건 프랑수아의 대리인이던 남자로 이름은 루카스였다.
여기 오는 길에 대화를 하다보니 나이가 같아서 편하게 말을 놓기로 했다.
“근데 팀원들은 몇 명이야?”
“원래 7명인데 2명은 1군단을 상대하러 가 있어서 지금 별장엔 3명만 있어.”
“그럼 팀장이 프랑수아인거야?”
당연히 그라고 생각했지만 프랑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팀장은 내가 아닐세. 팀장은 로빈일세.”
“로빈?”
“다 왔으니 가서 서로 인사 나누도록 하세나.”
오는 길에 프랑수아에게 말을 놓으라고 해도 그는 굳이 저 말투를 고수했다.
저게 편하다나 뭐라나.
그나저마 프랑수아가 팀장이 아니라는 건 의외다.
보통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구 밑에 들어가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통나무로 지어진 별장은 2층으로 되어 있었다.
해변가에 있긴 했지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 산책하기도 좋았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파도소리와 노을이 어우러지니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때 인기척을 느꼈는지 별장 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로빈. 잘 있었나?”
저 사람이 로빈이구나!
로빈이라 불린 남자는 연갈색 짧은 머리에 조각 같은 미남이었다.
그는 프랑수아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다가 날 보고 흠칫 놀랐다.
그리곤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 …쟤 왜 저래?”
내 물음에 루카스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로빈이 낯을 많이 가리거든. 널 처음 봐서 부끄러워서 그럴 거야.”
“뭐? 부끄러워서 안으로 들어간 거라고?”
뭐지 이 황당한 상황은?
팀을 이끄는 팀장이 낯을 많이 가린다니….
난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별장 안에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흑인 여자 한 명과 60대 정도의 인상 좋은 뚱뚱한 남자만 보였다.
로빈은 다른 곳으로 도망간 모양이다.
그들도 역시 프랑수아와 루카스를 보고 반가워하다가 날 보고는 흠칫 놀랐다.
“프랑수아님. 저 사람은 누구?”
배불뚝이 남자가 다가와 날 쳐다보며 물었다.
“니콜라스. 저랑 잠깐 얘기 좀 할까요.”
프랑수아는 니콜라스라 부른 뚱뚱한 남자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서 로빈의 모습도 언뜻 보였다.
“새로 온 신입?”
흑인 여자가 나와 루카스 앞에 서며 물었다.
“그래. 이쪽은 박태준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우리랑 같이 일하게 될 거야.”
“흠. 그래?”
그녀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날 위아래로 훑어봤다.
루카스는 내게도 그녀를 소개했다.
“얘는 토냐야. 우리팀 주술사야.”
“주술사면 버퍼 같은 거지?”
난 루카스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토냐가 했다.
“주술사랑 버퍼는 달라. 버퍼는 팀의 능력치를 올리는데 스킬이 특화되어 있다면 주술사들은 적들의 힘을 약화시키는데 특화되어 있지. 그나저나 만나서 반가워. 난 토냐야.”
그녀는 발랄하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의미다.
난 마주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박태준이야. 같이 일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부탁해.”
그 말에 토냐는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루카스를 쳐다봤다.
“아아. 아직 태준이가 제시한 조건에 대해 응할지 말지 결정을 못했거든.”
“조건?”
그때 방문이 열리며 프랑수아와 니콜라스, 로빈이 차례로 방에서 나왔다.
“자. 다들 쇼파에 좀 앉지.”
그의 말대로 다들 쇼파에 앉아서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잠깐만 일어나 주겠나.”
프랑수아의 말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은 이번 임무에 같이 참여하게 될 박태준일세. 포지션은 탱커이자 딜러라고 생각하면 되네.”
저 말은 내가 건 조건을 수락하겠단 소린가?
내가 뭘 생각하는지 알았는지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태준 씨는 이번 임무에 참여하는 대가로 던전 소유권을 달라고 주장했네.”
“던전 소유권이요?”
그 말에 토냐만 깜짝 놀라 말했다.
로빈과 니콜라스는 이미 들었는지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네. 방금 의장님과도 통화를 했는데 자네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네. 하지만 이 요구는 이번 임무 수행의 결과에 따라 번복될 수도 있어.”
“그 말은 내가 제대로 안하면 안 주겠단 소린거지?”
“아무래도 자네가 내건 조건이 워낙 파격적이라 그렇게 됐네. 괜찮겠나?”
사실 확률은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약간 무리한 조건이었는데 조건부 승낙이라도 받았으면 성공한 거라고 봐야 한다.
“그리지 뭐.”
쿨하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자 다른 이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다들 자기 소개부터 하도록 하세나. 먼저 팀장인 로빈부터.”
프랑수아가 인사를 하라고 손짓을 하자 로빈이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하지만 날 향해 눈은 돌리지 않은 채 수줍게 자기 소개를 했다.
“저…전 로빈이에요. 포지션은… 딜러…구요. 잘… 부탁드려요….”
난 여전히 그가 어떻게 팀장이 된건지 의아했지만 일단 다음 사람 소개부터 들었다.
다음은 니콜라스가 일어나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니콜라스야. 포지션은 탱커고. 잘 부탁해.”
저 사람이 탱커라고?
저렇게 뚱뚱한데 탱커라니….
보통 탱커들은 몸 관리를 엄청나게 하기 때문에 대부분 근육질의 좋은 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아무리 좋게 봐도 130킬로그램은 넘게 나가 보였다.
