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화룡도는 순식간에 모든 걸 베고 지나가다 갑자기 멈춰섰다.
어느새 다가온 호랑이탈의 남자가 어느새 내 오른손목을 잡고 있었다.
“이건 좀 위험할 뻔 했군. 좋아. 잔재주란 말은 취소하지. 그러나 그렇게 허점이 많아서야 병신이 아니고선 누가 그딴 공격에 맞겠어?!”
그는 지금까지 단월에 죽은 이들을 모두 병신으로 만들어버리고는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나 역시 단월을 이런 식으로 막은 이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당황했다.
하지만 곧바로 왼팔을 뻗으며 일권을 시전했다.
푸화악.
어마어마한 강기가 호랑이탈의 남자를 휘감았다.
하지만 잠시 후 나타난 그는 전혀 타격이 없어 보였다.
“꽤 좋은 공격이긴 한데 나 정도 레벨을 상대할 땐 이런 공격은 의미가 없어. 왜? 아무 타격도 없으니까!”
그리곤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쳐다봤다.
“더 놀아주고 싶은데 이제는 진짜 시간이 없어서 가야겠다. 늦으면 잔소리 엄청듣거든.”
난 그에게 더 이상의 공격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금의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마치 테세우스와 마주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보낼 순 없지. 뭐라도 하나 알아내야 해!
난 지금 이 순간 가장 궁금한 걸 솔직하게 물었다.
“솔직히 내가 동물탈을 쓴 놈들을 몇 명 만났거든! 원숭이랑 뱀이랑, 토끼도 만났고. 근데 넌 걔네랑은 차원이 달라. 보아하니 십이지신을 본뜬 것 같은데 네가 그 중 가장 강한 거야?”
그는 내 질문을 듣고는 아무 말 없이 잠시 날 바라봤다.
날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듯 했다.
“너랑은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으니까 약간의 정보를 줄게. 십이지신이란 네 추측은 맞았어. 하지만 그중 가장 강한 건 내가 아니야. 나도 이런 말하긴 자존심 상하지만 가장 강한 건 용녀석이지. 그 다음 나랑 소가 비슷하고….”
용이랑 소라. 저 놈 만큼이나 강한 놈이 두 명이나 더 있다니…!
“사실 이건 비밀이라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좀 더 강해지라고 알려주는 거야. 원래 여기서 죽여버릴까도 생각했는데 그냥 두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살려두는 거니까 더 강해지라구.”
그리곤 다른 동물탈들처럼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사실 요즘 내 실력에 자신을 가졌었는데 그를 만나고 그 생각이 처참히 무너졌다.
테세우스 같은 절대자야 그렇다 쳐도 마인도 아닌 한낱 그의 부하에게 깨졌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대론 안 되겠어. 돌아가자마자 특훈이다. 다음에 만날 땐 반드시 죽여주마!
난 이를 바득 갈며 그가 있던 집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근데 여기가 어디지?”
아이즈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자 강원도 홍천이다.
난 그 길로 서울을 향해 달렸다.
가면서 조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희야! 혹시 마녀들 거기 잘 도착했어?”
[응. 일단 빈 방들과 대련실에 자리를 마련했어. 그나저나 지금 어디야?]
“홍천에서 회사로 가고 있는 중이야. 대략 한 시간쯤 걸릴 거 같아. 그래서 말인데 두 시간쯤 뒤에 회의하자고 대마녀한테 전달 좀 해줄래?”
[알겠어. 그것만 하면 돼?]
“아, 그리고 오늘 낮에 나 찾아온 사람 없어?”
[그러고 보니 낮에 한 사람 있었어. 이름이… 정…찬호였나?! 아무튼 그런 사람이 찾아왔었어. 그 사람 말로는 태준 씨가 자길 채용했다고 하던데 맞는 거야?]
“그래. 잘 아는 동생인데 메인 탱커로 고용했어. 그럼 집에 간 거야?”
[아니. 태준 씨 보기 전에는 절대 못 간다면서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얼른 전화 한 번 해봐. 벌써 4시간째 기다리고 있으니까.]
