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프랑스는 티비에서 봤던 것처럼 활기찬 나라였다.
포탈을 통해 나온 곳은 수도인 파리였는데, 수많은 인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이동포탈이 생긴 후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지금은 이동포탈을 이용할 때 간단한 신분증 검사만 하지만, 이것만으론 사람들 추적이 힘들다보니 몇 년 후엔 이동포탈을 이용할 때도 여권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몇 년 후의 일이다.
지금은 간단히 신분증만 보여주면 쉽게 이동포탈을 이용할 수 있었다.
거기다 얼마 전 아이즈의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동시통역 기능이 제공됐다.
완벽한 동시통역이라 부르긴 어렵지만 거의 실시간으로 의사전달이 가능했고 번역 능력도 굉장히 뛰어났다.
난 주머니에서 코인을 하나 꺼내 씹으면서 어디로 갈지를 생각했다.
까득.
일단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으로 가야겠지? 그 다음 조용히 국경을 넘어가면 되겠지 뭐.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일단 근처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음식을 주문한 다음 기다리는데 벽에 붙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경호원 구함이라….
포스터에는 프랑스 국경 근처에 있는 툴루즈란 도시까지 경호를 해줄 사람을 찾는다고 되어 있었다.
중요한 건 보수였는데 10만 코인 밖에 안됐다.
근데 요즘 같은 세상에 한나절 거리 밖에 안되는 곳을 가는데 경호가 왜 필요하지?
난 그게 제일 궁금했다.
사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위험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자동차가 없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대중교통이 있기 때문에 그걸 이용하면 툴루즈까지 가는 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식사를 기다리면서 호기심에 전화를 한 번 해봤다.
어차피 나도 가는 길이고 경호가 필요한 이유가 궁금하기도 해서였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름다운 목소리의 여자였다.
목소리가 앳된 걸로 봐서 20살이 넘지 않아 보였다.
“식당에 붙은 전단지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경호원을 찾으신다구요?”
[네. 근데 경호 금액도 보신 거 맞으시죠?]
“10만 코인 아닌가요? 그렇게 봤는데….”
[마… 맞아요. 보수는 안 보시고 전화하는 분들이 가끔 계셔서 확인한 거에요.]
“근데 거기까지 가는데 경호가 필요한 이유라도 있나요?”
내 질문에 전화상이지만 상대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죄송해요. 그건 나중에 직접 만나면 말씀드릴게요. 언제쯤 출발 가능하시죠?]
“전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좋네요. 저희도 빨리 출발하면 좋거든요. 그럼 30분 후에 저희 집으로 와주시겠어요? 주소는 보내드릴게요.]
집으로?
급하게 몰아붙이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죠. 30분 후에 뵐게요.”
난 나온 음식을 서둘러 먹고 알려준 주소지로 찾아갔다.
그곳은 귀신이 나올 법한 허름한 저택이었다.
벨을 누르자 전화를 통해 들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아까 전화 드린 사람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자 잡초들이 무성한 정원이 보였다.
관리가 하나도 안 돼 보였다.
현관 앞에 서자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어서 오세요. 제가 경호를 의뢰한 의뢰인입니다.”
그녀는 내 예상대로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는데, 옷은 허름했지만 온몸에서 기품이 넘쳤다.
거기다 그녀의 외모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한 번 보면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 얼굴을 보자 왜 그녀가 호위를 부탁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저런 얼굴로 그냥 돌아다니면 험한 꼴 당하기 십상이겠어.
그 정도로 그녀 얼굴은 아름다웠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안으로 들어가자 10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와 소녀 사이를 가로 막으며 소리쳤다.
“우리 누나한테 가까이 다가가지마! 누나는 내가 지킬 거야!”
난 그 모습이 귀여워 잠시 바라보다 소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며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응접실로 갔다.
응접실 쇼파로 날 안내한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차를 따르며 설명을 시작했다.
“제 이름은 낸시예요. 여긴 제 남동생인 샤를이구요. 먼저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서로 바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왜 경호가 필요한 거죠?”
“그건 저희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 때문이에요.”
“전통이요?”
그녀의 가문은 대대로 기사 집안이었다고 한다.
엄청난 위세를 자랑했던 그 가문도 자식들의 권력 다툼에 의해 점차 힘을 잃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400년 전 그녀의 조상이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가문을 다시 강하게 정비했다.
그는 죽기 전에 후계자 후보 가운데 가장 강한 이가 가문을 이끌어야 한다며 후계자 후보들끼리 싸우게 했다.
그리고 거기서 승리한 사람이 가문의 정식 계승자가 됐다.
하지만 후계자들이 직접 싸우다 보니 다들 상처를 입게 되거나 모두 죽는 경우도 생기게 됐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후계자가 직접 고른 대리자가 후계자를 대신해 결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난 아직도 그런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말은 날 보고 그 대리자를 해달라는 건가요?”
“아니에요. 그냥 절 툴루즈에 있는 본가에만 데려다 주시면 돼요.”
“정말 그것만이면 되나요? 대리자가 없다면 본가에 가도 결투를 못하는 거 아닌가요? 그럼 가도 의미가 없을 텐데요.”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기간 안에 본가에 들어가기만 하면 결투에서 기권을 하더라도 본가로부터 어느 정도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기간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 지원마저도 끊기게 되죠.”
그제야 그녀가 왜 툴루즈까지만 가는 경호원을 구하는지 이해가 됐다.
“근데 부모님은 안계시나요?”
“어릴 때 사고로 돌아가시고, 저랑 동생 둘만 살고 있어요.”
