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다짜고짜 처음 보는 내게 새파란 애송이라고 부른 이는 70세는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너같은 애송이 때문에 길드 연합 대표인 우리 모두가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단 말이다!”
그는 기다린 게 무척 화가 나는지 얼굴에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드러냈다.
그건 다른 이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니, 저 할배가 언제 봤다고 애송이야? 당신, 나 알아?”
“뭐? 할배?”
순간 그에게서 숨막힐 듯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처음 느껴보는 살기.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라 그런지 ‘대격변의 영웅’ 효과가 발동되지 않았다.
하지만 난 테세우스와도 당당히 겨뤘던 몸.
저런 할배의 살기는 우습다.
“왜? 내가 틀린 말했어? 할배가 할배지 그럼 청년인가?”
“뭐… 뭣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더 강해졌지만 난 미소를 지으며 받아넘겼다.
그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살기가 갑자기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곤 재밌는 장난감을 본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너 그냥 각성자가 아니구나! 내 살기는 각성자라고 해도 견디기 힘들 텐데 이렇게 태연히 넘기는 걸 보면 상당한 내공이 있는 놈이야. 요즘 세상에 내공이라니…. 재밌구나, 재밌어. 네놈과는 따로 할 얘기가 많겠어!”
그리곤 언제 소란을 피웠냐는 듯 눈을 감고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가 조용해지자 김신우가 헛기침을 하며 인사했다.
“험험! 미안하네. 너무 오래 기다려서 그런 거니 이해 좀 해주게. 난 미르 길드 길드장인 김신우라고 하네.”
“그럼 미리 약속을 하고 와야죠.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는 기다리게 했다고 화를 낸다는 게 말이 돼요?”
“그 점은 미안하네.”
김신우가 거듭 미안하다고 하자 그제야 난 화를 약간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그래서 저흴 찾아오신 용건이 뭐죠?”
“자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해서 왔네!”
“제안이요?”
갑자기 무슨 제안이지?
난 영문을 몰라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피앤씨에서 만든 아이즈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알고 있네. 그로 인해 인류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문제는 사이트 ‘서치’라네.”
“서치가 왜요? 잘만 돌아가고 있구만.”
“그렇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게 문제지. 지금 그것 때문에 여러 대형 길드들과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거든!”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어지는 그의 말은 이랬다.
본래는 대형 길드가 구역을 나눠서 그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생겨나는 게이트 처리까지 맡았다.
던전 관리도 마찬가지로 대형 길드가 대체적으로 맡아서 했는데 서치가 생겨난 후 그게 모두 망가졌다.
전국에서 수많은 각성자들이 던전 공략을 시도했고, 공략을 성공한 이들은 대형 길드는 무시한 채 던전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다 보니 전국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얼마 전에는 그로 인해 사람까지 죽는 일도 있었다.
안 그래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들었는데, 그 정도로 심각했던가?
“하시는 말씀은 잘 알겠어요. 근데 그게 저희 잘못은 아니죠. 저희가 법을 어긴 것도 아니구요.”
“그렇지. 자네 회사가 잘못한 건 없지. 하지만 이대로는 혼란만 증가할 걸세. 사상자도 많이 생길 거고 말이지. 그래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었으면 하는 게 우리 길드 연합의 생각일세.”
그러니까 저들 말은 자기들 밥그릇은 지키고 싶단 거네. 일단 뭐라고 하는지부터 들어볼까!
“그럼 생각해둔 규칙이 있나요?”
내가 순순히 그들의 흐름대로 따라오는 듯하자 그는 한결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얘기했다.
“우린 서치를 통해 찾아오는 각성자들이 던전을 공략하기 전에 그 지역을 담당하는 길드들에게 한 번 더 승인을 받았으면 하네.”
“그냥 승인만 받는 건 아니겠죠?”
날카로운 내 질문에 그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맞네. 우린 그들이 던전 공략에 성공한다면 이후 던전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의 10퍼센트를 수수료로 받길 원하네.”
10퍼센트나? 이 새끼들 완전 날강도네!
내 얼굴을 보고 생각을 읽어냈는지 김신우는 급히 이어 말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협력 없이 그들로부터 그냥 수수료를 받는 건 아니니 오해 말게나. 우린 던전 공략을 하러 오는 이들이 원하는 모든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네. 필요한 인원이나 물자가 있다면 전폭적으로 지원을 할 생각이지.”
“그 대신 수수료가 올라가겠죠?”
“우리도 뭔가 얻는 게 있어야 할 테니 그렇게 되겠지.”
“그게 전부인가요?”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그게 가장 시급한 문젤세. 다른 자잘한 문제들은 이 문제부터 해결하고서 하나씩 해결해나가면 될 걸세. 우리 제안이 어떤가?”
“지금 당장 결정해야 되는 건 아니죠?”
“우리로서는 급한 문제라 되도록이면 오늘 답을 들었으면 하네만.”
갑자기 쳐들어와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지만, 일단 알겠다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중요한 문제니 저희도 잠깐 회의 좀 하겠습니다.”
그리곤 조한희와 함께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떻게 생각해?”
난 들어오자마자 조한희의 의견을 물었다.
“분명 정리해야 할 문제긴 한데 저들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기엔 우리 이득이 너무 없어. 이득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되면 오히려 주도권을 저들에게 뺏길 수도 있어.”
나 역시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내 생각도 그래. 그렇다고 저들과 계속 마찰을 일으키게 되면 그것 역시 언젠가는 우리한테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어.” “그래서 뭐 생각나는 방법이라도 있어?”
“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어떻게?”