“응. 그럼 사람들한테 전달 좀 부탁해.”
전화를 끊고는 바로 정찬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형.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왔는데 회사에 없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미안.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가고 있는 길이니까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야.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조금만 더 기다릴 수 있지?”
[그거야 뭐 어렵나. 남는 게 시간인데.]
“예진이는 같이 안 왔어?”
[안 그래도 지금 오고 있는 길이야. 아마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걸.]
“그럼 나가서 밥이라도 먹고 와. 한 시간 후에 내 사무실로 올라오면 돼.”
난 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서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쉼 없이 달려 회사에 도착한 나는 바로 내 방으로 올라가 조한희를 불렀다.
그리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애. 한희 넌 대한 그룹 흡수 준비를 서둘러 주고 난 최정예 그룹을 만들면서 강해지는데 집중해야겠어.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회사 경영은 모두 너한테 일임할게. 괜찮지?”
“그래. 회사는 나한테 맡기고 태준 씨는 태준 씨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
그리곤 웃으면서 한 가지 깜짝 소식을 더 전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 기다리던 깜짝 발표가 있었어.”
“깜짝 발표? 갑자기 무슨 발표?”
“30분 전쯤에 통합 화폐를 만든다는 뉴스가 나왔어.”
“통합 화폐? 코인 말이야?”
“맞아. 화폐 이름은 태준 씨 말대로 코인(coin)으로 정해졌고, 실제 금을 함유해서 만든다고 해. 그래서 지금 금값이 엄청나게 뛰고 있어.”
“잘됐네. 미리 사둔 금은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팔자. 그렇다고 너무 기다리다간 타이밍을 놓칠 테니까 적당할 때 팔면 될 거야.”
그녀는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비록 안 지 몇 달 안됐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든든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 똑.
“들어와요.”
문이 열리며 정찬호와 이예진이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난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며 쇼파로 안내했다.
“한희야. 찬호는 아까 봤을 테고, 여긴 찬호 와이프인 이예진이야!”
“이예진? 예진 씨랑 같은 이름이네?”
그녀가 말하는 예진 씨는 익시온의 무덤에 있는 힐러 이예진을 가리켰다.
“응. 공교롭게도. 예진아 이쪽은 나랑 공동 대표로 있는 조한희야. 서로 인사해.”
그들은 서로 어색하게 인사했고 조한희는 편하게 얘기하라며 자릴 피해줬다.
난 그녀가 나가자 미리 받아놓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야. 조건은 어제 말한 거랑 동일해. 계약 갱신은 3년마다 할 거고, 연봉은 10억이야. 계약 동안 사택은 무료로 제공되고, 그 외 회사에서 제공하는 모든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그들은 내가 있는 사무실과 계약서를 보고서야 내가 피앤씨 대표라는 걸 실감한 듯 했다.
“정말 이 조건으로 괜찮은 거야? 혹시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거 없는 거지?”
“문제는 무슨. 돈은 6개월에 한 번씩, 세금을 제외한 금액이 지급 될 거야. 어제 계약금 1억 받았으니까 나머지 송금 받을 계좌번호는 여기다 쓰면 돼. 아마 내일 중으로 입금 될 거야.”
그제야 그들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꼭 껴안았다.
“예진이 넌 일은 그만 뒀어?”
“그럼 오늘 당장 사표 내고 왔지.”
“잘 했어. 당분간 찬호는 울산으로 내려갈 거야. 거기서 지금 최상급 던전을 공략 중이거든.”
“최상급 던전? 상급 던전이 아니고?”
그는 최상급 던전은 처음 듣는다는 듯 물었다.
“아마 못 들었을 거야. 아직 공식 발표가 안 된 미공개 던전이거든. 그러니까 너도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면 안 돼.”
“그거라면 걱정 마. 입 하난 무거우니까.”
“그리고 이거 받아.”
난 이예진한테 카드를 하나 건넸다.
“이게 뭐야?”