그녀는 자신 옆에 앉아 있는 동생을 잠깐 쳐다봤다 다시 날 보며 말했다.
“지금은 본가의 지원으로 학교를 다니는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게 끊기게 되면 우린 갈 곳이 없어요. 이 집도 본가 재산이라 길거리로 나 앉아야 되거든요.”
“뭐, 제가 궁금했던 건 다 풀렸네요.”
“그럼 경호는 맡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어보는 그녀의 눈빛이 너무 간절해 보였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대신 10만 코인은 선불입니다.”
그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는 듯 가만히 날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잠시만요.”
응접실을 나가 어딘가 다녀온 그녀의 손에는 코인으로 바꾸지 못한 유로화가 들려 있었다.
그것도 어딘가 숨겨둔 비상금을 가져온 건지 꼬깃꼬깃 접혀 있었다.
“여기요. 80유로에요. 아직 코인으로 바꾸진 못했지만 알아보니 이 정도면 10만 코인 정도라고 하던데 맞나요?”
난 그녀 손에 들린 지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받았다.
그녀는 내가 돈을 받자 그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지 언제 출발할지를 물었다.
“출발은 언제 할 수 있나요?”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죠.”
“그럼 저희도 시간이 많이 없으니 1시간 후에 출발하는 걸로 해요. 근데 저희보다 나이도 훨씬 많으신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안 그래도 불편했는데. 그럼 1시간 후에 출발하자. 난 그동안 밖에서 산책 좀 하고 있을게. 준비 다 되면 전화해.”
그녀의 집을 나온 나는 곧장 환영보를 사용해 저택 지붕으로 올라갔다.
아까 전부터 지붕 위에서 미세한 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지붕 위에는 예상대로 누군가 저택 안을 엿보고 있었다.
“너 누구냐?”
그는 갑자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목은 내 오른손이 잡고 있었다.
“여기서 떠들면 의뢰인이 시끄러울 테니까 조용한데로 좀 가자.”
난 그의 목을 잡은 채 근처에 있는 숲속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그를 풀밭에 던져 놓고는 물었다.
“너 정체가 뭐냐?”
“…콜록 ……콜록.”
한참 동안 목을 어루만지며 기침만 해대던 그는 갑자기 날 향해 뭔가를 던졌다.
팅. 팅.
하지만 뭔가는 내 몸을 맞고는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가 던진 게 뭔지 보니 작은 비도다.
“야. 위험하게 이런 걸 던… 어? 야, 어디가?!”
그는 나한테 비도를 던지고는 재빨리 도망갔다.
“그래그래. 너 같은 놈들이 쉽게 말해줄 리가 없지.”
난 다시 귀신처럼 그의 앞에 나타난 다음 또다시 그의 목을 잡았다.
그리곤 아까와 같은 장소로 이동했다.
“야! 서로 힘 빼지 말고 왜 훔쳐봤는지나 얘기해.”
“너… 넌 뭐냐?”
“나? 오늘 고용된 경호원인데!”
“흥. 고작 경호원 따위가 우리 일을 방해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응. 무사할 것 같아. 말하는 걸 보니 넌 죽어도 말을 안할 것 같네. 그치?”
“당연하지. 내가 얘기할 것 같아?”
“그래. 그럼 죽어!”
난 가차 없이 그의 목을 비틀어버렸다.
우둑.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그는 바로 즉사했다.
벌써부터 이런 날파리들이 꼬이는 걸 보니 생각보다 귀찮은 일일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이미 선불을 받아버렸으니 취소할 수도 없고…. 그냥 귀찮게 하면 다 죽여버려야겠다.
난 죽어있는 복면의 남자를 잠시 쳐다보다 저택으로 돌아왔다.
혹시 몰라 저택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있는데 낸시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세요? 저흰 준비 끝났어요.”
“바로 밖에 있으니까 나오면 돼.”
밖으로 나온 그녀는 이동하기 편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모자를 길게 눌러 쓰고 있었다.
난 그걸 보고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외모는 너무 튄다.
어딜 가나 이목이 집중 될 수 있는 외모이기 때문에 최대한 가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옆에 있던 샤를이 날 보고 빽 소릴 질렀다.
“우리 누나 쳐다보지 마!”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지 내가 쳐다보는 것만 봐도 그는 과민반응을 보였다.
왠지 안 봐도 그동안 남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힘들었겠네. 돈도 없는데 저런 외모까지 가졌다면….
자신이 본 낸시는 절대로 나쁜 일을 할 여자가 아니다.
하지만 낸시의 외모는 과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당연히 그런 낸시를 향해 접근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를 보호할 부모나 돈이라는 방패가 없기 때문에 더 거칠고 집요하게 사람들이 접근했을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동생에게서 저런 반응이 나온 것일 테고….
난 동생에게서 눈을 돌려 낸시를 보고 말했다.
“이동은 어떻게 할 거지? 차가 있어?”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낡은 푸조가 한 대 있어요.”
“좋아. 그럼 그걸 타고 가자고. 키는 가지고 왔지?”
“네, 여기.”
난 그녀가 내미는 차키를 받아들고 차로 갔다.
그녀 말대로 푸조는 타고 갈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15년은 더 돼 보였다.
하지만 자주 세차를 했는데 외관은 깨끗했다.
난 그들의 짐을 차 트렁크에 실은 다음 운전석에 앉았다.
조수석에는 낸시가 앉고 뒷자리에는 샤를이 앉았다.
“그럼 툴루즈로 가보자!“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