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마녀들은 크게 동양과 서양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동양 마녀들의 수장을 대마녀라고 한다.
서양의 경우는 위치퀸이라고 불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할머니가 대마녀란 말은, 동양에 있는 모든 마녀들의 수장이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천룡이 남긴 비늘을 받았을 때 대마녀의 스승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진짜로 천룡이 대마녀의 스승이었던 거야? 잠깐! 그럼 말이 안 되는데. 천룡이 용이 되기 위한 수련을 한 게 천년이라고 했으니까 그가 스승으로 활동한 건 최소 천 년 전이란 얘긴데. 그럼 저 대마녀 나이가 천살이 넘는단 거야?!
난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풀어야 했다.
“할머… 아니, 대마녀님. 진짜로 천룡의 제자셨던 거에요?”
“천룡이라…. 이 비늘의 주인을 그렇게 부르는 거라면 맞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절 가르쳐주셨던 스승님이시죠.”
그녀는 다시 아련한 추억에 젖은 눈으로 조용히 허공 한 켠을 응시했다.
“근데 제가 알기로 천룡은 천 년도 전에 제자를 받은 걸로 아는데…. 그 말은 할머… 아니, 대마녀님이 천 년도 넘게 사셨다는 말인가요?”
그 말에 그녀는 날 보고 예의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죽지도 못하고 그 오랜 세월을 살아왔네요. 하지만 이제 죽을 날도 머지않은 것 같네요. 홀홀홀.”
그녀의 말에 김나령이 큰소리로 나무랐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정신 바짝 차리고 회복에나 신경 써!”
“대마녀님. 어디 몸이 편찮으세요?”
“홀홀홀. 나이가 나이다 보니 이곳저곳 많이 쑤시네요.”
“나이는 무슨 나이. 이게 다 그 빌어먹을 년이 한 짓이 분명해!”
“빌어먹을 년이요?”
“당신은 몰라도 돼요!”
그때 누군가 오두막집의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들어오세요.”
대마녀의 말에 문이 열리며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마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보랏빛의 벨벳드레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한 그녀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어머나! 손님이 계셨네요. 그것도 남자가!”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날 바라봤다.
그러자 대마녀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제 귀한 손님입니다. 그나저나 이 밤에 무슨 일이죠?”
그녀는 여전히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대마녀님, 몸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이제 슬슬 대마녀 직위를 다른 이에게 넘겨줘야 되지 않나 해서요. 그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왔어요.”
그 말에 김나령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대마녀 자릴 내 놓으라고? 이게 어디서 수작질이야?!”
하지만 그녀는 김나령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마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떠세요? 제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홀홀홀.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요.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 싶군요.”
그녀는 대마녀의 대답을 예상한 듯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어요. 근데 걱정이네요. 대마녀님 건강이 좋지도 않은 상태에서, 혹시 적이라도 쳐들어오면 큰일인데 말이죠!”
“그런 일 없으니까 꺼져! 누가 감히 여길 쳐들어오겠어?”
대마녀 대신 김나령이 말했지만 매혹적인 마녀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마녀를 보고 인사를 한 다음 사라졌다.
“저 마녀는 누구죠?”
“몰라도 된다니까요!”
화를 내는 그녀를 대신해 대마녀가 대신 설명해줬다.
“그녀는 중국에서 온 메이화란 마녀랍니다.”
“중국에서 왔다구요? 근데 왜 저렇게 대마녀님한테 공격적인 거죠?”
“제 자리를 뺏고 싶기 때문이죠. 이 작은 나라 사람이 동양에 있는 모든 마녀들의 수장이라는 걸 수치라고 생각거든요.”
그 말을 듣자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취했는지 이해가 됐다.
아!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한 거구나!
“근데 대마녀는 누가 뽑는 거죠?”
내 질문에 대마녀는 다시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마녀는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을 스스로 정해요. 만약 중간에 급작스럽게 죽게 된다면 마녀평의회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하게 되구요!”