그녀는 얼떨결에 받았지만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결혼했는데 선물도 제대로 못했잖아. 사택 지금 비어 있으니까 그걸로 필요한 가전과 가구들 싹 다 채워넣어. 그게 내 결혼 선물이야!”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울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잠시 토닥이다 시계를 봤다.
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찬호야. 나 지금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 되니까 오늘은 오랜만에 예진이랑 호텔에서 분위기도 내고 그래. 이런 날 무드 없이 집에 들어가면 미움 받는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계약서는 다 쓰면 비서한테 주면 돼. 자세한 스케쥴은 내일 내가 전화해서 알려줄게. 나중에 보자. 예진이도 몸조리 잘하고.”
난 곧바로 같은 층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대마녀와 메이화 외에 처음 보는 마녀 세 사람이 더 있었다.
그녀들은 날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그대가 아니었으면 오늘 우린 다 죽었을 거에요.”
“고생을 좀 하긴 했죠. 그에 대한 건 차차 얘기하도록 하고…. 제가 준비한 오늘 회의의 안건은 두 가지에요. 먼저 ‘마녀의 하루’를 저희 피앤씨가 인수하는 문젠데. 혹시 회의를 통해 결과가 나왔나요?”
대마녀는 내 질문에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말대로 하기로 했어요. 외부인에게 맡기면 안된다고 반대하는 이들도 몇 명 있었는데 오늘 그런 일을 겪고 나서는 모두 동의했답니다.”
“저희가 인수를 하기로 했지만, 관리는 마녀들 중 한 명이 했으면 하는데 좋은 사람 없을까요?”
그때 메이화가 손을 들었다.
“제가 하죠. 그런 쪽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기 때문에 문제 없을 거에요.”
그녀의 말에 난 대마녀를 쳐다봤다.
대마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관리는 메이화가 하는 걸로 하죠. 이에 대한 계약서는 곧 만들어서 드릴 테니 검토해보시고 사인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죠. 그전에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요?”
“마녀들은 꼭 마녀의 숲에 살아야되는 건가요?”
내 질문에 대마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인적이 드문 곳이다 보니 정착하게 된 거지 특별한 의미는 없답니다.”
“그럼 당분간 저희 건물에 사시는 건 어떠세요? 이게 두 번째 안건입니다.”
그건 생각도 못 해본 일이었는지 같이 온 마녀들이 술렁거리는 게 보였다.
“여기서 산다구요? 여기 어디를 말하는 거죠?”
“지금 비어 있는 위층입니다. 11층과 12, 13층, 그리고 옥상까지 모두 사용하시는 겁니다. 거기서 약초도 키우고 필요한 모든 연구를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대마녀는 회의적인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굳이 우리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말이죠.”
“대마녀님은 아시겠지만 앞으로 그런 일들이 언제 벌어질지 몰라요. 계속 그렇게 위험에 노출된 채로 사실 건가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했다.
“그 문제는 우리끼리 회의를 해봐야 할 것 같네요. 근데 우리가 여기서 당분간 지내면 서로에게 뭐가 좋은 거죠?”
“마녀분들은 좀 더 안전한 곳에서 금전적인 걱정 없이 편히 지내실 수 있습니다. 거기다 여긴 최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고 여러 재료들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곳이죠. 여러 비약들을 실험하고 만드는데 여기만한 곳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희 회사도 좀 더 빠르게 약들을 공급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좋구요.”
내 의도를 알겠다는 듯 대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회의를 한 후 따로 알려드리죠. 그럼 끝난 건가요?”
“네. 제가 말씀 드릴 건 모두 끝났습니다. 근데 대마녀님. 저와 잠시 차 한 잔 가능하실까요?”
그녀는 내가 뭔가 할 말이 있단 걸 눈치 채곤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다들 먼저 내려가세요. 전 이분과 차 한 잔 마시고 내려갈 테니까요.”
모든 이들이 나간 후 난 대마녀에게 호랑이 탈을 쓴 남자와 만난 이야기를 해줬다.
내 얘길 다 들은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호랑이 탈을 쓴 남자가 김나령, 그 아이의 아버지라구요?”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