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각종 매체들에 돈을 뿌려 대대적으로 홍보한 덕분인지, 론칭 행사장이 마련된 삼성 코엑스에는 수많은 기자들과 아이즈를 체험해보려는 인파로 가득했다.
오후 2시.
약속된 시간이 되자 조한희가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대중들 앞에 섰다.
사실 누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지 고민했는데, 결국 조한희가 하게 됐다.
나는 되도록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야 했고, 김찬성은 극도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와주신 여러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전 오늘 제품 소개를 맡은 피앤씨(P&C) 컴퍼니 대표 조한희라고 합니다….”
그 후 간략하게 아이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또한 아이즈와 연동되는 각성자들을 위한 시스템인 ‘서치’에 대해서도 발표했다.
“이 같은 아이즈를 저희 회사에서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은 회사의 이익보다는 모든 이들이 아이즈를 사용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길 바라는 개발자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결과입니다.”
“그래서 얼마죠?”
극적 연출을 위해 미리 심어둔 사람이 큰 소리로 질문을 했다.
“25만원입니다. 단돈 25만원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시게 될 겁니다. 지금부터 본 행사장에 마련된 아이즈를 마음껏 체험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조한희는 깔끔하게 프레젠테이션을 마무리하고 내려왔다.
난 그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했다.
“최고였어! 완전 프로던데!”
“고마워. 떨려서 죽는 줄 알았어!”
그녀는 앓는 소릴 했지만 기분은 좋아보였다.
우린 같이 행사장을 돌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예상대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게 가능해? 완전 리얼한데?”
“그러게. 렌즈를 꼈는데도 이물감이 전혀 없잖아!”
“어? 전화도 되네!”
론칭 행사가 끝난 후 아이즈와 피앤씨 컴퍼니는 연일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반응은 하나 같이 혁신적이라는 칭찬 일색이었다.
엄청난 기술력으로 스마트폰을 대신할 수 있는데다 가격은 그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런 반응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약 주문이 폭주했고, 일주일 만에 1000만 개 이상의 주문이 들어왔다.
원가 5만원을 제하면 남는 수익만 5천억이다.
물론 세금과 여러 비용들이 빠지겠지만, 그래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남았다.
조한희와 나는 그걸로 번듯한 빌딩부터 하나 샀다.
그리고 큰 공장을 하나 더 사서 생산시설을 늘렸다.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더 흘렀다.
난 사무실에서 조한희와 앞으로 계획에 대한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그 사이 아이즈는 여전히 날개 돋힌 듯 팔렸고, 사이트 ‘서치’의 정액제 가입자도 날이 갈수록 증가했다.
또한 벌어들인 수익으로 대량의 금을 매입했고, 초월슈트를 개발하고 있는 연구소를 인수해 전폭적으로 지원을 했다.
“이제 대충 자리도 잡혔으니 난 어디 좀 갔다올게.”
“어딜? 혹시 울산에?”
아직까지 동료들은 울산에서 ‘익시온의 던전’을 공략 중이었다.
그들은 두 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두 번째 보스까지 깨고 세 번째 구간에 진입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 세 번째 보스는 깨지 못하고 계속 아이템만 파밍하고 있다고 했다.
“울산도 가보긴 해야 되는데 우선은 마녀의 숲에 먼저 가보려구.”
“뭐? 마녀의 숲? 거긴 금지잖아!”
조한희는 마녀의 숲에 간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난 앞에 놓인 천만 원짜리 수표를 입에 넣고 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렇긴 하지. 근데 들어가는 방법이 있더라구. 그래서 들어가서 정보 좀 얻어낼 거야.”
그런 다음 최민혁에게 들은 얘길 해줬다.
그제야 조한희는 납득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진 않는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태준 씨 실력이야 알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돼. 마녀의 숲이 괜히 금지는 아닐 테니까!”
“간단히 정보만 얻고 올 텐데 별일 있겠어! 걱정 말고 회사 운영이나 잘 하세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
마녀의 숲에 가기로 마음 먹은 건, 이제 슬슬 히든 보스의 세력에 대한 실마리를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럭키를 통해 정보를 모으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동물 탈을 쓴 사람들이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건 곧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에, 이대로 가만히 놔둬선 안된다.
최대한 은밀하게 그들의 세력 확장을 저지해야 했다.
그래서 마녀의 숲으로 최우선적으로 가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난 아이즈를 통해 저장해 둔 메모를 열었다.
이제 아이즈는 스마트폰과 완벽한 호환이 가능하다.
그래서 스마트폰과 아이즈를 동기화만 시켜놓으면 스마트폰이 없어도 어디서든 아이즈를 통해 스마트폰에 있는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전화보다는 직접 찾아가는 게 낫겠지. 멀지 않은 곳이니 일단 가보자!”
메모에 적혀 있는 곳은 잠실이었다.
찾아간 곳은 제법 큰 규모의 상점이었는데 간판에 <마녀의 하루(서울점)>이라고 쓰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알싸한 약초 향이 가득했는데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상쾌해지는 향이었다.
“어서 오세요. 저희 가게엔 처음 오셨나요?”
여직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네. 처음 왔는데 혹시 사장님 좀 만날 수 있을까요?”
“네? 사장님이요?”
처음 왔다는 사람이 갑자기 사장님을 찾자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 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모셔오겠습니다.”
기다리며 이런저런 물건들을 살펴보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곳 마녀의 하루 서울직영점 대표인 김나령이에요. 절 찾으셨다구요? 어쩐 일이시죠?”
