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퍽. 퍽.
그의 주먹이 내 몸 곳곳을 때렸다.
그 동안 열심히 훈련을 했는지 왠만한 각성자보다 뛰어난 움직임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는 때릴수록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느낌을 받았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그런 벽 말이다.
결국 그는 때리는 걸 멈췄다.
그리곤 가슴을 활짝 열며 말했다.
“내 전문 기술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다. 자! 어디 한 번 때려봐라!”
난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됐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갑자기 날 때리더니 이젠 자길 때리라니!
“잠깐잠깐! 내가 널 왜 때려야 되지?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술이나 한 잔 마시면 안 될까?”
“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때리기나 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 줄 테니까!”
슬쩍 이예진을 쳐다보자 그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주먹에 강기를 두르고 슬쩍 때렸다.
쾅.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화를 냈다.
“그따위 공격 말고 제대로 공격하라고!”
아! 얘 특성이 신체 강화였지! 그럼 좀 더 세게 때려도 되겠네.
“이번엔 좀 아플 거야!”
두 번째 공격은 충분히 힘을 주고 때렸다.
콰쾅.
그래도 그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이번 공격에도 꿈쩍 않고 버티자 속으로 많이 놀랐다.
“하하하하. 난 그 정도 공격으론 끄떡도 없다고! 하하하.”
“그럼 좀 더 세게 쳐도 되지?”
“응? 좀 더 세게? 다… 당연하지!”
아까 그게 내가 낸 최고의 힘이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더 세게 때린다고 하자 그는 당황하며 자세를 잡았다.
난 주먹에 최대한 내공을 실어 내질렀다.
콰콰콰쾅.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이번엔 그도 여러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상처는 없어 보였다.
그러자 나도 오기가 생겼다.
“좋아! 딱 한 대만 더 때려볼게. 이것도 막는다면 진짜로 인정해 줄게.”
내가 인정해 준다는 말을 하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자세를 잡고는 호기롭게 외쳤다.
“자! 언제든 들어와. 난 준비 됐으니까!”
몸 안의 기를 천천히 끌어올린 나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주먹을 뻗으며 외쳤다.
“흡! 일권!”
푸화악.
엄청난 강기가 내 주먹을 통해 폭풍처럼 나오더니 순식간에 정찬호를 덮쳤다.
털썩.
그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는 피를 토했다.
“크으윽! 쿨럭!”
그 모습을 본 이예진은 급히 그에게 달려가 부축했다.
그리곤 날 보곤 앙칼지게 소리쳤다.
“무슨 애들도 아니고 적당히 할 것이지 왜 목숨을 걸고 싸워!”
하지만 정찬호는 부축하는 이예진의 손을 뿌리치고 똑바로 서서 날 보며 물었다.
“나 어땠어? 이 정도면 당신한테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가?”
“최고였어. 방어력만 본다면 내가 만난 각성자 중 최고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이었다.
그도 그걸 알았는지 드디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난 그에게 왜 때리라고 했는지 물어봤다.
“근데 나더러 다짜고짜 때리라고 한 이유가 뭐야?”
“그건 여기 말고 집에서 소주라도 한 잔 하면서 얘기하자!”
“그것도 좋지. 그럼 치킨이라도 시켜. 돈은 내가 낼 테니까.”
우린 즐겁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둘의 보금자리는 생각 외로 굉장히 허름한 원룸이었다.
반지하에 살고 있었는데 습기 때문에 곳곳에 곰팡이가 보였다.
“집이 좀 그렇지? 둘 다 고아라 도움 받을 사람이 없다보니 이렇게 살고 있네.”
“음, 각성자면 벌이도 괜찮지 않아?”
“모르는 소리 말아. 각성자도 스펙이 좋아야 돼. 그래야 좋은 길드에 들어가서 높은 연봉 받고 살지. 우리처럼 밑바닥 스펙은 일회용 고기방패로나 쓰이지 돈은 무슨 돈이야. 그나마 지금은 아이즈랑 서치라는 사이트 때문에 상황이 조금 나아진 거 같긴 하더라구. 그래도 여전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건 똑같지만.”
약간 우울한 표정을 짓던 그는 다시 밝고 활기찬 얼굴로 말했다.
“근데 곧 취직해서 사랑하는 우리 예진이 행복하게 해줄 거야! 뱃속에 있는 우리 사랑이도 같이 말이지!”
“사랑이? 설마 임신한 거야?”
놀란 눈으로 이예진을 바라보자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몇 개월인데?”
“3개월.”
“뭐? 근데 아까 그런 애들이랑 싸운 거야? 너 제정신이야? 3개월이면 제일 조심해야 될 시기라는 거 잘 알잖아?!”
하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돈은 벌어야지. 손가락만 빨고 살 순 없잖아. 이이가 유명 길드들에 이력서를 넣고 있으니까 조만간 연락이 올 거야. 실력은 충분하니까.”
사는 모습을 보니 그녀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가서 더는 말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내가 자길 걱정해서 한 소리란 걸 알기에 별 소리 안하고 넘어갔다.
지금 제일 불편한 건 정찬호다.
그도 자기 때문에 아내가 고생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때 미리 시켜둔 치킨이 왔다.
우린 작은 교자상을 펴고 앉아서 치맥을 즐기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얘길 나누다보니 내가 그보다 2살이 더 많았다.
생각해보면 인연이란 게 참 재밌다.
