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환영보를 극성으로 전개했음에도 노인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했다.
분명 속도는 내가 훨씬 더 빨랐다.
하지만 노인은 내 움직임을 미리 알기라도 하듯 귀신처럼 내 공격을 피했다.
“이 정도면 보법은 볼만큼 본 것 같으니, 이제 제대로 된 공격을 한 번 보여주지 그러나.”
나를 놀리는 듯한 그의 말에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환영보를 전개해서 노인의 앞으로 갔다.
그리곤 바로 일권을 사용했다.
푸화악!
엄청난 강기가 내 주먹을 통해 앞에 있는 노인을 향해 터져나갔다.
이번 공격은 그도 상당히 놀랐는지 급히 두 손바닥을 마주 내질렀다.
콰콰쾅.
노인은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옷 여기저기도 찢어졌지만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진 않았다.
“이게 가장 강한 공격인가?”
“아니죠. 더 강한 걸로 보여드려요? 그럼 죽을 수도 있을텐데요.”
그 말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내 말이 빈말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만 했으면 됐네. 자네 실력은 대충 알겠으니 그만하세. 더 했다간 내 뼈마다가 남아나질 않겠어!”
그리곤 날 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지 않나?”
내 맘을 안다는 듯 그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분명 제가 더 빠른 것 같았는데 왜 공격을 맞출 수 없었던 거죠?”
“그건 자네가 기본기 없이 바로 상승무공부터 배웠기 때문이네.”
저건 뭔 소리지? 더 강한 무공을 배워서 문제가 됐다는 말인가?
“쉽게 설명하자면 기기도 전에 달리기를 배운 거라고 생각하면 되네.”
“그게 가능한 건가요?”
“보통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누군가는 자넬 그렇게 만들어놨군. 나도 실제로 자넬 보고서야 그럴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허허허.”
무슨 말인지 대충은 이해했지만 완벽히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는 내게 다가오며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어디 한 번 내게 주먹을 뻗어보게.”
그의 말대로 주먹을 천천히 뻗었다.
그러자 그는 슬쩍 몸을 틀어 내 주먹을 피했다.
그리곤 다시 주먹을 뻗으라고 말했다.
난 그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주먹을 다시 뻗었다.
이번에 그는 아까와 달리 슬쩍 피하는 게 아니라 어느새 내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리곤 웃으며 말했다.
“어떤가. 차이를 알겠나?”
곰곰히 방금 전 노인이 보여준 움직임을 되짚어 봤다.
그리곤 노인을 보며 말했다.
“혹시 제 움직임이 너무 과하다는 말을 하는 건가요?”
“그렇지. 자네는 움직임이 너무 커. 한 발만 움직여도 될 걸 열 발짝이나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그렇게 움직이면 가장 큰 단점은 예측이 가능하단 거야.”
그리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예를 들어 이런 걸세. 내가 자넬 공격하면 자넨 분명 한 발짝만 움직여서 피하는 게 아니고 내 상하좌우 어딘가로 오겠다는 걸 예측이 가능하단 말일세. 그럼 난 이 자리만 벗어나면 자네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지.”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뭔가 감이 오는 듯 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어떤 말씀인지는 대충 알겠네요.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 보겠습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넨 이미 모든 걸 가지고 있네. 깨달음만 있으면 바로 활용할 수 있지. 그러니 이제는 실전보다 심상수련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그럼 자연스레 실력도 올라갈 테니까!”
“좋은 조언 너무 감사합니다.”
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인사를 했다.
“근데 왜 저한테 이런 조언을 해주시는 거죠?”
“궁금한가?”
“네.”
“궁금하면 500원!”
“…….”
충격적인 그의 드립에 한동안 난 말을 잃었다.
그도 머쓱한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궁금하다면 언제 한 번 날 찾아오게나.”
“그러고 보니 어르신 성함도 모르고 있었네요.”
“난 창천 길드를 이끌고 있는 천수라고 하네. 그냥 천수노인이라고 부르면 되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도 좋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허허허. 자네가 와주면 오히려 내가 고맙지. 자네가 오면 제자 놈에게 좋은 자극이 될 걸세. 그럼 난 이만 가겠네. 조만간 또 보세!”
그리고 그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허허 웃으며 대련실을 나갔다.
난 한동안 그가 한 말을 되뇌이며 이리 저리 움직여 보다가 조한희가 있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녀는 내가 올라오길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은 잘 마무리 됐어?”
“응. 생각 외로 좋은 분이더라구. 창천 길드 길드장인 천수노인이라고 하던데 조만간 한 번 찾아가 볼까 해.”
“그래? 태준 씨가 직접 찾아간다는 걸 보니 진짜 마음에 들었나 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그나저나 오늘 길드 연합에서 제안한 건 서둘러 준비해줘. 아무래도 똥줄이 타는 것 같더라구!”
“그러게. 하긴 그러니 약속도 없이 여기까지 쳐들어왔겠지. 그나저나 이제 어쩔 생각이야? 다시 마녀의 숲으로 갈 거야?”
“그럴 생각이야. ‘마녀의 하루’를 인수하기로 했거든.”
갑작스런 내 발표에 그녀는 깜짝 놀란 듯 했다.
“그게 가능해? 마녀들은 굉장히 폐쇄적이어서 외부인과 교류를 극히 꺼린다고 들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물론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괜찮지?”
