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갑자기 사라지다니?”
”…흑. 말 그대로에요. 갑자기 언니가 비명과 함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는 사라졌어요. 다른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림자 속으로?
“근데 넌 왜 괜찮은 거야?”
“난 그림자가 없어요. 그래서 괜찮은가 봐요.”
“그림자가 없다고?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거야?”
그림자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니까.
근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면 빛이 그대로 투과된다는 말이다.
그래야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다.
난 슬쩍 그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찔러봤다.
“어어?”
내 손가락이 그녀의 어깨를 그대로 통과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그녀는 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는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너… 너 몸이 없잖아?! 혹시 유령 뭐 그런 거야?”
“유령이라뇨! 이건 영체에요. 난 그냥 몸만 없을 뿐이라구요. 흥! 육체 있는 게 뭐 그리 자랑이라고….”
몸만 없다고? 저게 가능한 거야? 보아하니 저 여자는 자신이 누군지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은데…. 이건 좀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그림자로 사라진 마녀의 숲 사람들.
그리고 육체가 없는 소소.
왠지 둘 모두 내가 모르는 이종족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럴 땐 이종족의 전문가를 찾아가면 된다.
“누구한테 가면 좋을까….”
그때 최강철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도 역시 이종족인 곰인간.
거기다 지난 번 봤던 집의 규모로 봤을 때, 여러 정보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난 마을을 떠나기 전에 소소에게 물었다.
“난 지금 마을을 떠날 건데 너도 같이 갈래?”
“난 언니를 찾아야 돼요. 언니를 꼭 찾아야 된다구요!”
“그래 알아. 그래서 지금 언니 찾을 정보 모으러 가는 거라고. 그러니까 너도 같이 가자.”
그제야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내 그림자 안으로 쏙하고 숨어들었다.
마녀의 숲을 나와 김강철의 집으로 달려가면서 소소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근데 육체가 없는데 공격이나 방어는 어떻게 하는 거야?”
“잠시 동안은 물체들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그걸로 공격과 방어를 하는 거죠.”
“그럼 네가 마음 먹으면 아무도 널 상처 입힐 수 없겠네? 육체 자체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듯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랬으면 정말 좋을 텐데 그것도 아니에요. 죽을 뻔한 적도 몇 번 있으니까요!”
그리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래도 생각하기 싫은 기억인 듯 했다.
그래서 난 급히 다른 주제를 꺼냈다.
“메이화랑은 어떻게 만난 거야?”
“언니와의 만남은 정말 운명적이었어요.”
그녀는 신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략 20년 전 소소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산 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때 산책을 나왔던 메이화와 만났는데, 그녀는 육체가 없는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껴줬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공부며 사냥이며 여러가지 기술들도 가르쳐줬다.
그녀는 그런 메이화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항상 그녀 옆에 머문다고 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녀에겐 세상 무엇보다 특별한 이야기였다.
“근데 육체는 그렇다 치고, 갑옷이나 무기는 어떻게 그림자 안에 숨기는 거야?”
“그건 어렵지 않아요. 제가 가진 능력 중 하나가 다른 사물들 영체화 시키는 거거든요.”
“영체화? 그럼 사람들의 육체도 영체화 할 수 있어?”
“가능하긴 할 텐데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어요. 한 번 영체화시키고 나면 다시 되돌아가는데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신비로운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최강철의 집 앞에 도착했다.
내가 다가가자 집 앞에 있던 경비들이 어김없이 날 막아섰다.
모두 네 명이다.
“여긴 사유집니다. 약속하셨습니까?”
그들은 잔뜩 경계하며 날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새벽이다.
이 새벽에 누가 약속을 하고 찾아오겠는가!
“약속은 안 했는데 가주님을 빨리 만나야 돼요. 최우혁 친구인 박태준이 왔다고 하면 문 열어 주실 거에요.”
하지만 그들은 단호히 안 된다고 거절했다.
“지금이 몇 십니까?! 안 됩니다. 돌아가서 정식으로 약속하고 오세요!”
지난번처럼 담을 넘을까도 했지만 그러기엔 처한 상황이 너무 급했다.
최우혁에게도 전화를 했지만 자는지 받지 않자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내가 진짜 급해서 그러니까, 연락이라도 넣어보라니까!”
“안 된다고 하잖아요. 돌아가세요!”
분위기가 점점 험악하게 돌아가자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경비가 말했다.
“다들 싸우지 말고 내가 팀장님께 전화해 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보슈.”
어딘가로 전화를 건 그는 잠시 후 전화를 끊고 말했다.
“팀장님이 여기로 곧 오신다고 하니까 잠시만 기다리슈.”
그의 말대로 5분도 안돼서 누군가 부리나케 문을 열고 나왔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잔데 팀장이라더니 겉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박태준 씨 되십니까?”
그는 예의바르게 물었다.
“네. 접니다.”
“가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리로 들어오시죠.”
난 그를 따라 문안으로 들어갔고 경비들은 그 상황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그는 저택 안에 있는 고풍스러운 정자로 날 안내했다.
최강철은 거기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허허허. 이 새벽에 날 찾아오다니. 굉장히 급한 일인가 보지?”