“그럼 결국 대마녀님이 죽기 전에는 대마녀가 바뀌지 않는단 거네요?”
“홀홀홀. 맞아요. 내가 죽어야죠. 다만 예외적으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더 이상 대마녀로 살아가기 힘든 경우 대마녀의 자리를 후계자에게 넘겨줄 수 있어요.”
난 그녀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궁금했던 것들이 풀렸다.
그래서 아까 그 마녀가 대마녀 자릴 넘겨달란 거였구나! 그나저나 분위기를 보아하니 여긴 당하는 쪽인 것 같은데…. 히든 보스와는 관계없다고 봐야 되겠지? 그렇다면 아까 그 메이화란 여자를 파봐야겠네!
그때 오두막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곤 급히 오두막집의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노크를 한 사람은 상당히 급했는지 대마녀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들어온 이는 숏커트에 붉은색으로 염색을 한 젊은 마녀였다.
“무슨 일인가요?”
대마녀의 말에 방금 들어온 마녀가 울먹이듯 말했다.
“적들이 마녀의 숲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뭐? 적들?”
김나령이 대마녀보다 더 놀라며 소리쳤다.
“네. 처음 보는 검은 액체인데 자유자재로 모양을 변형해가며 우리 숲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검은 액체?
“그 검은 액체가 혹시 사람으로도 변하고 그러나요?”
그녀는 웬 남자가 갑자기 끼어드니 살짝 당황하며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네…. 사람뿐만 아니라 온갖 모습으로 다 변합니다. 대마녀 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전투가 가능한 인원들부터 모으세요. 그동안 내가 최대한 나무들을 이용해 그들을 막아볼게요!”
그녀는 대마녀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검은 액체가 내가 북한에 있는 마을에서 본 게 확실하다면, 일반적인 공격으론 안 돼!
“그 놈들을 막으려면 강력한 불이 필요해요. 혹시 화염 마법이나 화염 계열 공격을 할 수 있는 마녀가 좀 있을까요?”
하지만 대마녀는 고개를 저었다.
“우린 마법사가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 화염을 만들 순 없어요. 그나저나 그 검은 액체가 혹시 뭔지 아시나요?”
난 지갑 안에서 검은 액체를 만드는 법이 적힌 종이를 꺼냈다.
그리곤 대마녀에게 건넸다.
내가 건넨 종이를 받아든 대마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이게 뭐죠?”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검은 액체를 만드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래요? 어디 한 번 보죠!”
대마녀가 종이를 펼치자 옆에 앉았던 김나령도 얼른 그녀의 뒤로 와 함께 종이를 살폈다.
그리곤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 이건 궁극의 키메라 제조법이잖아요?!”
궁극의 키메라?
그때 대마녀가 약간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제조법은 어디서 난 거죠? 얘기해 줄 수 있나요?”
난 그녀의 말에 북한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줬다.
내 말을 다 들은 대마녀는 눈을 감았다.
슬픔을 참기 위함인 듯 했다.
그리고 김나령 역시 눈시울이 붉어지긴 마찬가지였다.
둘 다 아는 사람인가?
“아는 사람이에요? 안 그래도 가끔 대마녀님 얘길 하던데요. 대마녀님이 자길 쫓아냈다고! 복수해야 한다고!”
“지금은 다른 일로 급하니 나중에 말씀드리죠. 그나저나 쳐들어온 게 궁극의 키메라가 확실하다면 지금 우리 힘으론 막을 수 없어요. 고작 그들의 속도를 늦추는 게 다죠!”
“제가 도와드릴까요?”
대마녀는 내 말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오히려 놀란 건 옆에 있던 김나령이다.
“당신이 돕는다고? 궁극의 키메라가 뭔지나 알고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게다가 외부인의 도움을 받을 순 없어!”
“그래? 그렇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대마녀는 괜찮다고 말했다.
