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불타는 수레바퀴에 묶인 채 굴러온 사람은 내 예상대로 익시온이었다.
그는 우리 앞에 오더니 신전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난 익시온. 내 억울함을 풀어다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내 억울함을 풀어다오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그때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발생>
퀘스트 이름: 익시온의 부탁
퀘스트 내용: 익시온의 억울함을 풀어줄 단서를 찾으시오.
퀘스트 보상: ???(퀘스트 클리어 정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퀘스트 실패 패널티: 익시온에 동조한 죄로 제우스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퀘스트? 혹시 다들 퀘스트라고 나타났어?”
“어! 익시온의 부탁이라는데?”
“어떻게 할까? 수락해?”
그때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 퀘스트 ‘익시온의 부탁’을 수락했습니다. 상세 정보는 퀘스트 목록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수락? 누가 수락했어?”
내가 버럭 소릴 지르자 이예진이 천진난만하게 손을 들었다.
“내가 했는데! 왜?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뭐가 그리 억울한지도 궁금하고 말이야!”
저…저런 미친년!
퀘스트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실패시 패널티다.
제우스의 분노를 산다고 하는데 이게 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난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휴! 이미 저질러진 일이라 어쩔 수 없지만 다음부턴 꼭 의견을 모아서 행동해줘!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알겠다고 말했다.
그때 익시온이 있는 불타는 수레바퀴가 우리쪽으로 굴러왔다.
[그대들이 나의 억울함을 풀어줄 이들인가? 늠름하구나!]
“근데 뭐가 억울하단 거죠?”
[난 억울하다! 억울하단 말이다!!]
“그니까 뭐가 억울하냐고?!”
내가 짜증나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익시온은 그제야 자신의 사정을 얘기했다.
[난 헤라를 범하지 않았다. 제우스의 계략에 빠진 것이다. 내 아내 디아를 노린 제우스가 일부러 그렇게 꾸민 것이다. 그날 날 찾아온 구름의 정령인 네펠레는 헤라의 모습이 아닌 디아의 모습으로 찾아왔었다.]
그리곤 다시 큰 소리로 소리쳤다.
[난 억울하다! 내 억울함을 풀어다오!]
난 그의 말을 듣고 바로 무슨 말인지 이해를 했다.
제우스는 호색한으로 유명하다.
그런 제우스가 익시온의 아내인 디아를 맘에 두고 있었는데 방해가 되는 익시온을 함정에 빠뜨려 치워버렸단 얘기인 거다.
난 내가 이해한 바를 동료들에게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일단 퀘스트란 걸 받았으니 해결해야지. 근데 얘길 들어보니 익시온이란 새끼도 나쁜 놈이지만 제우스도 나쁜 새끼네!”
최우혁은 제우스가 못마땅한지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서 그 소릴 듣고 있던 익시온이 맞장구를 쳤다.
[그대는 진실된 자로구나! 제우스는 나쁜 새끼다. 그 새끼는 위선자다! 난 억울하다!!]
오랜 형벌로 인해서인지 익시온이 하는 말은 약간 이상했지만 어차피 던전을 공략해 가야하니 진행하면서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알겠으니까 시끄러워!”
그리곤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 천천히 가볼까?”
다들 내 말에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천천히 앞으로 가자 익시온은 억울하다고 소리치며 다시 어딘가로 가버렸다.
던전 초입이라 그런지 나오는 몬스터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보통 켄타우로스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하지만 A급 정도 수준의 몬스터라 쉽게 제압 할 수 있었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동료들과의 합을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저런 상황을 만들어 훈련을 하듯 진행했다.
또한 길잡이인 조한희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그녀 덕분에 훨씬 쉽게 던전을 공략해 갈 수 있었다.
들어온 지 5시간 정도가 흐르자 이젠 제법 합이 잘 맞았다.
적의 인원수에 따라 즉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공격을 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많지는 않지만 간간이 떨구는 아이템도 상당히 질이 좋았다.
난 동료들에게 필요한 아이템은 나눠주고 필요 없는 것들은 바로 먹어치웠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드디어 첫 번째 네임드를 만났다.
켄타우로스 칸.
빠른 속도와 강력한 뒷발차기. 거기다 제우스의 축복을 받은 번개 화살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적수는 아니다.
해진우와 최우혁, 이철진이 켄타우로스를 한 마리씩 붙잡고 있는 동안 나 혼자 칸을 상대해서 처리했다.
“후아. 네임드라서 그런지 엄청나네! 일반 네임드가 이 정도면 보스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최우혁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러게. 그래도 계속 전투만 해서 그런지 능력치도 많이 오르고 좋네!”
나는 아이템과 돈을 먹어서 주로 능력치를 올리지만 일반 각성자들은 달랐다.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전투를 통해 능력치를 올렸다.
민첩의 경우라면 빠르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능력치 상승폭이 컸다.
방어력은 많이 맞아야 올랐다.
해진우의 대답에 최우혁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나이가 같아서인지 금세 친해졌다.
난 흐뭇하게 그 둘을 바라보다 땅에 떨어진 아이템을 살펴봤다.
“에이씨. 죄다 켄타우로스의 편자잖아!”
편자는 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붙인 쇠붙이를 말했다.
그동안 켄타우로스를 잡으면서 나온 대부분의 아이템이 바로 이 편자였다.
완전 최하급 아이템이라 먹어도 능력치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그때 칸이 죽은 자리에서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응? 저건 뭐지?”