“죄송합니다. 아버님. 급한 일이 생겼는데 물어볼 데가 없어서 말이죠.”
“그래. 물어보고 싶은게 뭔가?”
“이종족에 대해섭니다. 혹시 다른 이종족들에 대해서도 잘 아시나요?”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종족인 곰인간이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그래서 궁금한 게 뭔가?”
난 바로 마녀의 숲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얘기를 듣던 최강철의 얼굴이 점점 심각하게 굳어갔다.
“마녀의 숲에 있던 이들 전체가 사라졌단 말이지? 그것도 그림자 속으로!”
“네. 뭐 짚이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하지만 그런 일은 나도 처음 듣는군.”
그도 알지 못한다고 하자 내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하지만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일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지.”
“그게 누구죠?”
“최박사.”
“최박사요? 그 사람도 이종족인가요?”
“아니. 그는 평범한 인간이야. 하지만 누구보다 이종족에 관해서 잘 안다고 봐도 무방하네.”
이종족도 아닌 인간이 그럴 수도 있나?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죠?”
“이종족들은 예로부터 싸움이 잦았네. 아주 사소한 것들도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하기 일쑤였지. 그래서 이종족 대표들이 모여 다툼이 있을 때마다 중재해줄 종족을 찾기로 했네. 그게 인간이었고. 우린 대륙 전체를 뒤져 현명하기로 소문난 이들을 찾아 부탁을 했는데 그게 벌써 1800년 전 일이군.”
“그럼 최박사란 사람은 그 중 한 사람의 후손인 건가요?”
그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최박사 집안은 대대로 정보수집광이라고 알려졌으니 아마 나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걸세.”
“어디로 가면 최박사를 만날 수 있나요?”
“경주로 가게. 내 자세한 주소는 문자로 보내주지.”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우혁이는 잘 지내고 있나? 요새 통 연락이 없어서 말이야.”
내심 걱정이 되는지 최강철이 최우혁의 안부를 물어왔다.
“걱정 마세요. 지금 몰라보게 강해졌으니까. 그리고 우혁이가 먹은 약을 해독할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최강철은 그 말에 얼굴이 한껏 밝아졌다.
“네. 약을 만든 것도 마녀들이니 해독하는 것도 가능할 거에요. 일단 사라진 마녀들부터 찾고 해결해 보겠습니다.”
“정말 고맙네. 내가 직접 가서 도와주고 싶지만 지금 가문 내에 정리할 문제들이 많아서 그러니 이해해주게나.”
“정보 주신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급해서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일어나 가려던 난 뭔가 생각난 듯 최강철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 혹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부탁?”
“경주까지 갈 차 하나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야밤이라 차 구할 데가 없네요.”
그 말에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당연히 빌려주지. 아까 자넬 데리고 온 사람에게 말해 둘 테니 정문에서 기다리게. 근데 피앤씨 대표씩이나 되는 사람이 차도 안 타고 다니는 겐가?”
“하하하. 뛰어다니는 게 더 빠르고 편해서요. 그럼 잘 쓰겠습니다. 빠른 차로 부탁드려요.”
정자를 나와 저택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자 람보르기니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그리곤 예의 팀장이란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차 키를 건네면서 말했다.
“가주님께서 주시는 감사의 선물이십니다.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빌려달라고 했더니 아예 차를 선물로 준 모양이다.
난 거절하지 않고 차 키를 받으며 말했다.
“가주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곤 다른 경비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한껏 받으며 경주 모화로 향했다.
차가 좋아서 그런지 밟는 대로 쭉쭉 나갔다.
새벽이라 차도 없어서 2시간여만에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 모화는 경주와 울산의 경계에 있는 작은 동네다.
도착하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옆자리에는 소소가 피곤한지 자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영체라면서 의자에는 앉을 수 있었다.
잠들기 전에 물어봤더니 엉덩이와 등 쪽에만 물리력을 적용한다고 했다.
최박사가 사는 집은 정원이 딸린 평범한 이층집이었다.
잠시 이층집을 지켜보는데 누군가 일어났는지 집안에 불이 켜졌다.
일어났구나! 실례긴 하지만 급하니 일단 들어가보자!
내가 차 문을 열자 소소도 일어났는지 내 그림자 안으로 쏙 숨어들었다.
너무 이른 새벽에 찾아온 거라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벨을 눌렀다.
[누구시죠?]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예상외로 여자였다.
“급히 알아보고 싶은게 있어서 왔는데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시죠?]
“자세한 건 만나서 했으면 하는데요. 서울에 있는 곰인간 중 한 분인 최강철 씨 소개로 왔습니다.
그러자 두말없이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인 듯 싶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이 보였는데 짙은 뿔테 안경을 쓰고 긴 머리는 대충 말아올려져 있었다.
하지만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외모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리 들어오세요.”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자 입이 떡 벌어졌다.
사방이 온통 책이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 권은 넘어 보였다.
그녀는 내가 놀라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고 한켠에 놓인 쇼파에 앉은 다음 물었다.
“묻고 싶은 게 뭐죠?”
난 마녀의 숲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그녀는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들은 무영(無影)족일 거에요.”
“무영족이요?“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