“이분은 제 귀한 손님이에요. 그 말은 곧 우리 가족이란 뜻이죠. 그러니 외부인이라고 볼 수 없어요.”
약간 억지스런 논리였지만 대마녀가 그렇다고 하는데 누가 토를 달겠는가!
“그럼 도와드릴게요. 대신 제가 원하는 걸 몇 가지 들어주셨으면 해요.”
“뭘 원하죠?”
“제가 궁금한 것에 대해 아는대로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그리고 보아하니 ‘마녀의 하루’라는 상점 자체가 마녀의 숲의 주 수입원인거 같은데 맞나요?”
“그래요. 우리 마녀들도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채 살아갈 수는 없죠. 그렇다보니 돈은 언제나 필요하죠. 그래서 여기 있는 나령이의 제안에 따라 시작한 게 ‘마녀의 하루’라는 상점이에요. 마녀의 숲 밖에 분점을 세워 돈을 벌자는 거였죠. 지금은 그게 우리의 가장 큰 수입원 중 하나가 됐구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김나령 저 여자가 마녀란 걸 들은 후부터 그럴 것 같더라니! 그래서 그렇게 돈을 주면 좋아했던 거구나.
“근데 그건 왜 묻는 거죠?”
김나령이 잔뜩 경계하며 물었다.
“아아. 다른 건 아니고 인수하고 싶어서요!”
“인수? 뭘요?”
“뭐긴요. ‘마녀의 하루’지.”
그 말에 김나령은 버럭 화를 냈다.
“뭐? ‘마녀의 하루’를 인수해요? 그게 돈 몇 푼 있다고 가능할 것 같아요? 그건 우리들의 주 수입원이라구요!”
“그러니까 내가 인수한다는 거죠.”
난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김나령에게 건넸다.
“갑자기 명함은 왜 주는….응? 피앤씨 컴퍼니? 거기다 대표라고?”
그녀는 내가 건낸 명함에 적혀 있는 피앤씨 컴퍼니란 이름을 보고 무척 놀랐다.
그만큼 현재 피앤씨 컴퍼니의 위상은 엄청났다.
“흠. 근데 내가 알기로 피앤씨 대표는 여자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거죠?”
“맞아요. 정확히는 공동 대표죠. 피앤씨가 나와 그녀 이름의 맨 앞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거든요.”
그렇게까지 말하자 그녀는 더 이상 의심을 할 수 없었다.
“우리 회사가 ‘마녀의 하루’를 인수하면 거기서 만드는 모든 비약과 물약들을 전 세계 각성자들에게 서치를 이용해 판매할거에요. 그러면 매출도 지금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늘 거구요. 결코 마녀의 숲에 손해되는 조건은 아닐 텐데요? 물론 원하는 조건이 있다면 말해도 돼요.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 다 들어드릴 테니까요.”
그의 말을 듣자 그녀들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란 걸 이해했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그것도 생각해 보도록 하죠. 우선은 궁극의 키메라부터 처리하도록 하죠. 정말 궁극의 키메라를 처리해 줄 수 있는 건가요?”
“하하하. 걱정 마시고 위치나 알려주세요. 어디죠?”
“지금 막 입구를 뚫고 마을 입구로 들어오고 있어요. 나령이가 잘 아니까 같이 가면 될 거에요.”
“그럼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김나령과 함께 오두막을 나섰다.
“마을 입구는 어디로 가면 되죠?”
“아까 묵었던 숙소 앞이 마을 입구에요!”
난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을 입구를 향해 달렸다.
트럭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수십 명의 마녀들이 다양한 형태의 검은 액체와 싸우고 있는 게 보였다.
마녀들이 밀리고는 있었지만, 아직 사상자가 많지는 않았다.
다행히 늦지는 않은 모양이네. 일단은 싸움부터 잠깐 멈춰보자!
난 짧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내공을 실어 크게 소리쳤다.
“흐읍! 멈춰라, 개새끼들아~!”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