말을 건 사람은 150 언저리의 작은 키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쎈언니 느낌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잠시 얘길 좀 나눴으면 하는데 어디 조용한 곳 없을까요?”
그녀는 날 가만히 쳐다보다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작은 사무실이었다.
곳곳에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물건들이 놓여 있어 그리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녀는 가운데 놓인 쇼파로 날 안내한 다음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이요?”
“네. 마녀의 숲에 들어갈 때 짐꾼으로 따라갔으면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죄송하지만 그 일이라면 이미 정해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녀의 숲은 검증된 사람이 아니면 들어갈 수도 없구요. 그럼 말씀 끝난 걸로 알고 일어나 보겠습니다.”
급히 일어나려는 그녀 앞에 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그걸 본 그녀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게 뭐죠?”
“제 작은 성의입니다. 꼭 마녀의 숲에 들려보고 싶어서 그런 거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내가 건넨 봉투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안에는 10억이 들어있었다.
최민혁이 마녀의 숲에 들어가는데 5억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 난 확실히 하기 위해 두 배인 10억을 넣었다.
돈을 확인한 그녀는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고는 큰소리로 웃었다.
“호호호호. 정말 잘 찾아오셨어요. 안 그래도 마침 한 사람이 비어서 어쩌나 고민이었는데 잘 됐네요. 당장 오늘 오후에 출발하는데 일정은 괜찮으시겠어요?”
역시 돈 앞에 장사 없구나.
새삼 옛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
“그럼요! 저야 완전 땡큐죠. 정확히 몇 시에 떠나는 건가요?”
“2시에 출발할 거에요. 일정은 3박 4일 정도 걸릴 테니 그 동안 생활할 짐만 챙겨오면 돼요.”
“2시라…. 3시간 정도 남았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얼른 준비해서 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상점 밖으로 나온 난 백화점에 들러 간단히 3박 4일 동안 생활할 준비물들을 샀다.
그리고 점심까지 먹자 1시 30분이다.
난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갔다.
아슬아슬하게 상점 앞에 도착하자 이미 몇 사람이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우락부락하게 생긴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날 보더니 대뜸 짜증을 냈다.
“넌 초짜면서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여기 다들 기다리는 거 안 보여?”
이건 뭐지? 텃새 부리는 건가?
“지금 2시 5분 전인데 무슨 문제 있어? 2시까지 오라는 걸로 들었는데!”
내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말하자 그는 더욱 화를 냈다.
“초짜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어야지. 뭘 잘했다고 고갤 빳빳이 들고 있어!”
오랜만에 이런 반응을 접하니 신선하긴 한데 기분이 나빠졌다.
한마디 더 하려는데 김나령이 상점을 나왔다.
그러자 지금까지 화를 내던 남자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한쪽으로 물러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어디보자.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명 다 왔네요. 서로 인사들은 했죠? 오늘 새로 온 태준 씨는 모르는 게 많으니까 여러분이 잘 설명해주세요. 그럼, 출발하죠!”
우린 5톤 트럭에 세 대에 나눠 타고는 마녀의 숲이 있는 충주로 출발했다.
내가 탄 트럭은 김호근이라는 남자가 운전했는데 다행히 텃세도 없고 성격도 무척 좋았다.
그는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마녀의 숲에서의 주의 사항에 대해 말해줬다.
“원래 마녀의 숲에는 여자만 들어갈 수 있었대. 근데 사장님만 예외적으로 남자 짐꾼을 쓸 수 있게 해줬다고 하더라구.”
“사장님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장님이 원래 마녀였다는 소문도 있어! 물론 소문뿐이긴 하지만.”
“그래?”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반인이 그 까다로운 마녀들과 오랜 기간 거래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소설 속에 있을 때는 왜인지 모르지만 마녀의 숲은 사라지고 마녀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마녀의 숲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냥 예전에 그런 게 있었다는 소문만 들었었다.
“그리고 마녀의 숲에 들어가면 절대로 마녀의 하루와 숙소 말고는 다른 곳은 가면 안 돼. 혹시라도 다른 곳에 갔다가 적발되면 즉시 처벌받게 돼. 그게 마녀의 숲 규칙이야. 외부인은 정해진 장소 외엔 돌아다닐 수 없다는 것!”
당연히 돌아다닐 거긴 하지만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그는 말을 하려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뭔데 그래?”
잠시 망설이던 그는 얘기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너한테 시비 걸었던 사람 있지?”
“그 덩치? 걔가 왜?”
“그 사람 이름은 권동규. 그가 암묵적으로 우리 짐꾼들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어.”
“하하하. 리더? 그런 것도 있어?”
내가 웃자 그는 자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웃을 거 없어. 아무래도 우리가 가는 곳이 위험한 곳이다 보니까 규율이 매우 중요하거든. 그러다 보니 우리 중 가장 강한 그가 자연스레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거고.”
“근데 그게 왜?”
“그게 말이지…. 권동규가 오늘 밤 널 불러서 신입 교육을 시킬 거야.”
“신입 교육?”
“말이 신입 교육이지 그냥 구타하는 거야! 짐꾼으로 들어올 때의 통과의례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래? 재밌겠네.”
“재미? 얼마나 때리는지 다음 날 바로 도망가버린 사람도 있을 정도야!”
“하하하. 알겠어. 주의할게. 그나저나 이제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앞서가던 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추는 게 보였다.
우리도 앞차를 따라 차를 세운 다음 차에서 내렸다.
“저게 마녀의 숲?!”
트럭 너머에는 음산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거대한 검은 숲의 모습이 보였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