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난 모두에게 공격에 대비하라고 말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급기야 균열을 통해 수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난 화룡도를 소환한 다음 가로로 단월을 펼쳤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몸이 잘리며 죽어갔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단월을 계속 사용할 수도 없기 때문에, 난 몬스터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풍천각과 일권을 번갈아 사용하며 몬스터들을 최대한 죽였다.
김영원과 양성한, 이하나와 박대길도 몬스터들과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수많은 몬스터들을 우리 다섯 사람이서 상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인 건 몬스터들이 균열에서 나온 다음, 주변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곧장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는 것이다.
물론 가는 길에 있는 사람들이나 건물은 파괴했지만 그건 그들의 경로로 한정 됐다.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 모습이었다.
설마 키라가 있는 곳으로 가는 건가?
그러나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직도 몬스터들은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난 일단 천수노인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도우라고 지시한 후 달려오는 몬스터들을 끊임없이 베어 넘겼다.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균열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쿵.
내려온 건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몸에 머리는 산발이었고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있었다.
신기한 건 그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막 같은 게 있는지 몬스터들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 남자는 균열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두 손을 둥글게 만 다음 앞으로 찔러 넣었다.
별거 아닌 동작 같아 보였지만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균열이 생겼던 공간이 서서히 봉합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균열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때문에 균열을 통해 나오던 몬스터들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그 남자는 몸을 돌려 날 바라봤다.
“어?”
돌아선 그 남자는 눈이 없었다.
조한희처럼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아예 눈이 뭔가에 의해 파인 것처럼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보이는지 똑바로 날 향해 걸어와선 멈춰섰다.
“난 무적자다. 조율하는 자지. 그대는 운명을 거스르고 파괴하는 자로구나.”
“무적자라고?”
무적자라면 얼마 전 대마녀가 말했던 그 남자다.
마녀의 숲에 생긴 게이트를 찢어버린 사람.
“오늘 이 일도 그대라는 변수로 인해 생긴 일. 원래는 생기지 않았어야 할 일이다.”
“이게 나 때문이라고? 이게 어째서 나 때문이야?”
“그대가 없었다면 그녀가 이곳에 흥미를 가질 이유가 없으니까.”
그녀라는 건 키라를 말하는 듯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게 나 때문은 아니지. 그 년이 제멋대로 온 건데 그게 어째서 나 때문이야?”
하지만 그는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진 않았다.
다만 아무것도 없는 눈으로 날 바라만볼 뿐.
“그나저나 조율자가 뭐야? 세계의 균형을 맞추는 뭐 그런 건가?”
허나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그제야 그는 입을 열었다.
“그대와 나는 대척점에 선 존재. 그대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우린 적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 그대의 결정을 지켜보겠다.”
“자… 잠깐만!”
하지만 그는 순식간에 어딘가로 사라졌다.
난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거기엔 언제 왔는지 천수노인이 서 있었다.
“언제 오셨어요?”
“방금 왔네. 근데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저 사람은 또 누구고?”
“무적자라고 하는데 스스로를 조율하는 자라고 부르던데요.”
“조율하는 자?!”
그는 그 말을 듣고 무척 놀란 듯 했다.
반응을 보니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아 그게 뭔지 물었다.
“조율하는 자가 뭔지 알고 계세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세상이 예정된 운명과 다르게 흘러갈 때 그걸 바로 잡는 존재라고 알고 있네.”
“그래요? 근데 그런 건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에요?”
“나도 사부님으로부터 들은 거라 정확한 출처는 모르겠군.”
난 그에게 키라에 대한 얘길 해줬다.
내 말을 모두 들은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봤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겠어. 자네도 수련이라며 여유부릴 때가 아니야. 난 즉시 길드 연합 회의를 소집할 테니 자넨 자네대로 방안을 마련해주게나. 키라가 자네 말대로의 힘을 가진 존재라면 전세계 각성자들이 힘을 합쳐야 될 걸세!”
“알겠습니다. 일단 저도 돌아가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천수노인과 헤어진 다음 회사로 오면서 급히 조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희야, 지금 큰일 났어!”
[안 그래도 지금 뉴스 속보에서 몬스터 군단이 나타났다는 소식은 들었어. 그거 때문이야?]
“그래. 근데 중요한 건 그 몬스터 군단을 데리고 나온 게 키라라는 거지.”
[뭐? 키라?]
조한희는 너무 놀랐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일단 지금 회사로 가는 길이니까 가서 자세히 얘기해 줄게.”
회사로 돌아간 난 즉시 주요 인물들과 함께 회의를 시작했다.
그만큼 키라의 등장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 * * * *
키라의 등장 이후 한 달.
키라라는 절대자의 등장은 세상에 많은 변화를 줬다.
키라는 균열에서 나온지 이틀 후 중국 산동성의 태산에 둥지를 틀었다.
중국의 수많은 각성자들이 그녀를 처리하기 위해 공격했지만 압도적인 그녀의 힘 앞에 처참한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만 했다.
그로부터 하루 뒤 그녀를 따라 나온 몬스터 군단들도 태산에 도착했다.
