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오빠 입 말이야. 귀엽게 조잘대는 그 입이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하다구!”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날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난 그녀가 어쩌나 보기 위해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그녀는 내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자 미소를 짓고는 피 묻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오빠도 내가 마음에 들었구나? 그치?”
스르륵.
그러자 그녀의 손톱이 20센티미터 정도로 길게 자라났다.
“너 손톱 좀 깎아야겠다. 그래가지고 이 오빠가 너 좋아하겠니?”
여전히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장난을 던졌고, 그 말은 들은 그녀는 더욱 진하게 미소 지었다.
훅. 가가각.
그녀의 손톱이 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며 나는 소리다.
하지만 난 여전히 멀쩡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맞아보니 저 여자의 정체를 확실히 알 것 같다.
그냥 미친년이네.
말 그대로 미친거다.
난 혹시나 몬스터나 이종족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방금 공격을 받고 확신했다.
그냥 신체변형 각성자다.
그것도 별 볼일 없는.
그녀는 자신의 공격이 효과가 없었지만 개의치 않는 듯 재차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궁금증도 해소된 마당에 더이상 맞고 있을 이유는 없다.
짝.
공격을 시도하던 그녀의 뺨이 세차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도 아픈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여전히 웃으면서 오른손을 휘둘렀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보네. 고통도 제대로 못 느끼는 거 같고. 살려두면 또 같은 짓을 벌일테니까 죽여야겠다.
마음을 먹자마자 권강을 두른 주먹 수십 방이 그녀의 몸에 작렬했다.
잠시 후 몸 곳곳 부러졌는지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지며 꿈틀거리다 축 늘어졌다.
난 도와주러 왔다가 도리어 사람을 죽여서 그런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 죽은 그녀의 귀에서 흘러나오는 뭔가가 보였다.
“응? 저게 뭐지?”
검은 액체였는데 양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액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난 신기해서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살짝 그 액체를 찔러봤다.
그러자 액체는 나뭇가지를 타고 내 손으로 올라왔다.
약간 끈적끈적하지만 촉감이 나쁘진 않았다.
“이게 저 여잘 미치게 만든 건가?”
한동안 내 손에서 움직이며 놀던 검은 액체가 갑자기 모공을 통해 몸안으로 흡수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대로 방비를 못한 난 급히 눈을 감고 검은 액체의 위치를 확인했다.
검은 액체는 처음엔 뇌로 가려했지만 내가 내공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리자 방향을 틀어 가장 큰 에너지가 있는 단전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단전에 도착한 검은 액체는 내가 가진 내공을 흡수하려다 그 옆에 있던 초열의 불꽃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눈앞에 파란 불꽃이 생겨나며 카린이 말했다.
[야! 방금 그거 뭐냐? 기분 나빠서 태워버렸는데 괜찮지?]
그녀의 말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잘했어! 나도 처음 보는 건데 갑자기 몸안으로 들어와서 놀랬네.”
[근데 내가 지낼 곳은 잘 찾아가고 있는 거지?]
그녀의 말에 난 버럭 화를 냈다.
“그거 땜에 내가 여기서 개고생하는 거 안 보여?”
[빨리 좀 부탁해. 이제 초열의 불꽃 흡수도 마무리 단계거든!]
“확실한 거야? 거의 흡수됐다는데 난 왜 변화가 거의 없는거 같지?”
[완전히 흡수되기 전까진 확실한 변화를 못 느낄 거야. 초열의 불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니 몸속 기운을 계속 견제하거든!]
“뭐 완전히 납득이 되진 않지만 마저 수고해줘. 아마 내일 저녁쯤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카린은 기분이 좋은지 눈앞을 왔다 갔다 하다가 사라졌다.
근데 그건 진짜 뭐였지?
방금 전에 본 검은 액체의 정체가 궁금했다.
하지만 여자도 죽어버렸기 때문에 알길이 없어진 난 다시 길을 떠났다.
“이제 날도 슬슬 어두워지는데 오랜만에 노숙을 해야 되나?!”
노숙을 생각하자 츤츤이와 수련한 1년간의 시간이 스쳐지나갔다.
“으으으으!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리네.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몰라!”
그때 눈앞에 희미한 불빛들이 보였다.
“어? 불빛이 있는 걸 보니 마을이 있나보네. 배도 고픈데 맛있는 식당이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주머니에서 5만원 권을 한 장 꺼내 입에 넣고 씹으면서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뛰어갔다.
내 예상대로 그곳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집 백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로 곳곳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는 걸 보니 옛 시골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졌다.
“아! 냄새 조오타! 오늘은 노숙 말고 저기서 하루 묵어야겠다.”
결정을 내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앉아 졸고 있던 80정도 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그리곤 날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 마을에 타지 사람은 오랜만이네그려. 어디 먼데서 오는가?”
“네, 뭐. 근데 이 마을에 식당도 있나요?”
난 대충 얼버무리고 식당이 있는지 물었다.
“있지. 저기 골목 끝 집이 식당이여.”
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골목 안쪽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난 깍듯이 인사하고 가르쳐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입구에는 <순이네>라고 간판도 붙어 있었다.
“간판도 있는 거 보니 제대로 된 식당인가 보네. 배고픈데 잘 됐다.”
안으로 들어가자 허름하지만 깔끔하게 정돈 된 내부가 보였다.
테이블은 4개로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시골스러워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식당 안에는 아무도 없는지 너무 조용했다.
“여기요! 아무도 없어요?”
그제야 주방 바깥에서 누군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네. 나가요! 어머! 젊은 총각이네. 뭘로 해줄까?”
모습을 드러낸 이는 70에 가까운 할머니였다.
