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대저택의 내부 구조는 다행히 매우 단조로웠다.
외부 침입자가 거의 없으니 경비도 많이 없어서 움직이기 아주 편했다.
기감을 확장하자 백여 명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게 느껴졌다.
즉시 그곳으로 가자 큰 방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개가 보였다.
음. 개는 오감이 뛰어나서 몰래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정면돌파 밖에 없나?
하지만 그랬다가 큰 소란이 일어나면 무영족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일단 신중하자.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난 그곳을 빠져나와 저택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고수라고 부를 수 있는 자가 둘이네. 이 중 한 명이 라이콴이겠지? 일단 조심히 접근해보자.
저택을 돌아다니면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무영족의 전투력은 현실 세계와 비교해 수준이 한참 떨어졌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할 수 있었다.
“형님! 마녀들을 저리 잡아서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저희가 더 곤란해지기 전에 어서 돌려보내셔야 합니다.”
“돌려보내기는 왜 돌려보낸단 말이냐! 너도 그가 한 말을 들었지 않느냐. 마녀의 숲에 있는 마녀를 전부 잡아 온다면 우리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한 그의 말을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 신뢰가 안갑니다. 차라리 다른 방법을 알아보는 게….”
“닥쳐라!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마라! 이건 족장으로서의 명령이다.”
보아하니 무영족 내부에서도 마녀들을 잡아온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모양이네. 그렇담 담판을 지으러 가볼까!
난 기척을 숨기지 않고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상의 입지 않고 근육질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남자 두 명이 보였다.
두 사람 다 4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한 사람이 좀 더 나이가 들어보였다.
저 사람이 라이콴인가보네.
난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를 보고 눈을 빛냈다.
두 사람은 갑자기 난입한 날 보고 벌떡 일어나 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누구냐?”
그러나 곧 무채색이 아닌 날 보고는 놀라서 말했다.
“외부인? 외부인이 어떻게 여길?”
“여긴 참 편하단 말이야. 색만 보면 외부인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니까 말이야.”
내가 딴 소리를 하자 라이콴이 어느새 빼든 반월형 칼날을 들고 위협하며 소리쳤다.
“이… 이 새끼야. 어떻게 여기 온 거냐고?!”
“그냥 친구 도움 좀 받았지. 그나저나 난 마녀의 숲에서 사라진 마녀들 때문에 왔는데 말이지.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라이콴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얘기는 무슨 얘기. 넌 그냥 여기서 죽으면 되는 거야!”
훙. 훙.
그가 휘두르는 칼날이 매서운 소리를 내며 날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깡. 깡.
그의 공격은 모두 허무하게 내 몸에 맞고는 튕겨져 나왔다.
놀란 그가 한 발짝 물러나더니 놀란 눈으로 자신의 무기와 날 번갈아 쳐다봤다.
“너… 너 대체 뭐….뭐야?”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리곤 최대치로 몸안의 기운을 뿜어냈다.
이럴 땐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게 최고다.
어설픈 힘은 오히려 상대에게 희망만 심어줄 뿐이니까.
숨 막힐 듯한 기운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들이 고수이긴 하지만 나와는 격차가 상당했다.
그제야 그들은 내가 그들로선 어찌할 수 없는 강자임을 알아챘다.
그들은 감히 내 시선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몸을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을 거두고 말했다.
“아직도 나와 대화할 마음이 없어?”
그들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좋아. 그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구. 이리 와서 앉아.”
그들은 마지못해 내 맞은편에 앉았다.
“이제 마녀에 대한 얘길 해보자구. 누가 마녀를 잡아오라고 시켰지?”
라이콴은 반항은 포기했는지 내가 묻는 말에 술술 대답을 해줬다.
“어제 새벽 누군가 날 불렀다. 현실 세계로 나가보니 호랑이의 탈을 쓴 남자였다.”
역시 또 동물 탈을 쓴 놈들이 개입해 있구나. 그나저나 현실에서 이곳으로 말을 전하는 게 가능한 건가?
“근데 이 안에 있는 널 불렀다고 했는데 그게 가능한 거야?”
“가끔 그런 경우도 있다.”
“그래? 그럼 그 호랑이 탈을 쓴 사람이 시킨 거야? 마녀들을 다 잡아오라고?”
“그렇다.”
근데 마녀들은 왜 잡아오라고 한 거지? 며칠 전에 죽인 뱀탈이나 김나령 때문인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말은 또 뭐야?”
“말 그대로 그가 마녀들을 모두 잡아 데려오기만 하면 우리 무영족이 현실에서도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했다.”
이미 그들이 이곳을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그 사람이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떻게 할 거야?”
“… 그럴 일은 없다. 그가 꼭 지키겠다고 약속 했으니까…!”
난 그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심정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만큼 현실 세계로 나가는 게 절박했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말 한마디에 이런 일을 벌이는 그가 이해가 안 됐다.
“너 정말 바보구나!”
“뭐? 바보?”
그는 아까 내 힘을 보고도 발끈하며 소릴 질렀다.
“바보가 아니면 뭐야? 누군지도 모르는 놈 말만 믿고 이런 큰일을 저지른 게 바보가 아니면 뭐냐고?!”
