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누구야?!]
전화를 걸자마자 다짜고짜 반말이 흘러나왔다.
“나? 너 스카웃하려는 사람.”
[날? 왜?]
스카웃이란 말에 잠시 당황한 듯한 그는 뭔가 알았다는 듯 얘기했다.
[아아. 우리 노친네가 대신 쓴 거구만. 그거 내가 쓴 거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래도 한 번은 만나보고 싶은데…. 괜찮지?”
[됐다니까. 바빠 죽겠는데 별 거지 같은 새끼가 다 지랄이네.]
꿈틈.
순간 욱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참았다.
일단은 만나는 게 중요하니까.
오히려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만나기가 참 쉽다.
조금만 긁어주면 반응이 오니까.
“알겠어. 나도 그 나이 처먹도록 할머니 등골이나 빼먹고 사는 새끼는 사절이니까. 그럼 끊는다.”
[뭐? 야 이 개새끼야!!]
그리고 한 동안 그는 생전 처음 듣는 욕들을 쏟아냈다.
“열등감에 쩌는 찌질한 새끼 욕은 잘 들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병신 찐따처럼 사세요.”
[야!! 너 이 개새끼. 지금 어디야? 지금 어디냐고오?!]
“왜? 안 만난다면서? 이제 내가 보고 싶은 거야?”
[만나서 주둥이를 싹 다 찢어버릴라니까 어디냐고?]
“그럼 메시지 보낼 테니까 거기로 한 시간 안에 와.”
뚝.
회사 근처 커피숍에 약속장소를 정한 다음 앉아서 기다렸다.
달달한 캬라멜마끼아또를 마시면서 있다보니 누군가 커피숍 문을 격하게 열고 들어왔다.
20대 초반에 노란머리로 염색을 한 남자다.
딱 봐도 양아치처럼 생긴 그 남자는 커피숍 안을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면서 날 향해 다가왔다.
“너냐? 나한테 전화한 새끼가?”
난 아무 말 없이 품에서 코인 하나를 꺼내 씹었다.
까득. 까득.
그 모습에 약간 놀란 듯 했지만 여전히 험악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날 다그쳤다.
“전화한 새끼가 너냐고?! 대답 안해!”
“야야, 여기 공공장소잖아. 왜 그렇게 매너가 없니?”
“오호라. 목소리 들어보니 맞네. 너 오늘 뒤졌어. 당장 따라 나와!”
그는 내 팔을 붙잡고 끌었지만 꿈쩍도 안했다.
난 그가 뭐라하건 신경도 쓰지 않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이력서를 보며 말했다.
“21살 홍준기. 각성 능력은 길잡이와 이차원 가방. 할머니랑 둘이서만 살고…. 근데 너 이력서에 써진 경력 다 뻥이지? 너 같은 찌질한 새끼가 상급 던전 2번, 중급 던전을 6번이나 클리어 했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치?”
날 끌어내기 위해 용을 쓰던 그는 내 말에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거 진짜거든! 그나저나 너 따라 나오라니까!”
“이게 진짜라고? 흐음. 좋아. 합격!”
“합격은 무슨 합격이야! 나 이제 던전 안 간다고!”
“괜히 힘 빼지 말고 이유나 들어보자. 왜 안간다는 건데?”
그는 내가 자신이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각성자란 걸 알았는지 씩씩거리다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던전 가서 개고생을 해도 결국 싸운 건 자기들이라고 나한텐 돈도 제대로 안 주는데 내가 뭐하러 또 그 고생을 하냐고!”
얘길 들어보니 던전에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도 제대로 못받고 나온 모양이다.
“그럼 이 이력서는 뭔데? 아무리 봐도 할머니가 썼다고 하기엔 너무 디테일한 걸?”
그는 내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건 내가 옛날에 써둔 걸 우리 노친네가 그냥 올린 거야….”
흐음. 그렇게 된 거구만.
