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지 가소롭다는 듯 날 바라보다 달려들었다.
훙. 후웅.
주먹이 매섭게 날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슬쩍 피한 난 공격으로 비어있는 양성한의 가슴에 주먹을 찔러 넣었다.
“크윽!”
그는 내게 맞은 게 자존심이 상하는지 씩씩 거리다가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내가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양성한 정도는 우습게 제압이 가능하다.
그도 역시 기술과 내공을 사용 못하니 결국 승패를 결정짓는 건 순수한 능력치와 격투 센스다.
양성한이 나보다 격투센스는 뛰어나지만 나와 그의 능력치 차이를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다.
유치원생이 아무리 격투센스가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성인을 이길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나한테 신나게 맞은 그는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기절했다.
다음은 양성한이 형이라고 부른 남자였는데, 얼굴에 흉터가 길게 나있고 인상이 매우 차가웠다.
흔한 조폭 영화에서 칼잡이로 나올 법한 인상이다.
본인을 김영원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양성한 보다는 훨씬 무술의 체계가 잡혀 있었다.
그래봤자 내 상대는 아니다.
간단히 양성한과 비슷한 방법으로 김영원도 제압하자 다음으로 나선 사람은 빨간 머리의 여자였는데 이하나라고 했다.
그녀는 앞선 둘보다 기본기가 훨씬 잘 잡혀 있었다.
그래서 이기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마지막 박대길이었다.
그는 보이는 외모와 달리 싸움이 시작되자 마치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능력치 중 힘이 엄청나게 높은지 막을 때마다 내 몸이 뒤로 밀렸다.
맷집도 상당해서 한참을 때리고 나서야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
내가 모두를 이기고 자리로 돌아가자 천수노인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쯧쯧쯧. 니들이 밤마다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 다니니까 신입도 이기지 못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그 시간에 수련에나 더 집중하거라.”
하지만 양성한이 그 말에 발끈하며 말했다.
“사부님. 내공만 사용했다면 저딴 놈은 한 주먹거리도 안 된다구요!”
그 말에 천수노인은 양성한을 크게 나무랐다.
“에잇! 멍청한 놈. 언제까지 내공이나 스킬 타령만 할 생각이냐. 내 누차 말하지 않았느냐.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기본이 갖춰진 상태에서 힘이 실려야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곤 모두를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정권찌르기 천 번. 발차기 천 번, 돌려차기 천 번씩 하도록 해라. 어서!”
지금껏 수련을 하면서 이렇게 단순한 동작만 반복한 건 생전 처음이었다.
처음엔 이걸 왜하나 싶었다.
그러나 계속하다 보니 온 정신이 주먹에 집중됐다.
어떻게 하면 더 강하게 찌를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발차기도 마찬가지다.
그제야 천수노인이 왜 기본기를 그토록 강조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이래서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했던 거구나!
하지만 다른 이들은 박대길만 제외하고 하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오직 박대길만이 묵묵하게 천수노인이 시키는 걸 정성스레 실천했다.
천수노인이 시킨 미션을 모두 완료한 내 몸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분은 날아갈 듯이 좋았다.
막혔던 길을 찾은 듯한 기분이다.
천수노인은 내 표정만 보고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흡족한 미소로 날 바라봤다.
하지만 제자들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엔 안타까움뿐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저녁 수련까지 모두 끝낸 나는 혼자서 수련장으로 나가 정권지르기와 발차기를 더 연습했다.
그때 몇 사람이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누구지?
기감을 확장해 살펴보니 양성한과 김영원이다.
난 몰래 그들의 뒤를 따라가봤다.
아까 천수노인이 말한 밤마다 하는 일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뒤따라 가보니 그들은 괴롭힘을 당하거나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구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양성한이 말한 협객이란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영웅놀이 중이었네. 좋은 일이긴 한데, 영감님도 골치 아프시겠어.
그때 그들이 서 있던 골목길을 향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을 보고는 돌아가려던 난 좀 더 구경하기로 마음 먹고 기척을 숨긴 채 조용히 지켜봤다.
“너희가 요즘, 나 홍영호의 구역에서 설치고 다니는 녀석들이냐?!”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사람이 물었다.
그는 산적 같은 외모에 배가 툭 튀어나온 40대 중반의 아저씨였다.
“흥! 설치다니. 니들이 하도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다니니까 그런 거 아니야?!”
“껄껄껄걸. 그럼 오늘도 나쁜 짓 하나만 하도록 하지. 얘들아. 죽여라!”
그의 명령에 뒤에 있던 부하들이 일제히 김영원과 양성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재밌게 돌아가네. 저 남자도 보통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될지 궁금한 걸.
양성한과 김영원은 달려드는 무리를 상대로 잘 싸우곤 있었지만 적들도 다들 각성자라 하나 둘 씩 상처가 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씩 한 명씩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때 지켜만 보던 홍영호가 부하들을 뒤로 물렸다.
“멍청한 놈들. 저리들 꺼져. 내가 직접 죽여버릴 테니까!”