뭔가를 잡다가 나왔는지 곳곳에 피가 묻어 있어 섬뜩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인상은 무척 좋은 할머니였다.
“여기 뭘 제일 잘 하나요?”
“우리 집은 뭐니뭐니해도 선짓국이 최고지!”
“그럼 선짓국 하나 주세요.”
“내 잡던 것만 마저 잡고 얼른 끓여줄 테니까 조금만 기달려 줘.”
그리곤 다시 주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난 찬찬히 식당 안을 둘러보다 한 켠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을 발견했다.
“할머니 가족들인가 보네. 아들이랑 딸인가?”
할머니가 3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남녀와 다정히 찍은 사진이었다.
그러다 사진 속 여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이 여자 아까 그 미친년 아니야?”
사진 속에서 할머니와 함께 미소 짓고 있는 여자는 분명 아까 그 여자였다.
난 서둘러 기감을 확장시켜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식당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기가 느껴졌다.
여기 이상한 곳이구나!
난 급히 밖으로 나와 식당 건물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식당을 향해 몰려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냥 빠져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이왕 들어온 거 검은 액체가 뭔지 알아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사이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은 식당을 에워싸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어째 사람들 표정이 이상했다.
“히히히. 오빠. 이리 내려와서 같이 놀자!”
“형. 내가 형 대가리 한 번만 부셔보면 안 될까? 응?”
다들 아까 그 여자처럼 미친 것처럼 보였다.
그때 누군가 건물 위로 올라왔다.
돌아보니 식당 할머니였다.
“총각. 밥 금방 되는데 안에서 기다리지 여기서 뭐하는 거야?”
할머니는 능청스럽게 말했지만 그녀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보아하니 넌 제정신인거 같은데 잘 됐네. 이게 무슨 일인지 내가 설명 좀 들어야겠어.”
그 말에 할머니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깔깔깔깔. 설명은 내 아들을 이기면 해줄게. 아들! 이리오렴!”
“우워어어어!”
그녀의 말에 어디선가 괴성이 들리더니 무언가 휙하고 날아와 내 앞에 섰다.
그녀 말대로 얼굴은 사진 속에 있던 아들 같은데 몸은 기괴하게 변해 있었다.
팔다리가 꼭 몬스터처럼 변해 있었고 이성도 없는 듯 했다.
“아들. 저 남자를 내 앞으로 데리고 와! 죽이지는 말고.”
그녀의 말에 남자는 짐승처럼 나한테 달려왔다.
움직임이 상당해서 일반 각성자는 상대하기 어려울 듯 보였다.
일반 각성자라면 말이다.
퍽.
“꾸에에엑!”
짐승처럼 달려들던 남자는 내 주먹 한 방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다음 그녀가 다른 수를 쓸 수 없게 환영보를 사용해서 순식간에 그녀 앞으로 가 그녀의 목을 움켜잡고 들어 올렸다.
“켁…켁…. 수, 숨이… 안….”
이 여잔 각성자가 아니네?
난 그녀도 각성자라 생각하고 힘을 줬었는데 지금보니 각성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 앉아 한참을 켁켁거리다 날 노려봤다.
“이제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주지 그래?”
“흥! 저딴 실패작 하나 이겼다고 좋아하지 마라. 이번엔 다를 테니까!”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 옆으로 검은 덩어리가 툭하고 올라왔다.
어? 아까 본 그 검은 액체네!
하지만 아까와는 양이 완전히 달랐다.
한 드럼통 정도는 돼 보였다.
난 혹시나 싶어 식당 밑을 내려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아마도 저 검은 액체는 마을 사람들 몸 안에 있던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듯 싶다.
“사실 내가 너한테 물어보려고 했던게 저거거든. 저게 대체 뭐야?”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이걸 안다고? 너 누가 보냈어? 망할 대마녀 년이야?”
대마녀? 설마 저년도 마년가?
혹시 몰라 살짝 떠보기로 했다.
“흥! 잘 아는군. 대마녀님께서 니년을 찢어죽이고 저 더러운 것의 정체를 알아오라고 하셨지!”
“깔깔깔깔! 도도하신 대마녀도 내가 뭘 만들었는지는 궁금한가보지?”
한참을 깔깔거리고 웃던 그녀는 갑자기 표정을 싹 바꿨다.
“그렇게 궁금하면 그년보고 직접 오라고 해! 내가 직접 찢어죽여 줄 테니까!”
“난 대마녀님의 명대로만 행할 뿐! 자! 처형의 시간이다.”
난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옆에 있던 검은 액체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검은 액체가 쭈욱하고 늘어나더니 서서히 검을 든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지금 이 광경도 대마녀 년이 보고 있겠지? 니가 보낸 사자의 대가리가 잘리는 광경을 잘 감상하라구! 아들아. 죽여버려! 깔깔깔깔.”
그녀의 명에 따라 검은 액체가 엄청난 속도로 내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난 오른 손에 강기를 두르고 그 검을 쳐냈다.
그런데 내 손과 부딪힌 검은 액체가 순식간에 내 팔을 휘감더니 아까처럼 몸안으로 침투하려고 했다.
다행히 내공으로 몸 전체를 보호하고 있어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미리 알지 못했다면 당황했을 것이다.
내 팔을 휘감았음에도 침투에 성공을 못하자 사람으로 변한 검은 액체의 몸 전체가 내 손을 타고 온몸을 덮었다.
“깔깔깔깔. 이제 반항은 그만하고 죽으면 되는 거야! 깔깔깔!”
하지만 난 초열의 불꽃을 일으켜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액체를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그녀 앞으로 걸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녀는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내… 내 아이들 어디 갔어? 어디 간 거야?!”
당황한 그녀를 보고 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곧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