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난 잠식당한 마녀들을 뛰어넘어 김나령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곤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허나 그녀는 여유롭게 내 주먹을 피하더니 반격까지 했다.
퍼펑.
그녀의 공격에 맞고 몇 걸음 물러난 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공격에 내공이 실려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양이 말이다.
“너, 무공을 사용할 줄 아는구나!”
내 말에 그녀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무공은 너만 사용하는 줄 알았어?”
“그건 아닌데 좀 놀라워서. 분명 아까 확인했을 땐 내공이 거의 안 느껴져서 말이야!”
“나름의 위장술이라고 할까! 그보다 나도 오랜만에 정체를 드러냈으니 제대로 좀 싸워볼까 하는데 너무 빨리 죽으면 안 된다. 알겠지?”
다음 순간 그녀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가슴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 후로 끊임없이 그녀의 공격이 이어졌다.
권, 각, 장 할 것 없이 모두 다 굉장히 뛰어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뛰어날 뿐, 충격적이진 않았다.
이제 대충 다 봤으니 슬슬 끝내볼까!
마침 날 향해 다가오는 그녀의 주먹을 향해 번개같이 일권을 날렸다.
푸화악.
“끄어억!”
비명소리와 함께 그녀는 뒤로 나뒹굴었다.
잠시 후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났지만 내 일권과 부딪힌 주먹은 완전히 박살이 났는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보다 놀라움이 더 큰지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니… 니가 어떻게 그 기술을 아는 거지?”
“응? 너 이 기술을 알아?”
“그… 그건 그 분의 독문 무공인데…. 네놈이 어떻게…?”
그 분? 그건 또 누구지?
“그 분이 누군데?”
하지만 그녀는 곧 실언을 깨달았는지 급히 입을 다물고는 표독스런 눈으로 날 노려봤다.
그리곤 뭔가를 결심했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와라!”
그녀의 말과 동시에 사방에서 검은 키메라 조각들이 꿈틀대며 그녀를 향해 몰려들었다.
뒤를 돌아보자 검은 키메라가 빠져나가서인지 잠식당했던 마녀들은 정신을 잃고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저년이 내 수고를 덜어주는구나!
그때 그녀 앞으로 모인 검은 키메라가 덥썩 그녀를 삼켰다.
김나령을 삼킨 검은 키메라는 한동안 꿈틀 거리더니 서서히 부피가 작아졌다.
부피는 작아지고 작아져 집어삼킨 김나령 정도 크기가 되자 멈췄다.
그 모습은 마치 그녀가 검은 키메라를 흡수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몸뿐만 아니라 얼굴, 심지어 뜬 눈까지 온통 검은색이었다.
“아아아. 이 느낌이구나! 절대자가 된다는 건!”
눈을 뜬 그녀는 황홀한 표정을 짓다가 날 바라봤다.
“어때? 너도 절대자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지 않아?”
난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절대자라고? 하하하하.”
그녀는 내 웃음이 거슬리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웃긴 거지?”
“내가 절대자라고 불릴 만한 존재들을 몇 명 아는데 넌 그들 발끝에도 못 미쳐! 근데 스스로 절대자라고 하니 내가 안 웃기겠어? 하하하하.”
“뭐…뭣이라?”
“내심 기대했는데, 이제 더 보여줄 것도 없는 것 같으니 그만 하자!”
그리곤 순식간에 그녀의 뒤로 이동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초열의 불꽃을 방출했다.
화르륵.
그걸로 끝이었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검은 키메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그녀는 키메라 때문에 목숨은 건진 것 같지만 온 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인간이 어떻게 이런 힘을…. 이런 힘은 오직 그분께만 허락된 건데….”
“그 분이 누군데?”
“그… 그 분은 마도천하를 이루실 분!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너희 모두 곧…. 크헉!”
그때 그녀의 그림자에서 날카로운 창이 튀어나오더니 그녀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 창은 그걸로 그치지 않고 나까지 공격했다.
가각.
하지만 내 가슴을 뚫지 못하자 다시 그림자 안으로 사라졌다.
김나령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급히 고개를 돌리자 언제 나타났는지 대마녀 앞에 뱀의 탈을 쓴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메이화가 쓰러져 있고, 소소라는 사람이 그녀를 보호하며 뱀의 탈을 쓴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저 새끼가!”
난 급히 대마녀와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뱀의 탈을 쓴 사람은 날 보고도 놀라는 기색 없이 침착하게 말했다.
“정말 예상외야! 대마녀를 살린 것도 놀랍지만 그녀까지 처리하다니! 허나 더 이상 계획이 틀어지는 건 곤란해. 너흰 오늘 여기서 모두 죽는 거야!”
그리곤 그 주변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불덩이가 생겨났다.
“어? 설마 헬파이어?”
지옥의 콜로세움에서 카르멘이 썼던 기술이 바로 저 헬파이어다.
내 말을 들은 그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이 마법을 알고 있나? 그건 좀 놀랍군. 허나, 이걸 안다면 피할 수 없단 것도 알겠지?”
그리곤 우릴 향해 헬파이어를 던지곤 다시 귀신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내가 가진 초열의 불꽃은 모든 불꽃을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날아드는 헬파이어 앞에 손을 뻗고는 초열의 불꽃을 크게 일으켰다.
화르르륵!
새파랗게 타오르는 불꽃이 헬파이어를 그대로 빨아들였다.
난 헬파이어를 모두 빨아들인 후에야 초열의 불꽃을 거뒀다.
어느새 다시 나타난 뱀의 탈을 쓴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떻게? 헬파이어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궁극의 마법인데….”
난 대답 대신 화룡도를 소환했다.
그리곤 그를 향해 단월을 사용했다.