그는 앞으로 나서며 양성한과 김영원을 향해 양손을 들어올렸다.
“컥!”
“크헉!”
둘은 갑자기 목을 부여잡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염력.
홍영호가 각성한 능력은 염력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치열할 것 같은 전투는 홍영호가 가진 염력이라는 능력 때문에 너무 쉽게 끝이 났다.
홍영호는 허공에 매달려 숨도 못쉬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을 향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잘 가라!”
그가 마무리를 하려는 찰나 내가 나섰다.
“잠깐. 거기까지!”
홍영호는 염력은 유지한 채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난 이미 양성한과 김영원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내가 상당한 실력자라고 판단했는지 양성한과 김영원에게 사용하던 힘을 거두고 나를 향해 사용했다.
목 주변으로 강한 압력이 느껴졌지만 난 태연히 뒤를 돌아봤다.
양성한과 김영원은 바닥에서 켁켁거리며 목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야. 잘 봐둬! 상대가 염력을 사용할 때는 상대가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던가, 그도 아니면 압도적인 힘으로 염력을 씹어먹으면 돼. 이렇게 말이야!”
순간 내 몸에서 항거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이 터져 나왔다.
그 힘 때문에 내 목을 조르던 홍영호의 염력은 찢기듯 사라졌다.
“봤지?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
그들은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말했지? 싸가지 없는 새끼들은 맞아야 한다고.”
잠시 후 홍영호와 그가 끌고 온 무리들은 피떡이 된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난 바닥에서 꿈틀대는 홍영호에게 다가가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회복되면 복수하러 꼭 와야 돼! 스트레스 좀 풀게 말이야. 크크크크.”
그는 내 말에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기절했는지 축 늘어졌다.
“자, 그럼 이제 돌아갈까?”
“네!”
“예!”
내 말에 양성한과 김영원이 차렷자세를 하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천수노인이 알려주는 기본기를 익히는데 집중했다.
그는 내가 여길 떠나서도 계속 연습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자세히 알려줬다.
그가 그렇게 정성껏 알려주는 데는 양성한과 김영원의 태도가 완전히 변한 것도 한몫했다.
그들은 내 힘을 본 다음 날부터 미친 듯이 수련에 열중했다.
내가 그들에게 강함의 비결이 기본기라고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약간 의심하던 그들도 내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 종일 기본기 훈련만 하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창천 길드에 온지 5일 째 되던 날.
점심을 먹고 오후 수련을 시작하려는데 이상한 에너지가 감지됐다.
“어! 이건 뭐지?”
난 급히 수련을 하던 제자들과 함께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장소로 갔다.
마침 천수노인은 급한 일이 있어 자릴 비운 상태였다.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장소에 도착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뭔가에 의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찢겨지고 있단 게 맞는 표현이겠다.
“저… 저게 대체 뭐죠?”
양성한이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저런 건 처음 보는데. 대체 뭘까?”
그때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
허공에 조금씩 생기던 균열이 뭔가에 의해 쭈욱 하고 찢어지며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뭔가의 거대한 눈이 보였다.
그 눈은 거대한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웃었다.
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웃는 게 분명했다.
그걸 보자 머릿속에 누군가의 이름이 떠올랐다.
키라!
저건 키라가 분명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게이트도 아니고 저렇게 공간을 찢어서 나올 수도 있는 거야?
처음 보는 현상이지만 균열 너머로 낯선 세계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키라가 있는 세상과 우리 세상이 저 균열로 인해 연결된 것이다.
그때 균열을 통해 흑발의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는 나오자마자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다음 날 바라봤다.
[오랜만이구나. 인간!]
말과 함께 그녀를 중심으로 엄청난 살기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 ‘대격변의 영웅’ 칭호 효과로 인해 절대자 키라의 살기가 무효화 됩니다.
[건방진 것도 여전하고 말이야.]
자신의 살기가 효과가 없자 한 말이다.
하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내 옆에 있던 천수노인의 제자들은 그녀의 살기에 최선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 역시 그녀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여긴 재밌는 곳이구나. 마음에 들어! 이곳에 내 왕국을 세워야겠다.]
“뭐? 니 왕국?”
하지만 그녀는 난 거들떠도 보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기에 바빴다.
[근데 너무 좁고 지저분하군. 이곳보단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유희를 하려니 기분이 너무나 좋구나.]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그리곤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땐 몰랐지만 이제야 니가 누군지 알겠군. 넌 운명을 거스르고 파괴하는 자로구나. 난 그런 것도 싫어하진 않지. 조만간 초대하지. 내 왕국에서 말이야. 호호호호호.]
그녀는 사라졌다.
싸우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이렇게 빨리 그녀와 만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
그리고 저 균열은 뭐란 말인가!
그때 균열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소리다.
대격변 때 몬스터 군단이 달려오며 냈던 소리. 바로 그 소리다.
“공격에 대비해!”
난 다급히 모두를 향해 외쳤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