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축복의 징표? 이게 뭐야?”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천룡이 간단히 설명을 해줬다.
[그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여타의 물건들보다 내 축복의 징표가 그대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부족한가?]
“부족하다면 더 줄 거야?”
[부족하다면!]
“부족해!”
전혀 부족하지 않지만 무작정 한 번 찔러 봤다.
[……]
“부족하다니까! 더 준다면서.”
그때 천지주변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곤 구름 사이로 밝은 빛이 쏟아지더니 천지를 비췄다.
[드디어 승천의 때가 왔구나!]
그 말과 동시에 천룡의 몸이 밝은 빛에 휩싸였다.
빛이 사라진 후 나타난 그는 완벽한 용의 모습으로, 전신에서 찬란히 빛이 났다.
입에는 용의 상징인 영롱하게 빛나는 여의주를 물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외쳤다.
“야! 용씩이나 돼 가지고 이대로 째는 거야?!”
[……]
하지만 그는 묵묵히 하늘만을 바라보고 천천히 승천할 뿐이다.
“에이, 쪼잔한 새끼! 퉤퉤퉤.”
그때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저건 뭐지?”
살짝 뛰어올라 떨어지는 물체를 낚아챘다.
손에 잡힌 건 반짝거리는 비늘이었다.
[그건 그대가 내 은인이라는 표식이다. 지니고 있다면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올 것이다. 운명을 거스르는 자여. 그대의 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멀리서나마 지켜보겠다.]
뭐라고 더 하고 싶었지만 천룡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난 천룡이 사라지고 나서야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반짝이는 비늘을 살폈다.
- 용이 된 천룡의 ‘은인의 표식’을 획득했습니다. 대마녀의 스승이었던 천룡이 남긴 ‘은인의 표식’입니다. 누군가에겐 약속의 징표이기도 합니다.
알쏭달쏭한 메시지였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오늘이 제대로 계 탄 날이란 거다.
생각지도 않은 아이템과 내단, 거기다 내성도 꽤 많이 얻었다.
이것만도 차고 넘치는데 천룡에게서 ‘은인의 표식’이란 것까지 받았으니….
할머니가 있던 마을을 지나며 쌓였던 스트레스가 모두 풀려버렸다.
“기분 좋게 상태창이나 한 번 더 볼까! 상태창.”
<상세 정보>
이름: 박태준
나이: 30
상태: 정상
성장 단계: 초인
*능력치(초인)
힘: 980
민첩: 1031
마력: 681
내공: 3780
물리 방어력: ∞
내성: 화염 100%/얼음 80%/전기 50%/독 50%
직접 눈으로 상태창을 확인하자,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이제 슬슬 내려가자.”
난 바로 백두산을 내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곧바로 럭키를 찾아갔다.
럭키는 내가 생각보다 빨리 오자 놀란 눈치였다.
“엄청 빨리 오셨네요! 갔던 일은 잘 됐어요?”
“뭐 그럭저럭. 근데 다들 어디 갔어?”
츤츤이는 그렇다치고, 김찬성마저 자리에 보이지 않자 물은 것이다.
“아! 대왕님은 며칠째 안 보이시네요. 찬성 씨는 잠깐 햇볕 좀 쬔다고 나갔구요.”
그때 김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날 보고 반색하며 말했다.
“태준 씨. 마침 잘 왔네요. 드디어 시스템을 완전히 구축했어요.”
“정말요?”
놀라는 척하긴 했지만 원래 김찬성이 말한 시간보다 일주일 정도 더 걸린 터라 내심 약간 실망하고 있었다.
“시스템을 구축 중에 욕심이 좀 더 생겨서 방향을 틀다보니 시간이 더 걸렸네요. 한 번 보시겠어요?”
김찬성이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은 평범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퀄리티는 높았지만, 천재가 만들었다고 하기엔 약간 부족함이 있었다.
그는 내 실망을 눈치 챘는지 미소를 지으며 뭔가를 건넸다.
“이게 뭐죠?”
그가 내민 건 작은 케이스였는데 뚜껑을 열자 콘택트 렌즈가 보였다.
“콘텍트 렌즈네요. 갑자기 이걸 왜?”
“한 번 껴보세요. 그럼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렌즈를 꼈다.
그러자 놀랍게도 눈앞에 다양한 정보들이 나타났다.
“설마, 이거 증강현실 기기에요?”
그는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사실 렌즈 형태의 증강현실 기기가 개발되고 있다는 건 기사로 접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근데 이걸 저한테 줬다는 건 우리 시스템과 호환이 된다는 뜻인가요?”
“아! 제가 동기화를 깜빡했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는 급히 컴퓨터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렸다.
“다 됐네요. 이제 우리 시스템이 보일 거에요.”
그의 말대로 눈앞에 우리 시스템 홈페이지가 나타났다.
컴퓨터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깔끔했고 항목별로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가장 좋은 건, 숨기기 기능이 있어 그 기능을 활성화시키면 눈앞이 깨끗해졌다.
렌즈가 이 정도 수준이면 여기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활용이 가능하겠는데!
“찬성 씨. 이거 스마트 폰과도 연동이 되나요?”
“하하하. 그건 기본이죠. 전화 통화, 화상 회의, 문자 전송, SNS까지 기본적인 기능은 다 가능합니다. 동기화만 한다면 말이죠.”
“이걸 찬성 씨 혼자서 만든 거에요? 별다른 장비도 없이요?”
“그래서 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아직 몇 가지 개선할 점들이 있긴 하지만 충분히 상용화가 가능할 겁니다.”
