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마녀의 숲.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대격변 이전부터 존재해온 곳이다.
하지만 대격변 이전까지 이곳은 마녀의 숲이 아닌 귀신의 숲이라 불렸다.
가끔 들어갔던 이들이 정신이 이상해져 나오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마녀의 숲이란 이름이 붙게 된건 대격변 후 마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다.
그때 대마녀라 불리는 자가 자신들이 모여 사는 곳을 마녀의 숲이라 부르며 허락받지 않은 이들의 출입을 금했다.
하지만 일부 각성자 중 호기심이 강한 이들이 마녀의 숲을 공략하겠다며 도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중 살아서 나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녀의 숲은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금지로 지정되어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차에서 내린 우리 모두는 마녀의 숲 입구까지 걸어갔다.
입구까지 가자 갑자기 나무들이 좌우로 움직이며 요동을 쳤다.
그리곤 나무들 사이에 입들이 생기며 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마녀의 숲에 들어가려는 자. 합당한 자격을 갖춰라!]
그러자 김나령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서 나무들 앞에 내밀었다.
[자격이 확인됐다.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
외침이 끝나자 나무들의 모습은 원래대로 돌아갔고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길이 나타났다.
어떻게 한 거지? 진법도 아니고 마법 같은 건가?
흥미로운 눈으로 나무들을 보고 있는데 김호근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뭘 멍하니 있어? 어서 차에 타. 바로 출발해야 되니까!”
우린 바로 차에 탄 다음 마녀의 숲 안으로 들어갔다.
숲 안의 모습은 밖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수풀에 우거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빛이 굉장히 잘 들어와서 숲 내부는 매우 환했다.
거기다 가끔 보이는 마녀들의 얼굴도 매우 밝고 행복해 보였다.
“마녀의 숲이라 긴장했었는데, 밖에서 보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걸! 분위기도 좋고.
“그치? 나도 처음에 올 때 엄청 긴장했었는데 한 번 와보고 나니 또 오고 싶더라구!”
대화하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앞에 가던 차가 멈춰섰다.
우리 차도 그 옆에 나란히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다들 오늘은 숙소에서 쉬고 내일부터 일을 시작할 거야. 밥은 숙소에 붙어 있는 식당에서 해결하고, 내일 아침 9시까지 다시 여기로 오도록 해. 그럼 해산!”
그녀는 그 말만 하고 혼자서 어딘가로 가버렸다.
“사장님 말씀 들었지? 다들 숙소로 가자!”
권동규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곤 날 보고 씨익 하고 웃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오늘은 간만에 재밌는 일도 있을 테니까 즐거운 밤 보내보자고!”
“즐거운 밤이라니 기대되는걸! 꼭 즐겁게 해줘야 돼!”
능청스럽게 말하는 날 보고 권동규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지금 당장은 별다른 액션은 취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녀의 숲 안이라는 걸 의식해서 인 듯 싶었다.
숙소는 트럭을 주차한 바로 앞에 있었다.
의외로 현대식으로 지어진 제법 큰 4층 상가였다.
1층은 식당을 하고 있었고, 2층과 3층은 숙소였다.
꼭대기 4층은 주인이 산다고 했다.
밥 먹기 전에 짐을 풀기 위해 올라간 숙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침구류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화장실도 현대식으로 깨끗했다.
무엇보다 1인 1실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어디 한 번 볼까!
건물 전체로 기감을 확장하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때 유난히 거대한 기가 4층에서 포착됐다.
저건 뭐지? 모양으로 봐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4층에 있는 거대한 기의 형태는 개처럼 보였는데 개라고 하긴 너무 컸다.
나중에 슬쩍 한 번 보고 와야겠다.
그 외엔 별다른 게 없자 간단히 가방만 정리하고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다른 이들은 이미 내려와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김호근이 날 보고 손짓하며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와서 앉아! 왜 이리 늦게 왔어?”
“다들 일찍 왔네. 짐 정리 안 했어?”
“배고파 죽겠는데 짐 정리는 무슨. 일단 밥부터 시켜. 여긴 다른 것보다 백반이 기가 막혀!”
“그럼 나도 백반으로 먹지 뭐. 여기 백반 하나 주세요!”
잠시 후 나온 백반은 반찬은 별로 없었지만 김호근 말대로 맛이 기가 막혔다.
모든 반찬이 재료 본연의 맛을 가지고 있어서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 나갈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누구세요?”
“신입. 나 권동규다. 문 열어봐!”
맞다. 저것도 있었지?
문을 열자 권동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문 밖에 서 있었다.
“잠깐 들어간다.”
그리곤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문 안으로 들어왔다.
넓지 않은 방에 다섯 명이나 서 있으니 방 안이 꽉 찼다.
“무슨 일이야?”
난 이 상황이 너무 즐거웠다.
너무나 거대한 적과 홀로 싸우는 날 위한 하나의 이벤트처럼 느껴졌다.
“아까 낮에 있었던 일은 마무리 지어야지. 신입이 늦게 오면 되겠어?”
권동규가 날 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하하하. 분명 5분 전에 왔는데 늦다니. 아무래도 눈이 좀 안 좋은가봐. 아니면 시계를 못 보나?”
“뭐? 이 새끼가 미쳤어?”
그리곤 바로 주먹이 날아왔다.
퍽.
“흐흐흐. 그러게 까불지 말았어야지!”
그는 내 얼굴에 닿아있는 자신의 주먹을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이런 주먹은 또 오랜만이네. 이게 끝은 아니지?”
“어어?”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으며 서 있자 그는 그제야 뭔가 잘 못된 걸 알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다음 공격을 퍼부었다.
퍽. 퍼억.
권동규의 주먹과 발길질이 수없이 내 몸을 때렸다.