난 말을 하기 전에 주변에 누가 없는지 확인을 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을 우리 사이트인 서치로 끌어들이는 거야. 일종의 제휴라고 볼 수 있겠지. 번거롭게 그들한테 가서 승인을 받는 게 아니라 아예 모든 걸 서치 안에서 다 해결하는 거지. 또 그들이 수수료로 장난치지 못하게 정확한 기준도 명시해 두고 말이야!”
조한희도 좋은 의견이라며 동의하긴 했지만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근데 그러면 몇 가지 문제가 있어. 그들이 받길 원하는 10퍼센트의 수수료를 다른 각성자들이 인정할까하는 문제야!”
“나도 그게 가장 큰 걱정이야. 지금 우리도 그들로부터 5퍼센트의 수수료를 받고 있는데 거기에 10퍼센트까지 더해지면 그들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렵겠지.”
“그럼 어쩌지?”
“그들을 설득해야지. 5퍼센트로 낮추고 기타 제공하는 여러 서비스에 대해선 추가 수수료를 받는 걸로!”
“그걸 저들이 납득할까?”
“일단 밀어붙여 봐야지. 다른 의견 없으면 가보자!”
난 곧바로 조한희의 손을 붙잡고 다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생각보다 빨리 오자 회의실 안에 있던 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우리가 한 제안에 대해선 생각을 좀 해봤나?”
“네. 하지만 그대로 하게 되면 서로에게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아서 조금 다른 방안을 제안 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조한희와 방금 나눈 방안에 대해 얘길 했다.
내 말을 모두 들은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이야길 했다.
“그 방법도 나쁘진 않은 것 같군. 우리도 불필요한 인력을 줄일 수 있으니 좋기도 하고 말일세. 하지만 우리가 요구한 건 10퍼센트였는데 5퍼센트로 낮춘 것에 대해선 동의하기 힘들군.”
“하지만 10퍼센트로 하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저희 회사에서 떼는 수수료 5퍼센트도 있는데 거기에 10퍼센트가 더해지면 누가 저희 사이트를 이용하려 하겠습니까?”
“흥! 잘됐네. 이 기회에 그 빌어먹을 사이트를 없애버리면 되겠네!”
얘길 꺼낸 사람은 멋지게 양복을 차려 입은 미남자였는데 나이는 나와 비슷해보였다.
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몸속에 있는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내 몸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걸 본 이들은 깜짝 놀라 급히 무기를 소환하곤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때 처음 내게 살기를 날린 노인이 눈을 번쩍 뜨곤 큰 소리로 외쳤다.
“갈(喝)!! 어디서 장난질이냐?!”
순간 내게서 뿜어져 나오던 압도적인 기운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난 웃으며 다른 이들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개소리를 들었더니 욱해서 그만! 얘기 계속하시죠.”
확실히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 뒤로 날 보는 그들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특히 아까 내게 빈정거린 미남자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5퍼센트는 너무 한 것 같네.”
“하지만 잘 생각해보세요. 이게 오히려 기회일 수 있습니다. 수수료가 저렴해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길드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면 길드로선 오히려 이득일 겁니다.”
“흠!”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기들끼리 회의를 해본다고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
조한희와 나는 밖에 나와서 그들의 회의가 끝나길 기다렸다.
의외로 그들의 회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의를 시작한 지 15분 정도가 지나자 김신우가 밖에 있는 우릴 불렀다.
“결론이 어떻게 났나요?”
“박 대표 말대로 하기로 합의를 봤네.”
“잘 됐네요. 보다 세세한 내용은 따로 협의하기로 하고, 계약서 작성 때 만나 뵙는 걸로 하죠.”
“그러지. 되도록 빨리 계약을 했으면 하는데 언제쯤 가능하겠나?”
“오래는 안 걸릴 겁니다. 이틀 내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갑자기 찾아와 무리한 부탁을 했는데 들어줘서 고맙네. 내 나중에 꼭 보답하지.”
그리곤 다들 돌아갔는데 처음에 시비를 걸었던 노인만이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영감님은 안 가세요?”
그제야 노인은 눈을 뜨고는 아까완 전혀 다른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혹시 이곳에 대련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나?”
“있긴 있는데 그건 왜 물으시죠?”
“그럼 나랑 대련 한 번 해줄 수 있겠나?”
아까와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와 말투였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했다.
“간단한 대련이라면 어렵지 않죠. 가시죠.”
대수롭지 않게 승낙하는 날보고 그의 눈빛은 더욱 빛났다.
피앤씨 컴퍼니 빌딩 지하에는 완벽한 설비를 갖춘 대련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크기도 500평이 넘고 높이도 5미터나 됐다.
천장과 벽들은 대련 시 충격에도 손상되지 않도록 합성 티타늄을 사용해 만들었다.
대련장에 들어온 노인은 널찍한 그곳이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좋군. 이 정도 설비를 갖추고 있다니!”
“칭찬으로 듣죠. 그럼 시작할까요.”
노인은 천천히 맞은편으로 가 서더니 말했다.
“들어오게. 내 선공은 양보하지.”
“후회하실 텐데요.”
“허허허. 스스로의 무공에 자신이 있나 보군. 좋은 자세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지나치게 과신하지 말게. 이게 첫 번째 가르침이네!”
“뭐, 정 그러시다면!”
그리곤 환영보를 전개해 노인의 뒤로 순식간에 이동한 다음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노인은 이미 저만치 앞에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 주먹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고 노인은 그런 날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너무 과신하지 말라지 않았나! 이 정도면 몇 수 더 양보해도 괜찮겠군. 어서 들어오게!”
처음이다.
일반 각성자가 내 공격을 피한 건 말이다.
“좋습니다. 이제부터 제대로 보여드리죠!”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