“그… 그건….”
그도 할 말이 없는지 말은 못하고 씩씩 거리기만 했다.
“현실 세계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내 말에 이번엔 화를 삭이고 있는 라이콴을 대신해 옆에 있던 동생이 말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우리 조상 중 현실 세계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이가 있다고 들었소. 하지만 그 사람은 일족을 배신하고 혼자 현실세계로 도망갔기 때문에 우리에겐 다른 방법이 없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이들이 소소처럼 현실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소가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까?
“근데 당신은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요?”
라이콴의 동생이 내가 어떻게 왔는지 물었다.
“어떻게 왔냐니? 당연히 영체화 해서 그림자를 통해 왔지.”
“영체화? 그럼 당신 혼자 영체화를 할 수 있다는 말이오?”
“내가 혼자 한 건 아니고 아는 무영족 친구가 해줬어.”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무영족 친구가 당신을 영체화시켜줬다는 말이잖소. 하지만 우린 다른 사람을 영체화시킬 수 없소.”
“그게 무슨 말이야? 영체화 시킬 수 없다니?”
“들은 그대로요. 우린 그림자를 통해 세상을 잠시 엿볼 뿐이지 다른 이를 영체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소.”
“그럼 마녀들은 어떻게 끌고 온 거야? 그들을 영체화시켜서 데려온 거 아니야?”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시오. 우린 사람들의 그림자를 통해 움직여 다니는 존재들이오. 근데 마녀들을 영체화시켰다면 그들의 그림자도 사라졌을 텐데 어디로 데리고 온단 말이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나만 해도 영체화하고 나서 그림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최박사의 그림자로 들어가 여기로 왔으니까.
어? 그러고 보니 마녀들은 자신의 그림자 안으로 빨려들어갔다고 했었지! 그럼 영체화가 안 됐다는 소린데….
소소의 말에 의하면 마녀들은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했다.
그 말은 그림자가 있다는 것. 즉, 마녀들은 영체화가 안 됐다는 뜻이다.
“그럼 마녀들은 어떻게 데리고 온 거야?”
“그건 ‘그림자 낚기’란 기술이오. 마녀들 대부분 힘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데려올 수 있었소. 하지만 당신 같은 대단한 능력자는 기술이 성공해도 우리가 데려갈 방법이 없소.”
그제야 그들이 마녀들을 어떻게 데려온 건지 이해가 됐다.
그럼 난 뭐지? 난 어떻게 영체화가 된 거야?
그때 라이콴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만약 당신이 진짜 무영족에 의해 영체화가 된 거라면 당신을 영체화 시킨 그 사람도 영체화가 될 수 있나?”
난 대답을 망설이다 사실대로 말해줬다.
“당연히 될 수 있지. 난 무영족이라면 모두 영체화가 가능한 줄 알았거든. 근데 그게 아니었나보네.”
내 대답을 들은 라이콴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이 우릴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 우리도 영체화하는 능력만 배운다면 자유롭게 현실 세계로 나갈 수 있단 말이다!”
“뭐? 영체화만 되면 된다고?”
예상 외로 해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근데 왜 세상에는 너희 무영족이 영체만 있는 존재로 알려진 거지?”
“그건 엄밀히 말하면 영체가 아니오. 그림자로 우리의 모습을 본뜬 허상일 뿐. 아마도 그래서 그런 소문이 생긴 듯 하오.”
라이콴의 동생이 흥분해 있는 라이콴 대신 대답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한 가지만 해결하면 된다.
최박사가 보여준 글에 나온 이야기의 진위여부 말이다.
이들이 뒤통수를 칠 수 있으니 확실히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 했다.
난 그들에게 최박사 집에서 읽은 내용을 말해주고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물었다.
“그건 우리도 처음 듣는 이야기요. 하지만 천년 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오. 그때는 원하는 게 있다면 사람을 제물로 바쳐서 제사를 지냈다고 들었으니까 말이오.”
그 말까지 듣자 모든 의문이 해소됐다.
“그럼 너희도 영체화할 수 있는 방법만 안다면 마녀들도 필요가 없는 거지?”
“영체화 하는 방법만 안다면 마녀들은 당장 돌려보내 줄 수 있다.”
“좋아. 그럼 그 호랑이 탈을 쓴 사람은 언제 만나기로 했지?”
“오늘 저녁이다.”
“알겠어. 그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난 저택을 빠져나와 소소를 찾았다.
기감을 확장하자 저택 주변에서 그녀의 기가 느껴졌다.
그녀도 나름 정보를 모아 여기에 마녀들이 잡혀 있단 사실을 알아낸 모양이다.
난 그녀에게 라이콴과 나눈 이야기를 자세히 해줬다.
“그래서 말인데 같이 가서 그들에게 영체화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어?”
“그거야 어렵지 않죠. 근데 진짜 그들이 지금까지 영체화 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 나왔던 거래요?”
“그런 거 같던데. 현실과 단절 되서 그런지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더라구. 영체화하는 방법만 알려주면 마녀들은 안전하게 돌려보내 준다고 했어.”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결국 승낙했다.
“알겠어요. 만나보도록 할게요.”
우린 그 길로 라이콴이 있는 방으로 갔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