정리해보면 초반엔 열심히 던전 공략에 참여했지만 계속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하자 열 받아서 나왔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거 아니면 돈 벌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보니 이력서는 써둔거고….
“결론은 돈만 제대로 주면 하고 싶다는 소리네? 맞지?”
“안 한다고 몇 번을 말해. 안해!”
하지만 그의 표정이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는지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했다.
“안한다구요. 지난번에 일한 돈도 제대로 못 받았잖아요!”
아무래도 지난번에 같이 던전을 돌았던 사람들인 것 같았다.
난 그 손에 있던 전화기를 뺏어들고는 대신 전화를 받았다.
“…이, …이게 뭐하는…?”
“쉿!”
난 그를 보고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댄 다음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리고 상대에게 말했다.
“홍준기 씨를 던전 길잡이로 고용하실 생각이신가요?”
상대는 낯선 목소리가 들리자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넌 뭐야?]
“전 홍준기 씨 스케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뭐? 하하하하. 스케줄 관리? 그 새끼가 스케줄이 어딨다고 스케줄 관리야?!]
“그래서 고용할 건가요 말 건가요?”
[당연히 해야지. 그동안 밀린 돈도 다 준다고 얘기해.]
“진짜로 밀린 돈을 다 준다는 말씀이시죠?”
[그렇다니까. 빨리 그 새끼나 바꿔. 나 바쁘니까.]
“좋아요. 가도록 하죠. 대신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상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뭔데?]
“저도 거기 같이 참여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지난번처럼 돈을 못 받는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괜찮죠?”
[맘대로 하고 빨리 홍준기나 바꿔!]
전화기를 건네주자 그는 한참을 그와 통화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날 향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 안한다니까 왜 그딴 약속을 한 거야? 이제 몰라. 니가 다 책임져. 그 새끼들 집요해서 한다고 했다가 안하면 집까지 찾아오는 놈들이라고!”
“내가 같이 가줄 거니까 걱정 마. 어디로 가면 돼?”
그는 이제 모르겠단 식으로 장소가 적혀 있는 전화기를 테이블 위에 던졌다.
“내일 오전 10시 동두천이라…. 좋네. 근데 너 아이즈도 없어?”
내 말에 그는 또다시 발끈했다.
“아이즈가 뭐? 그딴 거 없어도 전화 잘만 되거든!”
그 말에 난 들고 있던 전화기를 바로 부셔버렸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는 갑작스런 내 행동에 버럭 소릴 질렀다.
“나랑 일하려면 이게 필요할 거야. 쓰기 싫어도 잔말말고 써.”
그러면서 난 품에서 아이즈가 든 케이스를 내밀었다.
“이걸 왜 나한테…?”
“말했잖아. 나랑 일하려면 필요하다고. 착용하고 전화번호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동기화가 될 거야. 그럼 내일 10시에 동두천에서 보자.”
난 내 할 말만 하고 커피숍을 나왔다.
홍준기는 그런 날 급히 따라나오며 물었다.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안한다고 했잖아!”
“난 길잡이가 필요하고, 넌 길잡이야. 그리고 난 니가 마음에 들고. 그거면 된 거지.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해?”
“내가 싫다고! 안 한다고!”
하지만 대답대신 품에서 코인 하나를 더 꺼내 씹었다.
까드득. 까득.
그는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내 모습에 화가 나는지 버럭 소릴 질렀다.
“난 분명히 말했다. 안할 거야. 내일 동두천도 안 갈 거고! 그러니까 다신 날 찾지 마!”
그리곤 가버렸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은 제발 날 좀 잡아 달라고. 누가 좀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난 품에서 코인 하나를 더 꺼내 씹으며 멀어지는 홍준기를 바라봤다.
“내일은 오랜만에 스트레스 좀 풀겠어.”
* * * * *
다음날 오전 10시 동두천 외곽의 폐공장 앞.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8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홍준기의 모습도 보였다.