“헉… 헉….”
그러나 난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웃고 있었다.
그걸 본 이들은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섬뜩함을 느꼈다.
“괴… 괴물….”
권동규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왜 그래? 더 쳐도 되니까 계속해.”
하지만 그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버렸다.
그를 따라 다른 이들도 각자의 방으로 달려갔다.
방에 남은 사람은 유일하게 김호근 뿐이었다.
“다…당신 각성자였어?”
그의 목소리는 겁에 질린 듯 떨리고 있었다.
“야. 당신이 뭐야. 그냥 아까처럼 편하게 해.”
하지만 그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가…각성자가 왜 짐꾼 따윌…?”
“각성자도 짐꾼은 할 수 있지. 그게 뭐 대수라고. 자세한 건 내일 얘기하고 나 좀 쉬면 안 될까? 오늘 차를 많이 탔더니 피곤하네.”
“그…그래. 그럼. 쉬세요!”
그는 마지막엔 존칭까지 쓰곤 서둘러 방을 나갔다.
이 정도 했으면 다시 오진 않겠지!
난 그들이 모두 방에 돌아간 걸 기감을 확장해 확인 한 후에야 방문을 잠그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근데 어디로 가지?
막상 나가려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마녀의 하루는 내일 가게 될 테니까 대마녀부터 찾아볼까? 그녀라면 뭔가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목적지를 정하자 난 바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곰인간인 최우혁의 본가에서도 걸리지 않고 돌아다닌 나다.
숨을 곳이 더 많은 마녀의 숲은 움직이기가 더 수월했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거대한 기를 가진 마녀는 보이지 않았다.
흠. 생각해보면 마녀라 기는 크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러면 어떻게 대마녀를 찾지? 아무나 한 명 붙잡고 물어봐야 되나?
그때 누군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녀는 김나령이었다.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거지?
대마녀를 찾을 마땅한 방법이 없자 일단 눈앞에 보이는 김나령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이곳 지리를 잘 아는지 전혀 헤매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멈춘 곳은 이곳과 어울리는 나무로 지은 작은 오두막이었다.
이런 곳에 오두막이 다 있네. 뭐, 마녀의 숲과 어울리기는 하네.
그녀는 문 앞에서 뭐라고 말하더니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오두막 주변을 돌아봤지만 창문은 보이지 않았다.
난 최대한 기를 없애고 조용히 천장에 귀를 대고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몸은 괜찮아?”
“난 괜찮단다.”
“근데 왜 찻잔이 세 개야? 또 누가 오는 거야?”
김나령의 말에 언니라고 불린 이가 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
“재밌는 손님이 오셨거든.”
“손님? 그게 무슨 말이야, 손님이라니?”
“불편하실 텐데 거기 계시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시죠. 아직은 날도 제법 쌀쌀하니까요.”
응? 날 보고 하는 소린가? 내 기척을 눈치 챘다고?
기감을 확장시켜 봐도 오두막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는 일반인 수준이었다.
혹시 다른 누가 있나 해서 기다렸지만 주위엔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차도 준비해 놨으니 들어오셔서 편히 얘기 나누시지요.”
아무래도 날 보고 하는 말 같았다.
도망갈까 했지만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날 돌아보고 앉은 김나령과 그 맡은 편에 앉은 노령의 할머니가 보였다.
“죄송하게도 제가 몸이 좀 불편해 일어서서 손님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이쪽 자리에 앉으시죠.”
그녀가 인자한 표정과 목소리로 내게 자릴 권했다.
자리에 앉자 김나령이 표독스런 눈빛으로 날 노려보며 말했다.
“날 미행한 건가요? 어쩐지 돈을 너무 많이 넣었다 했어.”
“나령아, 그럴 필요 없단다. 여기 오셔야 할 분이셨으니.”
그 말에 난 그녀를 바라보며 공손히 물었다.
“제가 올 걸 아셨나요?”
“언젠가 귀하신 분이 오실거란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제가 오늘 여기 올 거란 걸 미리 알고 계셨단 말인가요?”
“그건 오늘 오후에야 알았답니다. 그립고 정겨운 추억의 향기를 맡았거든요.”
“추억의 향기요?”
저건 또 무슨 말이지?
그녀는 영문 모를 소릴 하며 웃고만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순 없나요?”
내가 답답해하며 묻자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올려 내 가슴을 가리켰다.
“바로 거기서 제가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분의 향기가 납니다. 가슴 시리도록 그리운 향기지요.”
그녀가 가리키는 내 가슴을 바라봤다.
여긴 지갑 밖에 없는데…. 어? 설마…?
난 서둘러 지갑 안에서 반짝이는 비늘을 꺼냈다.
얼마 전 천룡이 승천하면서 전해준 거였다.
“자…잠깐만 그걸 볼 수 있을까요?”
아련한 눈빛을 하고 있는 그녀의 손바닥 위에 비늘을 올려놨다.
그걸 보던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그립고 그리운 분. 드디어 원하던 길을 가셨군요. 저는 이리 두고, 먼저 가셨어요….”
왠지 그녀의 눈물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그때 할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다시 인자로운 얼굴로 말했다.
“늙은이가 추태를 보였군요. 이제 이 비늘을 받으시지요.”
“아닙니다. 그건 아무래도 저보다 할머니께 필요한 것 같네요. 제가 가지고 있어봤자 쓸 곳도 없으니 그냥 할머니가 가지세요.”
그 말에 옆에 있던 김나령이 날 보고 대노하며 호통을 쳤다.
“할머니라니! 이분은 마녀의 숲을 이끌고 계시는 대마녀님이세요. 예를 갖추세요!”
“저 할머니가 대마녀라구요?”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