“그럼. 마녀의 하루에서 나오는 물약을 경매장에 올리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갈 거야. 가뜩이나 힐러도 귀한데 단가만 맞다면 대량의 물약이 힐러를 대신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대한 그룹 인수 준비는 잘 돼가?”
“그럼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 마. 조만간 작업 들어갈 생각이야!”
“오케이. 그럼 난 오랜만에 럭키한테 들렸다가 마녀의 숲으로 가볼게. 한 하루 이틀 걸릴 거야!”
그녀는 잘 갔다오라며 날 배웅했다.
난 근처에서 간단한 먹을 걸 사들고는 럭키가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럭키가 날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못 봐서 보고 싶었어요!”
“하하하. 나도 보고 싶었어. 찬성 씨도 오랜만이에요.”
김찬성은 컴퓨터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난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인사했다.
“예. 오랜만이네요. 가져온 건 거기 테이블에 놔두세요. 나중에 시간 나면 먹을 테니까.”
그의 말대로 가져온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둔 다음 럭키에게 물었다.
“근데 츤츤이는 요즘 어딨는 거야?”
“아! 대왕님은 얼마 전에 중국에 가셨어요.”
“뭐? 중국?”
“모르셨어요?”
“난 지금 그 새끼 만난 지 2달도 넘었어. 중국은 대체 왜 간 거야?”
“꼭 만날 사람이 있다고 가셨어요.”
“꼭 만날 사람? 지가 여기 아는 사람이 어딨다고 꼭 만날 사람이야?!”
나한테 얘기도 안하고 중국으로 갔다고 하니 괜히 서운하고 화가 났다.
“그 새끼 오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 알겠지?”
“그럴게요. 자주 놀러 오세요. 두 손은 무겁게 해서!”
난 대충 그들에게 인사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바로 마녀의 숲으로 갈까 하다 괜히 기분이 꿀꿀해 오랜만에 대격변 일어나기 전날 츤츤이와 먹었던 고깃집을 찾았다.
혼자서 소주 한 잔에 고기까지 먹고 나자 기분은 더 가라앉았다.
공원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한희나 나오라고 해서 같이 한 잔 할까!
그때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개새끼야! 여기가 어디라고 니깟 놈이 함부로 설쳐!”
“뭐? 설치긴 누가 설쳤다는 거야?! 시비는 니들이 먼저 걸었잖아!”
삼 대 삼이었는데 곧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그들 사이로 난입했다.
“학생들 같은데 싸우지 말고 집으로 가라.”
“아줌만 뭔데 끼어들어요? 아줌마나 집에 가세요!”
난 싸움에 끼어든 여자를 보자마자 그리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녀는 대격변 당시 야구 점퍼 입은 양아치와 함께 싸웠던 여자 경찰인 이예진이었다.
“나 아줌마는 맞는데 경찰이기도 하거든!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그러면서 경찰 배지를 꺼내 보여줬다.
하지만 이미 학생들은 눈에 보이는 게 없는지 계속 그녀에게 대들었다.
“경찰이면 뭐? 우리가 지금 싸웠어요? 친구끼리 말싸움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니까! 경찰이면 이래도 되는 거야? 어?”
그녀는 그들의 행동에 한숨을 푹 쉬고는 번개같이 그들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씩 때렸다.
“아흑!”
“악! 내 머리!”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가라고 했지. 더 맞기 싫으면 빨리 꺼져!”
그제야 그들은 슬금슬금 그녀 눈치를 보다가 도망갔다.
짝. 짝. 짝.
갑자기 들려온 박수소리에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당신…. 혹시?”
그녀는 날보고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냅다 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퍽.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가 너무 거친 거 아니야?”
태연하게 말하는 날 그녀는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쉬지도 못하고 죽는 줄 알았다고!”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으니 됐잖아. 그나저나 그때 그 양아치는 잘 살고 있나 몰라!”
“너무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마! 안 그래도 언제 한 번 당신 만나길 고대하고 있으니까.”
“그래? 잘 됐네. 지금 어디 사는데?”
그 질문에 그녀는 약간 머뭇거리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집.”
“뭐? 너희 결혼 한 거야? 아님 동거?”
“지난달에 결혼 했거든! 근데 진짜 우리 남편 만날 거야?”
“보고 싶다는데 만나보지 뭐. 안 그래도 오늘 좀 외로웠는데 잘 됐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우리 남편 만나면 다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하하하. 제발 다쳐보고 싶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가자!”
내가 물러설 기미가 전혀 없자 한숨을 크게 쉬고는 알겠다며 앞장서 걸어갔다.
그리곤 가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랑 같이 온다고 이야길 하고 전활 끊었다.
“뭐래?”
“잠깐만 기다리래. 당장 달려온다고!”
5분 정도 지났을까!
멀리서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야구점퍼는 아니지만 촌스런 금발을 한 남자. 정찬호다.
우리 앞까지 달려와 멈춰선 그는 내 얼굴을 확인하곤 갑자기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하하하. 이 개새끼 잘 만났다.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지 모르지?”
“와이프나 너나 날 왜 그렇게 보고 싶어해? 나 사랑해?”
능청스런 내 말에 그는 잔뜩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바로 달려들거나 하진 않았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그는 터벅터벅 내 앞으로 걸어와 섰다.
그리곤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사랑하냐고? 그래! 존나게 사랑한다!”
그리곤 바로 그의 주먹이 날아왔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