난 반갑게 손을 들고 인사했지만 그는 못 본 체 하며 고갤 돌렸다.
그때 무리 중 한 사람이 다가오는 날 제지했다.
“우린 지금부터 던전 공략할거거든. 그러니까 놀 거면 다른 데로 가라!”
하지만 품에서 코인 하나를 꺼내 씹으면서 말했다.
까드득.
“난 저기 있는 홍준기 씨 스케줄 관리잔데…. 오늘 같이 가기로 한 거 못 들었어?”
그는 내 말보다는 코인을 씹어먹고 있는 모습에 더 놀란 듯 어이없단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러다 뒤를 돌아 누군갈 바라봤다.
시선을 받은 사람은 말끔한 코트를 입은 중년의 남자로 화려한 장신구가 곳곳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날 가로 막았던 이는 옆으로 물러서며 길을 터줬다.
“고마워.”
난 그를 지나쳐 곧장 홍준기 앞으로 갔다.
“준기 씨. 일찍 와 있었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자 그는 창피한지 얼굴을 붉히며 고갤 돌렸다.
그때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어제 전화 통화한 사람 맞지? 난 조민환. 반갑다.”
그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지만 난 웃으며 그 손을 거절했다.
“미안. 내가 더러운 건 잘 못 만지거든. 난 박태준. 오늘 잘 부탁해.”
내 말에 그의 눈썹이 꿈틀댔지만 던전에 들어가기 전부터 분란을 만들긴 싫은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들어가서 방해나 되지 말고. 각성자는 맞는 거지?”
“내 걱정은 말고. 여긴 뭐 규칙 같은 거 없어?”
“규칙? 있지. 우리 팀의 규칙은 아주 간단해.”
“뭔데?”
그는 진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헌도.”
“공헌도?”
“그래. 얼마나 던전 공략에 공헌했는지에 따라 수입을 분배하는 기준이 되지. 반대로….”
그는 말을 하다말고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말했다.
“반대로 팀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했다면 오히려 벌금이 부과될 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협조만 잘하면 돼. 어때?”
“깔끔하고 좋네. 그럼 바로 들어가자. 다들 바쁠 텐데.”
“던전 브리핑도 안 듣고?”
“하하하. 그런 거 뭐 꼭 들어야 되는 거야?”
“꼭 그런 건 아니지. 그럼 갈까!”
그는 호구 잡았다는 표정으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이들은 이미 던전에 대한 브리핑을 미리 했을 것이다.
길잡이인 홍준기만 쏙 빼고 말이지.
그리고 홍준기에겐 던전 진입 직전에 아주 간단한 브리핑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어려운 구간에서만 홍준기의 도움을 받고, 나중에는 공략 숙지를 제대로 안 했다고 돈을 조금만 주거나 아예 안주는 식으로 일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요즘 서치 커뮤니티에서 종종 보였기 때문에 이들의 수법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때 홍준기가 불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하지만 난 걱정 말라는 듯 그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품에서 코인 하나를 꺼내 씹었다.
까득. 까드득.
그걸 본 한 남자가 날 보고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거 좀 그만 씹을 수 없어? 신경 쓰이잖아!”
“응? 이거 말하는 거야?”
난 손에 코인 하나를 새로 꺼내 들고는 물었다.
“그래. 그거!”
“싫은데.”
까드득.
“…뭐 …저딴 새끼가….”
화를 내려는 그를 조민환이 웃으며 제지했다.
“이제 던전 안에서 함께 굴러야 될 사이니까 조금만 참아.”
그리곤 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새끼는 제법 벗겨먹을 게 있을 것 같으니까 조금만 참아봐.”
작게 말한다고 했지만 내 귀엔 다 들렸다.
그래. 그렇게 나와줘야 나도 짓밟는 맛이 있지. 흐흐흐.
그리고 우린 조민환을 선두로 모두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