그게 가능한가? 이 정도로 혁신적인 장비를 여기서 만들었다고?
“렌즈 비용도 20만원 정도면 될 거에요.”
“이게 20만원 밖에 안 한다구요? 100만원이어도 살 것 같은데요!”
진짜다. 이 정도 성능이면 100만원에 팔아도 줄을 설 것 같았다.
그만큼 렌즈의 성능은 대단했다.
하지만 김찬성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단호히 말했다.
“렌즈는 30만원을 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전 제 시스템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길 원합니다. 근데 렌즈값이 너무 비싸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전 그건 원하지 않습니다.”
“하하하. 말이 그렇단 겁니다. 이건 한희와 협의해서 찬성 씨 뜻대로 가격을 정하도록 할게요. 어서 특허부터 신청해야겠어요. 그건 럭키 니가 알아서 처리해줘!”
“네. 바로 처리할게요.”
“그나저나 이 렌즈 이름은 뭐죠?”
“아이즈(eyes)로 했으면 해요.”
김찬성은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아이즈요? 좋은 이름인데요. 입에 착 붙고. 그럼 아이즈로 하죠.”
그 다음 난 럭키를 돌아보며 말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한희랑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특허 등록부터 해줘. 상표 등록도 해주고.”
짧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온 난 바로 ‘익시온의 무덤’이 있는 울산으로 내려갔다.
얼른 내려가서 조한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울산에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은 밤이었다.
던전이 있는 무룡산 동굴로 들어가자 다들 안자고 뭔가를 심각하게 논의 중이었다.
“다들 안자고 뭐해?”
모두들 날 환하게 웃으며 반겨줬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심각해?”
“아! 오늘 드디어 두 번째 중간보스 앞에 도착했거든. 그래서 공략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어.”
“벌써 중간보스까지 간 거야?”
“이젠 할 만 하더라구. 중간보스 앞에서 막혀버렸지만….”
“그래? 싸워봤어?”
하지만 조한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싸우러 들어가지도 못했어. 두 번째 중간보스는 타오르는 불길에 둘러싸여 있거든.”
“타오르는 불길?”
“그래. 불길이 너무 뜨거워서 접근조차 못하겠더라구.”
“그럼 내일 그 보스만 깨고 일단 올라가자.” 다들 한 달은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돌아가자고 하자 놀란 눈치였다.
“무슨 일 있어? 아직 2주 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가자니.”
“다들 아쉽나봐?”
“여기가 생각보다 괜찮더라구. 아이템도 수준도 높고 말이야.”
“그럼 나랑 조한희만 올라가볼게. 원하는 사람들은 여길 계속 공략해도 돼.”
조한희는 나와 자신만 올라간다고 하자 그건 또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나 잠깐 한희랑 얘기 좀 할게.”
그리곤 한희를 데리고 내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 김찬성을 만나 겪은 일을 말해줬다.
“그게 진짜야? 그런 장비를 2주 만에 혼자서 만들었다고?”
그녀 역시 나와 같은 부분에서 놀란 듯 했다.
그 놀람은 내가 가지고 온 렌즈를 착용하곤 더 커졌다.
“말도 안 돼! 이게 고작 20만원이라고?”
“엄청나지?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이 제품 하나만으로도 우린 거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서둘러 돌아가서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어!”
그녀는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한참을 떠들어댔다.
“일단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장부터 만들고, 제품 발표회도 공식적으로 해야겠어.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선 앞으로의 계획이 다 펼쳐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그래. 내일 중간 보스만 잡고 돌아가자.”
난 밖으로 나와 다른 동료들에게도 쉬라고 한 후 텐트로 돌아와 명상에 잠겼다.
전과 달리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있는 게 뚜렷이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손으로 내공을 모아서 그걸로 공격했다면 이제는 손가락 하나, 손끝 하나에만 내공을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머릿속에서 구현한 천의권도 6식까지 막힘없이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젠 콜로세움 5위였던 카르멘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 한 번 츤츤이랑 붙어봐야겠어. 지금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인지도 알 겸 말이야.
다음날 아침 우린 다시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중간 보스인 에우리티온이 있는 곳까진 다들 내 도움 없이 수월하게 진행했다.
에우리티온 역시 위험한 순간만 내가 가끔 도와주고 동료들끼리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 중 가장 큰 활약을 보인 건 예상 외로 이철진이었다.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움직임과 기술로 에우리티온을 혼자 막고 있었다.
아마 내가 준 갈탄의 장갑 덕분에 츤츤이로부터 배운 무공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조한희 역시 이제는 능숙하게 활을 다뤘다.
그녀는 눈이 안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노리는 곳에 화살을 꽂아 넣었다.
에우리티온을 잡은 것도 그녀였다.
“와! 다들 며칠 사이에 실력이 엄청 늘었는데. 못 보던 장비들도 보이고 말이야.”
내 말에 해진우가 자신의 팔뚝에 낀 붉은색 장비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음 보스까지 가면서 얻은 장비들이야. 화염 내성이랑 같이 여러 옵션들이 붙어있어서 그럴 거야. 템 수준도 켄타우로스한테 나오는 거보다 좋고 말이야.”
말을 들어보니 중간 보스를 공략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더 높은 수준의 아이템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럼 계속 가볼까?!”
에우리티온을 쓰러뜨리고 열린 문을 통해 넘어가자 전혀 다른 세상이 나왔다.
두 번째 구간에서 나오는 적들은 악귀의 형상을 한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었다.
“이것들은 또 왜 이렇게 생겼어?!”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