처음에 정찬호가 양아치 짓을 하며 골목에서 마주쳤을 때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날 걸 상상이나 했을까!
“근데 나보고 다짜고짜 때리라고 한 이유가 뭐야?”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자 제일 궁금했던 것부터 물었다.
그도 술기운이 오르자 부끄러움 없이 술술 이야기를 했다.
“형님이 대격변 때 보여줬던 압도적 힘. 나도 형님처럼 되고 싶었어. 하지만 좆 같게도 내가 가진 특성은 방어지. 그래서 형님처럼 압도적인 힘이 아니라 압도적인 방어력을 갖기로 한 거야! 그리고 결국 오늘 성공했지. 형님한테 인정 받았으니까.”
참 단순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끌렸다.
그를 보고 있자니 대격변 때 홀로 오크 무리를 향해 뛰어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난 솔직히 그날 그를 보고 감탄했었다.
그래서 몬스터 군단이 올 때 그들을 도와준 것이다.
그가 살아남길 바랐으니까!
난 술기운을 빌려 그 얘기를 해줬다.
그도 내 진심을 알았는지 고맙다고 얘기했다.
그리곤 어렸을 적 살던 얘기부터 이예진과의 결혼 얘기까지 줄줄이 나왔다.
그러다 내가 불쑥 물었다.
“너 우리 회사에 들어올래?”
그 말에 그는 갑자기 술이 확 깨는지 눈을 번쩍 뜨고 물었다.
“형님 회사? 뭐하는 곳인데? 기본급은 얼마나 돼? 복지는 좋은 편이야?”
그는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그만큼 절박해 보였다.
이 시궁창 같은 삶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뭐 나쁜 편은 아니지. 마침 메인 탱커가 필요하던 참인데 잘 됐어.”
아닌 게 아니라, 사실 내가 없어도 완벽히 던전을 돌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메인 탱커였다.
최우혁과 해진우는 탱커라기보다는 딜러에 가깝기 때문에 메인 탱커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진짜 내가 가도 되는 거야? 근데 월급은 얼마나 돼? 300은 돼야 예진이가 일을 그만 둘 수 있는데….”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이예진이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에이. 이 사람도 참! 처음부터 월급 300만원 받기가 쉬운 줄 알아? 초봉은 원래 적은 거야. 그러니까 일단 취직부터 해! 마침 당신이 존경하는 형이랑 같이 일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난 현장 말고 사무직으로 옮기면 되니까 내 걱정은 말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씁쓸했다.
세상엔 이들처럼 재능 있고 괜찮은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그래서 같이 할 생각 있어?”
“날 써주기만 한다면야 당연히 해야지.”
“위험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언제는 안 위험한 일이 있었나. 그런 걱정은 안해도 돼!”
난 그의 말에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킨 다음 품속 지갑에서 수표를 한 장 꺼냈다.
“그 각오 마음에 든다. 여기 내 명함이랑 계약금. 이걸로 내일 당장 양복 한 벌 사서 계약서 쓰러 회사로 와! 회사 주소는 거기 적혀 있으니까.”
그는 내가 내민 명함과 수표를 받아들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갑자기 돈을 받아서 당황한 듯 싶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마디 더했다.
“찬호야. 자신감을 가져. 넌 내가 선택한 메인 탱커니까! 그리고 연봉은 일단 10억부터 시작하자. 내가 회사에 그렇게 전달해 놓을 테니까 회사에 오면 연락하고.”
그는 잠시 현실감 없는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 내가 건넨 수표를 쳐다봤다.
그리곤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 일억?”
그 소리에 이예진도 깜짝 놀라 수표의 액수를 확인했다.
“혀….형님. 이거 위조 아니죠?” “하하하. 위조는 무슨. 걱정 말고 받아도 돼. 너 정도 수준이면 그 정도 금액으로도 부족하니까. 하지만 예진이 말대로 초봉이니까 그 정도로 가자고.”
“대체 무슨 회사길래….”
그리곤 명함에 적혀 있는 상호를 보곤 더욱 깜짝 놀라 소리쳤다.
“피…피앤씨 컴퍼니 대표? 이거 아이즈 만든 그 피앤씨 맞아요?”
난 그가 놀라는 모습을 재밌게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 그 피앤씨야. 내가 공동 대표로 있는 회사니까 걱정 말고 내일 오후에 회사로 와서 연락해. 예진이 넌 내일 당장 회사 그만두고!”
그리고 나가려다 잊은 게 있어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꾸린 팀은 특별히 사택이 제공되니까 이사 준비부터 해둬. 며칠 안에 이삿짐 센터에서 올 테니까. 그럼 조만간 또 보자!”
그리곤 멍하니 날 바라보는 그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정찬호와 이예진의 기쁨에 찬 환호성이 들려왔다.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떠나 마녀의 숲을 향해 달렸다.
살짝 올랐던 취기가 얼굴에 부딪히는 차가운 바람 덕분에 싹 사라졌다.
달린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마녀의 숲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무가 무성했던 마녀의 숲 입구가 휑하니 뚫려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누가 침입한 건가?”
난 서둘러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마을 안에는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감을 확장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건물이 부서지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만 빼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난 급히 대마녀가 있는 오두막집으로 갔다.
그곳에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메이화가 데리고 다니던 소소라는 여자였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메이화는 어디가고 너 혼자만 있어?”
그러자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가….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갑자기 사라졌어요….”
“뭐? 갑자기 사라져?”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