물론 키도 190센티미터에 가까운 장신이긴 했지만 그걸 가만하더라도 너무 뚱뚱했다.
그 사이 토냐의 소개가 끝나고 루카스가 소개를 했다.
“내 이름은 알테고, 포지션은 길잡이 겸 보조 힐러야.”
역시 길잡이였나?
루카스에게 정확한 포지션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지만 대화를 하다보니 그의 포지션이 대충 그럴 거 같다는 짐작은 왔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날 보며 마지막으로 프랑수아가 말했다.
“내 포지션은 딱히 정해진 게 없네. 기본적으로 탱커, 딜러, 힐러 모두 가능하지. 그래서 상황에 따라 포지션을 정하는 편이네.”
“그게 무슨 말이야?”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루카스가 대신해줬다.
“프랑수아님은 유럽에 네 명 밖에 없는 SSS등급 각성자 중 한 분이셔.”
“뭐? SSS라고?”
헐. 이런데서 SSS등급을 다 보다니…!
난 신기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SSS등급 각성자는 현재 전세계에 18명밖에 없었다.
앞으로 강한 각성자는 더 나오지만 그 중에서도 SSS등급은 특별했다.
다른 등급과 다르게 상대적인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에 SSS등급은 그 시대의 최강자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각성자들이 아무리 강해져도 그 수에도 큰 변함이 없었다.
내가 소설 안에 있을 때도 SSS등급 각성자는 30명을 넘지 않았다.
각자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저녁을 먹은 후 바로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설명을 주도한 건 로빈이었다.
근데 작전 회의에 들어가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밥 먹을 때만 해도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그런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말투까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조금 전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리치몬드가 이끄는 별동대가 산탄데르 근처까지 왔다고 한다. 그놈들 움직임을 보니 아무래도 본진을 뒤에서 치려고 하는 듯 하니 최대한 빨리 그놈들을 막아야 한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인가요?”
로빈은 토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으니 30분 후 바로 출발한다. 다들 준비 되는 대로 여기로 다시 모이도록. 이상.”
그리곤 본인도 준비를 하기 위해서 방으로 올라갔다.
난 품에서 코인 하나를 꺼내 씹으며 루카스에게 물었다.
“야. 근데 로빈은 이중인격이야? 아까랑 완전 다른 사람이 됐는데?”
“이중인격은 아닌데 작전만 시작되면 성격이 완전히 돌변해. 평상시에 워낙 순한 성격이라 다른 팀원들과 분란이 없어서인지 작전 중에 통제도 잘 되고 말이야. 거기다 작전 중에 위험한 일은 솔선수범해서 하는 편이라 팀원들의 신뢰도 굉장히 두터워.”
“그래…?”
그제야 왜 그가 팀장이 된 건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팀을 이끌다보면 팀원들과의 분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럴 때 문제되는 게 바로 자존심이다.
다들 한 가닥씩 하던 사람들이라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작전 중일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발생한다.
하지만 로빈이 평상시에 내가 본대로의 성격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본 로빈은 소심하고 낯가림이 심할 뿐 아니라 남에 대한 배려도 엄청났다.
그런 성격이다 보니 평상시에 남들과 마찰이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다.
또 작전 중에도 개인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현저히 감소한다.
그래서 작전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저런 면은 좀 배워야 되겠어. 지난번 이예진을 쫓아낸 거에 대해서 불만이 있어 보였는데…. 이번에 돌아가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사과하고 풀어야겠어.
안 그래도 내가 이예진을 일방적으로 자르고 난 후 동료들의 반응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단칼에 동료를 자른 내 모습에 살짝 불안감을 느낀 것 같았다.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은 팀의 전체적인 전투력을 저하시킬 수 있고 나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 때문에 가만히 두는 건 좋지 않다.
생각을 정리하며 품에서 코인을 하나 더 꺼내 씹었다.
까득.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루카스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계속 궁금했는데 그거 진짜 코인 맞아?”
“응? 이거?”
난 반쯤 잘린 코인을 손에 들었다.
“그래. 지금 진짜 코인을 씹어 먹는 거야?”
“응. 왜?”
“왜라니! 신기하니까 그러지.”
“그냥 습관 같은 거야. 신경쓰지 마.”
“습관?”
그는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다 내가 이후 별다른 반응이 없자 자신도 짐을 챙긴다며 방으로 올라갔다.
난 옆에 놓인 백팩에서 종이를 십여 장 꺼냈다.
그 종이는 백팩에서 나오자마자 코인으로 바뀌었다.
바뀐 코인들을 품안에 있는 주머니에 넣은 다음 백팩 안을 들여다봤다.
백팩 안에는 잘 정리된 종이가 수천 장 들어있었다.
모두 코인이 이차원 종이로 변화된 것이다.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백팩을 닫고는 코인을 하나 더 꺼내 씹었다.
- 백만 코인을 섭취했습니다. 힘이 3만큼 오릅니다.
이젠 코인만으로는 능력치가 확 오르지 않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했다.
습관처럼 코인을 계속 먹다 보면 쌓이는 능력치가 쏠쏠했다.
그때 준비가 다 됐는지 하나 둘 일층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팀원들이 다 모이자 우린 차를 타고 산탄데르로 이동했다.
그리고 3시간 만에 산탄데르에 도착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우릴 맞이한 건 불타고 있는 도시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