태산과 그 일대는 완전히 그녀의 영역이 됐다.
중국 정부는 산둥성과 그 일대를 금지로 지정하고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다행인 건 태산을 점령한 키라는 그 후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드라고니아킹과 오크킹 등 네임드 몬스터들이 몬스터 군대를 지휘했다.
더욱 충격적인 건, 세상의 균열은 우리나라에서만 생긴 것이 아니었다.
키라가 나온 것과 같은 시간에 유럽에서도 균열이 생겼다.
균열이 생긴 곳은 스페인이었는데 그 안에서 리치왕이란 존재가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나타났다.
리치왕의 군대들은 군단장인 데스나이트를 앞세워 스페인의 절반을 장악했다.
그것도 유럽의 각성자들이 힘을 합쳐 막았기 때문에 그 정도로 그친 것이다.
균열은 그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 아프리카에서도 동시에 나타났다. 나타난 절대자들은 각자의 영토를 차지하고는 각성자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류 중에서도 영웅들이 탄생했다.
유명 길드의 길드장뿐만 아니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각성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동포탈들도 갑자기 무수히 많이 생겨나며 대륙 간의 빠른 이동이 용이해졌으며, 그로 인해 화폐통합은 더욱 빨리 진행됐다.
* * * * *
피앤씨 컴퍼니 본사 10층 회의실.
그 안에서 난 지난 한 달간의 실적을 보고 받고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회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들을 위해 실험 중이던 초월슈트 판매를 시작했다.
세계 각국과 협의해서 일반인이 구매 시 정부 보조금 지원을 받게 했기 때문에 초월 슈트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리고 마녀들은 피앤씨 건물에 사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래서 그녀들로부터 제공 받은 물약과 비약을 서치를 통해 판매를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은 강해지길 더욱 간절히 원했고, 그건 서치 이용객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
“초월슈트는 지난 한 달 동안 1억 개 이상이 팔렸습니다. 지금도 주문은 폭주하지만 공급이 따라가질 못하는 실정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은 이예진이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던 내가 그녀에게 요청을 했었다.
일을 좀 도와달라고 말이다.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고 초월슈트 유통을 맡았다.
형사 생활하면서 본 게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더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공장 부지를 하나 더 매입해서 설비를 늘려봐. 다음은 비약인가?”
내 말에 이예진은 자리로 들어가고 메이화가 나왔다.
“물약과 비약도 3주 전 판매를 시작한 이래 계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어. 곧 새로운 비약들도 나올 거라 판매량은 앞으로 한동안 계속 늘어날 거야.”
“그래. 수고했어. 조금만 더 수고해줘. 그리고 최우혁을 치료할 약은 어떻게 됐어?”
“그게, 지금 연구 중이긴 한데 쉽지가 않네. 김나령 그 년이 하도 독특한 방식으로 배합을 해놔서 말이지. 그래도 앞으로 한 달 안에는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거야.”
“알겠어.”
난 메이화를 들어가게 하고 회의에 참석한 이들에게 말했다.
“다들 잘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분발해 주세요.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 이상 회의 마칠게요.”
회의를 마친 난 곧장 개인 수련실로 향했다.
창천 길드에서 돌아온 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매번 정권 지르기와 발차기를 하고 있다.
하루 만개를 다 채우고 나면 곧바로 심상 수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난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사용하는 모든 공격들이 예전보다 한층 더 날카로워졌고 1식과 2식인 일권과 풍천각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한참 부족해. 이젠 실전에서 연습해봐야겠어!
난 실전연습하기 좋은 곳을 알고 있었다.
익시온의 무덤.
하지만 그 전에 솜씨 좋은 길잡이를 섭외해야 된다.
조한희가 같이 가면 가장 좋겠지만 그녀는 회사 경영으로 바쁜 상태다.
난 서치에 접속해 사람찾기 항목을 클릭하고 길잡이를 선택했다.
그러자 본인의 이력서를 올린 사람들 중 길잡이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목록이 주르륵 나왔다.
“어디보자. 어디 쓸 만한 사람이 없을까….”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살펴봤지만 내 눈에 차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비슷한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까득. 까드득.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책상에 놓인 황금빛 코인을 씹으면서 계속 살펴봤다.
“얘도 아니고, 이놈도 아니네….어?”
그러다 눈에 띄는 이력서를 발견했다.
“이차원의 가방 사용자라고?”
이차원의 가방은 매우 희귀한 능력이다.
자신이 원하는 가방을 지정하면 그 가방은 이차원의 가방이 된다.
이차원의 가방 안에 넣는 모든 아이템은 이차원인 평면 형태로 변하게 된다.
크기와 무게가 모두 A4용지 한 장 크기로 변하기 때문에 던전이나 장기간 여행을 갈 때 굉장히 유용한 능력이다.
아직까지 거의 알려진 적이 없는 능력이라 사람들이 몰라서 스카웃을 안 한 모양이었다.
이력서에 써진 내용을 보면 길잡이로서의 능력도 준수해보였다.
“홍준기라…. 좋아. 너로 정했다!”
난 곧바로 이력서에 써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