다가가서 주워보자 어딘가에서 떨어진 것 같은 황금빛의 금속 조각이었다.
- ‘진실을 듣는 나팔’의 조각을 입수하셨습니다. 조각을 모두 모으면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될지도.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이게 퀘스트를 풀 열쇠라는 걸 직감했다.
난 그 사실을 동료들에게 말하고 몬스터를 죽이면 땅을 잘 살피라고 말해줬다.
퀘스트 해결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감이 오자 우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던전을 공략해갔다.
그렇게 2시간 정도를 더 가다 보니 드디어 중간보스로 보이는 몬스터가 나타났다.
오는 길에 만난 상대가 켄타우로스였던 것럼 중간 보스 역시 켄타우로스였다.
하지만 그는 덩치가 일반 켄타우로스보다 1.5배 정도 컸고, 손에는 거대한 도끼를 두 개 들고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크기의 작은 원형 경기장 안을 돌던 그는 우릴 발견하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 에우리티온이 명한다. 더러운 인간들이 내 방에 침입했다. 와서 이들을 찢어 죽여라!]
하지만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오는 길에 조한희의 조언대로 모든 켄타우로스를 죽였기 때문이다.
사실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되는 몬스터들도 있었지만 조한희가 모두 죽여야 한다고 해서 죽였었는데 그 이유가 이거였나보다.
만약 우리가 그녀 말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들 그 사실을 눈치 챘는지 조한희를 향해 고마움과 감탄이 섞인 눈빛을 보냈다.
그때 아무리 기다려도 달려오는 켄타우로스가 없자 거대한 에우리티온은 바닥을 발로 차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내 동족 모두 너희 손에 죽은 것인가? 내 친우 칸마저! 크아아아아!!]
그리곤 미친 듯 울부짖으며 우릴 향해 달려왔다.
“일단 내가 막을 테니까 좀 떨어져 있어!”
동료들은 내 말을 듣자마자 내게서 떨어졌다.
난 일단 달려드는 에우리티온의 공격을 그대로 맞아봤다.
어디 얼마나 쎈지 한 번 보자!
쿠쿵!
엄청난 충격과 함께 내 몸은 한참을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하지만 난 곧바로 일어난 다음 달려들며 1식인 일권을 날렸다.
이놈은 가만두면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겠어!
에우리티온의 몸통 박치기는 예전 지옥의 콜로세움에서 7위였던 오로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물론 벌크업을 하기 전 수준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반 각성자들에겐 치명적 위협이 된다.
내 공격을 피할 수 없다고 느낀 에우리티온은 급히 두 팔을 교차해 공격에 대비했다.
콰콰쾅.
그는 완벽히 내 공격을 막아냈다.
이 정도 공격으로는 에우리티온의 두터운 가죽을 뚫긴 어려울 듯 했다.
하지만 그도 내 공격에 상당히 놀랐는지 급히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인간치곤 제법이구나! 내 동족들을 죽일 만한 실력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니놈들이 죽는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그때부터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하지만 서로의 방어를 뚫지 못해 전투는 점점 지루하게 흘러갔다.
어느새 최우혁과 해진우, 이철진도 함께 공격했지만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공격이 에우리티온의 방어를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에우리티온의 공격은 그들에게 치명적이었다.
다행히 한 방에 즉사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맞아서 나가떨어진 이에겐 이예진이 즉시 달려가 힐을 해줬다.
덕분에 우린 계속 버틸 수 있었다.
계속 밀고 밀리는 싸움이 지속되자 에우리티온도 조급해졌는지 들고 있던 도끼를 바닥에 던지고는 황금빛 활을 소환했다.
딱 보기에도 엄청 위험해 보이는 활이다.
순간 난 모두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들 산개해! 그리고 활이 자신을 향하면 무조건 죽을힘을 다해 나한테로 뛰어!”
난 에우리티온에 달려들어 공격하며 그가 활을 쏘지 못하게 방해했다.
하지만 그는 강력한 발구르기로 충격파를 만들어 날 떼어놓고는 순식간에 활시위를 당겼다 놨다.
그의 황금빛 화살이 향하는 곳은 힐러 이예진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도 자신이 타겟임을 인지하고 피하려 했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녀의 반응 속도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안돼!”
내가 급히 뛰어갔지만 이미 쏴진 화살보다 빠를 순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누군가 순식간에 그녀를 낚아챘고 화살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이예진도 죽는 줄 알았는데 살아난 것에 대해 놀라며 자신을 구한 사람을 바라봤다.
헌데 처음 보는 사람이다.
“고마워요. 근데 누구?”
“낄낄낄낄. 술래한테 잡히기 전에 어서 뛰라구! 낄낄낄.”
그녀를 구한 사람은 인간으로 변한 최우혁이다.
아마 위기의 순간에 곰의 모습으론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인간으로 변해 그녀를 구해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운이 좋았을 뿐.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뭔가 좋은 수가 없을까?
그때 내 눈에 에우리티온이 던진 도끼가 보였다.
저거다!
난 에우리티온이 활을 쏘고 있는 사이 도끼를 집어들었다.
거대한 도끼는 전체가 금속으로 되어 있어 상당히 묵직했다.
난 바로 도끼날 아래를 씹어 먹었다.
콰직. 콰드득.
땡강.
드디어 도끼날이 떨어지고 내 손엔 긴 도끼자루만이 들려 있었다.
됐다!
난 그대로 에우리티온을 향해 자세를 잡고는 도끼자루로 3식 파천을 시전했다.
“파천!!”
나 혼자 방어력 무한