“그건 죽은 다음 염라대왕한테나 물어봐! 단월!”
화룡도의 도신을 따라 모든 게 베여졌다.
하늘에 떠있던 달도, 나무도, 그리고 허공으로 사라지려던 뱀의 탈을 쓴 남자까지도.
도망가다가 몸이 반토막 난 그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드디어 끝났네. 조금만 늦었으면 또 놓칠 뻔 했어!”
난 일단 뱀의 탈을 쓴 남자에게 다가가 가면부터 벗겨봤다.
가면 속에 있는 얼굴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의 눈은 자신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떠져 있었다.
혹시 모르니 얼굴 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
아이즈의 좋은 기능 중 하나는 보는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어 저장할 수 있다는 거다.
아이즈를 착용한 상태로 눈을 세 번 깜빡거리면 사진이 찍히고 그 사진이 자동으로 스마트폰에도 저장이 되는 형태였다.
그제야 난 들고 있던 화룡도를 소환해제하고 대마녀를 돌아봤다.
그녀의 얼굴엔 놀람이 가득했다.
“당신 정말 인간이 맞나요? 마치 투신이 환생한 것 같군요.”
그녀의 칭찬에 모르는 소리 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투신이요? 이만큼 강해져도 제가 상처하나 못 입히는 존재들이 세상엔 수두룩한데 투신은 무슨!”
하지만 그녀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그대는 이미 충분히 강하니까. 그대가 누굴 만나왔는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당신 정도로 강한 사람은 단 세 명뿐이니까요.”
“그래요? 그게 누구죠?”
“그 얘긴 일단 이 자리부터 정리하고 하도록 하죠.”
“그러죠. 대마녀님은 일단 들어가 계세요. 이 자린 제가 동료들이랑 정리하도록 할게요.”
그리곤 수풀 속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다들 거기 숨어있지 말고 이리 나와! 일할 시간이야!”
그러자 수풀 속 숨어 있던 김호근과 권동규 등이 겁에 질린 채 덜덜 떨며 나왔다.
“겁먹을 것 없어! 다 끝났으니까. 이 마녀들부터 한 곳으로 옮겨 놓자고!”
하지만 그들이 겁먹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공포도 돈을 이길 순 없다.
난 품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를 꺼내 한 장씩 나눠준 다음 말했다.
“이건 추가 수당이야. 여기 있는 마녀들을 다 옮기면 추가로 백만 원씩 더 줄게.”
그리곤 천만원짜리 수표를 꺼내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런 내 모습이 그들에겐 더 공포스러운 모양이었지만, 돈의 힘은 그 모든 걸 이겨내고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들이 쓰러진 이들을 옮길 동안 난 소소가 안고 있는 메이화에게 다가갔다.
소소는 내가 다가가자 경계하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경계할 필요 없어. 네 주인이 괜찮은지 보러 온 거니까!”
다행히 그녀는 충격에 정신을 잃었을 뿐 별다른 외상은 없어 보였다.
그녀까지 확인이 끝나자 난 김호근을 불렀다.
“호근 씨!”
그는 내가 부르자 부리나케 달려왔다.
“왜… 그러시죠?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그는 잔뜩 위축된 채 내 눈치를 살폈다.
난 그에게 백만원짜리 수표를 네 장 주고는 일이 끝나면 나눠주라고 했다.
대신 일처리를 확실하게 안 하면 혼난다고 약간의 겁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몇 번이나 알겠다고 말한 후 다른 이들에게 말을 전하러 달려갔다.
얼추 정리가 끝난 듯하자 대마녀가 있는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미리 차를 우려서 내가 오길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난 그녀 맞은편에 앉은 다음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얼추 정리가 됐네요. 그럼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정리를 좀 해보죠.”
“홀홀홀.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 물어보세요. 그대는 우리 마녀들의 은인이니까요.”
“제일 먼저 배신한 김나령은 마녀가 맞긴 한 건가요? 그녀는 왜 배신 한거죠?”
내 질문에 그녀의 눈에 슬픔이 비치는 게 보였다.
“그녀는 완전한 마녀는 아니에요. 마녀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쪽짜리 존재죠. 그래서 마녀 세계에서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결국 뛰어난 사업 수완 덕에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죠.”
“그러면 김나령의 엄마와 아빠는 누구죠?”
“그녀의 엄마였던 마녀는 그녀를 낳다가 죽었어요. 그리고 그녀의 아빠가 누군진 나도 잘 몰라요. 그것만은 끝까지 비밀로 했거든요. 다만 하나 확실한 건 그녀의 아빠는 무공의 고수였어요. 그것도 상당한!”
그녀가 보인 무공 실력을 보면 그럴 거라고 짐작이 갔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론 무공을 익힌 이들은 지극히 폐쇄적이라 혈연이나 특별한 인연이 아니고는 절대 무공을 전수해주지 않았다.
전수하더라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전해줄 뿐, 핵심은 쏙 빼고 가르치기 일쑤였다.
이철진만 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익힌 무공은 제대로 오랫동안 배운 것이었다.
그 말은 곧 그녀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이 상당한 고수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럼 김나령은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마녀 사회에 대한 앙심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건가요?”
“그것도 하나의 이유일 거에요. 허나 그게 다라고 보긴 어려워요.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이제는 알 수가 없게 되었네요!”
김나령에 대한 얘기는 이쯤하고 아까부터 궁금했던 예언자와 그녀가 봤다는 고수에 대해 물어봤다.
“저에 대해 예언했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죠?”
“그녀는 900년 전쯤 찾아온 무녀에요.”
“무녀요?”
천룡도 무녀가 찾아와 예언을 했다고 했는데…?!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